이제 향수 선택에 있어서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소비자의 시대는 지난 듯싶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 다섯에서 일곱 가지를 소유한
여성이나, 두세 가지 향수를 번갈아 사용하는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그들은 CD나 넥타이를 고르듯 그들의 향수를 고릅니다” 라는 프랑수아 소렐(그는 라코스떼와 휴고 보스의 향수를 만들었다)의 말처럼 향수시장의 변화가 철마다 바뀌는 패션의 변화를 뒤따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향수를 고르는 취향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해지고, 경직된 틀을 벗어나 좀더 느슨하고 개인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고 그만큼 직접 사용하는 실전 경험이 많아지면서 상대방의 향기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브랜드 혹은 어떤 향을
뿌렸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실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요즘 향수시장에서는 어떤 제품들이 화제가 되고 있을까?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향수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진열대 앞을 서성이던 한 남성이 스프레이형 오 드 트왈렛 하나를 집어 손목에 대고 뿌려본다. 그리고는 팔을 흔들어 냄새를 맡은 다음, 향수를 묻힌 종이를 코 아래 갖다대고 킁킁거린다. 그는 그 후 몇 분 동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십여 개의 향을 테스트해 볼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화장품 코너 근처를 서성대는 남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백화점 향수 코너에는 자신이 즐겨 쓰는 오 드 트왈렛을 혼자서 사러 오는 남성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화장품 전문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덜 어색하기 때문이겠죠.”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향수 판매 직원의 증언이다. “이 경우, 남자들은 여유를
가지고 이 향수 저 향수에 관심을 보이며 향을 맡아보기도 해요. 오히려 여성 고객보다 덜 까다롭죠”라는 말과 함께. 예전에는 여자 친구, 엄마, 아내가 대신해 주던 일을 이제는 남자들이 직접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여성용 향수시장의 절반에 지나지 않지만 남성용 향수 시장은 지난 5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남자들의 선택
■ 브랜드 마니아 많은 남성들이 버버리를 입고 버버리를 뿌린다. 쇠풀, 버지니아산
나무, 사향 등의 그윽한 향들이 트레이드마크인 체크 무늬로 장식된 케이스 속에 들어 있다. 호기심이나 도전정신이 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실패할 확률은 적다. 최근 등장한 이브 생 로랑의 ‘M7’을 비롯해 아르마니, 페라가모, 휴고 보스, 구찌, 에스티 듀퐁, 폴 스미스, 장 폴 고티에, 돌체 앤 가바나 등 패션 브랜드에서
나온 향수는 스타일 면에서 ‘크레딧’이 확실하기 때문에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 젠틀맨의 향수 점잖은 분위기를 선호했던 1980년대 남성들에게 로샤스의 ‘마캇사르’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프랑스 <마담 휘가로>에서 만난 지방시 퍼퓸의 프랑수아즈 동슈에 의하면 “남성들 특히 기성 세대들에게는 자극적인 것보다 안정감을
주는 것이 더 필요하죠. 꽃이 여성스러움을 구현하듯이 풀은 남성다움을 일깨우고 그들을 안심시켜 줍니다”라고 설명한다. 과일과 나뭇잎, 부드러운 사향 냄새로 만들어진 버버리의 ‘위크앤드’나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조화를 이루는 크리스챤
디올의 ‘화렌하이트’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미스터 쾌남 남성 향수의 기조는 언제나 신선함이다. 그래서 물, 수풀, 대양의 이미지가 빠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남성 향수의 두 리더라면 ‘아쿠아 디 지오(아르마니)’와 ‘쿨 워터(다비도프)’가 아닌가? 남성에게 있어서 신선함은 깨끗함, 자연,
광활한 공간 그리고 편안함을 의미한다. 물론, 새 천년의 물은 1970년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레몬, 마편 또는 베르가모트(오렌지의 일종)는 줄어든 반면 탄제린(미국, 남부 아프리카에서 흔히 나는 귤), 왕귤, 식물 줄기들, 바다, 멘톨 향 또는 서리로
덮인 듯 상쾌하면서도 금속적인 느낌들이 주를 이룬다. 차가운 성질의 향신료도 유행한다. 후추를 약간 가미하거나, 계피, 고수풀, 나아가 불가리의 ‘블루’ 경우처럼 생강이 들어간 향수도 인기다. 신선함으로 어필한 2002년 영광의 베스트셀러에는 세탁기에서 갓 나온 티셔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미 힐피거의 ‘T’, 풀잎 향의 현대
버전인 파코 라반의 ‘오’, 힘차게 대양을 헤쳐나가는 투명한 나무 향, 라크르와의
‘바자 옴므’ 등이 있다.
■ 자연주의자들 자연주의 식물성 화장품만을 고집하는 여성들이 있듯이, 남자들도
전형적인 향수보다 기분을 리프레시해 주는 향을 원하기도 한다. 얼마 전 탤런트 배용준은 이 같은 이유로 프레쉬 매장에서 ‘차이나 그린티’를 선택했으며, 록시땅에서는 세련된 우디 계열의 베티버 향수 남성 라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
■ 스포츠 광 건축, 조립, 스포츠 등 남자들은 손으로 뭔가를 쌓고 만들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향수에서도 묵직한 유리나 금속으로 만든 잘 빠진 패키지를 선호한다. 맥도널드, 노키아, 플레이 스테이션, 스노보드 세대를 매료시키는 캘빈 클라인의
새 향수 ‘크레이브’가 대표적이며, 20대 후반의 남자들은 장 폴 고티에의 신제품
‘바포 비스코토 르 말’을 아령처럼 사용하기도 하며, 차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재규어’나 ‘페라리’ 향수를 무턱대고 구입하기도 한다. 투명한 블루 컬러 용기와 실버 뚜껑이 날렵한 인상을 주는 ‘폴로 스포츠’는 스포츠 스타인 우지원이 즐겨 사용하는 향수라고.
남자가 원하는 여성의 향기
보수적인 남자들은 진한 향수 냄새를 싫어한다. 강한 향수는 그들에게 짙은 화장을
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깨끗한 피부, 여성스러운 헤어 스타일,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나는 분위기를 선호한다. 향수를 뿌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듯한 냄새에 이끌리는 것. 랄프 로렌의 ‘로맨스’나 에스티 로더의 ‘플레저’, 겐조의 ‘파르팡 데떼’ 등의 싱그러운 잔향이 바로 그것이라고.
자신의 여자 친구가 섹시하기를 바라거나, 남들의 시선을 주목받기 원하는 남자들은
관능적인 향기가 나는 향수를 직접 선물하기도 한다. 광고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으로 유명한 장 폴 고티에 향수, 크리스챤 디올의 ‘돌체 비타’ 등이 그 대상. 어떤 남자들은 분 냄새가 나는 샤넬 ‘넘버 19’ 처럼 어머니를 연상시키고 향수를 부르는
향기가 나는 여자를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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