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학창 시절인, 40 여년 전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두려움반 기대감 반으로.......
50살 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한지 어느 덧 4년 하고도 1달이 되어 간다.
늦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 하게된 동기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이유를
댄다면, 우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감에 차있는 당당함과 행복한 미소, 남남이지만... 마치
가족같이 훈훈한 정이 넘치는 분위기, 등등.......
내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평안함과 희망에찬 미래를 발견 할 수 있었
기에, 나도 그들과 더불어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따뜻하고 포근한 정이 넘쳐흐르는 인간미와,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며 배워서...
남은 인생 만큼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 보겠노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고,
사랑하는 아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꼭 있어야 할 사람과, 있으나 마나한 사람,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위의 세부류 중에 어느 부류에 속한 사람일까???...
어리석고 못난 나의 지난 날을 뒤돌아보면 20대 초반에서 40대 중, 후반 까지는, 위의 후자에 속하는
지탄 받아 마땅 할 부끄러운 삶이었다.
부모님 에게는 효도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고, 피를 나눈 형제 들에게는 동생으로, 오빠로, 형으로......
자식에게는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한, 그런 인간이었다.
내가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후회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데에는, 아들 녀석이 소원이라며
눈물로 애원하는 모습에서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과, 어느 목사님의 인도로
서울총회 신학교 라는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못난 내가 한번도 생각 해본적도 없고 접해본 적도 없는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부터였다.
내집처럼 드나들며 나의 젊은날을 무의미하게 허송 해야 했던 수많은 세월중에서 마지막 5년 6개월의 담안의 빗을 값고
세상에 다시 태어 나던날.....
중학교 3학년이던 아들녀석은 애비보다도 큰 키에 대한민국 육군 상병 계급장을 달고있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가지 소원이 있는데, 꼭 들어주세요 라고 한다.
5년 6개월 만에 부자가 마주앉은 가운데,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아들녀석의 첫마디 말이다.
혹시나 내가 거절이라도 할까봐서인지 보충 설명까지 한다.
첫째 : 5년6개월동안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던 후배들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지 성격상 그들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해 또다시 과거의 건달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둘째 : 사채업 하던 자금을 세월이 흐른 지금에와서 다시 회수 하려고 한다면 회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고가 날 우려가 있으니 모든 것을 포기했으면 좋겠고,
세째 : 아버지가 다시 고향에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꺼리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삶 새로운 출발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철부지 어린 애인줄만 알고 있던 아들 녀석이 의젓한 청년으로
잘 자라준 것 만도 고마운데. . . . . . .
나는 무조건 아들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대답하며 아들 녀석을 끌어안았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부등켜 안고 울었다.
다음날 아들을 부대로 들여보내고 나는 서울로 향했다.
무주택, 무일푼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 남으려면 또 한번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전의 전쟁은 나의 영역과 부와 명에를 지키고 상대방을 해하기 위한 피를 보는 전쟁 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할 보금자리와, 더 나아가서는 좋은 의미에서 구상하며 꿈꿨던
작지만 뜻깊은 소망을 이루기 위한 아름다운 전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인내가 필요하고, 그 인내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한다.
이제는 두번다시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하며, 눈높이를 맨 밑으로 낮춰야 하며, 들어도 못들은척
짙 밟히면 짙 밟히는 대로 아파도 안 아픈척, 그렇게 집도 절도 없이.......
서울역 지하철 노숙자들의 틈바구니에 누워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앞으로 당분간은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왜 ?... 진작에 마음을 잡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 이리라....
사람들의 오가는 발소리에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나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안양으로 갔다.
안양에서 나에게 가장 사람다운 대접을 해주시고 가끔 상담도 해주신, 조광석[보안계장] 목사님을 만나서
앞으로의 진로를 의논 해볼 생각에서였다.
면회 신청을 하고나서 잠시후에 조 목사님께서 반가운 기색으로 맞아주신다.
엊 그제 아들 녀석과의 대화 내용을 말씀 드렸더니 잘 찿아왔다고 하시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서울 총회신학교를 소개해 줄테니 찿아가 보라고 하신다.
다음날 소개해주신 학교를 찾아 갔더니 학생 처장이신 양은하 목사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시며,
학비 걱정 말고 내일부터 라도 시간이되면 야간 학부에 출석을 하라고 하신다.
그 말을 듣는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며 눈가에 눈물이 맺인다. 한때 덩치들을 눈빛 한번,
손동작 한번으로 부리며 떨게했던 사나이가 여자 목사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조금창피했다.
학교에 다닐려면 우선 노숙자 신세부터 면해야 할 것 같아서 일자리부터 찾기로했다.
일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 것도 학교 바로 앞에있는 민자역사[용산역]공사현장
노가다 일자리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노동일 이었지만 힘이 들때마다 사랑하는 아들 녀석과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한 덕분에, 그곳 감독님 눈에띠어 공사장 경비 라는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고,
운좋게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하나얻어서 노숙자 신세를 면하게 되고, 냄비하나, 수저한벌, 대접하나,
라면 한상자와, 부르스타 하나를 장만해서 손수 식사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서울총회신학교 야간 학부에도 다닐 수 있게되었다. 학교에 처음 등교하던날, 모든 학우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고, 지금도 가끔만나며 친하게 지내고있는 당시의, 과대표인 박철수 전도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배려해주었다.
말로만듣던 [주경야독]50살이 가까운 나이에 내가 학생이라니, 마음을 고쳐먹으니 꿈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매사에 자신감도 생긴다.
신학생이니까 신학생답게 열심히 공부하고 봉사하며 살아 가겠노라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나니,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품었던 사명의식이 꿈틀거리기 시작 하고 있었다.
그래! 이 각박한 세상 어딘가에, 못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어디인가를 기다리지말고 내가 직접 찾아나서자, 여러날을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몇 몇 친구들을 만나서 나의 솔직한 심정과 계획을 털어 놓았더니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180도로 변할 수가 있느냐며 대찬성이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너의 그 아름다운 생각을 존중하고 축복하는 의미에서
모임의 명칭을,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이라고 정하자고 한다. 그렇게해서
아 사 모가 이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누구나 말로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깊은 뜻이 담겨있다 할지라도 실천이 없다면, 그림의 떡이요,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생!... 보람있는 일을 찾았으니 이제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 때다.
매월 한번씩 만나는 날을 정하고 십시 일반으로 만날때마다 자진해서 조금씩 현금을 모았다.
아사모 회원들과 함께 처음 방문한 곳이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실로암 연못의집]장애인 단체였다.
방문에 앞서서 그곳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예상밖의 주문을 받았다.
쌀과 기저귀와 연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요즘 쌀이 남아돌아서 가축의 사료로 쓰기도 한다는데, 쌀은 그렇다 치고 기저귀는 또뭔가?
하여튼 그곳에서 필요하다니 준비해 갈 수 밖에.......
방문하는 도중에 슈퍼마켓에 들려서 쌀 20kg 들이 3포대와 화장지 라면등을 사고 봉투에 현금을 조금
넣어서 실로암 연못의집 앞에 당도하니 이상 야릇한 냄새가 난다고 회원들은 인상을 찌프리는데.
나는 아무런 느낌도없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이곳 사람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곳 사람들에게 내가 어떠한 모습
으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안내를 받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그곳 책임자인 목사님은 출타 중이라 사모님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
이해 주신다. 준비해간 물품과 봉투를 전달하고,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40명 정도의 중증 장애인과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그나마 조금 나은 장애인 10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은 내가 감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너무나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충격을 받은 것은 서울 외각에 이와같은 낙후된 시설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 단체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안타
까운 마음에 자책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미용사인 우리 회원이 머리를 깎아주면 박철수 전도사와 나는 머리를 감겨주고 다른 회원들은 각자의
맏은바 임무에 충실하며, 그곳 식구들과 친해 질 수가 있었고, 오후가 되어서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실로암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 인가를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맨입으로는..... 맨손으로는.....마음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혜가 필요했다. 신학생에게 묵상과 기도는 생활의 기본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1:1의 대화인데,
회개가 없이는 응답도 없다. 하나님 앞에 지난날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하며 지혜를 달라고
때를 쓰듯이 매달렸다.
2002년 이른 봄으로 기억된다. 어느날 텔레비젼을 켰더니 마라톤 중계방송을 하고있었다.
주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고, 도로변에는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치며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을 하느라고 난리였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사 모를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해서 후원회원을 모집하자.
저기 달리는사람들 틈에 끼어서 함께 달리며 아사모를 알리자.
이 세상에 수많은 장애인과 어려운 이웃을 내가 다 책임 질 수는 없지만 힘닿는데 까지 만이라도
우선 시작해보자. 과거에 어려움에 봉착하면 뒤에야 삼수갑산을 갈 값이라도 저질러 놓고보는
기질이, 좋은 일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다시 발작한 것이리라......
그날로 당장 싸구려 운동화 한컬레를 사신고 추리닝을 입고 한강으로 뛰쳐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잠시나마 중,장거리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할만 했다.
[참고로 현재 강원도청 마라톤 감독이 학창시절 운동을 같이했던 절친한 친구이고 아사모
후원 회원이며, 윤선숙 선수도 아사모 회원임]
운동을 시작한지 한달만에 고향에서 열린 3.1절 기념 달리기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해서 4위로 골인,
노익장을 과시하며, 강원일보에 실리는 기회를 맞아 아사모를 홍보하게 되는 기회도 얻었었다.
2003년 봄부터 런너스클럽 이라는 온라인 동호회와 생활체육 지역 모임인 중구 육상연합, 전 국가대표
선수출신의 이홍렬 감독과, 진수선, 한재호, 김윤식 감독이 체계적으로 동호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런조이 에이스 클럽등 본격적으로 클럽 활동을 하면서 아사모 홍보에 나섰다.
뜻있는 사람들은 흔쾌이 후원회원이 되어 주었고 어떤이는 생활의 형편이 나아지면 후원 하겠노라고
점잖케 거절 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이상한 눈초리로 경계를 하기도 한다.
2년여 동안 클럽활동을 하면서 고향과 지방을 오가며 아사모를 홍보한 결과 지금은 50~60명의 회원님
들이 보내주시는 후원금으로 두곳의 장애인 단체와, 여섯명의 소년소녀가장, 한곳의 일반가정등을
후원하고 있으며, 후원회원이 소개하는 어려운 이웃에게도 지원을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들,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랑의
손길을 뻗치고 싶지만, 어려움이 너무많다.
쌩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내가 열심히 운동해 마라톤 고수가 되어서, 우선 많은 마라톤 마니아 들에게
나를 알리고, 클럽에서는 초보자들에게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며 봉사하며 홍보도 하려는 생각에
열심히 노력해 보지만 50살이 훨씬 넘은 나이인지라 이제는 체력도 뒷바침이 안되고 해서
아들 녀석을 설득하게 되었다. 녀석인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젊음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야할
나이에 힘든 마라톤을 하겠노라고 선듯 나설리가 없다. 이런말 저런말로 설득을 해봐도 도저히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No다
가만히 앉혀놓고 아사모에 대하여 차근 차근 이해를 시키며 설명을 해주고 나서 설득을 해도 No다.
할 수 없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드는 수 밖에,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며
아사모 활동도 함께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한참 망설이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마라톤을 하겠단다.
약속을 받아낸 다음날 곧바로 스포츠용품 매장에 함께 가서 운동화와 유니폼을 사서 입히고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지 3개월여, 드디어 동아마라톤!!!...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강훈련을 함께 하며 한 굳은 약속!!!...
1년 안에 부자가 함께 같은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부자 써브 쓰리를 해서 마라톤 마니아 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유명세를 빌어 아사모 홍보를 하면서,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며 즐겁고 멋진 인생을 살아보자는 둘만의 약속!!!... 디데이는 가을의 조선일보 마라톤!!!!...
드디어 동아마라톤!!!... 출발선에 들어서기 전에 부자가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화이팅도 하고,
무리하게 오버페이스 하지말고 아버지가 가르쳐 준대로 하라는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 놓으며,
나는 에이 그룹으로 아들 녀석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맨 뒷그룹으로, 각기 자기의 출발 장소로......
출발 신호와 동시에 계획 했던 페이스로 도심을 가로질러 가며 힘찬 레이스...
오늘 나의 목표 시간대는 2시간 54분대, 30Km지나니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힘의 안배를 위해 속도를 약간 줄인 것이 계산착오 였을까?... 골인하여 시계를 들여다보니,
2시간 55분 46초다, 목표했던 시간보다 1분이 늦어졌다.
그러나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들 녀석에게 3시간 10분 안에 골인해야 한다고 몇번이고 다그치던
생각을 하며 얼른 옷 찾아서 갈아입고 녀석 마중을 가야지 하고 물품 보관소로 햫하는데, 어디선가
아버지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뒤를 돌아보니 녀석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내가 골인 지점을 통과하여 이제 막 물 한병을 받아들고 마시고 있는 참인데....... 민호가 들어 올려면
아직 10분 정도는 더 있어야 하는데, 내가 피곤해서 헛 것을 보았나 ?.......
아니! 그럴리가 ..... 이세상에 자기 자식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사랑하는 아들 녀석의 목소리 였고 거기에는 녀석이 늠늠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 저 써브쓰리 했어요 한다.
부자간에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하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서 서로를 부등켜 안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장하다 내아들!!!... 나도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아들과함께 옷을 갈아입고 클럽 회원들이 모여 있는 천막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민호 몇분에 들어
왔느냐고 묻는다. 민호도 써브쓰리 했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준다.
다음날부터 우리 부자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달여동안 4부의 신문사와 인터뷰,
3곳의 잡지사와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2곳의 라디오 방송과, 2곳의 테레비전 생방송 화재집중과,
아름다운세상 만들기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매스컴의 위력은 과연 대단했다. 전철을타도, 목욕탕을가도, 심지어는 서울마라톤 회원들과 두달 후에
일본을가는데 환전하는 코너의 아가씨가 나를 알아보고 텔레비전에 나온분이 안냐고 인사를 한다.
또 어떤 여자분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보고 감동했다며, 아사모에 후원금을
보내겠다며, 구좌번호를 알려달라신다, 알려 드렸더니 좋은일 하는데 쓰라면서 20만원을 흔쾌이
송금해주셨다.
좋은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못난 나의 과거사 때문이었다. 맨 처음 동아일보에 우리 부자의 기사가
실릴때, 아들과 기자와 많은 상의를했다. 문제는 지금 나의 좋지 않은 과거지사를 밝히지 않드라도
세상 사람들이 곧 알게 되리라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아사모 회원들을 기만하지 않기 위한 나 자신의
양심선언이고, 회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행사 할 수 있게하는 최소한의 배려에서 였다.
클럽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건달생활을 했었다는게 이유였다.결국에는 클럽을 떠나야만 했던 가슴아픈
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자는 묵묵하게 운동에만 전념했다. 앞으로도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감
으로 도마위에 오른 물고기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초지일관으로 흔들림 없이 멈추지 않고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두 다리에 힘이 있는한 멈추지 않고 달리며, 이세상 단 한사람의 달림이라도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며
복지의 사각 지대에서 세상에 외면당한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있는 장애인들과, 불우이웃, 소년
소녀가장들을 잠시나마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있는 ??????? 이웃사랑에 마음문을 활짝 여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리라........
부족하고 못난 나에게도 생전에 꼭 이루어야할 꿈이 한가지있다. 아니!!!... 어쩌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내가 이세상에서 꼭 갚고 가야할 빗이고 사명이다.
그것은?..... 아사모! 소망의 집을 건립하는 것이다.
세상에 쉬운일이 어디에 한가지라도 있겠는가마는 나에게는 그 어디에도 물러설 곳이 없다.
또다시 내 인생이 험난한 시험의 도마 위에 올려 진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건강한 육체가 있고, 나를 믿고 후원해주는 회원들이 있고 나를 이해하고 따르는 아들이 있다.
거기에다 건강한 달림이들이 기를 모아 준다면 가능 하리라 믿는다.
꼭 내가 아니라도 신의 축복으로 건강한 육체를 지니게된 우리 많은 달림이들중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한달에 700Km~800Km 정도를 소화해낼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지고, 아들 녀석이 마라톤의
고수가 되어, 마라톤을 즐기고 사랑하는 전국의 달림이 들에게 우리 부자가 많이 알려 지게 될때 쯤
앞으로 3년~4년 ......... 아니! 7 ~ 8년 후에라도 . . . . . . . . . . . . . 꼭!!!. . . . . . . . .
3~4개월 일정으로 하루에 30Km씩을 달리며 [2500Km~3000Km]전국 방방 곡곡에 아 사 모를 홍보하며
모금 활동을 할 예정이다.
그때 많은 달림이들이 자기의 지역에서, 고향에서, 구간 달리기에 함께 동참하여 달리며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되었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더욱 커지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더 작아진다고 하는 말을 되새겨 볼때.....
우리 건강한 달림이들이 달리면서 건강도 지키고, 이웃 사랑도 함께 나눈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와
이웃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고
신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함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건강함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으로 축복받는 삶이 아닐까?.......
2006년 3월 국내 최초 부자 써브~3 한 승 범
첫댓글 아.... 감동입니다. 한승범님 더욱 힘내세요.. 한승범님 힘~~
감동입니다. 대충의 스토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들은 바 있지만 실제로 접하고 나니 존경심이 우러 나옵니다. 뜻하는 바 모두 이루시고 아들과의 긴 인생 여정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작년 런조이릴레이때 아사모 두건을 두르고 뛰셔서 [아들을 사랑하는 모임]인줄 알았는데.......... 비록 늦은 나이지만, 지기전에 한번은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고 간다는 저녁놀처럼, 뜻깊은 인생 보내시는 모습 감동입니다.
허리만 끝까지 펴고 달릴 수 있어도 SUB-3는 멀지 않다는 말씀 작년에 인상적이었는데(아직도 제대로 실천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에이스 마라토너들을 위해 많은 조언과 지도 부탁드립니다.
승범님! 글을 읽으며 더웃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달리는 것입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화이팅...
한승범님의 글을 읽노라니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 아드님과의 행복한 봉사가 생을 마감하시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라밥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고, 숙연해 집니다. 감히 한단어로 압축해봅니다..."멋쟁이"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의 보람찬 새 길을 달리고 계신 한승범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 합니다.
달리시면서 늘 행복 하시길...
인간승리하신 한승범님! 잔잔한 감동이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한승범님 축복과 행운이 늘 가까이 있을것으로 믿습니다. 에이스의 힘 한승범님 화이팅!!!!
아~~~자 행복한 내일을 위하여 히~~~~~~~~임
한팀장님 대단하십니다 나날이 화이팅 하십시요 ㅎㅎㅎ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이 가슴~찡한 글에 감동을 받습니다..앞으로는 건강을 생각하며 즐겁게 달리시며 `아~사~모...의 모임이 더욱 활성화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존경스럽습니다..
이제 쉴만큼 쉬고 달리기를 다시 시작 하였으니 즐겁게 달리면서. . .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 . 2탄을 써볼까 하고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