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이야기(속편)
우리 옆집은 우리와 10년 이상 붙어살고 있는 그야말로 친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사촌 중 한 집이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별식이 생기면
서로 나눠 먹고 집을 비울 때는 서로 집도 봐주면서 살아온 게 제법
오래 되었다. 그 집에서 이사 올 때 초등학교 다니던 남매 중 맏딸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은행에 취업했고, 아들은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데, 남매가 다 아주 착실한 젊은이들이다.
남매의 아버지는 50대 중반의 한양대 화공과 출신 엔지니어로서 현재
모 석유회사 중역으로 일하고 있고, 그 어머니는 고향이 부산으로
같은 경상도라서 그런지 아내와는 기분이 잘 맞는 것 같다.
내 직업과 학력을 알고 난 그 어머니의 청으로 중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남매한테 공부 잘 하는 비법을 몇 차례 지도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우리 집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나이가 어린
편인데도 신랑감이 생겨 내년 봄에는 시집을 보낼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은 바 있는데, 그 집 딸은 정말 외모나 성격이나 실력이나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일등 신붓감이라는 우리 부부의 생각대로 입사하자
말자 똑똑한 선배 남자 직원한테 도장을 찍힌 것 같았다.
눈치를 보니 요즘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가끔 이쪽 가족들이 그 총각과
함께 여행도 다닐 정도로 벌써 사윗감으로 대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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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2월, 내가 모교 동창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 ‘이웃사촌 이야기’
속의 바로 그 이웃사촌 댁이 지난 1년 동안 겪었던 큰 일 두 가지와 그에
관한 뒷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그 집 남매의 아버지는 180센티 정도의 큰 키지만, 체중은 50킬로 남짓한
병약한 체질이고 평소에 우리 집을 포함한 이웃 사람들과 마주쳐도 머리를
약간 숙여 목례만 할뿐 일체 말이 없는 아주 조용한 성품이다.
반면에 부인은 이웃들과도 잘 어울리는 아주 활달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
부부가 너무나 대조적이다. 젊은 날에 앓았던 폐결핵의 후유증으로 폐기능이
저하된 병약한 남편의 건강을 위해 온갖 정성을 바쳐 내조에 힘쓰는 모습은
우리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이다. 평일에는 아침 7시만 되면 야채를 갈아
주스를 만드는 믹서 소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렸고, 남편이 출근할 때는
현관문에서 작별인사를 하는 다른 부인과는 달리 꼭 아파트주차장까지
동행,승용차 앞에 일렬로 주차된 다른 차를 옆으로 밀쳐내는 일을 도와준다.
그리고 주말에는 부부가 함께 시장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느라 두문불출이다. 아내가 그 집 아주머니한테 들은 말로는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도 몹시 힘겨워한단다.
그러던 그가 작년 5월 딸이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을 하면서
싹 달라졌다. 우리 부부를 복도에서 만나거나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올 때면 전과 달리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걸기도 하였다. 주말에 사위가
딸과 함께 방문하면 무척이나 좋아하였고, 가끔 온 가족이 교외로 나가
맛있는 요리도 즐긴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활기찬 모습으로 변모해
건강도 전보다 한결 좋아 보였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아들이 군 복무중이라 집에 없으니 우리처럼 부부끼리만
살게 된 지난 늦가을 그가 회사에서 휴가를 얻어 집에서 요양 중이라는 말을
들게 되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현관 앞에 쌓이는 신문을 보고 여러 날
집을 비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문을 몰라 몹시 궁금하던 차 오랜만에
들리는 옆집 인기척에 아내가 그 집 부인을 만나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남편이 폐렴으로 시내 모 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는 중인데, 상태가
좋지 않아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고 하였다.
병약한 노인들이 겨울철에 폐렴에 걸리면 회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웃집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내가 서둘러 동네 병원에서 부부가
함께 폐렴 예방주사를 맞았고, 또한 일주일 후에는 보건소에서 노인들에게
무료로 시행하는 독감 예방접종까지 받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며칠 후 다시 아내가 휴대전화로 안부를 물었는데, 병원에서 폐렴과 관련된
좋은 항생제를 모두 시도해보았으나 병세가 호전이 안 된다는 불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때 회생할 가망이 없을 것같은 예감이 들어 우리 부부는
그 집에 닥쳐온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결국 며칠 후에 슬픈 소식을 듣고 말았다.
사랑스러운 딸을 훌륭한 청년한테 시집보내고 어깨에서 큰 짐을 내려놓은 듯
그렇게 좋아 했는데, 딸이 출가한 지 6개월 만에 너무 애석하게도 가족들을
뒤에 남겨둔 채 저 세상으로 멀리 떠나고 말았다. 나이가 이제 겨우 55세인데...
장례식장에 아내와 함께 조문을 갔을 때, 우리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슬픔을 삼키는 그 부인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가슴 아팠다.
딸과 함께 담담한 말투로 그간의 속사정을 틀어놓았다.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을 지켜보았는데, 건강이 그나마 괜찮을 때
딸애가 결혼한 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독백을 들었다. 딸애 역시 처음에는
자기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 생전에 결혼을 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게 참 잘한 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그 어머니도 늘 불안한 마음에 딸애만이라도 빨리
결혼을 시켜야 될 것 같아 서둘렀다면서 딸의 말에 동조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내와 마찬가지로 그 부인 역시 병약한 남편을
병수발하면서 늘 불안하고 고달프게 살아온 형편이 꼭 같아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친자매처럼 유별나게 가깝게 지내왔다고 짐작이 된다.
이웃사촌 댁의 슬픈 일이 생기고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저녁식사 후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주차장에 다녀온 아내가 경비아저씨를
만났는데, “1008호 아저씨가 요즘 통 보이지 않고 자동차도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차가 사라져버렸네요.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 집 아주머니한테 직접 여쭈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자초지종 이야기해주었다는 말을 들으니, 동네사람들의
설왕설래가 분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얼마 후 동네 미용실에서
너무도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단골 미용사 아주머니가 ‘1008호
아저씨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들린다.’면서 사실 여부를 물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헛소문이
났는지 동네 여자들의 입방아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고 느꼈다.
그 헛소문에 관한 이야기 끝에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소문이 만들어져
퍼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두려웠다.
며칠 전 아침 식사 후 산책에서 돌아와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려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벨을 눌렀다. 그동안 남편의 고향인
부산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사찰에 위패를 모셔놓았었는데, 전 날
49제까지 다 마쳤다면서 그 날 우리 부부와 함께 점심 식사라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우리 부부는 여러 날 전부터 49제를 끝내고
난 후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면서 젊은 나이에 홀로 된 그 아주머니를
위로할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기에 한가한 날 함께 만나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뒤로 미루었다.
마스네 - 타이스의 명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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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웃 사촌 이야기와의 좋은 관계가 이루어 지지 못한 아쉬움이 커시겠습니다 . 한 분계시는 이웃 아주머니와 의 더욱 더 가깝게 지내셔야 겠네요 .
ㅁ모든 이웃이 다들 건강했으면 하는 맘이 들었습니다 .
교수님처럼 훌륭한분을 이웃으로둔 이웃집이 부럽습니다.
한창 자랄때 인생의 진로에 대해 좋은 말을 들을수 있는것도 큰복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이웃을 만났더라면 저희 애들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더 낳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속의 이웃이 저희부부랑 비슷한 나이인거 같은데...
젊은 나이에 이세상과 하직을 한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웃을 잃은 충격이 크시겠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걸 잃게된다는 말이 실감나네요.동장군이 여러날 기승을 부리네요. 두분 항상 건강하세요.
위 글에 대한 좋은 댓글 달아주신 만촌, 공주, 그리고 취운님 고맙습니다.
이 글을 읽은 고등학교 동창생 하나는 미국 사는 딸한테 들었다면서,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했답니다.
그만큼 미국은 이웃도 없이 따로따로 재미없이 살지만, 한국은 이웃과
재미있게 잘 어울리는 반면에 말도 많고 남에게 관심이 지나치다는 비유이겠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웃사촌... 좋은 이웃은 분명 사촌보다 더욱 진한 인간관계가 형성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웃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 일 수도 있드라구요.
재미없는 천국, 재미있는 지옥이란 비유가 정말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문경님의 이웃이 좋은 것은 물론이겠지만, 그 보다는 그 분들에게 문경님과 사모님이 좋은 이웃임에는 분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