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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여행기를 공유합니다. 5불당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약간이나마 보템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나푸르나 보호구역_0414_0427
약 2주간 안나푸르나 보호구역에 머물렀다. 호기롭게 안나푸르나 라운딩 후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푼힐 전망대도 안가고 끝났다.
출발 당일 밤새 잠을 거의 못잤다. 전날 오후 늦게 커피를 진하게 마신 탓이다. 공식적으로는 총선 개표 결과에 들썩이느라 잠을 못잔 것이다. 나와서도 나라 걱정에 잠을 설친거다. 남은 짐은 어디 맡길까 고민하다가 그냥 묵던 호텔에 맡겼다. 트레킹 다녀와서 호텔을 옮길 생각이어서 산촌에 맡길까도 했지만 호텔이 좀 더 안전해 보였다. 트레킹 후 짐을 찾으러 가서는 친구를 만나 앞 호텔에 머물게 됐다고 사과했다.
6시 십분 전, 여편님한테는 호텔에 배낭을 맡기라고 하고 일단 나 먼저 산촌 앞으로 갔다. 산촌은 잠겨있었고, 포터가 왔고, 잠시 뒤 택시 기사가 왔다. 뭔가 이상했다. 산촌 아저씨가 트레킹 당일 6시에 오면 된다고만 해서 당연히 아저씨도 있을 줄 알았다. 팀스와 퍼밋을 대행했는데 그건 어디갔나 싶었다.포터에게 물어보니 자긴 없단다. 포터가 산촌에 전화를 해줬다. 나보고 왜 전날 안왔냐고 되묻는다. 포터 말이 버스는 여섯시 반에 한 대 밖에 없다니 따지는 건 접어뒀다. 다행히 팀스랑 퍼밋은 식당 외부 의자 밑에 놔뒀단다. 부랴부랴 챙기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포터 아속
잠시 포터 소개를 하면, 이름은 아속이다. 나이는 삼사십대로 추정되는 베테랑이다. 산촌에 쓰여진 바로는 포터 겸 가이드는 없다고 해서 기대를 안했는데, 가이드란다. 무려 16년차 베테랑이고, 가이드 수요가 많지 않은지 포터도 많이 한단다. 우리 트레킹 출발 전날까지 60대 한국인 할아버지와 23일간 라운딩을 하고 왔단다. 말이 많은 것이 단점이자 장점인데, 풍부한 가이드 경력만큼 안나푸르나 곳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저 설산은 어디고, 저 설산은 뭔지 다 알고 있고, 숙소도 가자는 대로 갔다. 숙소와 식당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다른 포터들과 달리 포터 없는 트레커들이 길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성향상 여성 트레커들에게 좀 더 호의적이기도 했고, 포터 없이 무작정 산도 안보고 가는 무리들을 무시하곤 했다.
1일차_포카라-(버스)-베시사하르-(지프)-참제(1430M)
첫날은 참제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클래식하게 베시사하르부터 시작하는 건 요즘 다 안한다길래 산촌 아저씨한테 시작점을 물었었다. 참제까지 지프 타고 가란다. 사전에 조사를 좀 해보니 베시사하르에서 참제까지 가는 길은 중간에 지프 길이 많고, 공사 현장도 많단다. 먼지도 많고, 위험할 것 같고, 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고민을 좀 했지만 일단 참제로 가기로 했다. 포터도 그게 좋단다.
포카라 버스 터미널에서 아침으로 빵과 차를 먹으며 버스 출발을 기다렸다. 포터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팀스도 못 챙겼을 거 같고, 첫 만남을 기념해서 작게나마 빵과 차를 대접했다.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버스표는 이미 1인당 500루피에 예매를 해둔 상태였다. 카트만두에서 저건 안타겠지 하면서 보던 로컬버스였다. 버스라기보단 좀 큰 벤에 가깝다. 버스에 오르니 딱 봐도 등산에 최적화되어 보이는 서양 친구들이 많이 탄다. 평소 보던 서양애들보다도 특히나 다리가 길다. 나와 여편님 다리 합치면 다리 길이가 비슷할 것 같다. 대신 버스에서는 우리가 편했다. 버스 폭이 너무 좁아서 그들이 표정은 일그러졌다. 거기다 중간 중간 네팔리들이 가득 탔다. 화장실 한 번 들르고 3~4시간을 가니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시발점 베시사하르에 도착했다.
포터가 데려가는 호텔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이날 처음으로 달밧을 먹었다. 스리랑카에서 먹던 싼마이 커리정식과 비슷했다. 옆 자리에 앉은 한국 여성과 이탈리아 남자로 구성된 커플을 만났다. 이분들 포터도 아속과 잘 아는 사이라 며칠간 같은 숙소에 머물며 고생을 함께 나눴다. 우리가 참제까지 지프타고 간다니 쿨한 누님은 자기네도 우리 따라 루트를 바꾸겠다고 했다. 거기다 인도 여행하다 온 미국 청년 한명까지 트레커 다섯에 포터 2명이 지프 하나를 대절했다. 지프 비용은 우리 셋 기준 4500루피였는데 포터들은 트럭 뒤에 타고 온 걸로 봐서 여행자는 2000루피 포터는 500루피로 쇼부친 것 같다.
참제까지 가는 길은 실로 험난했다. 지프를 타느니 걷는게 나을 듯 싶었다. 속도도 느리고 온몸이 쥐었다폈다를 반복했다. 죽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필 자리도 나는 조수석, 여편님은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앉아서 좁아 터졌다. 보면서 든 생각인데 베시사하르에서 버스로 이동 가능한 나디까지 가고 거기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공사 중인 현장은 대부분 지프 탄 뒤 초반에 분포했고, 그 뒤 부터는 마을이나 산길이 걸을만해보였다. 거기다 우리처럼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된 트레커들은 본격적인 코스에 오르기전에 낮은 고도에서 몸을 풀며 오는게 좋을 것 같았다.
중간에 티타임을 포함해 3시간 이상 걸려서 참제 근처에 다다랐다. 참제 직전의 한 티샵에 내려서 근처에 폭포도 보고 절벽 위에 생긴 거대한 벌집도 구경했다. 어차피 참제 다왔으므로 여기서부터 살짝 걷기로 했다. 한 삼십분 걸어가니 참제 마을이 나왔다.
첫날 숙소는 좀 충격적이었다. 태풍 한 번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층 판자집에 핫샤워도 잘 안됐다. 신기하게 와이파이는 터졌다. 화장실도 이제 쭈그리고 물 붓는 식이다. 여기서부턴 다 이런가 싶었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므로 샤워는 대충하고 저녁을 먹으러갔다. 사실 첫날 숙소가 가장 안좋은 축에 속했다. 최악을 경험하고 나면 그 이후가 편해지는 장점이 있다. 식당에 내려가서 옆집(한국+이탈리아) 커플과 인도 청년 등과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저녁을 기다렸다. 저녁은 또 간단히 달밧을 먹고, 포터로부터 우리 트레킹 전반에 대한 개괄 강의를 들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들으니 생동감이 있었지만 금방 피곤해졌다. 방으로 올라가서 어쩌다 여편님의 팔배게를하고 초저녁부터 꿀잠을 잤다. 여편님은 다음날 팔이 저렸다.
2일차_참제-탈(1700M)-다나큐(2130M)
어제 저녁 미리 주문한 아침을 아침 7시에 먹고,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고산병 걱정은 시기상조지만 장기전이므로 체력 관리를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올랐다. 물론 내 신조가 산을 오를땐 숨 차지 않는 정도로기도 하다. 천천히 가면 나 같은 사람도 숨 한번 안 헉헉 거리고 오천미터대를 넘을 수 있다. 설렁설렁 산길을 걸어가니 옆으로 에메랄드 빛 강이 흐른다. 이 강이 마르상디 강으로 티벳에서부터 흘러오는 강줄기라고 한다. 워낙 걸음이 느린 덕에 다들 우리를 지나간다. 포터가 있건 없건 다리가 길건 짧건 다 지나간다.
한참 오르막을 올라서 오전 티타임을 가지는데 한 무리가 몰려왔다. 당차게 잘생긴 청년이 올라온다. 한국 사람이다. 뒤이어 외국인 몇 명과 또 얼굴 하얀 청년이 코피를 훔치며 올라온다. 여기도 한국 사람이다. 이 두 한국 청년이 네팔행 비행기에서 만났고, 나디에서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 조인해서 5명의 국제그룹이 탄생했단다. 마낭까지 비슷한 일정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포카라에서 다시 만나 치맥도 함께 했다. 이 그룹은 한국 청년들말고도 미국인 샘, 중국인까지 4명의 남자와 1명의 싱가포르 여자로 구성되있는데 다들 씩씩하고 정감이 넘치는 친구들이다. 포터도 없이 틸리초도 가고 모두 소롱라까지 무사히 넘고 각자 일정대로 하산했단다.
기껏 올라왔더니 다시 내리막이다. 이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것이 이 마약같은 산길이다. 슬렁 슬렁 내려가니 호수를 끼는 안락한 탈 마을이 나타났다. 편안한 마음으로 점심 먹을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엔 안에 앉았다가 운치를 즐기겠다고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야채 커리가 호박과 당근 다 싱싱하고 맛있었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여편님이 체하고 말았다. 점심 먹고 걷다가 좀 이상하다더니 결국 좀 더 가다 약도 먹고, 먹은 것을 다 걸러냈다. 그러니 좀 나아졌단다. 남은 길을 꾸역구역 걸었다. 다시 지프 로드와 합쳐지는 부분이라 가는 길에 지프도 많고, 먼지도 많다. 마을이 가까워지니 소떼를 만났다. 소떼와 뒤엉켜 가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어렵사리 소떼를 따돌렸다. 소떼 중에는 태어난지 얼마 안된 송아지도 있었다. 젖을 먹으려고 대롱대롱 메달려서 가기도 한다. 보통은 2~3시에 도착한다는데 우린 5시가 다 되서 첫날 숙박지인 다나큐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옆집 누님이 우리를 맞아주신다. 이제 올거면 그 앞에서 잤어야지 뭐하러 여기까지 왔냔다. 그래도 부랴부랴 짐을 풀고 핫샤워를 시도했다. 이것 저것 돌리다면서 빨래를 하다보니 샤워 막판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핫샤워는 축복이고 운이다. 샤워를 마치고 서둘러 여편님도 투입시켰다. 빨래도 주렁주렁 널고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지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나는 달밧을 먹고, 아직 소화가 염려되는 여편님은 카레만 봐도 역하다며 닭고기 수프를 시켰다. 덕분에 이날 식당에서 닭을 잡은 것 같다. 우리는 수프를 먹고, 식구들은 고기를 먹은 것 같다. 시간상으론 이날 트레킹이 가장 길어서 인지 피곤했다. 스리랑카에서 구입한 만능약 아유르베다밤(ayurveda bam)을 쑤실 만한 곳곳에 바르고 잤다.
3일차_다나큐-탄촉(2400M)-차메(2670M)
새벽 5시 정도에 눈을 떴다. 일찍 자다보니 5시를 전후로 기상을 했다. 여유있게 준비를 하고 6시반~7시 정도에 아침을 먹고, 7시 반에서 8시 정도에 출발했다. 아침으로 콘브레드와 애플파이를 시켜봤다. 콘브레드는 쏠솔하니 맛있었고, 애플파이는 망했다. 이건 트레킹 내내 비슷했다. 다리 근육이 살짝 뭉친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 가는 거리는 길지 않다고 한다. 다만 티망까지는 급격한 오르막이었다. 계곡 사이로 좀 시원한 물도 흐르고, 햇볕도 없어서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정유정은 책에서 깔딱고개라고 표현했는데 그정도는 아니다. 2시간 정도 올라가니 티망 마을에 도착했다. 풀밭도 많고 아담한 마을이다. 차를 한잔 마셨는데 맛이 홍차 맛이 매우 좋았다. 덩달아 근처에 양치는 아저씨가 새끼 양 두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날부터 여편님은 이 지역의 아기동물들을 하나 둘 섭렵해갔다. 그 뒤 탄촉까지는 오프로드라 가는 길이 좀 피곤했다. 탄촉에 들어서니 넓은 밭이 펼쳐졌고 마음도 탁 트였다. 식사를 하러 들어가서 무려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드디어 달밧이 나왔다. 당근 무침도 메콤 신선하고, 감자와 버섯으로 만든 커리가 일품이었다. 먹은 달밧 중엔 최고였다. 안나푸르나에서 식사가 빨리 나오면 의심해봐야 된다. 두 시간 정도 평지를 가볍게 거닐면서 코토에서 티타임을 한 뒤, 3시 쯤에 차메에 도착했다.
차메에 도착해서 찬물에 후딱 샤워를 하고 빨래를 왕창 내다 걸었다. 내 신발 앞뒤창이 너덜거리고 있었고, 포터의 신발도 뒤창이 다 떨어져가고 있어서 둘 다 수리를 필요로했다. 차메나 마낭에는 수리점이 있을 거라고 했다. 포터가 신발 수리점을 찾아왔다. 같이 가서 차례로 신발을 수선했다. 대자만한 바늘로 앞을 꿰메고 뒤창은 접착제를 발라줬다. 수리비는 500루피 정도였는데 여기에는 포터 신발 수리비도 포함된 것 같다. 수리점 찾아준데 대한 보답으로 생각했다.
숙소의 구조는 전날 머문 곳과 비슷했지만 부엌에는 난로도 있었고, 나무로 되있어서 제법 롯지 분위기가 났다. 일찍 도착한 서양 친구들은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털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리도 얼른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로 주위에 빨래를 갖다 널었다. 눈치가 좀 보였는데 조금 뒤 다들 빨래를 난로 주위로 가져왔다. 왠지 부엌 언니의 저녁 솜씨가 좋아보여 과감하게 파스타와 감자볶음을 시켰다. 달밧만 먹다 물린 터라 산뜻하고 맛있었다. 파스타는 소화도 잘 되는 요리고 입맛도 개선시켜주는 요리라 종종 애용했다. 감자는 고산 지대에선 주식이라 자주 시켜 먹었다. 이날도 일찍 잘 잤다.
4일차_차메-듀클포카리(3060M)-어퍼피상(3300M)
본격적으로 삼천미터의 고산지대에 접어든 날이다. 아침이 밝으니 드디어 맑은 날씨와 함께 설산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람중 히말과 안나푸르나2가 자태를 드러냈다. 이 기운을 받아 힘차게 나아갔다. 전날 말린 양말이 다 마르지 않아 나와 여편님 양말 총 4짝(8개)를 내 배낭에 주렁주렁 메고 다녔다.
이날은 옆집 커플과 함께 갔다. 이탈리아 아저씨 파울로는 원체 등산 매니아에다가 네츄럴 로드를 즐기겠다는 일념이 강해서 중간에 옆길로 빠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간 길이 오프로드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새 루트가 파울로가 간 길이 클래식 루트였다. 호기심 많은 파울로는 숙소에 일찍 도착하면 주변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구경하다 들어오곤 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마지막 고비 하이캠프에서도 이러다가 뒤늦게 고산병이 찾아왔고, 결국 소롱라를 넘던 도중 말을 탔다고 한다.
어쨋든 우리도 설산이 슬슬 뚜렷한 형체를 보여주면서 우린 더 신이 났다. 새로운 일행과 걷다보니 페이스도 조금 빨라졌다. 옆집 포터 씨루는 한국 커뮤니티에서 이미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럴만 한 것이 말투도 생김새도 한국 아저씨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한국말도 좀 할줄 아는데 그 억양마저 친근하다. 우리 포터보다도 더 보고 싶다. 한참을 걸어 브라탕에서 빅 티타임을 가지고, 독수리오형제도 다시 만났다. 옆집 누님도 대장을 보고 외모를 호평했다.여편님은 키 큰 남자는 별로라고 했다. 역시 내가 남자 보는 눈은 더 좋은 것 같다. 또 다시 걸어 듀클포카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엔 광속으로 달밧이 나왔다. 역시 맛이 없었다.
이제 슬슬 고산지대 특유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거진 숲은 사라지고 침엽수림과 낮게 깔린 나무들이 선선한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설산이 풍경의 중심을 잡는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2시 반쯤에 숙소가 있는 어퍼피상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안나푸르나2가 우중충한 날씨 속에 펼쳐졌다. 어퍼피상의 숙소는 규모가 매우 컸다. 화장실도 딸려 있었는데 밤에 소변 보러 갈때가 편한 것 빼고는 별 도움이 안됐다. 찬물로 급하게 샤워를 하고, 또 커다란 주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여편님은 여전히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해서 갈릭언니언 수프를 시켰고, 나는 달밧을 먹었다. 놀라운 것은 듀클포카리 식당에서 봤던 아저씨가 여기서도 서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것인데 근처 1시간 거리의 마을 간에는 숙소 2개를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날 다이어리에 정리가 별로 안되있는데 이건 이날 저녁 잠을 제대로 못자서다. 숙소가 원체 큰 데다가 우리 방은 1층이라 자려는데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울렸다. 우린 8시에 취침했는데 9시 정도에 취침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결국 선잠을 자다깨다 반복하다 4시간을 자는데 그쳤다.
5일차_ 어퍼피상-갸루(3670M)-나왈(3660M)
잠을 잘 못자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 거렸다. 잘먹고, 잘자고, 잘싸면 고산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행히 잘먹고 잘싸긴해서 큰 걱정은 안했다. 좀 위험하거나 불안하다 싶으면 저녁은 가볍게 달밧을 시켜서 밥에 국을 말아먹었는데 이 전략이 주효했다. 잘 못잔 날은 있었어도 잘 못싼 날은 없었다. 날씨도 맑고 설산의 자태를 제대로 감상하며 가는 길이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갸루까지는 오르막이라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포터말이 오늘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서둘지 말란다. 갸루에 도착하기 전 티샵에서 또 한 번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졌다. 설산 중 일부에서 사람 얼굴이 나타났다.
갸루에 도착하니 여기부턴 티벳 사람이 많은 지역이란다. 점심 먹으러 들어간 숙소 할머니도 우리 외가 시골마을의 할머니들처럼 생겼다. 주방도 왠지 친숙한 느낌이었다. 감자를 찍어먹으라고 히말라야 소금을 줬다.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상태가 메롱이었던 옆집 누님이 초죽음 상태로 올라왔다.오는 길에 가방도 포터가 들어줬단다. 산악 전문가 급인 동행 파울로를 따라가는게 힘에 부쳐보였는데 드디어 탈이 났다. 여기서 한 시간을 뻗어자고 결국 회복이 안되서 로우피상에서 잤다고 한다.
어퍼피상이 아닌 로우피상에서 마낭을 가는 길은 보통 하루면 가는 코스고, 편하긴 하지만 오프로드라 풍경이 별로란다. 우리가 가는 어퍼피상에서 마낭까지 가는 길은 발빠른 트레커들도 좀 힘들게 하루에 간다고 한다. 우린 하루에 못가냐니깐 밤 늦어서 도착할 게 뻔하다고 한다.
이날 최고점이 갸루라 갸루에서 나왈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위태위태한 비탈길을 걸어갔다. 슬슬 비도 흩뿌리기 시작했다. 포터의 발길이 빨라졌다. 나도 힘을 내서 빨리 갔다. 비를 피하려고 서두른게 화근이었다. 특히 나왈 마을에 다 도착해서 숙소까지가 꽤나 먼 길이었고, 여기서 쉬지도 않고 숙소까지 빠르게 갔다. 결국 여편님은 탈이 났다. 나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뻗었다. 어떻게든 뜨거운 물을 떠다 먹이고 손발 다 입혀서 따뜻하게 해줬더니 잠이 들었다. 난 좀 피곤하긴 했지만 혼자 밑에 내려가서 간단히 달밧을 시켜 먹었다. 평소 우리와 계속 일정이 겹치는 시끄러운 프랑스 청년과 몇마디 대화를 나눴다. 싫은 건 줄어들었지만 역시나 시끄러운 청년이다. 다행히 다음날부턴 안보이기 시작했다. 7시부터 잠을 잤다. 밤새 폭풍우가 지나갔다.
6일차_나왈-마낭(3540M)
여편님은 12시간, 나는 10시간의 꿀잠을 잤다. 둘다 고산병 증세도 깔끔하게 나았다. 나의 극진한 간호가 빛을 발한 것 같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니 날이 매우 맑았다. 식전에 전날 제대로 못본 갸루 마을과 주변 산세를 돌아보고 가벼운 아침을 먹었다. 포터도 맛 없을 거라던 티베티안 티를 처음 먹어봤다. 야크 버터와 우유, 소금을 넣은 티라는데 맛있었다. 아침 빈속을 달래기에 좋은 것 같다. 전날 갸루 식당에서 산 야크치즈와 빵도 함께 먹었다. 티벳사람 흉내낸다고 티베트티를 연거푸 먹기까지 해서 유제품 과다였는지 속이 좀 보글보글했다. 다시 탈이 날 위기였지만 별탈 없었다.
마낭까지 가는 길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마낭이 나왈보다 고도도 낮아서 부담이 덜했다. 계곡길을 지나지나 시벅토롱 주스도 한잔 마셨다. 시벅토롱은 고지대에서 나오는 열매라고 한다. 비타민 보충 용으로 종종 마셨다. 브라가를 지나면서 벌판은 좀 더 황량해졌지만 뷰는 매우 좋았다. 계곡 양쪽으로 설산도 보이고 저 멀리 헤븐스도어라는 절벽도 보이고, 여러 봉우리가 보였다. 어떤 친구들은 브라가에 머물면서 다음날 아이스레이크도 다녀온다고 한다.하지만 틸리초호수도 다녀오겠다던 나의 열정은 서서히 멀어져 있었다. 마낭에 가까워지니 말과, 소, 염소 등이 벌판에 많아져서 뒤의 설산 풍경과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갸루부터 소로 밭을 가는 풍경도 보이는데 좋다.
마낭에 도착해서 예티호텔인가에 머물렀다. 포터 말로는 거기가 다 좋은데 와이파이가 안되더란다. 뭐 상관없다고 들어가보니 괜찮아보였다. 이틀 머물 집이니 쾌적한게 좋은 것 같았다. 간단히 점심으로 파스타와 뚝바를 시켰다. 둘다 같은 면으로 조리를 해서 좀 실망을 했다. 큰 숙소였지만 건물도 안정되보였고, 서양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풍성한 메뉴와 깔끔한 식당을 갖추고 있었다.
마낭은 안나푸르나 라운딩 초반부 중에는 가장 큰 마을이다. 그간 걱정되던 보온용 물품들을 쇼핑했다. 나는 초록색, 여편님은 보라색으로 모자와 덧옷을 깔맞춤했다. 이건 이뻐서 지금도 갖고 다니게 됐다. 덧쓸 장갑은 큼지막한 벙어리로 샀다. 이것도 유용하게 쓰고 포카라에 남겨두고 왔다. 서양 트레커들을 위한 베이커리도 많아서 쿠키와 티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다. 포터가 영화관도 있다고 해서 우린 티벳에서의 7년을 보러 갔다. 영화관이라기보단 DVD상영관이고, 주로 틀어주는 영화가 몇 편 있지만 5명만 넘으면 다른 DVD를 틀어달라고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린 여기 왔으니 티벳에서의 7년을 봐야했다. 겨우 5명이 모여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똥내가 나는 어느 구석진 홀에서 영화를 본다. 브레드피트의 리즈시절은 나도 중간에 한 번 놀랐다. 1명에 250루피인데 차와 팝콘도 준다.
영화는 7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고, 숙소에서 가볍게 달밧을 먹고 9시에 잠을 잤다.
7일차_마낭 휴식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한 휴식일이라고 한다. 아침은 고급스럽게 빵집에서 시나몬롤과 애플파이를 사다 먹었다. 딱히 고소 적응의 필요성은 못느꼈지만6일 걸었으면 하루 정도는 맘편히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산책 겸 포터를 따라 주변 언덕을 올랐다. 3800M정도까지 올라가서 경치를 즐기고 왔다. 내려오는 길이 좀 비좁아서 고생을 좀 했다.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에서 온 노년 단체 그룹들이 보였는데 이때부터 일정이 겹치게 됐다. 같은 일정에 단체가 끼여드니 여러모로 피곤해졌다. 해발 오천미터에 있는 틸리초 호수는 안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빡빡한 상태라 이거까지 하면 몸이 못견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산책을 마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고대하던 야크스테이크를 먹었다. 포터가 마낭에 가면 야크스테이크가 있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했다. 물어보니 우리 숙소에서 먹는 게 좋을 거란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것이 소고기의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은 극대화한 맛이었다. 첫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먹거나 야크 버거라도 한 번 더 먹었어야 했다. 라운딩을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라운딩 서쪽편에서 파는 것들은 진짜 야크가 아니거나 신선하지 않은 게 많다고 한다. 이날 먹은 야크스테이크의 든든함은 소롱라를 넘는데 결정적이었다. 2~3일간 힘이 넘쳤다.
서울에서 종종 등산을 다니던 친구들이 생각나서 엽서도 하나씩 사서 써보냈다. 보낸지가 벌써 보름이 넘었는데 소식이 없다. 그리고 포터가 추천해준 고산병 클리닉에 갔다. 마낭에는 자원봉사로 일하는 의사들이 있어서 응급처치도 해주고, 매일 오후 고산병 강좌도 한다. 굳이 가야하나 싶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난 옆집 누님이 거기가서 약도 처방받고 내용도 괜찮다고 해서 가봤다. 대충 평지보다 마낭이 산소가 60퍼센트 소롱라가 50퍼센트 정도라는 얘기였다. 처방으로는 우리가 아는 비아그라가 아니라 디아녹스라는 이뇨제를 추천했다. 무료 강좌인 대신 기부 형식으로 티셔츠나 약을 살 수 있어서 디아녹스도 몇 알 사고, 100루피 내고 산소 측정도 했다. 나는 98% 여편님은 80 몇 퍼센트가 나왔다.
식당 메뉴가 이것저것 많았지만 별로 안당겨서 또 달밧을 먹고 8시에 잠을 잤다. 맨날 걷다 쉬어서 그런지 이날 또 잠을 설쳤다.
5불당 세계일주 클럽 /세계일주 바이블 / TRAVELLER5 / www.5bu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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