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제는 그것이 난감했다.
어려운 시골형편에 제대하여 빈둥대다가
어머니에게 겨우 서울 올 차비를 얻어 상경한 터라
호주머니 사정도 넉넉지를 못했다.
그러나 태연하게 아침을 먹고 난 뒤
인천 친구를 만난 뒤 고향에 내려갔다.
서울생활 할 준비를 해서 올라오마 라고 약속하고
은진과 헤어졌다.
“혁제씨 올라오면 전화해요.”
“응,”
☆☆☆
혁제는 그렇게 은진과 헤어져
무작정 서울 시내를 맴돌았다.
어느 누가 반겨주는 이 없는 서울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찾을 곳도 없는 방랑이었다.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혁제는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새벽기차를 탓다.
가고 싶지 않는 곳. 태어난 고장이지만 낮 설은 곳.
혁제는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처럼 삽작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빠야 왔다. 언니야 오빠야 왔다”
막내 삼순이가 달려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일순이도 이순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어매 어디 갔노.”
혁제가 일순일 바라보며 말했다.
“몰라서 묻나,
눈뜨면 가는 데가 어디고, 거기 갔제”
거기란, 장터 국밥집을 말하는 거다
삐딱 선을 타는 누이에게 뭐라 더 말을 붙이겠는가,
☆☆☆
혁제는 주린 창자를 끓어 앉고
캐 캐한 냄새 진동하는 방에 들어 누웠다.
천정엔 얼룩덜룩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고,
벽엔 언제 적 맞아 죽은 모기의 혈흔들이
군데군데 엉겅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조상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생명들이라서
가져야 할 고민이 가오리연의 꼬리처럼 펄럭거렸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다음 단계인 사랑을 논할 수 있는데.
혁제는 막막한 대책을 모래성을 쌓듯
지었다 부수고 지었다 부셨다.
☆☆☆
하늘은 더 없이 높아져
미루나무가 밤새워 키를 쭉쭉 뻗어도 닿지 않았다.
가을빛에 오곡은 여물고
앞산 진달래꽃 진 산등성이에 만장이 펄럭거렸다.
은진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울진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유언처럼 은진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힘겹게 했다.
“진아! 나 죽거든 어미 한번 찾아 봐라!”
“어매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봐!”
“너 어미 구미시장 통 뒷골목 대나무 깃발 높이 꽂은 데 가면 찾는다.”
“할매 지금 무슨 말을 하는데.”
“너 어매 무당 됐다 카드라”
“누가-!!”
“저 건너 월천댁 아지매 한태 가서 물어보면
소상이 알키 줄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