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국을 응원했어요!"
한-일월드컵 개막한 지 1년이 된 지금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만나기만 하면 "한-일월드컵 때 우리도 여기서 당신들을 응원했었다. 한국의 붉은 악마가 보여준 열기까지는 아니어도 마치 네덜란드 대표팀이 경기를 하는 것처럼 흥분하고 기뻐했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사실 지난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에게 한국은 먼 동양의 자그마한 나라일 뿐이었다. IMF 직후 네덜란드 기업들과 보험사들이 한국에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일반 네덜란드 국민들에 대한 한국의 인지도는 여느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축구와 월드컵은 이 모든 것을 180도 바꿔놨다. 이제는 어떤 네덜란드인을 만나도 한국을 알고 있으며, 한국 축구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는다.
현지 교민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인근 틸부르그의 GM대우자동차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박이원 차장(34)은 이곳에서 생활한 지 3년째다. 그가 처음 네덜란드에 발을 디딜 때만해도 이곳 사람들은 동양인의 그를 보고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네덜란드가 유럽 화교의 중심지인 탓에 중국인들이 숫적으로 많고, 일본은 네덜란드와 수교 400주년이 지났을 정도로 전통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인 탓에 당연히 동양인이라면 이 두나라 중 한쪽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 이같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꼈다. 박차장은 "요즘에는 가족과 함께 공원에 나가서 네덜란드인들을 만나면 한국인이냐고 먼저 물어본다.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현지에 진출해 있는 다른 기업들 역시 이같은 월드컵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전까지 한국 기업이란 사실을 숨기지는 않았으나 애써 알리지도 않았던 데서 이제는 월드컵 4강신화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란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같은 PR 효과도 좋아서 이제 웬만한 네덜란드인들은 삼성과 LG같은 한국의 유명 가전업체를 수준급의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 역시 네덜란드를 한층 가깝게 인식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네덜란드는 '튤립과 풍차의 나라'라는 상식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월드컵 4강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의 조국이며, 태극전사 4명이 뛰고 있는 제2의 K리그가 벌어지는 나라이고, 매주 이들의 경기가 안방으로 중계되는 그야말로 옆집같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영표와 박지성이 뛰고 있는 PSV 아인트호벤에는 매주 15명 이상의 한국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고 있는 것으로 구단이 파악하고 있으며, 송종국의 페예노르트 역시 비슷한 규모의 한국 관광객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또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엑셀시오르는 김남일이라는 선수하나 덕택에 네덜란드 1부리그 18개팀 중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구단 중 하나로 네덜란드 언론에 의해 언급되기도 했다. < 아인트호벤(네덜란드)=추연구 특파원 pot09@>
"한국과 네덜란드는 월드컵을 통해 진짜 형제가 됐습니다."
김용규 주 네덜란드 대사는 한-일월드컵이 한국과 네덜란드의 우호관계에 미친 영향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네덜란드에 부임한 지 3년째인 김대사는 "이 곳 상사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월드컵이 한국과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데 얼만큼 큰 영향을 끼쳤는 지 금방 알 수 있다"면서 "그동안 경제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한국과 네덜란드가 이제는 국민들의 정서상으로도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사를 지난 24일(한국시간) 헤이그 루센트 단스 시어터에서 막을 올린 한국 뮤지컬 '우루왕'의 공연에 앞서 만나봤다.
-한국과 네덜란드 관계에 월드컵이 끼친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과 네덜란드는 월드컵을 통해 진짜 형제가 됐다.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양국 국민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다.
한국의 경우 네덜란드에 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튤립의 나라, 풍차의 나라라는 게 고작이었고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하멜이나 이 준 열사 정도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같은 피상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
또 현지 상사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네덜란드인들도 월드컵 이후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네덜란드와 한국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양국은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당시 5000명에 달하는 병사를 파견했다. 이는 유럽에서 영국 다음가는 규모다. 당시 참전했던 사람들은 요즘도 매년 5월마다 'Korean war Veterans'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가행진을 할 정도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는 한국이 IMF로부터 도움을 받은 직후 필립스, ING 보험 등을 필두로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한 한국의 세번째 투자국이기도 하다.
-월드컵 이후 양국 관계가 달라진 점은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 양국 국민들간에 공통된 대화의 주제가 생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월드컵 이전까지 나 자신도 양국간에 공통된 대화주제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월드컵도 있고, 히딩크와 이영표 송종국 박지성과 같은 선수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는 양국 국민들이 친숙해 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 헤이그(네덜란드)=추연구 특파원 pot09@>
"한국축구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네덜란드내 스포츠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이 가장 높은 네덜란드 2TV의 '스튜디오 스포츠(Studio sports)'를 진행하는 움베르토 탄씨는 한국 축구가 한-일월드컵을 통해 네덜란드인들에게 너무도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었다고 평가했다.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인 탄씨는 깔끔한 프로그램 진행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네덜란드에서 많은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는 언론인.
그를 지난 25일(한국시간) PSV 아인트호벤과 FC 위트레흐트간의 경기가 펼쳐진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만나 월드컵과 한국-네덜란드의 관계에 대해 물어봤다.
-축구 프로그램 진행자이니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경기를 지켜봤텐데.
▲모든 경기를 봤다. 한국팀은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을 갖춘 팀이었다. 한국의 경기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도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으며,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네덜란드인들이 그렇게 느꼈다.
-어떤 선수가 가장 인상깊었나.
▲지금 네덜란드에 와 있는 송종국 이영표과 안정환 등이 눈에 띄었다. 한국 선수들의 특징은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점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감명깊었다. 당시 월드컵을 뛰었던 선수들 모두가 당장 네덜란드리그에서 뛰어도 스타플레이어가 될 만한 실력을 갖췄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의 관계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오늘 내가 필립스스타디움 앞에 도착해보니 15명 가량의 한국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한국과 네덜란드가 얼마나 가까워졌는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월드컵 이전에 당신은 한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나. 월드컵이 끝난 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이었나.
▲월드컵 이전에도 나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또 삼성, LG 등의 대기업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 나는 한국 사람들의 열정과 정신을 알게 됐다. < 아인트호벤(네덜란드)=추연구 특파원 pot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