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은환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 모두가 샌드위치인 사회
이 책은 뉴욕에서 생활하는 저자가 최근 선진국(주로 미국)의 사회문화 트렌드에 비추어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안을 제시하는 일종의 한국사회에 대한 문화비판서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화가 되면서 여행은 물론 출장, 파견, 심지어 이민 등 선진국에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이것은 우리 사회에 다양한 충격과 학습의 계기가 되고 있다. “너보다 못한 이와 사귀지 말라”고 공자도 말했다지만, 발전하고 있는 국가에게 선진국과의 접촉은, 배울 것 많은 벗만큼이나 귀중하다. 러시아는 피오트르 대제가 직접 노동자가 되어 당시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영국과 네덜란드의 조선소에서 일을 하면서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 이후 1868년 대규모의 구미열강 견학을 단행하면서 근대화의 청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오늘날은 소수의 선각자가 어렵게 해외를 여행하여 배우는 시대가 아니라, 한 해 천만 명이 해외를 다녀오는 시대이다. 시골에서 서울 갔다 온 것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듯이, 이제 “뉴욕에 갔더니~”로 이야기를 꺼내서는 주의를 끌기 어려울 정도로 해외여행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에 따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을 각자 자기 관점에서 보고 이것이 다르다 저것이 다르다며 나름대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너무 많아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일지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본서의 저자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비교적 깊이 있게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저자의 개성이 담긴 독특한 제안을 하고 있다. 제안이 독특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저자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고민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의 장점은 엄숙한 전문서적의 스타일을 벗어나,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친근한 문체로 쓰여져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도 돋보인다.
■ 한국의 샌드위치와 뉴욕의 샌드위치, 무엇이 다른가?
이 책의 제목은 우리나라 모든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 샌드위치 신세라는 말에서 착안된 것이다. 50대는 IMF를 전면에서 만나고 “오륙도”가 되었으며, 40대에게 쫓기고 자녀 등록금과 결혼 비용에 등골이 휜다. 그러나 40대는 자신이 더욱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50대는 좋은 시절의 “끝물”이라도 봤지만 자신들은 취직한 이후 내내 칼날 위에 있는 “사오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노후대비는커녕 사교육비 대기에도 벅차다. 30대는 더욱 한심하다. 2000~2006년에는 아파트값이 급등해서 맞벌이로 열심히 모아봐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선배들은 모아놓은 것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모은 것도 없다.” 더구나 어학과 인터넷에 정통한 20대를 보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20대는 과연 행복한가. 대학가를 무겁게 드리운 영어와 취직이라는 지상과제 아래 번듯한 직장 한번 가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한다. 10대 역시 미국 아이들이 기타 치고 드럼 배우고 각종 스포츠 할 때 밤늦도록 학원에서 머리 싸매고 달달 외운다. 저자는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린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래위로 식은 빵 껍데기 뒤집어쓰고 나는 샌드위치신세라고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가 이러한 진단에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뉴욕의 직장인이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 먹는 샌드위치는 꿈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된 “딜리셔스 샌드위치”다. 모두가 샌드위치가 되어 꿈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의 키워드는 바로 “문화”다.
■ 미국과 한국의 차이
한국과 미국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화를 보는 눈, 문화가 수행하는 기능, 문화와 경제의 관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뉴욕에는 문화와 경제가 뒤엉켜 있다. 문화와 경제는 서로 소원하거나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팀웍을 이루면서 가치를 창출한다. 뉴욕 맨해튼 남쪽의 소호는 60년대까지도 보잘 것 없는 공장지대였으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된다. 여기서 그림을 사려는 부자들이 모여들면서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부티크가 서서히 이 지역을 잠식하여 임대료가 상승하게 되자 예술가는 이곳을 떠나 보다 북쪽의 첼시로 이동했고 지금은 첼시가 현대 예술의 메카가 되었다. 이렇게 예술은 도시의 프론티어를 개척하고, 그러면 돈이 뒤따라온다.
“뉴욕의 문화가 뉴욕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돈은 돈이 될 수 있는 기회라면 예술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마약, 전쟁, 범죄까지도 따라간다. 그러나 통상 진정한 예술가라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어왔다. 뉴욕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없다. 예술가는 예민한 경제 감각을 지니고 이를 비즈니스로 만든다. 한 가지 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미국 전역의 영화관에서도 상영된다. 반드시 뉴욕을 방문하여 고가의 티켓을 구입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기에 오페라의 저변이 넓어질 뿐 아니라 수익기반이 강화된다. 흥행과 상업성을 위해 예술을 저급화시키지 않아도 고급 예술 자체를 비즈니스화할 수 있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문화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이러한 예술과 비즈니스의 행복한 동거가 쉽지 않다. 패티킴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것을 예술성의 훼손으로 인식할 정도의 경직적인 사고로는 문화와 경제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외에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장벽들이 문화의 확산과 침투를 저해한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 세대간의 문화 단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노년은 “가요무대”, 중장년은 “7080”, 청소년은 “뮤직뱅크”라는 과도한 분리 현상은 그나마 협소한 문화 시장을 더욱 숨 막히게 한다. 저자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 산으로 숨어드는 사람들 vs. 대학촌에 모이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오십만 넘으면 다 산에서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 대사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실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유는 한국의 노년은 도심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노년은 대학촌으로 모여든다. 전통적인 퇴직자 커뮤니티, 실버타운보다 수많은 젊은이 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대학촌이 인기인 것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과 함께 살려면 코드를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그 기본적인 자질이 문화적 소양이다. 미국의 노인들은 젊을 때부터 문화적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인터넷, 외국어, 예술 활동에 능하고 그래서 젊은이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눈에 보이는 재테크 이상으로 중요한 노후대비라고 한다. 보장자산이란 반드시 돈만이 아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 가정의 차이점 중 하나는 아이들을 쇼핑에 데려가는가이다. 우리나라는 온가족이 함께 대형할인점에 와서 쇼핑카트에 아이들을 태우고 시식코너들을 돌며 쇼핑을 즐기는 것이 흔한 풍속도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쇼핑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일이고,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끝낸다. 쇼핑센터에서 생활용품을 사는 것보다는 다양한 활동, 스포츠, 공연, 예술, 기타 공동체 활동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하면 부모와 함께 하도록 배려 받는다. 아빠로부터 스케이트나 야구를 배우는 것은 인생에서 소중한 추억이 된다. 문화가 한 사회의 경제는 물론 개인의 인생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모들은 이러한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선행학습과 시험연습에 여념이 없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한국 사회도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의 경제적 잠재력을 키울 때 현재의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Web 2.0의 시대,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기업경영은 물론 경제성장의 비결이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이질적 문화를 수용하고 포용하며, 세대 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사회적 통합을 달성할 때 한국 경제는 물론, 한국 사회의 모든 세대가 시든 양상추의 샌드위치 신세를 극복하고 딜리셔스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 문화가 21세기 경제에 보다 더 깊숙이 통합되고 더 큰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한 거시적,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개개인의 태도의 변화, 그리고 실천을 강조한다. 이 책 자체가 일반 개인을 독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이 떠들썩한 정책이나 이벤트보다는 개인의 조용한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개인의 문화적 능력을 키우고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파트는 “왜 글쓰기인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글을 안 쓰면 리더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문화의 시대가 될수록 이제는 말보다 글이 핵심적인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누리꾼이니 블로거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는 것만 보아도, 인터넷 상의 핵심적인 무기는 글이다. 물론 이미지나 유투브로 대표되는 동영상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생각의 내용을 전하고 여기에 공감하고 여론을 형성해 가는 힘은 역시 글에서 나온다. 최근 미국 유명 기업 CEO들 거의 대부분이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CEO들은 회사 경영과 관련된 이야기나 고민, 때로는 개인적인 소감들을 글로 적고, 직원들이 댓글을 달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CEO가 공식적인 회의나 간담회에서 하는 격식에 맞는 연설문보다, 틈을 내서 쓴 작은 글월이 훨씬 더 직원의 감동을 일으키고 직원과 CEO간의 거리를 없애 준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 리더의 카리스마는 위압적인 리더십 스타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한 줄 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우선 단순하고 쉽게 읽혀야 한다. 인터넷 시대의 글은 내면의 침잠이나 어떤 주제에 대한 심오한 탐구가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느낌과 경험을 익명의 타인과 널리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문지식과 현학적 용어로 도배된 글이 그러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저자는 또한 경제적으로 배열을 강조하면서, 글의 완성이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하고 간결하기만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야 한다.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는 읽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데서 온다고 말한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독자의 입장을 깊이 성찰하여 상대방의 마음에 도달할 때 감동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코카콜라의 대프트 회장이 2000년 직원들에게 발표한 신년사를 예로 든다. “삶은 공중에 다섯 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 게임과 같습니다. 다섯 개의 공에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이라고 이름붙이고 공중에 돌려 보십시오. 당신은 곧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떨어뜨리면 바로 튀어 올라옵니다. 그러나 다른 네 개의 공은 모두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손상되고 흠집 나고 산산이 부서져 다시는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직원들을 일 시켜 이익을 끌어내야 하는 기업 경영자가 일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 가족, 건강, 친구, 영혼의 균형을 잃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의외의 진실이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외의 진실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노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뉴욕에서 저자가 직접 보고 느낀 미국 사회의 모습과 오늘날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사회를 비교해 보고 나름대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대단한 이론이나 과학적 실증을 바탕으로 한 무거운 주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통찰력 있는 관찰들과 귀담아 들을만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글의 스타일이나 내용으로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향후 한국 사회와 문화의 지향점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의 하나로서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주저 없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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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안 읽으시면 후회할 내용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시간이 좀더 흐르면 지구상의 인류중에서도 남자라는 족속은 모두 수퍼맨이 되어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