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다리(2006년 제주 나들이)

[정원선]

길과 다리

     - 2006년 겨울-봄 제주나들이

 

서울에서 안산으로 향할 때, 나는 그것을 길이라고 부른다. 30대에 이르러 10대와 20대

시절을 돌이켜 볼 때도, 나는 그것을 길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10대와 20대 시절,

나는 서른 너머의 지금의 생을 '길'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가. 또, 서울이나 부산에서

울릉도나 제주도를 향할 때, 나는 행로를 길이라고 생각했던가. 길이라고 명명하기에는

둘 다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는 일에,

그것이 시간이건 공간이건 간에, 물리적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면, 10대에 서른 살을,

바다를 건너 섬을, 그 이어지는 선이 '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리다. 시간의 다리, 물의 다리, 하늘의 다리. 사람의 다리.

 

1. 첫째날1, 낮은 수평선

 

어느 하루 편한 날 없었다/ 빛이 끝나는 그곳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잴 수 없는 거리여/
하늘의 천둥 번개도/ 바다의 해일도 지우지 못하는/
내 마음 수평선이여 
                       - 김형영 詩, "수평선3" 中, '낮은 수평선', 문학과지성사, 2004

 

오전 9시에 김포를 이륙한 비행기는 10시를 좀 넘긴 시각에 제주시에 승객을 부렸다.

렌터카를 빌려 맨 처음 향한 곳은 제주가 고향인 레어님이 귀띰해 주신 남원 영화박물관

옆의 큰엉경승지다. 제주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중의 하나인 1118번 도로를

타고 한 시간 여를 몰아 햇빛 잘게 부서지는 남원에 다다랐다. 영화박물관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곧바로 큰엉 입구로. 큰엉이란 해안가 벼랑에 길을 만들어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산책하는 길. 나무들로 지붕을 씌우고,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타일삼듯 바닥을

만든 큰엉은 잦은 바람을 끌어들이며 부드럽게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바닷가란

반드시 모래와 수영복이 함께 있는 해수욕장은 아닌 것, 벼랑에 몸을 기대고

머얼리 낮게 펼쳐진 수평선을 가늠하며 섬의 너비를 잰다, 그 고요하고 아득한 충만.

 

점심을 먹고 절물휴양림으로 차를 돌렸다. 도로 1118번을 거슬러 올라 한라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나타나는 절물오름의 숲. 레어님은 여름날 이곳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셨지만 미래란 알 수 없는 것, 현재란 아름다운 시절, 늦겨울의 숲을 내다보고

싶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권을 산 뒤 입구에 들어섰을 때, 탄성이 새나왔다.

꼿꼿이 정렬한 키 이십여미터의 삼나무 숲. '비자림'을 잊게 만드는 나무들의 횡대가

끝없이 이어지며 입구를 지나오는 동안 마음을 들띄우더니 절물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은 또 작은 나무들의 끝없는 성찬이었다. 오름을 감싸돌며 부드럽게 이어진 등산로를

걸어 30분여, 어렵지 않게 오르니 절물오름의 분화구가 내려다 보인다. 그 너머로는

한라산과 제주시의 풍경이.

 

이성복은 그의 책 '오름 오르다'에서 '그 둥근 능선이 말을 걸어오는것 같았다'라고

했던가. 가본 이들은 안다. 숲과 기생화산이 털어놓는 감추어진 비밀을, 심장과 다리근육이

토해놓은 내 숨소리의 아름다움을. 중첩과 중첩이 만나는 관계의 평등한 광경을.

- 제주 여행의 시작, 김포공항 스타벅스 커피.


- 제주도 1118번 도로를 달리고 달려

- 영화박물관 옆 벼랑길, 남원 큰엉 경승지에 다다랐습니다.

- 절벽으로 가는 이 환한 길


- 갈매기 한 마리도 제 生의 시름을 잊고

- 이곳이 절물휴양림입니다. 길 양 옆으로 정렬하는 삼나무숲의 군대.

- 빽빽히 모여 하늘을 가리고

- 절물 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괴목들의 축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 절물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까마득한 제주시


- 휴양림을 내려가기 전 삼나무의 키를 보여주기 위해 한 컷 더. (모자이크!)

 

 

 

2. 첫째날2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가지 난 방향 한 곳이, 일생 동안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인지도 모른다

                     - 신용목 詩, "나무" 中,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지, 2004

 

절물휴양림을 뒤로 하고 숙소인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어 조금 급했던 것인데, 그것은 다름아닌 라식 수술 때문이다. 야간 시력이

떨어지고 빛번짐이 일어나는 라식 수술의 사소한 부작용 때문에 저녁 운전을 피하고

있으므로.

 

숙소에 돌아와 짐을 풀고, 1시간여 눈을 붙인다음, 바다 구경을 나섰다.

펜션 앞은 경치가 빼어난 작은 포구. 3층의 방은 창문의 커튼을 걷는 것만으로

더할나위 없는 행복감을 유리창에 뿌려놓는다. 넓은 모래사장이 보고 싶어. 콜택시를 불러

해안도로를 타고 3분여만에 함덕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제주 최대의 해수욕장.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우며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이곳은 제주공항과 거리도 가까워

최근에 크게 각광받는 곳이다. 해풍이 불어오는 맑은 모래밭에서 눈을 씻었다.

저녁이어선가 바람이 드세지고 심술궂게 옷섶을 헤치고 감겨든다. 검은돌 현무암이 곳곳에

솟아오르고 베이지색보다는 흰색에 가까운 모래가 촘촘히 드리워진 사이, 바닷물은

가볍게 찰랑거리며 사람과 달을 끌어당긴다. 바닥까지 다 비치는 바다, 그래 이것이

제주 동부의 바다지. 함덕, 김녕, 세화... 사람을 가라않히는 바다, 이상할 정도로

진정작용을 갖는 청록의 파도. 기분좋게 바람을 맞으며 오래 백사장을 걸었다.

 

저녁을 먹으러 들린 곳은 함덕 회 센터라는 새로 생긴 아주 작은 횟집. 수족관에

아주 싱싱한 방어가 있길래 가게 유리창 너머로 메뉴판을 봤더니,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다(참고로, 제주도 횟집에는 메뉴판을 잘 걸어놓지 않는다.

밖에서 가격을 보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메뉴판이 걸린 집은

일단 자신 있는 집이고 비교적 저렴한 집이다 생각하면 틀림없다). 등에 무지개 빛이

서릴 정도로 싱싱한 방어 한 마리 가격은 2만원. 1만원 짜리 문어숙회 한접시를

같이 시켰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술을 마시는 작은 횟집, 회는 싱싱하고, 화려한

스끼다시는 없지만 정성이 담긴 꼬마접시들을 내오고...방어는 선도와 맛에 자신있어

매운탕이 아닌 지리를 끓여내온다. 철을 맞아 기름이 오른 고등어과 생선을 지리로

먹어본 적이 있는가. 비린 맛 한점 없이 제 생을 우려내는 깊이. 국순당의 새 술

'별'과 한라산물 순한소주 한 병을 비운다.

 

9시 넘어 자리를 파하고 함덕 GS 편의점에서 와인을 산다. 좋은 와인 두 병을

한 병 값에 주는 이벤트를 또 하고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한라봉, 팔삭(자몽같은 큰 귤),

치즈 몇 장과 감자칩을 사곤 콜택시를 불러 펜션으로 돌아간다. 완연히 어둠이 내리고

검정 속에 모습을 감춘 바다는 소리로만 뒤척인다. 나는 택시의 창문을 내리고,

눈을 감고 귀기울였다. 부르지도 않는데 내 마음이 쏠리는 곳. 여름날 해바라기처럼

자꾸 몸을 뒤틀어 쳐다보게 되는 곳, 지금 그곳은 내가 내린 바다, 제주 함덕 바다.

 

- 숙소로 가는 길에 관광목장에 들러 양떼들과 놀고

- 숙소 도착, 거짓말처럼 창으로 포구가 들어섭니다.

- 여기가 함덕 바다, 제주 동부 파랑의 스펙트럼

- 바다로 나아가는 모랫길

- 건너편 언덕을 개간해 밭을 만들었더군요. 신과 인간의 풍경. 

- 흰 모래밭이 수많은 길을 내고 바다를 향하고 있었어요.

- 횟집에서1, 문어숙회와 방어회.

- 횟집에서2, 방어 지리 한 냄비로 마무리를 짓고

- 밤의 만찬, 발보 말백 와인과 한라봉, 팔삭, 감자칩과 슬라이스 치즈. 아, 색감이...

 

 

3. 둘째날1, 길의 노래

 

먼 곳으로 갈수록 햇빛도 더 멀리 따라와(중략)

내 어제 분필과 칠판 앞에서만 열렬했던 말들이

가시되어 일어선다

                - 이기철 詩, "길의 노래" 中,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지, 1993

 

 

둘째날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이다. 펜션에서는 커튼만 제치면 침대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6시 반부터 걷어보았지만 날이 흐려 해가 뜨지 않았다. 아침으로 내온 전복죽을 먹고

(1인당 5천원, 훌륭하게 나온다. 참고로 제주 식당의 전복죽 값은 1만원에서 1.5만원 사이다)

옷을 껴입고는 한라산으로 향한다. 몇 년 전 1월, 눈이 펑펑 내리는 어리목 광장에서의

설경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차는 함덕을 빠져나와 제주시를 가로지르고 이호해수욕장 부근에서 99번 도로를 타

제주의 중심을 세로긋는다. 찻길은 심하게 구부러져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야 할

정도다. 길은 오늘부터 눈이 녹기 시작, 도로 곳곳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해발 900미터 부근,

제주가 까마득히 내려보이는 골머리오름 부근에 어리목 등산로가 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부터 몇십센티의 녹지 않은 얼음눈길. 10여분을 걸어 첫 골짜기에 도착했지만

우리의 입성으로는 더이상 갈 수 없었다. 2월말, 그날의 제주시 낮기온은 12도 였지만

어리목에는 아이젠이 필요했다. 더구나 나는 등산화도 아니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되짚어 내려온다. 매점에서 사발면 하나를 먹으며 짧은 등산의 허기를 달래곤 한반도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찾아간다. 1112번 도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

 

비자림에서 산굼부리, 세화에 이르는 이 10여 킬로미터의 숲길은 단속카메라 없이도

자동차의 속도를 낮추는 특별한 길이다. 사람들은 군데군데 차를 세우고, 아니 차를 버리고

멈춰서서 나무들의 숨소리를 듣거나 햇볕에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의 키를 그린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도로일 뿐인데 사람을 깨우는 무언가가 있다. 몇 번을 멈춰

제 안의 말들을 쏟아내고, 가시를 들어내고 눈을 밝히며 천천히 산책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말이 필요없는 동부의 바다, 세화 바다와 만난다.

- 펜션 창문에서 찍은 아침 풍경.

- 한라산을 쫓아 99번 도로를 달리고

- 어리목 코스, 하나도 눈이 녹질 않았어요.

- 등반 포기, 아쉽게 돌아보는 한라산과 어리목 광장.

- 해발 900미터의 눈쌓인 도로를 굽이쳐

- 해발 700미터, 초지에서 바라보는 까마득한 제주. 한 점 구름이 지나는데

- 이곳이 1112번 도로...ISO 400이 여기서 문제가...나무가 좀 뭉게졌어요.

- 산굼부리 주차장에서 내다보는 하늘과 한라산

- 다시 1112번 도로를 타고 바닷가로

- 해안도로를 타고, 세화 바다를 끼고 달렸습니다.

 

 

 

4. 둘째날2, 귤

 

마른 껍잘에도 향낭이 있어, 다시 펄펄 끓어오를 골방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나니,

지독해져야 오래 향기로울 수 있나니, 옆구리의 검정 봉다리에서 내 시든 이파리

부스럭거린다

                   - 이정록 詩, "귤" 中,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문지, 1999

 

숨을 죽이는 1112번 도로를 지나 세화 해안도로를 탔다. 굽이굽이 끼어드는 절경 가운데

5일장이 섰다. 세화 오일장. 차를 세우고 장터를 돌아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서 물건을

산다. 옥돔 열 마리(1만5천원)와 잘은 한라봉 1Kg(3천원, 믿어지지 않는 값).

 

종달 바다를 지나 성산에서 갈치조림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성산 일출봉으로 간다.

성산 일출봉은 맑은 날에도 물론 좋지만 비오는 날이 더 그윽하다. 안개가 둘러싼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말이 움직이고, 정상에는 구름이 몽실거린다. 3년전인가, 내가

처음 성산일출봉을 본 날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었다.

 

경사가 심한 길을 20여분 걸어 봉우리로 향했다. 날은 개어있었고 구름이 그려내는

흰 날개는 새로 짠 베를 걸어놓은 것처럼 가볍게 나풀거렸다. 한라봉 몇 알을 쪼개먹으니

봉우리에 퍼지는 달콤한 향기. 우물거리며 내려다보는 성산포가 부스럭거린다.

 

일출봉을 내려와 김녕으로 간다. 김녕은 재작년 여름부터 들르기 시작한 고향같은 바다.

사람이 적고 물이 깨끗한 그곳은 언제 찾아가도 변함없는 조용한 해안가다. 모래사장에는

사구를 보호하기 위해 검은 그물을 덮어놓았다. 성긴 검정색 군데군데의 밝은 모래,

그 너머의 다층의 푸른 물. 품은 것들을 한 번 더 푸근하게 안아주는 동네.

 

또다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서둘러 차를 몰고 함덕 포구 숙소로 향한다. 잠시 눈을

붙이고 저녁 늦게 일어나 어제 저녁의 반복, 같은 횟집에서 이번엔 황돔을 먹고,

숙소에선 남은 와인을 비운다. 나는 말이지, 반복이 지루하지 않아. 그것은

오래 캐묻고 되씹어 뭉근한 진국을 내는 일. 평범과 거리가 먼 지득의 체험. 

- 종달리 해안도로, 멀리 우도가 보입니다.

- 성산 '해뜨는 집'에서 점심을...맛있는 갈치조림.

- 낡은 트럭만 있는데도, 이렇게 '그림'을 만들어주는 제주도.

- 성산 일출봉에 올라봅니다.

- 중간 지점, 전망대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성산읍 전경.

- 일출봉에 오르니, 잡힐듯히 선명하게 보이고

- 고개를 들으면, 온전한 신들의 풍경.

- 구름이 마치 천사의 날개같았어요, 부드럽게 능선에 내리는.

-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성산 일출봉.

- 다시 종달리 해안도로로, 일출봉이 멀어지고 있어요.

 

- 여기가 김녕. 김녕 바다.

- 가로등이 켜지는 것을 신호로 저녁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 펜션에 도착해서 다시 찍어보는 어두워지기 직전의 포구.

- 또 횟집으로, 멍게와 소라회, 문어숙회 서비스

- 황돔 한마리를 회 쳤습니다. 아주 꼬들꼬들했어요.

- 사장님의 특별서비스, 쓸개회 소주와 생간, 껍질 데침. 아주 훌륭합니다.

- 다들 아시죠? 알콜도수 20도 한라산물 순한소주.

- 도미머리와 뼈로 맑은 지리를 끓여먹고는

- 늦은 시각, 조명을 켠 숙소로 돌아옵니다.

- 마지막 만찬. 프랑스산 2002 메독과 한라봉, 치즈, 감자칩. 아, 향기로워요.

 

 

5. 공항을 건너며, 문은 안에서 잠근다

 

후려갈기듯이 그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을 때,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문은 반발하여 조금 열린채 떨리고 있었다 그가 부르르 떨고 있는가?(중략)

문은 안에서 잠근다.

                        - 김행숙 詩, "문은 안에서 잠근다" 中, '사춘기', 문지, 2003

 

마지막 날, 아침에 여장을 꾸려 서귀포로 간다. 심한 커브로 이루어진 11번 도로로

다시 남북을 가로질러 이중섭 미술관으로. 미술관 건립 이후 나는 제주에 들를때마다

그곳을 찾았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공휴일이거나 휴관(월요일은 휴관한다)이어서

공교롭게 매번 헛걸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각오하고 세심하게 따져온 것.

생가를 지나, 섶섬을 보며 마침내 삼고초려, 이중섭 미술관에 들어선다.

 

 

이십여점의 작품밖에 없고, 그나마 상당수는 복제화고, 소장 작품들 대부분이

소품인 이중섭 미술관은 미술관 자체로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생가 바로 옆에 세워졌고, 매년 가을 이중섭 예술제를 열며, 거리 자체를

'이중섭 거리'로 명명하고, 소장자들이 눈도 깜짝 안하는데도 몇몇 작품들을

어렵게 모아 끝내 미술관을 연 운영자들의 열정에는 만점을 줄 수 밖에 없다.

충분하지는 않으나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이중섭의 특징을 파악하게 해준다.

유명한 담뱃갑 은박지 그림과 엽서 그림, 자필 편지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이중섭의 불우한 생애를 연민하게 만든다. 다른 이는 모르겠지만

이중섭에 한해서는 이중섭이 곧 그림이다. 그의 가장 밝은 그림 중 하나인

'서귀포의 환상'은 그 밝음으로 인해 얼마나 쓰라린가.

 

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고는 공항으로 차를 몬다. 기온은 영상 14도.

날이 따뜻하다 못해 봄날을 지나 초여름을 느끼게 하는 날씨였다. 도중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볕이 뜨거웠다. 과연 서귀포.

 

99번 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오른쪽에 끼고는 제주시로. 해발 1100미터에 자리한

1100고지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운을 가라않히고 수 번을 꼬부라져

제주시에 들어선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안개 때문에 비행기는

한 시간 연착이다. 공항 3층에서 활주로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차라리 연착이 계속돼

오늘 말고 내일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나는 당분간, 제주에 더 머무르고 싶다고.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나는 제주도 여행이 이번이 세 번 째다.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매번 온 것이다. 그래 안다. 지나친 감이 있다. 누군가는

말하기도 한다. 그 돈 있으면 해외에 가라고. 하지만 내 사무침은 배배 엉킨

마음밭에서 제주를 향해 솟아오른 종기. 내 손으로 잠갔으나 내 손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문을 바라본다. 제주에 서면 꽁꽁 잠겼던 문이 툭, 비틀어져 열린다. .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는 그를 위한 공중의 다리였던 것. 김행숙의 말처럼,

문은 안에서 잠그는 것이더라도 열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안팎의 일들이 있다.

재작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은 크게 요동쳤으며 급격한 흐름을 타고 왔다.

어떻게 바뀌고 변화가 무엇으로 정착되거나 배반당할지는 여전히 모른다.

재차 속도에 편승하지 않고 집중자본과 반대의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불연속의 시간을 살고 있다.

내 안의 것을 털어내기 위해, 바깥의 온도와 교통하기 위해, 건너갈 다리,

이어줄 다리가 필요하다.

 

돌아보면 그런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집적이 아니라 지금부터 만들어 나갈

뜻의 징검다리를 꿈꾼다. 선택한 점들을 이어 완만한 선을 만들어

작고, 낮고, 느리게 숨쉬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절의 장소, 제주도에서.

 

비행기는 바다를 뛰어넘어 김포에 내리고 있다. 나는 몇 번의 걸음마를

다시 해야 할까. 어디에도 없고, 아무곳에나 있는 길과 다리를 묻는다.

삼십년을 지나 다시 제자리에 선 여린 당신, 내 자신에게.

 

 

- 11번 도로를 달립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흰 산이 한라산.

- 꾸불꾸불, 계속 한라산 정상을 끼고 달렸어요.

- 봄날의 환한 아침, 도로는 자꾸 그 이상이 되려고 하고...

- 서귀포 자연휴양림 부근도 이렇게 근사해요. 나무들은 손을 뻗어 우리에 닿으려 하는데

- 서귀포로 내려가는 길. 시원하게 뻗는 조망

- 마침내 짝사랑의 끝.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도착했어요.

- 봄은 미술관 마당에도,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

- 이중섭 미술관 마당에서, 저기 보이는 것이 섶섬.

- 서귀포 진주식당에서 점심을. 저는 갈치국, 아내는 오분작 뚝배기

- 전복 새끼같은 작은 오분작과 해물이 그득그득 들었지요. 맛이 진해요.

 

- 서귀포 시내는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었답니다. 2월 말인데 말이죠.

- 제주 일주도로에서,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 99번 도로를 타고 공항가는 길

- 길들은 정말 어디나 빼어나게 아름다운데

- 몇 번이고 멈춰 아무것도 없는 하늘과 도로, 숲을 바라봅니다.

- 해발 1100미터 1100고지 휴게소. 하늘이 더없이 맑았고

- 희뿌연 한라산이 보이시지요?

- 여기서 마지막 휴식,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신 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제주, 제주도.

 

 

* 사진은 매번 그렇듯 모두 코니카미놀타 다이낙스 5D로 찍었다.

렌즈는 탐론 18-200 F3.5~6.3 줌렌즈를 사용했다. 그런데 작동 실수로

ISO를 400으로 설정하고 찍는 바람에 사진이 좀 뭉게졌다. 양해받기 힘든 실수지만

용서를 바란다.

 

[별천사]

기나긴 후기.... 누군가의 기행문을 읽는듯한 세련된 구사.. 곁들여진 센스 있는 사진.... 아주 멋지게...잘 보구 갑니다...

[소리만세]

여행후기가 기행문같은 느낌을 줍니다. 제주에 가고 싶은 맘이 생기네요 잘 보았습니다.

[흰수리]

후기가 너무 멋지세요.^^ 아..멋져라...

[핑크♪]

후기 너무 잘읽었어요 ^^ 즐거운 여행 되신거 같네요 ~ 헤헤

[난소중해]

후기가 아니라 글을 읽는 내내 제가 여행동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혹시 사진 보조는 안 구하나요?? 님의 멋진 여행사진과 후기라면 아마 당장 제주에 가고 싶은 욕망이 끓고 있습니다..한라봉과 제주의 회..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제주회집의 정보는 정말 참고해야 할듯합니다..저도 제주에 자주 가지만 보통 한접시 12~15라 부담이 많이 되었는데 감사드립니다..

[승주아빠]

음~후기가 한단계 업 된듯한 기분..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시는 님은 누구신가요?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신 당신은 누구신가요?...대단합니다..^^;

[Dream come true]

시인이세요? 글솜씨가 어찌 이리 멋찌신지.. 제꿈이 기행문전문가가 되는건데...--;; 난 언제 그리 되려나 -_-;; 부럽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찬울사랑]

여운이 많이 남는 글이네요...저두 묻고 싶습니다..님은 누구신지요?

[회전여행]

와...댓글을 이렇게나 많이 달아주시고 감사해요. 저는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donotrun)에서 여행 관련 블로그를 올리다,어제 처음 여기 와 봤답니다.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여행 좋아하는 직장인이에요. ^^

[양칼(남♂)]

우왕~ 너무너무 부러운 여행후기! 쩝! 방어회! 황돔회! 그리고 한라산 순한소주! 그리고 친절한 설명과 소감까지!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친절한 고팀장]

울 회원님들은 다들 사진 작가신가봐여...우왕.. 울 회원님두.VIP 회원님으로 등업.^^ 드리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