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12월10일(일요일) 강화 나들길 제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 탐방일정
탐방지 : 강화 나들길 제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
[강화 나들길 제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 : 온수 공영주차장~(0.2km)~전등사~(km)~성공회 온수성당~(2.4km)~갈정 저수지~(2.9km)~이규보 묘~(3.8km)~곤릉~(1.9km)~석릉~(5km)~가릉
[탐방거리 : 16.2km, 소요시간 : 5시간30분]
제3코스 명소
전등사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에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급 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은 벌거벗은 여인을 묘사하고 있어,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신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온수리 성공회성당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에 서양 그리스도교 교회 양식을 적용한 동서 절충식의 목조건물이다. 1906년 영국인 주교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e)가 세웠으며, 성 안드레 성당으로도 불린다. 본당과 종을 달아놓은 2층 문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용마루 양끝에 십자가를 장식해 놓았으며, 종루에는 본래 서양식 종이 달려 있었으나 1945년 일제에 징발당한 뒤 1989년 새로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종을 제작하여 걸었다.
이규보 묘
명조 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이듬해 부친이 작고하자 천마산으로 들어가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글을 쓰며 지냈다. 그는 그곳에서 ‘천마산지’ 등을 썼는데 특히 영웅 서사시 ‘동명왕 편’은 민족의 영웅 동명왕의 생애와 발자취를 노래한 서사시로서 우리 문학사에 남긴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고려의 이태백’이라고 불렸다.
고려 왕릉
현재 강화도에 남아 있는 고려의 능은 석릉, 곤릉, 홍릉, 가릉의 4기뿐인데 규모는 아주 작고 봉분과 망주석과 혼유석 정도의 시설 밖에 없으며 호석과 난간석을 갖춘 전형적인 왕릉 구조는 찾아볼 수가 없다.]
탐방코스 : [ 전등사 동문 버스 정류장~(0.8km)~강화 삼랑성~(0.2km)~전등사~(0.6km)~정족산~(0.6km)~전등사~(1.6km)~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2.4km)~길정 저수지~(2.9km)~이규보 묘~(3.8km)~강화 곤릉~(1.9km)~강화 석릉~(5km)~강화 가릉~(0.8km)~탑재 버스 정류장 ] [탐방거리 : 20.6km]
탐방일 : 2023년 12월 10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강화군 길상면 : 최저기온 0도C, 최고기온 7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40분 소요)
06:20~07:00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서 공항철도 전철로 환승하여 김포공항역 3번 출구로 나옴
07:00~07:20 롯데몰.김포공항역 정류장으로 도보로 이동한 후 60-5번 버스 승차를 대기
07:20~09:00 60-5번 버스를 타고 롯데몰.김포공항역 정류장에서 전등사동문 정류장으로 이동 [1시간 40분, 21개 정류장 이동]
09:00~09:09 전등사 동문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 출발하여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 41-3 번지에 있는 강화 삼랑성(江華 三郞城)으로 이동
[강화 삼랑성(江華 三郞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연대 미상의 산성. 1964년 6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번지
1964년 6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넓이 24만 5997㎡, 둘레 약 1km이다.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다만 단군(檀君)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그 이름을 삼랑산성(三郞山城) 혹은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축성 구조를 보면 잡석(雜石)으로 축조되어 삼국시대 석성구조(石城構造)를 보여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보수(補修), 조선시대에 중수(重修)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네 곳에 있으며 문루(門樓)는 남문에만 있어서 종해루(宗海樓)라 하였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이 소장된 마니산의 사고(史庫)가 옮겨와 보존되었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으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梁憲洙勝戰碑)가 서 있다.
이러한 삼랑성은 특히 마니산 전설과 더불어 단군신화와 관련되는 흥미있는 성이라고 할 수 있다.]
09:09~09:12 사진촬영
09:12~09:15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번지에 있는 전등사(傳燈寺)로 이동
[강화도 남부 정족산 정족산성 안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건축되었다가 고려 시대를 거치며 증축과 개축을 이어오다 광해군 때 화재로 인한 소실로 다시 재건되었다. 창건될 때는 진종사였으나 후에 전등사로 바뀌었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동문과 남문 두 곳이 있다. 동문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남문에서 종해루를 지나 대조루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700년이 넘은 보호수들로 노승나무, 동승나무로 불린다. 또한 경내에 현대식으로 지은 법당 무설전과 서운갤러리가 있으며, 갤러리에서는 불교미술전이 상시 운영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준비되어 있다.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누어져 있고, 체험형은 첫날 오후 1시에 시작하며, 사찰 예절, 공양, 108배, 좌선에 이어, 다음날 예불과 스님과의 차담으로 이루어지며 점심 공양 후 끝난다. 이에 비해 휴식형은 첫날 12시에 시작해 사찰 예절, 범종 타종, 예불에 이어 이튿날 예불, 울력(일을 돕는 것), 점심 공양 후 종료한다.
전등사 입장요금 : 무료]
09:15~09:35 전등사 탐방
09:35~09:50 정족산(鼎足山, 220m) 정상으로 이동
[정족산(鼎足山)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산.
높이 : 220m
문화재 : 전등산 약사전(보물 179호), 전등사 대웅전(보물 178호), 삼랑성(사적 135호), 전등사 대조루(시지정 문화재 7호)
마리산(469m)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생긴 높이 220m의 산이다.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이름을 정족산(鼎足山)이라 하였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전등사와 강화 삼랑성(정족산성) 등 많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로,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고 하는 석성이다. 남문루와 동문·서문·북문 터가 남아 있고 성 안에 고구려 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산행은 전등사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전등사 요사채를 돌아 오른쪽으로 난 길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터로 가는 길이며, 곧바로 올라가면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노송과 나무숲에 둘러싸인 전등사 부근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마리산, 남쪽으로 인천 앞바다의 섬들이 보인다. 산행 시간은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09:50~09:55 사진촬영
09:55~10:05 전등사로 회귀
10:05~10:30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길38번길 14 번지에 있는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으로 이동
[대한성공회 온수리 성당
성공회 3대주교 트롤로프 신부에 의해 1906년에 건축
한국 땅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천주교가 100년의 박해를 받은 후 개항과 함께 막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하던 때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거주 및 여행지역을 법으로 제한하였는데, 서울 중심 100리 안에서만큼은 여행 허가증(호조)없이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교역과 그와 관련된 목적으로 토지를 사거나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영국이 강화도를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던 동기는 강화도가 영국 성공회의 뿌리가 되었던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안에 있는 ‘아이오나(Iona)섬’과 유사한 입지인데다 병인·신미양요를 경험한 강화도민들이 프랑스나 미국에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수군양성을 위해 강화도에 들어갔었던 영국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강화도는 유배지로 역사적으로 많은 소외와 압박을 받았고, 그전까지는 교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지역으로 파악되었다.
신도들 스스로 땅을 헌납하고 자금을 마련해 건축
강화도에 지어진 대한 성공회의 두 번째 성당인 온수리 성당(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52호)은 강화읍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여 눈앞에는 초지(草芝)들판이 펼쳐지고 염하 물줄기와 서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이 성당은 강화읍의 강화성당(1900, 사적424호)과 달리 선교본부의 지원이나 선교사들의 주도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신도들 스스로가 땅을 헌납하고, 자금을 마련하고 스스로의 노력봉사로 지은 성당이다.
나중에 성공회 3대주교가 된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e) 신부에 의해 1906년에 건축되었다. 강화읍 성당과 유사하게 외삼문형식의 종루를 통해 진입하나 당시 무덤이 많았던 주변의 대지조건 때문에 종루와 성당, 그리고 사제관이 일직선 축이 아니다.
온수리 성당의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가운데 지붕은 우진각으로 처리하여 조선 시대 성곽의 망루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솟을지붕 아래 종을 매달고 사방으로 벽을 터서 종 소리가 퍼져나가게 꾸몄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문과 직각 축으로 바로 만나는 온수리 성당은 정면3칸, 측면 9칸, 도합 27칸 되는 단층 팔작지붕의 일자형(一字型) 전통 한옥이다.
지붕 용마루 양쪽의 십자가 장식과 지붕 양쪽 끝 합각 벽면에 벽돌로 새긴 십자 장식을 빼놓으면 향교나 관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건물 형태다. 내부는 강화성당과 마찬가지로 '바실리카' 양식으로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열두 개 기둥으로 지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성당의 구조와 달리 회중석 가운데 복도가 남녀석을 구분하고, 후진이나 고창(Clear story) 같은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은 생략되었다.
성당과 거의 돌아앉은 사제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은 트롤로프신부가 1896년 강화도에 부임하여 선교를 시작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사제가 한국 전통 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여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다.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편 한옥성당 옆에는 2004년에 축성된 새 성당이 있다.]
10:30~10:40 사진촬영
10:40~11:20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690-1 번지에 있는 길정 저수지로 이동
[길정저수지는 강화도 양도면에 위치한 497,000㎡ 규모의 저수지로, 가족 단위 여행의 장소이다. 저수지가 깔끔하고 인근 저수지 주변에 텐트를 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수심이 깊어 항상 파란빛의 물을 만날 수 있는 넓은 저수지이다.]
11:20~11:25 사진촬영
11:25~12:15 인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 번지에 있는 이규보 묘로 이동
[이규보 묘(李奎報 墓)
면적 668.9m2
시대 고려시대
소유 여주이씨 문순공파 종중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 (길직리)
이규보 묘(李奎報 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릭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 선생의 묘소이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선생의 묘소이다.
고려의 무신정권 하에서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명종 19년(1191)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였던 선생은 중국의 모방이 많았던 당시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등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글을 썼다. 또한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서 대장경을 만들 때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지었다. 선생이 남긴 문집은 ’동명왕편’을 비롯하여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등 55권으로, 모두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망주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12:15~12:20 사진촬영 후 간식
12:20~13:15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 75 번지에 있는 강화 곤릉(江華 坤陵)으로 이동
[강화 곤릉(江華 坤陵)
면적 1,091m2
강화 곤릉(江華 坤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강종의 부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1992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70호 곤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원덕태후는 고종의 어머니로 강종 1년(1212)에 왕비가 되고 연덕궁주라 하였다. 뒷날 원덕태후는 추대되고 1253년에 정강의 시호가 더해졌는데, 언제 사망하였는 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석물은 없어졌고 봉분과 무덤을 둘러싼 담도 무너졌던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다.
사적 승격 사유
이 유적들은 고려시대 왕릉 또는 왕비릉으로서 묘제상으로는 지정가치가 없으나, 역사성이 인정되고, 고려 공양왕 고릉(사적 제191호)과 고려 고종 홍릉(사적 제224호)이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으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 지정]
13:15~13:25 사진촬영
13:25~14:00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 182 번지에 있는 강화 석릉(江華 碩陵)으로 이동
[강화 석릉(江華 碩陵)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
강화 석릉(江華 碩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희종(재위 1204∼1211)의 무덤이다. 1992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70호 석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희종(熙宗)은 신종의 첫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이며, 부인은 성평왕후 왕씨이다. 1204년 왕위에 올랐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으로 갔다. 고종 24년(1237) 57세의 나이로 죽자 낙진궁으로 옮겼으며, 10월에 덕정산 남쪽에서 장례를 지내고 석릉이라 하였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무덤을 쌓았는데, 그 뒤 석물도 부서지고 무너진 무덤을 1974년 손질하여 고쳤다. 석릉 주변에는 최근에 고려시대 귀족의 무덤이라 생각되는 돌방무덤(석실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사적 승격사유
이 유적은 고려시대 왕릉 또는 왕비릉으로서 묘제상으로는 지정가치가 없으나, 역사성이 인정되고, 고려 공양왕 고릉(사적 제191호)과 고려 고종홍릉(사적 제224호)이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으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 지정]
14:00~14:05 사진촬영
14:05~15:10 인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 16-1 번지에 있는 강화 가릉(江華 嘉陵)으로 이동
[강화 가릉(江華 嘉陵)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2번지
강화 가릉(江華 嘉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위치한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陵)이다. 1992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70호 가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지금의 자리에는 고종 31년(1244)경 사망한 뒤 모신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 원종 3년(1262)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부서져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다.
사적 승격사유
이 유적은 고려시대 왕릉 또는 왕비릉으로서 묘제상으로는 지정가치가 없으나, 역사성이 인정되고, 고려 공양왕 고릉(사적 제191호)과 고려 고종홍릉(사적 제224호)이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으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 지정]
15:10~15:25 사진촬영 후 휴식
15:25~15:40 인천 강화군 탑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5:40~16:10 탑재 버스 정류장에서 롯데몰.김포공항역 정류장으로 가는 60-5번 버스 승차 대기
16:10~17:40 탑재 버스 정류장에서 60-5번 버스를 타고 롯데몰.김포공항역 정류장으로 이동 [1시간 30분, 33개 정류장 이동]
17:40~17:43 김포공항역 3번 출구까지 도보로 이동
17:43~18:00 김포공항역에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는 공항철도 전철 승차 대기
18:00~18:30 김포공항역에서 공항철도 전철을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강화 나들길 제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 지도
강화 나들길 제3코스(고려왕릉 가는 길) 안내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