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7.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서라 유백선 목사 누가복음 21: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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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활동(조직)가 다니엘 셰럴(Daniel Sherrell)이 쓴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Warmth: Coming of Age at the End of Our World(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에서 말했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최악의 가뭄과 산불, 태풍(홍수) 등 각종 자연재해가 이어졌다. 이런 거대한 재앙 앞에서 인간이 절망적인 무력감과 비통함을 경험한다. 그중에 MZ세대에게 기후위기는 그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들의 기후 절망감이 기성세대에 비해 더 깊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과도한 업무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괴로웠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면서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계가 소멸해가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절망에 넘어지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여러분! 기후재난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세계에 재난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폭염, 폭우, 폭풍, 전염병의 피해가 자주, 강하고, 갈수록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회 붕괴의 위험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60미터가 상승하게 됩니다. 해수면 상승이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합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리핀 마닐라, 일본 도쿄의 해안 저지대가 침수된다는 것입니다. 2030년에 우리나라 땅의 5%가 물에 잠기게 됩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사라지는 도시들이 너무 많아집니다.(의학박사 이희철의 <기후미식> 참조)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면서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 천지는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는다.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님 앞에 서라.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재림하실 예수님 앞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땅)에 오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고 있습니다.(눅 17:21) 하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긴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세월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쁘지만 항상 기쁘게 살지 못합니다. 조건이 좋을 때는 감사하지만 항상 감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잘못하고, 실수하면서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기쁨을 회복하고, 즐거운 소식을 전하도록 애쓰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미’ 임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하지 못하고 살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서는 날에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가 종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와 기한을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습니다.(행 1:7)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 예수님의 진실한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종말의 말씀을 기억하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본문 3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 세대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대가 지나간다(팔렐떼 헤 게네아/παρελθη ‘η γενεα/parelthe he genea)”는 말은 “시대가 곁에 오다, 시간이 사라지다, 탄생이 소멸하다, 가족을 소홀하다, 세대가 사라지다, 출생이 소멸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세대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구의 소멸로 세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출생이 소멸하면서 인구의 소멸이 시작되었습니다. 세대의 직업도 소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소멸하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하여 왔습니다. 그림과 사진에 담아서 과거를 복원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출간작가 안정희 씨가 말했습니다.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기록이 시간의 찰나와 공간적인 단편, 시간의 표면을 뛰어넘어 저 너머의 본질적인 세상으로 인간의 시야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완성)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그 하늘과 그 땅이 없어질 것입니다. 본문 3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그 하늘(호 우라노스/‘ο ουρανος/ho oyranos)”은 “천상, 행복, 권능, 영원, 별이 있는 하늘 위의 영역, 천국”을 말합니다. “그 땅(해 게/’η γη/he ge)”은 “흙, 지구의, 나라, 세상, 육지, 경작지, 경작하지 않는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천지가 없어져도 영원하십니다. 육지가 해수면의 상승으로 없어질 것입니다. 가뭄으로 경작지가 없어질 것입니다. 나라들이 바닷물에 침수되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없어질 땅만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땅에 것들을 모으고, 쌓아두기 위해서 인생을 다 소진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의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 것이다. 우리는 주의 약속하신 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산다.”(벧후 3:11-13)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사 65:17-18)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요 1:14) 예수님의 말씀이 왜 없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기 때문입니다.(요 6:48) 영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요 6:48,68) 주의 말씀이 인간의 삶에 원칙과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야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신 30:14) 주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기 때문입니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출 8:1-2, 9:21)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면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갑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히 끊어져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민 15:31)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신 27:26)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이기는 지혜와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정확히 옮겨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한한 인간에게 다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야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실 때에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홍수를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서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다.”(창 7:4) 예수님께서 종말을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홍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로고스/λογος/logos)을 믿고,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레마/‘ρημα/hrema)으로 살아야 합니다.(마 4:4)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소망을 갖게 합니다. 주의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됩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십니다.(시 119:49-50)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범죄하지 않습니다.(시 119:11)
여러분!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3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기서 “스스로 조심하다(프로세케테 헤아우토이스/προσεχετε ‘εαυτοις/prosexete heaytois)”는 말은 “자신의 마음을 주께 두라, 스스로 주의하다, 자신을 주께 전념하다, 주를 지지하다, 유의하다, 관심을 가지다, 주께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어야 스스로 조심하여 자랑이 막히지 않습니다.(고후 11:20) 스스로 조심하는 그리스도인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며 삽니다. 그래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이룹니다. 서로 물고 먹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이 성령을 따라 행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이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서로 노엽게 하지 않습니다. 서로 투기하지 않습니다.(갈 5:13-16,25-26)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왜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마음을 둔하게 하는 세 가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둔해지다(바레또신/βαρηθωσιν/barethosin)”는 말은 “내리누르다, 짐을 지다, 무겁게 누르다, 아래로 밀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둔해지면 귀가 막혀서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눈이 감겨서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사 6:9-10) 마음이 둔해지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표적이 무슨 뜻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막 8:18) 마음이 둔해지면 ❶ 방탕하게 됩니다. 여기서 “방탕하다(크라이팔레/κραιπαλη/kraipale)”는 말은 “고통에 사로잡혀 두통이 있다, 유출, 과식, 범람, 과음으로 현기증이 나다.” 라는 뜻입니다. 방탕하면 마음이 중심을 잃고, 마음이 균형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절제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방탕한 사람이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냅니다.(삼하 6:20) 방탕한 것을 따르는 사람이 지혜가 없습니다.(잠 12:11) 반면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려고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사모합니다.(엡 5:18) 영적으로 방탕하면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 욕심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영적인 주파수가 잡혀서 하나님의 관심에 집중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❷ 마음이 둔해지면 술에 취해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술 취하다(메떼/μεθη/methe)”는 “취하게 하다, 중독”이란 뜻입니다. 술은 마시는 만큼 취하게 됩니다. 술이 몸에 흡수되어 거만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폭언과 폭력을 행하여 죄를 짓는데 용감해집니다.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가 포도농사가 잘 되어서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잠을 잤습니다. 깨어나서 둘째 아들(함)이 자신에게 했던 실수를 저주했습니다. 방탕하면 술에 잠겨서 삽니다.(신 21:20) 방탕하면 술에 취해 삽니다.(엡 5:18) 술에 취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고전 6:9-10) 술을 접대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습니다.(합 2:15)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사람이 화가 있습니다.(사 5:22) 술을 즐겨하는 사람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잠 23:20) 술 취하는 사람이 가난해질 것입니다.(잠 23:21) 술에 잠기는 사람, 술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재앙과 근심과 분쟁, 원망이 있습니다.(잠 23:29) 술을 많이 마시면 알콜성 치매가 걸릴 수 있습니다. 술은 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잠 23:31)
❸ 마음이 둔해지면 생활의 염려(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μεριμναις/merimnais)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마음이 둔해지면 이생의 염려로 마음이 덫에 걸리게 됩니다. 여기서 “덫(파기스/παγις/pagis)”이란 “올가미, 계교, 올무, 유혹, 함정”이란 뜻입니다. 생활의 염려가 생명을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생활의 염려가 하나님보다 앞섭니다. 생활의 염려가 불신앙의 표시입니다.(마 6:32) 생활의 염려가 영적으로 피곤하고, 무력감을 갖게 합니다. 마음이 밝아지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주님의 재림이 온 지구상에 임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하늘의 징조에 주목합니다.(마 24:29,30, 26:64) 주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마 12:36-37) 심판이 임하면 긍휼이 없습니다.
셋째는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 3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여기서 “인자(투 휘우 투 안뜨로푸/του ‘υιου ανθρωπου/toy hyioy toy anthropoy)”는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 심판의 주”를 말합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내적인 성찰을 합니다. “깨어 있으라(아그립네이테/αγρυπνειτε/agrypneite)”는 말은 “자지 않다, 신중하다, 주의하다, 준비하다”라는 뜻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주님의 때를 분별하고, 준비합니다. 외적인 도전과 위협에 대처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기도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기다립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서 믿음의 모험을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충성되고 지혜로운 삶을 삽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제 다시 오실 주님께서 아름답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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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