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글 한편_
제22회 문학메카 원고 2022. 10. 19.
소설
그림으로 찾아 온 소식
“ 요즘 뭘 하나? 오늘은 좀 시원하다. 하도 답답해서 벤치에 나왔다. 오늘도 밭에서 일 했냐? 동해안에 태풍이 온다지... 건강해라.”
“..요즘 어떻게 지내나? 넌 잘 지내고 있겠지? 이젠 더위도 갔다. 가을이 또 오겠지....
요즘 힘들어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이란다. 약 먹고 있어. 조금 덜한 것 같다. 날 위해 기도 좀 해 줘. 건강해라“
“힘들어, 오늘은 그냥 쉬면서 신문이나 뒤적였다....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증 온다. 자꾸 혼자라도 무슨 일거리 만들어 움직이고 산책이나, 취미생활을 해라. 여행 삼아 이곳에 한 번 내려 오려므나. 나도 요즘 피로감을 많이 느끼고 있단다. 혼자 있으면 우울증이 온다. 힘들어도 무슨 일거리를 찾아라. 오늘 오후엔 친구모임에 갔다가 막 들어왔다.”
“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자꾸 눕고만 싶단다. 지금도 누워있어.... 다니는 게 힘들어. 너도 너무 힘들게 일 하지 말고 쉬면서 해. 난, 너무 힘들어. 다 귀찮다. 잘 먹고 건강해라.”
“뭘 하나? 날씨가 좋다. 난, 오늘 교회도 못 갔다. 너무 걷는게 힘들어서.... 힘도 없고, 어지러워서 그래. 며칠 전 친구들 모임에도 못 나갔어. 왜 힘드는지 모르겠다. 우울증 약 신경안정제가 독한 것 같어. 힘 내봐야지. 기도 좀 해라.... 가을이다. 좋은 계절이구나.. 학창시절 온 산을 다니며 글 쓰던 때가 그립다. 그치?”
“이제 막 들어왔다. 이곳은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아.... 약이 독한 것 다시 병원에 가서 물어봐 그냥 있지 말고..... 그래도 움직여야지.... 기도 할께. 나도 일 하는게 전과같이 않다.... 힘 내봐 . 그리고 훈이 전화 번호 문자로 보내줘라.”
“그래 오늘부터 약을 좀 줄이려고 해. 너도 건강 조심해. 훈 이도 알고 있어. 내가 스스로 노력해야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도 너밖에 애기 할 데가 없어서...힘 낼게”
요즘 그는 더욱 자주 문자를 보내왔다. 그럴수록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조그마한 오피스텔을 전세 내어 혼자 식사를 해결하며 살아 온지가 벌써 5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그가 보내오는 문자의 신호음을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의 교인들 뿐이었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고향 친구들 모임이 전부였다.
그의 집은 원래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었다. 어촌에서도 제법 사업을 하면서 젊은 지방유지 행세도 해 오던 그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장성하자 그는 아이들을 큰 도시에서 키워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야! 지방에서 아이들 잘 키우면되지... 온통 집을 다 정리하고 서울까지 갈려고 그러냐?”
그가 서울로 가기로 결심한 후 나는 몇 번이고 다시생각 해 보라고 했지만, 그와 그녀의 아내는 오직 아이들 생각으로 마음을 다시 바뀌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지 퍽으나 오래되었을 때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잘 나오고 결혼까지 시키며 서울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큰 아들 집에 같이 있냐?
“그래, 따로 생활하려니 그렇고.....”
큰 아들을 결혼시킬 무렵 그는 서울서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 퇴임으로 일자리를 버려야 했다.
“연금으로 그럭저럭 산다. 새삼 어디 직장 구 할 것도 아니고...”
“답답하지 않니? 무슨 일거리를 찾아야지....”
“손자 봐 주는 재미로 산다네... 둘 다 맞벌이를 하니 어쩌나....마누라하고 번갈아 가며 아이들 봐 준다. 그런데.... 힘들다. 그 일도...”
얼마동안 손자 봐 주기 재미있다던 그는 차츰 차츰 체념섞인 문자를 더 많이 자주 보내오기 시작했다.
“허허... 힘들지.... 이젠 손 떼라. 자기 자식 자기들이 키우라고 그래! 너는 너 대로 자기 시간을 가져야 않겠냐?”
“.정말 그래야겠어! 이젠 집 사람이나 나나 지겨운 것 같다. 그렇다고 터놓고 아이들한테 내 놓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허허허....”
그 무렵 그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나 더욱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그의 아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부터였다.
“난, 처음 아이를 돌 봐 주느라고 힘들어 생긴 몸 살 정도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봐. 얼마 동안은 참고 견디었는데...... 요즘은 자신이 한의원 진료를 받고 싶다고 해서.... 얼마 동안은 한약을 지어 먹었으나 몇 달 못갔어.”
결국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날 만난 그는 말도 더듬거리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나는 더 무슨 말로 위로 할 수 없어 그의 곁에서 침묵만을 지켰다.
장례는 그와 아내가 다니던 교회 장으로 치러졌고 교회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혼자 아들집에서 여전히 손자를 돌보고 있는 그를 뒤로 하고 나는 손바닥만 텃밭이 있는 귀농 마을 내 집으로 내려 왔고 그 후 그와 나는 한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다.
“ 힘들다. 몇 번 산에 다녀왔지만 그것도 허망 할 뿐이구나... 가니 뭐 하냐! 이미 간 사람인데..... 그러나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구나....교회를 더 열심히......”
.“야! 힘내라. 참 오랜만에 문자 보냈구나! 그래 생각 잘 했다. 이젠 마음 단단히 먹고 부지런히 교회나 잘 다녀라! 손주한테 정 붙이고, 틈 나는데로 그전처럼 글이나 쓰면서 잊어라!”
“그래, 고맙다. 노력해 볼게..... 글 쓸 생각도, 아직 마음을 다잡을 수 없다. 내 스스로 노력해 봐야지..... 고맙다!”
“시간 틈 낼 수 있으면 이곳에 한 번 다녀가거라. 바람도 씌울 겸 가게 한 번 오너라!”
“고맙다. 늘 잊지 않고 생각해 줘서..... 그렇게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나중에 한 번 생각 해 볼게.. 너도 몸 조심해라 텃밭이라곤 하지만 너무 힘들게 무리하지 말아라. 나이 생각도 해야 한다.”
“그래 알았다. 네 몸이나 생각해라!"
나는 가끔 그가 보내오는 문자로 그의 생활을 대강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을 뿐 정확한 그의 생활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오래전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시인으로 등단했었지만 교회에만 열중했지 글쓰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문학청년 시절엔 곧잘 밤새워 토론도하고 발표회도 갖곤 했지만,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가고부터 그는 글쓰기를 놓아 버린 듯 했다.
학창시절 같은 또래 남녀 학생들이 모여 문학회도 열었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무 아래서, 또는 들판 잔디 위에 엎드려 글쓰기를 하며 장래 소설가로, 시인으로, 수필가로 꿈꾸던 시절이 머릿속을 새삼 스치고 지나갔다.
각기 모두에게 꿈 많은 문학도로, 대학 진학 후에는 문학청년으로 가슴 가득 큰 꿈을 품었지만, 이제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가끔 여기저기 문예지에서 반가운 이름을 보면서 서로 큰 위로를 주고 받고 있을 뿐이었다.
“야! 나 얼마 전 집을 나왔다. 도저히 힘들어 못 참겠더라. 아이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오피스텔 하나 얻었다. 아이들이 극구 반대 했지만, 손자 돌보는게 문제 아니라 하루를 혼자 보낸다는게 힘들어서.....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푹 쉬고 싶기도 해서 .... 며느리 하고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도 그렇고..... 집사람이 있을 때도 거끔 그랬지만, 자주 의사 소통이 어긋나 더 힘들어서......”
나는 오랜만에 다시 그의 문자를 받고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실 그는 아내와 같이 아들집에서 생활 할 때부터 며느리와 사소한 충돌을 겪는다는 소식을 전해 오고는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아내와 같이 집을 하나 얻어 따로 생활하라고 몇 번이나 문자를 보내곤 했지만, 그는 결국 아내를 잃고 나서야 그곳에서 탈출 했다는 소식이었다..
“야! 잘 했어! 나오는 연금 있겠다. 혼자 마음껏 편하게 살아라! 아들며느리 눈치 보지 말고... 잘 했다. 정말 잘했다.”
“정말 잘 한 것이냐? 아이들한테 미안한 생각도 든다. 다행이 이젠 손자 녀석도 이제 혼자 학원이랑 학교에 다닐 수 있어 내가 별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나와 버렸어..... 조그마한 오피스 텔... 혼자 지내기에는 불편 없다. 이젠 좀 푹 쉬고 싶다.“
“그래. 잘 했어! 그런데 식사랑, 세탁이랑 어쩌구?”
“식사야 해 먹으면 돼지... 뭐 혼자 사 먹기도 하고.... 세탁기 있겠다...아이들 집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한 것 같다”
“이젠, 글이나 쓰고 취미 생활도 하고 나들이도 자주해라. 또 혼자 가만있으면 우울증 오고 치매 걸린다. 용기 잘 냈다. 마을 노인회나 교회에 나가 사람 좀 많이 사귀어라! 혼자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지 말고..”
그의 문자를 받고 얼마쯤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내성적 성격 탓으로 친구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못하는 성격이었다. 교회나간다고는 하지만, 자기 할 일만 할 뿐 교우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줘야 겠다. 녀석의 성격으로는 어디 새 친구 하나 못 만날 녀석이다’
순간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여인이 있었다.
-박 민숙-
그녀는 그와 나의 학교 이년 후배이기도 했다
작년 가을 서울 거리에서 우연찮게 만나 커피 한 잔 씩을 나누며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나누며 학교를 졸업 한 후 지나 온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해주고 받았다.
그녀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고 큰 아들 집에서 집 안 일을 도우며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아니, 그 잘 쓰던 시(詩)는 어떻게 하고?”
그녀는 문청시절 시를 쓰면서 시집도 두 권인가 세 권 쯤 가지고 있었다. 수줍은 많았던 문학소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그림으로 여가를 보낸다고 했다.
“하하하 이젠 화가가 된 모양이네?”
그렇게 시(詩) 습작에 열중하던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지 퍽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머리를 쓰는 시 보다 그저 가볍게 그림 습작이 시간 보내기에 그만이에요. 마음에 부담도 느끼지 않고...”
“어쩌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이젠 무슨 일에 부담 갖는 것 같은 것이 싫어지는 건 사실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요? 서울을 떠나 시골로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은지 꽤나 오래 된 것 같은데....”
“시골서 그냥 세월만 보내지.... 텃밭에서 꼼지락 거리며 채소가 가꿔먹고..... 마누라 말동무나 해 주면서 그러 그렇게 살지 뭐...”
“생각 잘 했어요. 이곳에 있어봐야 뭐 뾰족한 것도 없고....”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난 이후 오랫동안 서로 연락도 없이 지냈던 그녀가 갑자기 떠오르자 나는 책상 속에서 묵은 수첩을 찾았고, 그 속에 적어 놓았던 박 민숙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나, 내일 서울 좀 다녀와야겠어.”
“갑자기 서울은?”
아내는 서울에서 있었던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정상적으로 쓰지 못해 마루 벽에 기대앉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으응. 왜 자네도 알고 있지 않는가... 서울 윤 철민이 말이야.... 그 친구 요즘 영 건강이 좋지 않는가 봐.... 자네도 철민이가 보내오는 문자 보지 않았는가.....한 번 쯤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내일 한 번 가 보려고...”
“그래요. 혼자 따로 나와 살고 있다니... 힘들겠지요... 한 번 다녀와요.”
“혼자 괜 찮겠어? 불편 할텐데?”
“걱정 말아요. 아직은 당신, 하루 이틀 없어도 내 안 굶어 죽어요.”
아내는 그와 남편과의 사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터라 남편의 그에대한 생각을 언제나 이해 해 주었다.
다음 날 나는 시골에서 빠져나와 서울 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그와 만난지도 퍽 오래되었고, 박 민숙과 만난 것 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출발 한 덕분에 나는 한나절 조금 넘어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박 민숙? 마침, 연락이 되었네.... 난, 혹 연락이 않되면 어쩌나 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면서 내가 전화를 한 곳은 엉뚱하게도 박 민숙 전화 번호였다.
“웬 일이에요? 갑자기.....”
그녀도 예고 없는 내 전화에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와 저녁 6시 석촌 호수 옆 조그마한 찻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또 밭에서 뭘 했냐? 답답하다. 오늘 병원에 또 갔다왔다. 네 말처럼 혼자 집에 있지말고 산책을하고 취미생활도 하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어쩐지 몸이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건강이 최고다 너도 몸조심해라.....”
“내 걱정 말고 네 몸 잘 추슬러라! 진짜 우울증에 걸릴라...우리나라 남성 여덟명 가운데 한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단다...신문도 못 봤냐? 우울증 예방에는 가족의 정(情)과 친구들과의 수다가 병을 이겨내는 약이란다..... 너 혼자 있지 말고 다시 아이들 집으로 들어가렴!”
“무슨 소리! 싫다. 아프더라도 여기가 마음은 편하다. 차츰 괜찮이 지겠지.... 그런데 영 움직이는게 힘드는구나... 나름대로 자꾸 움직여 보려고 하는데.......”
“야! 신문 좀 읽어라!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 한단다..... 개개인이 잘 살아가려면 늙어서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연골>이 튼튼해야하고.....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주위에 의지 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잘 맺고 있어야하고.....‘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할 일을 잘 해 냈다’ 할 <할 일>이 있어야 늙어가는 마지막이 편안하단다.... 좀, 실천 좀 해 봐라... 않되면 되게하라! ....야! 나도 문자 찍기 어지럽다...ㅎㅎㅎ
“야! 미안,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누군들 모르겠냐? 그게 그렇게 실천이 않된다.”
“참. 여기 서울이다. 너 만나러 왔다."
“뭐? 서울이라고? 왠 일이냐? 갑자기....전화를 하지......
“.......”
나는 문자를 끊어버리고 언젠가 그가 알려준 오피스 텔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는 역시 생각대로 초라할 정도로 말라 보였다 더구나 누구보다 큰 키가 그를 더 야위어 보이게 했다.
혼자 생활하는 모습은 상상그대로였다. 텅텅 빈 냉장고며 일인용 침대의 침구며 ...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 않되겠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또 쓸데없는 소리.”
그는 이제 아예 아이들 집을 잃어버린듯 한 태도였다.
그날 저녁 나는 그와 함께 석촌 호수 옆 찻집으로 향했다. 박 민숙과 만나기로 한 찻집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차 한잔하지 여기까지 오느냐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이미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 벌써 나왔네.”
“선배님, 안녕하세요? 서울엔 왠 일이에요? 으응? 윤 선배님 아니에요? 어머....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나와 그를 곧 알아보고 반가와 하며 자리에서 잃어났다.
“어? 박 민숙? 여긴?”
뒤따라 들어 선 그도 그녀를 곧 알아보며 놀란듯했다.
“내가 만나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박 후배가 서울에 있었어?”
그는 자리에 앉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선배님도 서울에? 사모님도 안녕하시고요?”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을 반갑게 맞이 해 주었다.
“으으응....”
“사모님 얘기는 빼고..... 자, 차나 시키자.”
셋은 모처럼 만난 기회 탓인지 예 이야기가 오랫동안 계속 되었고, 그 사이 그도, 그녀도 혼자라는 현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전, 그런줄도 모르고.....”
“나도 그렇지 뭐.... 혼자된 것을 이제야.....”
“모두 자주 만나지 못한 탓이지 뭐.....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외로운 노인네 끼리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누며 나머지 인생을 외롭지 않게 잘 지내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위에 인간관계를 잘 맺어두는 것도 늙어서 잘 사는 방법이라니.....하하하.”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씽긋 웃었다.
“...그래, 자네는 시(詩)를 쓰는 사람이고, 박 후배는 그림을 그린다니...
참 잘됐다. 야! 두 늙은이배한테 그림을 배우고, 박 후배는 그전에 시를 좀 썼으니 윤 선배한테 시를 다시 배우든가....... 잘 됐어! 하하하... 서로 외로움도 달래면서 말이야.... 멋지지 않겠나/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하하..."
그들이 듣든 말든 나는 혼자 술술 말을 쏟아냈다. 그것은 오늘 내가 서울에 올라와 그들을 만난 목적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밤이 늦어서야 아쉬운 자리를 떴다. 나는 하루 자고 가라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고 마지막 버스를 탔다. 텃밭을 갈아주기로 한 옆집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계속이어 지던 그의 핸드폰 문자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젠 내가 먼저 그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요즘 건강은 좀 어떻니? 운동도, 산책도 좀 하냐? 여하간 연골이 달아 걷지 못 할 때 까지 계속 움직여라! 박 후배도 가끔 만나냐? 외롭게 살지마! 말 상대라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 서로 전화라도 주고 받으렴"
“몸이 좀 좋아진 것 같아.... 병원 약은 계속 먹고 있어..... 박 후배, 가끔 만나.....산책도 하고... 네 말대로 그림 공부도 시작했다....하루가 덜 지루해..... 여기 내 습작품 한 폭 보낸다! 아직은.....”
오랜만에 보내 온 그의 문자 아래에 한 폭의 그림이 첨부되어 있음을 발견한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빙그레 미소를 띄웠다. 한 폭의 수채화에는 눈에 많이 익은 석촌 호수 주변의 높다란 놀이 기구와 푸른 호수와, 호수 둘레의 수목들이 가득 찬 그림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문자를 날렸다.
“야! 대단하다! 네 그림실력 알아줘야겠다. 언제부터? 박 후배한테 그림 배우고 있냐?”
“그래, 요즘 그림 공부한다..... 박 후배 덕분에 ..... 같이 가까운 호수에 나가 내가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 다른 일에 신경 안 써 좋다.... 처음엔 서 있기가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하하하....이제 됐어! 네 정신부터 확 바꿔라! 그림 그리면서 박 후배에게서 네 혼자 사는 방법도 배우고, 또 더불어 사는 방법도 배우고 실천해라! 그게 늙어서 잘 사는 방법이다.”
“네 말 뜻 알겠다. 나도 이제 조금씩 움직여 보고 싶다. 박 후배가 시간을 내 주고 그림지도 까지 해줘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언젠가 한 번 올라와! 너무 밭에서 일 만하지 말고...."
“그림에만 신경 쓰지 말고 혼자 사는 방법을 자꾸 생각 해 내라.... 좀 많냐? 등산도하고, 노인회에 나가 같이 어울리고, 할 일을 만들고..... 얼마던지 있잖니? 산에 가서 혼자 텐트치고 사는 사람도 있단다. 자연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살기도 하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봉사 활동도하고 ...하하하... 끝이 없다. 힘내라! 우선 건강해야 한다!. 박 후배 만나면 내 안부나 전해 줘!”
그가 그림을 그리고부터 보내오는 문자에는 더 이상 어디 아프다는 얘기가 살아졌고, 대신 새로운 그림이 한 두 폭씩 첨부되어왔다.
그의 문자가 뜸 해 지자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그대로 오랫동안 그를 잊고 텃밭에서 아내와, 십년 넘게 내 옆에 있어준 진돗개 <복실>이와 함께 솔바람 소리와 솔향 속에 묻혔다.*
*<아동문학연구>에 동화 신인상으로 등단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가작 입선. 중편 동화 연재등 *<동도신문> 소설, 동화 연재
*묵호, <,해파리> 문학 동인회장 및 강릉 문협 이사역임
*지은책: 동화집<잘 키워드릴게요>외 동화집4. *회고록. 꽁트 집 동요 작사 집 2 외
*강릉문학상. 관동문학상. 아름다운 글 문학상. 불교동요대상 14회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