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민, 학교 24-10, 남은 7개월
학기가 시작되고 김수현 담임 선생님을 처음 뵌 이후, 어느덧 석 달이 흘렀다.
지난 만남은 ‘처음’이라는 훌륭한 변명을 방패삼아 아쉬움이 남았기에
계속 마음에 응어리가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니 많이 늦었지만 선생님과 다시 만난다.
근무일정도 그렇고, 컨디션도 고려해 해민이는 통학버스로 먼저 하교했다.
역시나 자의적인 판단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멋쩍게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이 어색하다기보다는 이제야 뵈러 온 민망함에 가깝다.
그런 만큼 오늘은 더 나은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좀체 갈피를 잡지 못했던 지난 만남과는 달리,
오늘은 해민이가 살고 있는 월평빌라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했다.
물론 입사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은 신입직원의 입장에서
시설의 철학을 온전히 밝히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시설은 각 입주자의 집이며, 당사자의 자주성을 살려 보통의 삶을 사시도록 거들고 지역사회 여느 수단을 활용하며 지역주민과의 공생성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그리고 챙겨온 개인파일 세 권과 올해 지원계획서를 소개했다.
도구가 있으니 설명이 수월했다. 지원계획서를 보며 당사자와 둘레 사람과 의논하고,
각 과업을 도출해냄과 이를 통해 기록이 산물이 되고 그 기록과 개인별 관련서류를 엮은 것이 파일임을 알렸다.
더불어 학기 초에 드리지 못했던 데에서 우러나온 아쉬움을 내비치자 선생님도 해민이 데이터가 부족했음에 대한 유감을 표하셨다.
개인파일이 참 도움이 컸다는 기록을 읽었으면서도
학기 초에는 담임 선생님도 경황이 없을 것으로 여겨 두꺼운 파일을 세 권이나 들고 찾아뵙는 것이 혹 부담스러우실까, 그리고 해민이 민감 정보도 담겨 있기에 챙겨가는 것을 보류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어 ‘학교’과업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고 하자 선생님은 학생들 개인 파일은 신속히 훑으실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몰랐던 부분을 더 채울 수 있으니 살피겠다고 하셨다.
“해민이 학교생활의 어떤 점이 가장 궁금하신 건가요?”
김수현 선생님이 물으셨다.
지역사회 곳곳을 다니며 학교를 지나칠 때면 삼삼오오 어울리는 학생들을 본다. 학창시절에는 그런 기억들이 소중하게 남기 마련이다. 해민이가 학교에서 좋아하는 친구가 있거나, 해민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적극 그 관계를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해민이의 지난 기록들만 봐도 친구와 동물원에 가거나, 친한 동생과 영화관에 가는 등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교제보다는 개인적인 취미활동으로 미술학원을 다니거나 재활수업에 집중하고 있기에 고민이 깊었다. 지금의 생활이 못마땅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그때에 비하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 시선도 바뀔 수 있음을 일러주셨다. 어렸을 때에는 깊은 생각보다는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면 ‘친구’가 되고는 한다. 하지만 사춘기를 거치는 등, 시간이 흐르면 그 ‘친구’라는 관념도 변하기 마련이다.
현재 학급에서 해민이와 친구들은 적극 교류하기보다는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직접적인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안부는 궁금해하는.
나름의 연대감이나 소속감은 공유하지만 개별적인 친밀감을 크게 나누지는 않는 듯했다. 학급 친구들 나름의 방식이다. 선생님은 이를 존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해민이를 도우려는 의지는 강한 것 같아 해민이는 학교에서도 나름대로 집에서와는 또 다른 ‘환영’을 받고 있었다.
이후 월평빌라에서 지내는 이야기도 나누고, 수련회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비가 부족했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마음으로 듣기로 한다.
해민이와 선생님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난의 이틀을 보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잘 다녀왔다.”고 말할 때의 선생님 마음을 짐작했다.
그냥 ‘불편’ 수준을 넘어선 어려움을 감당한 해민이 마음도 떠올랐다.
선생님은 역시 데이터가 부족했다고 하셨다. 해민이의 생활습관은 밖이라고 해서,
하룻밤 외부에서 묵는다고 해서 바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셨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기에.
선생님은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것을 두고 고민했다고 하셨다. 솔직함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나로서는 선생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았고, 그래서 더 감사를 표했다.
해민이가 잘 지냈으면, 내년에는 더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솔직해야 하는 마음 반,
신입직원이라는 사정을 알고 있기에
혹여나 내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의욕이 꺾이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어릴 때로 돌아가 부모님의 ‘잔소리’, 선생님의 ‘사랑의 매’를 곱씹어보았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 내년(고등 3학년)에는 수학여행도 갈 텐데, 이대로라면 하룻밤 묵는 일정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생님 말씀에 마음이 무겁다 못해 아팠다. 내가 잘 돕지 못해서 해민이와 하루를 보내며 해민이와의 시간을 원망하시지는 않았을까 죄스럽기도 했다.
선생님은 해민이가 적극적으로 수련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토록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말을 듣고 해민이와 선생님 입장이 되어보니 갑작스레 감정이 북받쳐 오르려고 했다. 조금만 참고 학교에서 나와 생각을 정리하려했는데 벌써 왈칵 눈물이 나왔다. 해민이와 선생님에게 드는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져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선생님이 우려한 것처럼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실까봐. 그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마음을 정리한 후 웃는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 해민이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앞으로 해민이의 삶을 고민하며 더 힘을 합쳐볼 기회가 많지 않겠냐고 하셨다. 꽤나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남은 7개월 잘 보내보자고 서로 웃었다. 감정적이지 않은 선생님이었지만 함께 웃을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는 어머니께 자리를 비켜드리고 싶다. 어머니가 더 당신의 일로 목소리를 내시게, 앞으로 어머니와 더 자주 소식할 수 있도록 돕기로 마음먹는다.
2024년 5월 21일 화요일, 서무결
해민 군의 수련회가 많이 아쉬웠나 봅니다. 이렇게 다시 학교를 찾아가고. 해민 군을 더 잘 돕고 싶다는 두 분의 말. 고맙습니다. 신아름
두 분 나누는 대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배려하고 존중하며 서로 형편을 살피니 감사합니다. 두 분 뜻 모아 마음 모아 힘 모아 해민 군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 수학여행은 그때 의논해요. 해민 군 혼자서는 어렵다면 서무결 선생님이 동행하면 어떨까요? 함께할 만한 분은 누가 있을까요? 혼자 할 수 있어야 수학여행 갈 수 있다?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월평
양해민, 학교 24-1,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미용실 첫 방문)
양해민, 학교 24-2, 새 담임 선생님께 걸려온 전화
양해민, 학교 24-3, 시간이 필요해요(새 담임선생님과 첫 만남)
양해민, 학교 24-4, 어머니와 속옷 주문
양해민, 학교 24-5, 어머니가 배송 확인
양해민, 학교 24-6, 수련활동 참여 희망합니다
양해민, 학교 24-7, 선생님이 생각나요
양해민, 학교 24-8, 수련활동 준비
양해민, 학교 24-9, 준비 부족
첫댓글 어쩌면 관계의 바람도 욕심일수 있겠다 싶을때도 있어요. 그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관계를 알아봐주고 감사하면 그걸로 족하다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평범한 관계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는대도 내심 특별한 관계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