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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자료실 스크랩 좌선(坐禪)으로의 초대(招待)/ 불교수행의 길1
subori1004 추천 0 조회 257 18.01.19 14: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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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수행의길1



좌선으로의 초대

 


【머리말】


좌선이란 무엇인가?

조사선에서는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자각하여 그 본래심으로 매사를 진실되고 지혜롭게 살아가게 하는 생활의 종교라고 말한다. 좌선하여 도를 배운다〔參禪學道〕는 말처럼, 좌선이란 각자가 본래심을 참구하여 깨달음의 생활로 만드는 수행이다.

불법을 구하고 자아를 밝히기 위한 장소는 지금 여기의 자기를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제는 ‘밖을 향해 진리를 구하지 말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참선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철저히 참여하고 참문(參問)하여 본래심(평상심)을 자각하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이 직접 선을 참구하여 참된 자아를 깨달아 각자의 본래심과 창조적인 지혜로 무한한 자기 향상과 건설적인 삶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참선은 좌선이 기본이지만 걸어 다닐 때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지하철이나 버스 등 언제 어디서라도 가능하다. 우리의 일상 모두를 각자의 본래심을 참구하는 좌선으로 만들어 갈 때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한 근심 걱정없이 평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있으며, 값진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정각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좌선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좌선으로의 초대」를 엮어 법보시하고자 한다. 부디 참선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기 2543년 4월 20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정각원 정 성본 합장



차례

1. 좌선(坐禪)으로의 초대(招待)

2. 좌선

   1) 좌선의 생활화

   2) 몸과 마음(身心)으로 불법를 실행하는 선(禪)

3. 좌선작법(坐禪作法)

   1) 좌선당(坐禪堂) - 선실(禪室)의 분위기

   2) 입당(入堂)

   3) 좌선의 준비

   4) 좌선방석

   5) 좌선하는 방법

     ⑴ 면벽(面壁)

     ⑵ 앉는 자세와 방법 - 결가부좌(結跏趺坐)와 반가부좌(半跏趺坐)

     ⑶ 좌선의 기본 자세 - 정신단좌(正身端坐)

     ⑷ 손 - 법계정인(法界正印)

     ⑸ 입

     ⑹ 눈 - 시선

     ⑺ 호흡〔調息〕

     ⑻ 마음의 자각〔調心〕

        ① 수식관(數息觀)

        ② 간화선〔公案〕의 참구법(參究法)

     ⑼ 마구니의 장애(障碍) - 망념(妄念)과 혼침(昏沈)

     ⑽ 경책(警策)

     ⑾ 좌선의 마침과 선체조 10가지

     ⑿ 경행(經行)

4. 일상생활에서 선의 실천

   1)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생활선

   2) 입선(立禪)

   3) 의자선



1. 좌선(坐禪)으로의 초대(招待)


좌선이란 인간의 일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편안히 앉은 자세로 자신의 근원적인 본래심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된 자아의 삶을 만듦은 물론,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자아완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수행이다.

「증도가」에서는 ‘걷는 것도 선이요, 앉음도 선이요, 말하고 묵묵하고, 움직이고 조용함에 본래심은 항상 편안하다’고 말한다.

선(禪)은 우리들의 일상을 본래심의 깨달음으로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생활 그 전부이다. 또한 혼미(昏迷)한 오늘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멋진 삶과 인생을 싣고 일체중생과 함께 사바세계를 헤쳐 나갈 지혜의 수레인 것이다.

우리들은 혼미하고 불안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참되고 값진 각자의 절대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불교의 경전과 선의 어록에서 찾아보고, 그리고 좌선의 실천으로 확립해 보자.

그리고 우리 모두 잠시 조용히 앉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자신을 성찰(省察)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왜,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할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 보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가? 무엇을 하고 있는 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여기서 헤매고 있는 가?

그러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에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고, 멋진 삶으로 엮어질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일이며, 철저하게 사유하고 실천하는 생활이며 자신의 종교 그 자체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부처님과 똑같이 지혜와 인격이 원만한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꽃 피우지도 못하고 일생을 헛되이 지내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참된 삶과 가치를 빛내지도 못한채 살다가 죽어 버리고 마는 무의미한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자의식(自意識)의 과잉(過剩)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는 참된 자기의 불성을 자각하기란 어렵다. 바로 이것이 빈곤한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반성하였다고는 하지만 철저히 하기란 어렵다. 자의식을 뛰어 넘어 선 곳에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 그리고 공(空)과 무(無)의 경지를 뛰어 넘어 선 곳에 있는 자신이야말로 본래의 자기 존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우리들은 자기의 마음을 찾아가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좌선이나 선이란 말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친근한 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것의 실천을 시작으로 친숙해 지도록 하자.

묵묵히 앉아 나를 괴롭히는 번뇌를 떨치고, 자신의 참된 모습을 응시(凝視)하자. 각자의 불성을 자각하여, 편안하고 절대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좌선인 것이다.


2. 좌선


선, 좌선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각자의 본래심(本來心)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전개할 수 있는 자율적인 훈련이며, 또한 좌선의 실천으로 체득한 지혜로 자신의 인생과 삶의 좌표를 스스로 확립하는 것이다.

먼저 좌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① 흥미와 열의를 가질 것.

― 자아 완성으로의 길을 추구하고, 자기 발전을 위한 흥미와 열의가 있어야 한다.

② 감정이나 사욕(私慾)을 버릴 것.

― 일시적인 기분이나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본래심을 체득하는 수행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삿된 욕심을 추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③ 신심(信心)을 가질 것.

― 선 수행은 남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지혜와 인격형성, 자아완성을 위한 것이므로 확신을 가지고 자기 발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좌선은 자신을 순화(純化)시키는 작업이다. 몸을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결가부좌〕로 신체적인 조화〔調身〕를 통하여 청정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調息〕하고, 자신의 삶〔생활〕을 정돈하며, 본래의 마음을 자각〔調心〕하여 삼업〔身ㆍ口ㆍ意〕이 청정한 진실된 부처〔법신불〕를 이루게 한다.

좌선을 통하여 자신을 재확인〔自覺〕하고, 지금 다시 새로운 의지로서 창조적인 삶을 전개한다. 이처럼 좌선은 우리들의 삶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실 인생에 있어서 두려워 하는 것은 일에 대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하여 그것을 현실화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1) 좌선의 생활화


새벽녘의 좌선은 깨달음을 향한 새 출발이며, 취침 전의 좌선은 하루의 때를 깨끗이 씻는 것이다.

이제부터 언제 어디에서라도 시간의 길고 짧음에 구애받지 말고 좌선을 하도록 하자. 5분 혹은 10분이라도 좋고, 30~50분이면 더욱더 좋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시간을 만들어 자신을 되돌이켜 사유하는 생활을 하자. 좌선의 생활화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가꾸어 주는 활력소가 되며, 보람찬 하루하루의 값진 시간을 만들 수가 있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 잠시라도 좌선을 하면서 자신을 재조명하고 자기 반성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면, 그 삶은 매일매일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학교나 사무실, 버스나 지하철의 출ㆍ퇴근 시간에도 주위의 분위기나 상황에 현혹되지 말고 자기를 성찰하고 사유하는 좌선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리고 집에서도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주위의 상황이나 환경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틈을 내어 자신을 참구하며 좌선하는 습관을 갖자.

좌선이 생활화된 사람은 일상 생활을 전개하는 그 어느 장소에서라도 쉽게 선을 실천할 수가 있다. 일상에서 좌선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생활선이다. 선은 자신의 멋진 인생을 가꾸어 갈 수 있는 지혜의 문을 열리게 할 뿐만 아니라, 수양과 인격을 함양하는 가장 좋은 실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거리에 쏟아지는 많은 소음들, 상상할 수도 없는 흉악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우리는 눈과 귀,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정되고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할 때, 좌선만큼 훌륭한 처방은 없을 것이다.

좌선이란 잃어 버린 자신을 되찮는 것이다. 확실하고 단단한 자주성을 붙잡아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여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외부의 대상이나 경계, 유혹에도 동요되지 않는 힘과 배짱이 몸에 붙게 되어 건강하고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앉으면 우선 자신의 얼굴과 인상(人相)이 좋아진다. 인생은 좋은 얼굴을 만드는 공장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좌선하면서 일체의 근심ㆍ걱정과 번뇌를 떨쳐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몸과 마음(身心)으로 불법을 실행하는 선(禪)


선불교에서 주장하는 좌선은 인도의 요가에서 비롯된 사유방법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실천정신은 다르다. 또한 『장자(莊子)』에서 양생술(養生術)의 하나로 강조하고 있는 좌망(坐忘)이나 심제(心齊)와도 다르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묵상(黙想)과도 다른 것이다.

좌선은 단순히 번뇌를 퇴치하는 적정주의(靜寂主義)가 아니라 오히려 명상이나 정적주의적인 요소를 타파하는 것이며, 신심을 다하여 자신을 비워 공과 무로 돌아가는 하는 적극적인 수행이다.

그러나 요즘은 선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현실에서의 번거러움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명상의 적정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좌선이 처음 유럽이나 서구 사람들에게 새로운 동양정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좌선은 단순하게 정적인 자기를 가꾸는 정원이 아니다. 각자 일대사 인연(一大事 因緣)의 근원적이고 가장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건 자기와의 악전고투적인 수행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좌선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자신을 삼매(三昧)에서 일행삼매(一行三昧)경지로 전념하여 일체의 근원을 찾아 내야 한다. 자기와 일체 만물과의 차별과 분별이 없어져 혼연일체가 된 경지를 스스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좌선의 수행과 실천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지 않고서는 자기의 참된 생활도 인생이나 인격도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좌선을 하게 되면 단전호흡을 하게 되니까 건강에 좋고, 아픈 다리를 억지로라도 참고 앉아서 수행하는 것이기에 극기(克己)훈련의 효과 등이 있다고 약 선전 같은 말도 많다. 물론 좌선을 하다 보면 이러한 효과뿐만 아니라 이 보다도 더 많은 효과나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밝혀 두고 싶은 것은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거나 또한 깨달음을 기대 하고 좌선을 해서는 안된다.

좌선은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한 잔재주를 부리는 운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박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의 모든 것은 공한 것이며, 무인 그 사실을 전신심(全身心)으로 체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수행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위나 권위, 재산ㆍ자아의식ㆍ자기존재에 대한 일체를 송두리째 버리고 한 번 죽었다가 되살아 나야 한다. 선가(禪家)에서는 이를 대사일번(大死一番)이라고 한다. 자기의 존재〔我相〕를 없애므로서 모든 곳에 진실된 자기로 되살아 나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와 일체 경계와의 차별심이 없어져 만법이 여법(如法)하게 구현되는 경지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 조동종의 개조(開祖)인 도우겐(道元)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불도(佛道)를 닦는다는 것은 자기를 수행하는 것이며, 자기를 수행하는 것은 자기를 텅비워 무아로 하는 것이다. 자기를 무아로 하는 것은 자기가 일체의 만법과 하나가 되어 실증(實証)되는 것이며, 자기가 일체의 만법과 하나가 되어 실증된다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도 모두 떨쳐버리〔脫落〕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깨달음의 자취도 없어지며, 없어진 그 깨달음의 자취를 오래오래 간직하여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좌선은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불법의 정신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없어진 무아로 하고 모든 것을 텅비워 공이 되고, 완전히 무가 되도록 하는 직접적인 수행이다.

또한 남과 더불어 함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 되는 고독한 자기 행각(行脚)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선은 자신이라는 인간과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이며, 가장 진실한 대화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주위 사람이나 친구 등 남과 비교하면서 가치 기준을 두는 경우가 많다. 자기 삶의 가치 기준과 인생관을 스스로 확립하지 못하고, 친구나 주위 사람들의 학벌이나 지위, 재산, 생활환경과 비교하니까 한 번도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고 진실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을 불교에서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것은 서로의 인연 화합에 의해 잠시 머물고 있을 뿐, 그 인연이 다하면 또 본래의 공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현재 자기의 생활환경과 여러 인연, 자기의 경제력 사회적인 지위 등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자기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정진하는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지혜의 말씀이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고도 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우리의 육체나 지위ㆍ재산도 이와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주위의 여러 사람과 인연이 이루어져 그 인연이 다하면 공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은 한 이 세계가 설령 몇 만 년 지속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의미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허무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비롯한 우주 본질과 실상을 똑바로 파악하고 삶의 가치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좌선을 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참된 행복과 삶의 의미란 자신이 지금 여기서 하는 일을 통해서 체득하고 맛 볼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절차탁마(切磋琢磨)’가 그 뜻을 전하듯 아무리 훌륭한 성품과 두뇌,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를 올바른 사상과 정신으로 갈고 닦지 않으면 헛되고 가치없는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만다.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불법(佛法)을 배우고, 올바른 선각자의 체험과 지혜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열반경』에 ‘일체 중생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고, 『화엄경』에도 ‘일체의 모든 중생이 모두 여래와 똑같은 지혜와 덕성을 구족하고 있다’고 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며, 불성이 없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일체 중생이 모두 곧바로 부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부처인 그 사실을 스스로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부처로서의 지혜와 인격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캐낸 옥(玉)이 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옥을 쪼개고 갈고 다듬어야 옥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듯이 불성도 이와 같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깊은 선정과, 좌선수행을 통하여 개발하고 부처로서의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우리들 모두 성스러운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헛되이 썩혀버리지 않도록 시간을 아껴서, 갈고 닦아야 한다. 부처를 구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이 바로 좌선인 것이다.


3. 좌선작법(坐禪作法)


선의 자세는 가부좌나 결가부좌 좌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신체적인 구조로 볼 때, 명상에 잠겨 오랫동안 사유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부좌의 앉은 자세로 선정에 들거나 사유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꾸준히 좌선을 익히고 수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부좌를 한 자세로 안락한 경지에 이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좌선을 배우는 사람은 극기훈련에서 출발된다고 할 수 있다.

좌선을 수행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지도자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인간은 보고 배운 대로 실행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좌선의 방법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불법의 정신을 익히고 배워서, 자신의 실천으로 체험하고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좌선은 적극적인 자기 수련이며 생활이기 때문이다.


1) 좌선당(坐禪堂) ― 선실(禪室)의 분위기


북송(北宋)시대의 종색(宗賾)선사가 편집한 현존 최고의 『선원청규(禪苑淸規)』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선원에서는 좌선 수행을 하도록 ‘좌선당(坐禪堂)’에서 여법한 의식과 자세로 실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사찰에 선원이 특별히 설치되어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승려들이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작은 사찰에는 좌선당이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대웅전이나 법당을 좌선당으로 대신한다.

좌선은 반드시 사찰의 좌선당이나 법당에서만 해야하는 수행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좌선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사찰의 법당이나 좌선당에서 올바른 지도자의 지도를 받아서 좌선법을 배우고 익힌 후, 좌선 방법이나 그것에 익숙한 사람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실천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혼자서 좌선을 할 경우에는 그다지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좌선하기 좋은 분위기는 조용한 곳, 바람이나 연기가 없는 곳, 어둡지 않은 곳, 적당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괜찮다.

우리들은 좌선당에 들어가기 전에 양쪽 기둥에 새겨진 당대의 명승 平田普岸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경책(警策)의 구절을 만나게 된다.


入此門內 莫存知解 : 이 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알음알이(知解)를 갖지 말라

지해란 지견해회(知見解會)로 지금까지 우리들이 불교의 경전이나 어록 등을 통해서 익혀온 지식과 상식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선의 수행은 몸〔身〕으로 직접 불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좌선을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불도(佛道)라는 의미로 ‘신심학도(身心學道)’라고 한 것이다.

송대(宋代)에 종색선사의『선원청규』를 통해 전통적인 좌선당의 구조를 살펴 보면 중앙에 반드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모시고 ‘성승(聖僧)’이라 부르고, 그곳의 모든 의식과 좌선은 문수보살〔聖僧〕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 입당(入堂)


좌선당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왼쪽 발부터 들어가야 하며, 먼저 문수보살님께 합장 예배 후, 차수(叉手 : 왼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단전에 붙이고 오른손은 왼손의 주먹을 가볍게 감싼다)하여 조용히 자기 좌선자리로 간다. 이때 문수보살님 앞을 가로 질러서 안되며 반드시 뒤돌아 간다. 합장 반배하고 방석 위에 앉는다.

얼굴을 돌려 주위를 살피거나 옆눈으로 남의 행동을 살피지 않는다.

얼굴은 몸과 같이 바르게 하고 눈은 반쯤 뜨고 시선은 밑으로 한다. 묵언(黙言)해야 하며, 좌선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儀式)과 수행에만 힘써야 한다.


3) 좌선의 준비


먼저 양치질로 입을 깨끗이 하고, 얼굴과 손발 등을 깨끗히 씻고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한다. 좁은 양복 바지나 스커트 차림보다는 여유있는 법복 바지차림이 좋다.

넥타이나 허리띠, 양발, 목걸이, 시계, 반지 등은 벗어놓고 몸과 마음을 가볍고 부드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한다. 몸이 고단하거나 잠이 부족하거나, 만복(滿腹)의 상태에서는 좌선을 중지하는 것이 좋다.


4) 좌선 방석


특별히 좌선방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좌선하기에 편안한 방석이나 이불을 깔고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석을 깔고 그 위에 또 하나의 방석을 반으로 접어 엉덩이를 높이 받치고 앉는다. 이것은 엉덩이를 높이면 높일수록 다리가 저리지 않고 편안히 오래 좌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직경 36㎝ 정도의 둥그런 쿠션으로 된 좌선 방석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 방석에는 일반 솜 대신 말레시아나 인도 등의 열대산 상록 교목(喬木)의 열매에서 수집한 빵야(panha : pania, paniala ; white silk cotton tree)라는 탄력있는 솜털을 꽉 채워 만들었다. 육중한 사람이 그 위에 앉아도 10㎝ 혹은 15㎝의 높이를 지탱해 주기 때문에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지 않아 편안한 자세로 오랫동안 좌선을 계속할 수 있어 좋다.


5) 좌선하는 방법


⑴ 면벽(面壁)


좌선당에 들어가 차수(叉手)하고 좌선할 자리로 가서 합장 반배하고, 벽을 향하여 방석에 앉는다. 좌선당 안에서의 몸의 움직임은 수직과 90도 각도로 하며, 방향 전환은 모두 오른쪽 으로 회전한다.


⑵ 앉는 자세와 방법 ― 결과부좌(結跏趺坐)와 반가부좌(半跏趺坐)


좌선의 가장 올바른 자세로는 결가부좌와 반가부좌를 들 수 있다. 먼저 결과부좌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서로 교차되도록 한다. 이때 두 다리를 각각의 허벅지 깊숙이 올려 놓아야 앉은 모양도 좋고 자세도 안정되며, 또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있어 맑은 정신으로 좌선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인도의 요가 수행자나 부처님의 좌상도 모두 결가부좌로 하고 있다. 결가부좌의 결(結)은 완결, 곧 두 다리를 교차〔跏趺〕하여 완전한 자세로 한다는 의미이다. 이 자세는 살이 찌고 통통한 근육형이나 초심자들에게는 다리가 아프고 무리가 있지만, 처음부터 올바른 자세로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결가부좌가 어려운 사람은 반가부좌로도 할 수 있다. 반가부좌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 위에 깊숙이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의 발바닥은 왼쪽 허벅지 밑에 두면 된다.

좌선에서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어느 쪽를 택하여도 관계없다. 처음 좌선을 하는 사람은 20~30분 정도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 이것은 좌선이 훈련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지만 꾸준히 반복하여 견디면 가부좌의 자세가 일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편안하게 된다.


⑶ 좌선의 기본 자세 ― 정신단좌(正身端坐)


결가부좌나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은 뒤에는 양손을 가볍게 주먹 쥐어 양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상체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한 두 번 가볍게 흔들어 양쪽 무릎의 자리를 바로 잡아 준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엉덩이를 뒤로 가볍게 밀어내면서 상반신을 세우고, 허리를 곧게 펴고 등골〔척추뼈〕을 세워 목과 머리가 수직이 되도록 한다. 이 모습은 마치 탑을 세워 놓은 것처럼 하며,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옆으로는 양쪽 귀와 양쪽 어깨가 수직이 되도록 하고, 앞으로는 코와 배꼽이 수직이 되도록 한다. 이러한 자세를 ‘정신단좌(正身端坐)’라고 한다.


⑷ 손 ― 법계정인(法界正印)


좌선할 자세가 정비되면 먼저 오른손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하여 가부좌한 오른쪽 다리 위에 수평이 되도록 올려 놓고, 그 위에 왼손도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포개어 올려 놓아 양손의 손가락이 서로 포개지도록 한다. 그리고 양 손의 엄지손가락은 서로 끝이 맞물려 가볍게 밀면서 붙인다. 이것을 ‘법계정인(法界正印)’이라고 한다.

좌선할 때는 양 엄지손가락의 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엄지손가락 끝이 서로 떨어지면 긴장이 풀어져 졸음이나 망상에 빠지기 쉽다. 마지막으로 양 팔꿈치는 옆구리에 붙인다.


⑸ 입


입은 가볍게 다물고, 혀 끝은 위쪽의 치근(齒根)에 가볍게 떠 바치듯이 갖다 댄다. 입술과 치아는 맞물리게 밀착시켜 一字의 모양이 되도록 한다. 턱은 가볍게 끌어 당기고 호흡은 코로 한다.


⑹ 눈 ― 시선


눈은 감지 말고 반쯤 뜬다. 눈을 감고 좌선하면 졸음에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시선은 약 1미터 앞쪽을 가볍게 응시한다. 눈동자를 굴리거나 옆눈질로 주위를 살펴서는 안된다.

이상으로 좌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설명했다. 이렇게 좌선을 할 수 있는 자세로 정돈하는 것을 ‘조신(調身)’이라고 한다. 이 자세는 우리들의 몸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 어느 한 곳라도 힘이 들어가게 해서는 안되고, 마음도 신체의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키거나 기력을 모아 응어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전신의 힘을 빼고 단전호흡하는 아랫배에 체중을 싣고, 호흡에 전신을 맡기고, 기운이 골고루 충만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경쇠나 죽비를 세 번 치면, 좌선을 하도록 한다.


⑺ 호흡〔調息〕


자세가 정돈〔調身〕되면 깊은 숨을 천천히 가늘고 길게 들어 마시고 내쉰다. 좌선할 때의 숨은 모두 코로 들어마시고 내쉬도록 한다. 내쉬는 숨을 ‘호(呼)’라 하고, 들어마시는 숨을 ‘흡(吸)’이라 한다. 호흡의 길이는 체질에 맞게 하지만 무리하게 해서는 안된다.

『좌선의(坐禪儀)』에서는 이렇게 호흡을 조절하는 것을 ‘조식(調息)’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좌선에서 가장 중요하다. 좌선할 때의 호흡은 주로 단전호흡을 한다. 단전은 배꼽 밑 약 5㎝정도에 있다. 우리는 보통 가슴〔허파〕으로 호흡하고, 운동을 하거나 숨이 차면 목으로 한다. 호흡은 위로 올라갈수록 나쁘고, 밑으로 내려 갈수록 좋다. 『장자』에도 眞人〔聖人〕의 호흡은 발 뒤꿈치로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좌선을 통하여 올바른 호흡을 하게 되면 건강에도 좋다.

단전은 몸의 따뜻한 기력을 만드는 보일러실과 같은 곳이다. 모든 기력이 이곳에서 솟아나 전신에 골고루 퍼지게 하고, 오장육부(五臟六腑)에 전달되어 전신의 기능을 활성화한다.

단전호흡은 코로 들어 마신 숨을 횡격막(橫隔膜)을 통과시켜 단전까지 끌어 내렸다가 다시 내쉬는 호흡이다. 숨을 들어 마실 때는 자연스럽게 힘을 지그시 주면서 아랫배〔단전〕가 나오도록 하고, 숨을 내쉴 때에는 아랫배가 들어 가도록 하여 숨이 단전이나 가슴에 남김없이 내쉬도록 한다.


⑻ 마음의 자각〔調心〕


좌선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을 집중하여 삼매에 드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자세는 명상과 정신집중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자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부좌를 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번뇌나 망상 속에 헤매이거나, 주위의 경계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도록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훈련이다.


① 수식관(數息觀)


자기를 성찰하고 사유방법은 고대 인도의 요가에서부터 부처님의 명상과 조사들의 수행방법 등으로 불교에서도 다양하게 실행되고 있다. 불교에서 정신을 집중하는 명상법으로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기의 호흡을 마음으로 세어 보는 수식관(數息觀)이 있다.

불교에서는 좌선의 실천방법을 자세히 설하는『선경(禪經)』이 있다.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ㆍ『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을 비롯한 많은 선경에는 한결같이 수식관을 토대로 하여 여러 가지 좌선관법을 설하고 있다.

수식관은 좌선을 하고 있는 자기의 호흡을 하나 하나 관찰하고 세어 보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명상법인데, 호흡을 세는 방법은 다양하다. 즉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자기의 호흡을 하나에서 열까지 혹은 스물까지, 마음으로 관찰하면서 숫자가 틀리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시켜 세어 보는 것이다.

호흡은 한 번 들여 마셨다가 내쉬는 것을 하나로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혹은 스물까지 틀리지 않고 세었다면 다시 열이나 스물에서 거꾸로 세어 내려온다. 쉬운 것 같으나 직접 좌선을 해 보면 쉽지 않다.

하나인 출발점까지 틀리지 않고 되돌아 오면 다시 출발한다. 중간에 잡념이 일어나 숫자를 잃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또다른 수식관은 숨을 천천히 들여마시면서 「하 - 나」하고 단전에 완전히 들어보내고, 잠시 단전에 머물게 한 뒤,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두 - 울」 하면서 마음 속으로 자기의 호흡을 관찰하며 세어 보는 방법이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자기 체질과 호흡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세어 본다.

이 방법이 초보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잡념이 들어갈 시간적인 여유와 공간을 두지않기 때문에 쉽게 자기의 호흡과 일치되어 삼매에 들 수 있다.

이렇게 반복하여 자신의 호흡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세고 있는 마음의 목소리를 마음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자각하지 않는 호흡은 앉아서 몸과 마음이 따로 행동하는 것이 되며, 또한 마음의 집중이 흩어지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 자신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고 만다.

마음으로 자각하지 않는 좌선은 올바른 좌선이 될 수 없으며, 지혜가 생기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자신을 괴롭혀 번뇌에 떨어지는 일이 될 뿐이다.


② 간화선〔公案〕의 참구법


공안(公案)은 본래 면목을 깨닫게 하는 좌선 수행의 방편으로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문제제기다.

공안을 참구하는 간화선의 수행방법은 송대 대혜 종고선사가 주장하는 새로운 수행법이다. 그는 ‘평상심이 도(道)’라고 주장하는 조사선의 정신을 잘못 인식하여 안일하게 받아 들이는 수행자들에게 그 정신을 깨달음으로 확립할 수 있도록 조주(趙州)선사의 ‘무자공안(無字公案)’을 참구하도록 했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조주는 ‘무(無)’라고 답한 것이 무자공안의 전부이다. 『열반경(涅槃經)』에는 부처님이 일체중생 모두가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조주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 하는 의심을 묶어서 조주가 말한 ‘무’를 참구하는 것이다.

무자공안은 호흡을 천천히 들여마시면서 ‘무…!’하고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단전까지 호흡을 끌어 내리고, 호흡을 천천히 내쉬면서 ‘무…!’하고 마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호흡을 반복하며 참구하는 수행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식관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목소리를 마음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는 어째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라는 의심을 엮어서 숨을 들여 마시면서 ‘무…!’, 숨을 내쉬면서 ‘무…!’라고 참구한다. 공안을 일념으로 참구할 때, 자기와의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며 지혜로써 불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⑼ 마구니의 장애(障碍) ― 망념(妄念)과 혼침(昏沈)


좌선을 할 때에 여러 가지 장애가 생긴다. 이것을 ‘마구니의 장애(魔障)’라고 해서 ‘선병(禪病)’이라고 한다. 마장(魔障)에 대해서는 『대승기신론』ㆍ『능엄경』ㆍ『천태지관』등에서 50종류로 설하고 있다.

좌선 중에 여래ㆍ제석천ㆍ비구니ㆍ부인 등의 모습을 나투어 열반을 얻고 깨달음을 얻어서 신통변화 등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모두 망념에서 생긴 환상이며 마구니의 장난으로 생각하고, 곧바로 뿌리치고 수식관이나 공안 참구를 계속해야 한다. 마구니의 경계에 이끌리면 시간만 낭비하고, 자칫 환상에 떨어져 버리는 수가 있다.『대승기신론』에는 수행자가 마구니의 장난에 떨어지는 것은 선근력(善根力)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좌선의(坐禪儀)』에도 ‘망념이 일어나면 곧 망념이 일어난 것을 자각해야 한다. 망념이 일어난 줄 자각하게 되면 망념은 없어진다〔念起卽覺 覺之卽失〕’고 설하고 있다.

좌선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모습이나 신통은 모두 번뇌망념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현혹되고 빠져서는 안된다. 자신이 망념인 줄 자각하지 못하면 그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육도윤회에 빠져서 허덕이게 하는 것이다. 망념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다시 수식관과 공안을 참구하여 본래심을 되찾으면 된다.

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혼침(昏沈)에 빠지는 것을 ‘수마(睡魔)’에 떨어진다고 한다. 옛날 고승들은 혼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가면서 좌선하였다는 기록이 많다. 이것은 혼침에 빠지면 의식이 몽롱하여 정신없고 주인없는 좌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잠시 주인을 잃어버리면 죽은 사람과 같다(暫時不在 如同死人)」라고 함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한 것이다.


⑽ 경책(警策)


좌선 중에 졸거나 정신을 집중하지 않거나 자세가 흩어러지면 경책을 한다. 이것은 장군죽비로 수행자의 어깨를 때려 망념과 수마를 내쫒는 것을 말한다. 경책은 올바른 좌선 수행을 돕는 문수보살의 채찍이다. 경책은 본인이 원하여 받는 경우도 있고, 담당자가 졸음이나 망념에 떨어진 사람, 자세가 나쁜 사람을 좋은 자세로 고치기 위해 하는 경우가 있다.

경책을 할 때는 담당자가 경책을 받을 사람의 오른쪽 어깨 위에 죽비를 가볍게 올려놓고 지그시 누르면서 경책할 것을 알린다. 그러면 경책을 받을 사람은 졸음에서 깨어나거나 긴장된 몸을 재정리하여 합장을 하고 머리를 왼쪽으로 가볍게 기울이며 오른쪽 어깨로 경책을 받도록 한다.

경책을 받은 다음에도 합장하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법계정인의 좌선으로 되돌아 간다. 또한 경책 담당자도 합장하여 답례한다. 경책을 자원한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⑾ 좌선의 마침과 선체조〔안마〕 10가지


좌선 시간은 30~50분 정도로 한다. 그리고 다리가 저리고, 화장실 용무 등을 위한 휴식을 10분 정도 둔다.


① 먼저 가부좌한 상태에서 좌선을 마치는 신호로 경쇠나 죽비치는 소리가 한 번 울리면 천천히 두 손의 법계정인을 푼다. 그리고 합장하여 반배하고, 두 손을 펴서 양쪽 무릎 위에 올려 놓는다. 몸을 좌우로 한 두 번 흔들어 긴장을 풀고 난 다음 두 손으로 가부좌한 왼쪽 다리의 발을 풀어 들고서 바닥에 내려놓고, 다음 오른쪽 다리를 풀어서 두 다리의 발바닥이 서로 맞닿도록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양쪽 엄지 발가락부터 다섯 발가락을 차례로 아플 정도로 지압한다. 다음 발바닥을 골고루 지압하고 발뒤뚬치에서 장단지, 무릎까지 지그시 눌러 경혈을 지압하며 풀어 준다.


② 두 손으로 발바닥이 맞닿은 두 발을 잡고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여 이마가 두 발에 닿도록 한다. 3~4회 반복한다.


③ 앉은 자세에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서 앞으로 쭉 뻗어 내밀고, 두 손으로 두 발가락을 잡고 허리와 머리를 굽혀 이마가 발에 닿도록 한다. 4~5회 반복한다.


④ 두 다리를 앞으로 가지런히 내민 상태에서 오른쪽 손바닥을 오른쪽 엉덩이 뒤쪽 바닥에 짚고, 허리와 목과 머리를 오른쪽으로 180°비튼다. 이때 왼손은 가볍게 오른쪽 앞바닥을 짚어 몸의 균형을 안정시킨다.


⑤ 왼쪽 손바닥을 왼쪽 엉덩이 뒷편에 짚고, 허리와 목과 머리를 왼쪽으로 180°비튼다. 이 때 오른손은 가볍게 왼쪽 앞바닥을 짚어 몸의 균형을 안정시킨다. ④번 동작을 다시 한번 반복한 뒤, ⑤번 동작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⑥ 두 손바닥을 모두 양쪽 엉덩이 뒷쪽 바닥을 짚고 두 발은 모아서 발 끝은 앞으로 힘을 주어 뻗고, 허리ㆍ가슴ㆍ목ㆍ머리는 뒷쪽으로 힘주어 뻗고 뒤로 젖친다.


⑦ 두 다리의 무릎을 가지런히 세우고, 두 팔로 무릎을 꼭 껴안고 머리는 앞으로 숙인다.


⑧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서 두 다리는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발바닥이 모두 골고루 바닥에 닿도록 한다. 오른손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왼손으로 오른쪽 주먹을 감싸며, 두 손을 편안히 단전 위에 올려놓고 단전호흡을 1~2분 정도 한다.


⑧ 선 채로 힘을 가볍게 주면서 아랫배를 끌어올리고, 항문을 오무려 수축시켜서 윗쪽으로 당긴다. 아울러 아랫배 하복부를 윗쪽으로 끌어 올리는 운동도 반복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공복에 10회 이상 하며, 점심ㆍ저녁 때는 반드시 식사 전에 각각 10회 이상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10회 이상 한다. 이 운동을 계속하면 허리와 신장(腎臟)을 튼튼하게 하며, 원기를 증장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⑨ 두 손을 풀고 앞으로 허리를 굽혀 좌우로 가볍게 비틀고 흔들며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앉았다 일어서기 10회 이상 한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두 손바닥을 가볍게 마찰시키고, 얼굴과 눈에 손바닥의 열기를 전달한다.


⑿ 경행(經行)


좌선이 오랫동안 계속될 때, 중간의 방선(放禪)시간에 좌선당을 천천히 걷는 것을 ‘경행(經行)’이라고 한다. 경행은 다리가 저리고 졸음이 와서 좌선을 할 수 없을 때, 조용히 가볍게 걸어 다니는 수행이다. 따라서 호흡에 맞추어 천천히 조용하고 위엄있게 걸어가면서 선정을 닦는 것이다.

한 번의 호흡에 서너 발자국씩 걷도록 하며, 보폭도 자기 발 길의 반쯤씩 짧게 하여 앞으로 천천히 전신을 흔들며 2~3분 정도 걷도록 한다. 시선은 앞으로 가볍게 떨군다.

경행을 마치는 경쇠나 죽비가 울리면, 보통 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다시 합장 반배하며 좌선에 임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천천히 앉은 자리에서 합장하고 좌선방석을 정돈한다.

경행을 하거나 좌선당을 나올 때는 문 앞에 있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나간다. 좌선당을 나갈 때는 오른발부터 나오도록 한다. 그리고 가볍게 운동을 하여 다리와 전신을 가볍게 신진대사 시킨다.

위의 좌선의 방법과 같이 처음 좌선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도자의 안내와 지도를 받고 익숙해 지도록 한다.



4. 일상 생활 속의 선의 실천


현대인들은 스피드시대에 살고 있다. 교통편이 빨라지고, 방송통신 정보가 빨라지고, 사람도 남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 그만큼 속도에 민감해 졌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바쁘고 빨라졌다.

하지만, 퇴근 시간에 가까운 선(禪)센터나 사찰에 들려 자기를 되돌이켜 보고, 현재 위치와 존재를 확인해 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좌선은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가는 필수적인 자기회복의 시간인 것이다.


1)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생활선(生活禪)


좌선은 고요한 산중이나 사찰에서 가부좌나 결가부좌 자세로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바람직하다. 고대 인도의 우빠니샤드 철학자들이나 불교의 역대 조사들도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좌선은 꼭 조용한 산중의 사찰이나 선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할 수 있다. 예를들면 일상에서 다닐 때나 잠시 멈추어 서 있을 때,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 비록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자세는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각자의 본래심을 회복하고 자각적인 선의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참선이다.


2) 입선(立禪)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버스, 사무실 등 잠시라도 서 있을 때는 먼저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서서, 상체의 균형을 지탱해 준다. 그리고 좌선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랫배에 힘을 지그시 주고 단전호흡으로 수식관을 한다. 숨을 코로 천천히 가늘게 들여 마시면서 ‘하-나’, 내쉬면서 ‘두-울’, 이렇게 호흡에 맞추어서 반복한다. 좌선할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목소리를 마음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해야 한다.


3) 의자선


의자선을 할 경우 먼저 의자에 앉아 양 다리를 어깨넓이 정도로 벌리고, 발바닥을 바로 펴서 전부 바닥에 붙인다. 다음 상체를 바로 펴서 앞으로 가볍게 숙이며 엉덩이를 뒤로 빼고 똑바로 세운다. 등뼈가 굽지 않도록 똑바로 세우고, 전신의 자세를 단정히 바르게 하는 것과 양 손을 법계정인하는 것은 좌선을 할 때와 같다.

의자선도 좌선과 같은 방법으로 단전호흡을 하고 수식관을 하는데, 단지 의자에 앉아서 하기 때문에 다리가 절리거나 아픔이 없는 이로운 점이 있다.

의자는 가능한 푹신푹신한 소파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딱딱한 나무의자나 식탁의자가 좋다. 앉아 있는 자세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지 말고 똑바로 세워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가 있으며, 단전호흡을 할 수 있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등을 기대면 정신이 해이해지고 곧 혼침에 떨어지기 쉽다. 또한 아랫배로 단전호흡이 어려워 올바른 좌선을 할 수 없다.

의자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척추뼈를 쭉 펴서 상체를 반듯이 세우고, 전신의 기력을 하복부(下腹部)인 단전에 모아 안정되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있고 편안하게 앉는다.


의자선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⑴ 일상생활 어디에서라도 할 수 있다.

⑵ 좌선 복장이 아니거나 좌선방석 없이 간편히 할 수 있다.

⑶ 결가부좌, 혹은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다리가 저리고 아프지 않다. ⑷ 허리와 등뼈를 쭉 펴고 앉아서 편안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맑은 정신으로 단전호흡도 순조롭게 할 수 있다.

⑸ 익숙하지 않은 좌선이나 경책, 시간의 엄수 등 엄한 규칙과 긴장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다.

⑹ 초보자라도 쉽게 할 수 있고, 곧바로 삼매에 들어 갈 수 있다.

⑺ 의자선의 요령과 힘을 체득하면 출․퇴근길, 등교길, 산책길, 사무실이나 식당 그 어디에서라도 할 수 있다.


좌선은 가부좌로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의자선의 수행으로도 꾸준히 자기 훈련을 거듭하면 선정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의자선을 권하는 것은 조용한 선원이나 사원에서 여유있게 좌선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틈틈이 사유하고 정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좌선 자세가 결가부좌는 진짜이며, 의자선은 임시방편으로 하는 약식(略式)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선정에 있어서 진짜와 가짜가 있을 수 없으며, 임시방편이 있을 수가 없다. 더욱이 한결같이 올바른 자세로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된 자신의 신심을 불태우며 자기부처를 되찾는 진지한 순간에 우열(優劣)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좌선을 시켜보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무리하게 가부좌를 하도록 하여 좌선을 시켜보면 허리가 굽고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단 20분도 견디기 힘들어 한다.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 자유롭게 자란 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호흡은 불규칙해 지고, 온몸의 기운과 열이 상기되어 머리까지 아프다. 그러다 보니 본래심을 찾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초조해지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게 된다. 좌선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좌선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언제나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 좌선을 통하여 몸이 불편함을 완전히 이기고 안락한 경지가 된 것을 몸의 조복(調伏)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평생을 앉아서 살 수도 있고, 누우나 앉으나 다름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훌륭한 고승들이 앉아서 입적〔열반〕하였다는 말은 이러한 경지에서 먼저 자신의 육체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조복시켰기 때문이다.

의자나 소파 등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생활가구를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무엇때문에 저렇게 어려운 좌선을 하는가?’ 하고 반문한다. 하지만 좌선은 직접 해 보지 않고는 본래심을 찾을 수도 그 체험의 기쁨도 맛 볼 수가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가부좌 자세로 좌선를 지도받고 선정을 체험하도록 권한다. 이를 통해 많은 사유를 한 사람은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고,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좌선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행복과 충만된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선의 실천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고 올바른 인생의 가치관을 확립하여 진실로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도록 좌선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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