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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밤을 자긴 했는데 한동안 뜸했던 허리도 아프고 목이 뭉쳐서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예주가 베르사유를 투어 한다고 문자가 와서 급하게 프랑스 역사를 서머리해보았어요. 필자가 기억하는 프랑스는 현재 마크롱이라는 젊은 통치자가 다스리고 있고 20년 전에 조국에서 지하철을 '떼제벨'로 수입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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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 잔다르크-왕정 시대 짐이 곧 국가다 방귀 왕 루이14세-시민혁명, 루이16세와 마리앙트와네트-나폴레옹 불가능은 없다-1,2차 대전 드골의 레지스탕스 활동-아트 축구 앙리나 지단같은 선수도 기억 납니다. 고대는 갈리아인이었고 로마화 되었다가 게르만족의 침략과 함께 프랑크 왕국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독일)-서프랑크(프랑스)-중프랑크(이탈리아)로 분활 되었고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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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의 휴가는 야외 활동을 해야 하지만 우천 관계상 밀린 성경묵상과 들뢰즈 공부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아지트가 좀 넓으면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들여 놓고 싶은데 4평짜리 감옥이라서 별수 없이 징역 프로그램(푸시업-식사-흡연-글쓰기)을 작동했어요. 21세기가 들뢰즈의 시대라니 들러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이 들뢰즈가 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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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헤겔의 ‘절대 정신’같은 원본(본질)은 애초부터 없다는 것 같아요. 이데아를 없애니까 차이가 없어졌어요. 질 들러즈는 너와 나의 다름을 구분하기 위한 '차이'를 논하지 않았어요. 그가 말하는 차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고유성을 말해요. 반복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경험을 해야 그 고유성을 이해할 수 있대요. 들뢰즈의 철학은 차별화를 통한 생산과 소비를 주장하는 포스트 포드주의 차원도 뛰어 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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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계의 반복성 자체에서 새로운 의미와 창조성을 발견하고 개개인마다 지닌 취향 등은 어떠한 분류로도 그름 지을 수 없다고 했어요. 공장의 반복 공정은 불량품을 솎아내서 그런 것이지 작업을 반복하면 당근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복을 통해 동일성이 아닌 불량품(차이)이 생겨난대요. 결국 반복이 차이를 깨닫게 했고 그것이 4차 산업을 움직이는 메카니즘이 되었어요. 반복을 통한 차이를 발견하고 차이 반복을 통해 발전하는 현존재가 되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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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그가 말하는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간의 무의식 속 욕망 결핍(프로이트, 라깡)은 왜 채워지지 않을까? 끝없이 욕망하며 뭔가를 생산하는 ‘힘의 의지’(욕망)를 억압되고 가두어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반 시대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동력으로 사용하라는 말같아요. 그 욕망은 규정되지 않은 것으로서 인격체, 가정, 자본주의라는 억압 양상으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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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가 투어 하고 있는 '지베르니' 마을은 후기 인상파 모네가 노년을 보낸 아름다운 시골마을 입니다. 이 후기 인상파와 들뢰즈는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인상파 화가들은 그동안의 현실속 불변하는 형태를 포기하고 매 순간 고유한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 '차이로서의 세계'를 포착하고 표현했어요. '변화가 생명이다' 이렇듯 현실은 '차이'의 세계이며 개념은 추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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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노마드'는 구속받고 억압받는 그 무엇으로부터 '저항'하는 것이고, 안주하려는 자본주의로부터 끝내 새 창조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들뢰즈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개인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욕망은 획일화 된 욕망이 판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고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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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자들에 의하면 아버지와 맞먹으려는 4살 아이가 엄마에 대한 욕망(오이디푸스 콤플렉스)으로 시작된 것인데, 힘센 아버지에게 거세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결국 어머니를 포기한 오이디푸스 스토리(안티 오이디프스)는 막장 드라마인가? 원초적 욕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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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sun.흐림 19도(나)"
"4.21.sun 흐림 5도 고흐 마을 지베르니 베루사유 투어 예정 단체 버스 타고 관람"
"아부지가 다 긴장 된다야. 베르사유에 아직 장미가 만게 되지 않았겠지? 4월은 튤립 5월이 장미인가?(나)"
2024.4.21.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