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를 가려했으나 파도가 높아 포기하고 개도로 발길을 돌렸다.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약 21.5km 떨어져 있는 개도(蓋島).
열린 큰 바다를 넘보는 개도는 가막만과 여자만의 길목에 버티고 서 있다.
봉화산(烽火山)과 천제봉(天祭峰)... 섬 중심을 관통하는 산들은 기세가 준엄하다.
‘개도 사람길’이란 둘레길은 섬과 바다를 조망하며 걷기에 좋다.
1주일 만에 여수 백야도에 두 번이나 발을 디뎠다.
건설중인 교량 네 개가 완공되면 '백리섬섬길'이 완성된다.
백야도 선착장에서 오전 10시 35분에 출항하는 태평양3호에 승선하였다.
한산한 여객선이 여유로웠으며, 특히 객실 바닥이 뜨끈뜨끈해서 넘넘 좋았다
불과 며칠 전에 신산회에서 거닐었던 백야도가 멀어져 간다.
섬의 모양은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형국이다
여객선은 약 20분 만에 개도 화산항에 닿았다.
운항 거리가 짦고, 여객선이 하루에 7번이나 다녀서 수월하다
여객터미널은 바닷바람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개도 사람길'이 3코스까지 개설되어 있어서 걷기에 좋다
미역을 따고, 갯것을 잡고, 지게 지고 오가던 옛길이 연결되었다.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한적하고 여유롭게 걷는 즐거움이 있다.
화산 마을 가는 길목은 제법 큰 갯벌이 막혀 간척지가 되었다.
이곳 갯벌은 개도리 ‘큰개’라고 불리웠다
농지도 귀하던 시절에 이들이 의지하고 살았던 곳이 이곳 큰개 갯벌이었다.
그러나 농업용수 확보가 어려워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물길을 막고 40여 년을 기다리는 동안 갈대밭으로 변했다.
개도의 중심지 화산마을에는 제법 큰 농지가 있었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는 모습은 섬의 풍경이 아니었다.
간척지 가장자리에서 개도대교 공사가 한창이었다.
개도대교는 개도에서 월호도까지 연결되는 교량이다
2027년 9월에 다리가 완공되면 관광객이 한층 늘어나리라 여겨진다.
화산마을 중앙에는 초등하교와 중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학교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큰 강당이 위압감을 주었다.
쓰러져 가는 관사에 살았던 나는 근사한 관사 건물을 보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화정면 개도출장소 옆에 ‘마녀목’이라 불리는 300여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악마’를 뜻하는 마녀가 아니라, 말을 좋아했던 소녀를 뜻하는 마녀(馬女)다.
조선시대 개도에서 군마들을 키웠는데, 한 소녀가 어린 말 한 마리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전쟁이 나자 조정에서 군마를 동원했는데 이 어린 말도 끌려갔고, 소녀는 슬픔에 잠겼다.
얼마 뒤 어린 말이 바다를 헤엄쳐 섬으로 돌아와 소녀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말의 주검을 묻은 곳에서 나무가 자라 올랐는데, 이것이 ‘마녀목’이라는 얘기다.
마을의 밭에서는 방풍나물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식당에서 방풍나물을 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먹을 때가 아니라고 한다.
요즈음의 방풍나물은 억세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화산마을에 문을 연 식당이 오직 한 군데 있었다
개도식당에 들어가서 백반을 시켰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나오면서 다음날 점심으로 조기매운탕을 예약하였다.
개도사람길 2코스(호령~배성금)를 걷기 위해 호령마을로 이동하였다.
마을 뒷산인 천제봉의 가파른 골짜기에 형성되어 논은 없고 밭만 있는 어촌 마을이다.
마을 뒷산 능선이 호랑이 모양으로 생겨서 호령(虎令)이란 지명을 얻었다.
호령마을 앞 바닷에서 생선이 말라가고 있었다.
병치, 갯장어, 풀치 등이 먹음직스럽다.
아들과 손자들에게 보낼 할머니의 사랑이 어려있는듯 하다.
마을의 끝 방파제 앞에 개도 사람길 이정표가 있었다.
진입로와 안내판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발길은 뜸한듯 하여 안타까웠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차라리, 해변에 앉아
모래알의 숫자를 헤아리는 게 더 쉽겠다
많은 모래가 모여야 백사장이 되지만
내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된다..............................................................................................윤보영 <모래와 바다> 전문
호령마을 앞쪽으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곳을 ‘육고여’라고 한다.
먼바다에서 부는 거센 바람이나 태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며 버텨왔다.
북쪽 일부를 제외하면 암석해안이 대부분이고, 남쪽은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일주도로를 내지 못하고 도로는 중간에 막힌다
기암절벽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개도에는 멧돼지가 많다고 소문난 곳이다
야자수 매트가 깔렸는데 멧돼지들이 모두 걷어내 버렸다.
우리는 멧돼지를 쫒기 위해 스틱을 두드리고 헛기침을 해가며 걸었다.
산기슭을 돌고 돌아 해발328m의 천제봉에 올라섰다.
개도의 풍속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지금은 사라진 천제다
천제봉(天祭峰)은 바로 천제를 지내던 곳이다.
하늘신(天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마을공동제의 제의가 천제다.
천제봉에서 내려서서 능선을 걷다가 살벌한 독사를 만났다.
마르코 회장님은 지나쳤는데 카타리나님이 발견하고 기겁을 하였다.
우리는 뒤돌아서 봉화산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제봉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려면 다시 내려가야 한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흔적만 남은 봉수대 터가 있다..
봉화를 피울 때 사용한 재료는 개과의 야생 동물인 승냥이 똥이다.
승냥이 똥에는 인이 섞여 있어 그 불빛이 푸르고 멀리까지 가기 때문이다.
개도 봉수대는 고흥 팔영산 봉수대에서 신호가 오르면 신호를 받아 금오도로 신호를 보냈다.
개도의 중심지 화산(華山)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개면의 앞 자인 화(華)자와 뫼 산(山)자를 합하여 ‘화산리’라 부른다.
개도 여섯 개 부락 중 제일 큰 부락이라 하여 ‘대동’ 또는 ‘큰 동네’라 부른다.
출발했던 호령마을로 하산하여 승용차를 타고 모전마을로 이동하였다.
마을 전체가 잔디로 깔려 있어 띄 모(茅), 밭 전(田) 자를 써 ‘모전’이라 부른다.
담벼락에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잠시 쉬어갔다.
모전마을 끝 해안가로 가면 몽돌해수욕장이 나온다.
태풍이 불어 닥치면 자갈이 밀려들어 와 큰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자갈이 모난 곳이 없이 둥글둥글해서인지 주민들의 마음도 이렇듯 둥글둥글하다.
다시 승용차를 타고 여석마을의 벅수를 찾아갔다.
마을에서 숫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숫돌 여(礪)와 돌 석(石) 를 써서 ‘여석’이라 부른다.
벅수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좌우 양쪽에 2기가 세워져 있다.
마을을 지켜 준다는 돌벅수는 1921년 3월 30일 세워졌다.
마을 어린이들이 잦은 질병에 시달리자 잡귀를 모두 쫓아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벅수의 몸통에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저녁에는 자연산 농어회로 노곤함을 풀었다.
낮에 양식장 그물에 농어가 걸렸다길래 예약해 두었다.
주인장이 회를 어찌나 많이 주었는지 먹어도 먹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가 묵었던 개도 펜션 식당을 떠났다
방이 넓고 쾌적하며, 무엇보다 주인장의 넉넉함이 참 좋았다.
개도 사람길 3구간(배성금~정목)을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는 사정상 정목마을부터 거꾸로 걷기로 하였다.
진입로가 확실하게 만들어져 있어 들머리는 찾기 쉬웠다.
외딴 섬에도 길은 있고
섬과 섬 사이에도 길이 있다
지구의 한 점 모퉁이에서
일생을 걸어 나에게로 가는 중
모든 길은 시방 너에게로 통한다...............................................우동식 <나에게로 가는 길> 부분
생태탐방길 2코스는 벼랑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서 위험하다
좁은 절벽길과 몇 개의 계단을 지나 청석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푸른 빛깔의 돌이 많아 청석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네 사람들이 소풍을 다녔던 곳으로 개도에서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청석포의 매력은 너른 바위에서 자연에 심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반듯반듯하게 돌을 떼어 온돌의 구들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의 캠핑 성지로 각광받고 있어 주말에는 많이 북적인다고 한다.
돌아갈 때는 원점 회귀를 택하지 않고 신흥마을로 하산했다.
신흥마을은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회관 앞에 모여있는 할머니들에게 정목으로 가는 길을 물어서 갔다.
정목에 주차한 승용차를 타고 개도의 끝마을 월항마을로 갔다.
월항은 본디 ‘닭목’, 닭의 목처럼 가늘고 긴 지형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달목·달이목으로 불리다, 한자로 적으며 월항(月項)이 됐다.
잘 보존된 돌담이 정겨웠으며, 담장에서 으름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화산항에서 오후 1시 3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나왔다.
귓가를 스치는 바닷바람이 상쾌하였다.
여객선은 바로 앞에 있는 제도에 들렀다가 백야도로 들어갔다.
오는 길에 마애(MAHE)라는 예쁜 카페에 들렀다.
지난 주에는 밖에서 보기만 했는데 이번에 입장하였다.
동남아시아를 연상케 하는 나탄비치클럽의 멋진 뷰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