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간다.
박무형
4월은 대지의 온갖 생명들이 부활을 약속받은, 찬란한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이 말은 T.S 엘리엇이 그의 장편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싯구를 서두에 사용하여 전후 서구 사회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오늘날 4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데 많이 인용되고 있다.
4월의 잔인함은 4월에 제철을 맞아 활짝 피고 지는 꽃들의 생성과 소멸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개 4월에 활짝 피는 꽃들은 대부분이 겨울을 견뎌 낸 헐벗은 나무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것도 뭐가 그리 급한지 나목에 잎사귀도 나기 전에 앞 다투어서 치열하다 싶을 정도로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행여 신이 이들의 앞 다툰 꽃 틔움에 노여움을 표시하여 서둘러 「낙화」라는 조치를 내리는 것일까? 이들 4월 꽃 축제의 속절없는 짧음에다 잔임함의 업보까지 내려진 듯하다. 이들 꽃들은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등 일진데 모두가 하나같이 호들갑스럽게 꽃을 피우고도 나중에 제대로 된 과실을 맺어 주지 않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진정 잔인한 형벌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꽃은 지는 것으로 아름답다고 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고도 했다. 아무려나 4월의 꽃에 대해 슬픔을 넘어 잔인함까지 논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4월의 잔인함을 굳이 열거하려면 우리 민족사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광화문과 경무대 입구에서 꽃잎처럼 젊은 영령들을 무수히 흩날렸던 4.19의거,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 무고한 민초의 목숨들을 꽃송이처럼 앗아갔던 제주 4.3사태,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호남전역에서 4월에 절정을 이루었던 동학농민들의 피 터지던 항거운동은 아무래도 4월의 잔임함을 여실히 남겨준 뚜렷한 사건들이다.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옛날 우리농촌에서는 4월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다. 봄 언덕에 철쭉과 살구꽃이 지천으로 피어 널리고 종다리는 푸른 보리밭 이랑위로 고운 음색을 내며 자꾸만 하늘 높이 솟구치는데, 집에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생각도 하지 않아 배고팠던 그 시절의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었을 게다. 오죽하면 “사월 없는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생겨났겠나?
나 자신의 과거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잔인한 4월이 있었다. 1960년대 말 결혼을 앞둔 나의 청년시절에 지금은 문화재 건출물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 당시엔 서울대학교병원의 본관이었던 빨간 벽돌의 시계탑 건물 안에 있던 내과에서 나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 어떤 동기였던지 나는 병원근처이던 창경원으로 가서 온통 백치들의 함성처럼 희부옇게 만발한 벚꽃나무아래서 수많은 상춘객들 틈에 끼여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그때 동물원 철책 안을 바라보던 나의 두 팔 안에는 사료처럼 내던져진 6개월분의 「파스」 폐결핵약 꾸러미가 천근같은 무게로 안겨져 있었다. 그 때의 폐병은 한센병과 더불어 불치병, 절망 그 자체로 여겨졌었기에…, 그 해의 4월은 나의 청춘, 나의 인생의 막이 거기에서 내쳐지는 듯한 슬픔을 맛보게 하였다.
이제 4월의 축복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될 것 같다. 세상이 윤택하여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서 일까? 요즈음의 4월에는 옛날처럼 슬퍼하거나 잔인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표현들은 어디까지나 시대상황이나 개인적인 주관에 따른 표출일 따름이다. 확실한 것은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넷째달인 4월이 제일 아름다운 달이요 5월과 함께 기대와 희망의 달이라는 것이다.
「4월」이라는 단어에서 만큼은 4자가 불길하다거나 나쁘다는 이미지가 비치지 않는다. 봄이 활짝 피는 4월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는 「April Love」라는 옛 팝송이 있다. 펫분이 불렀던 최고 히트곡으로서 4월의 풋풋한 젊은 사랑을 노래한 이 곡은 지금도 들으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상쾌해 지고 감미롭게 상기되는데 「4월의 사랑」이란 노랫말에서 도무지 ‘4자’의 어두운 그림자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피천득은 그의 수필 「봄」에서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4월은 천치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라고 어느 시인의 말을 인용했다. 나에게는 정말 정감이 가는 인용구다. 4월은 만우절의 달이기도해서 그런지 어수선하고 조금은 불안하고 마음이 들떠서 그 무엇에 홀려 속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4월에는 초하루가 아니래도 마누라에게 혼이 날 정도가 아니라면 바보같이 누구에게 속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번 4월 역시 나의 일상에 극명하게 희비쌍곡선을 휘저어 놓고 지나가려한다.
나는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집에 애들이 우리문우회의 해외문학기행이 있는 줄 알아채고 등 떠밀어서 대만 여행을 하게된 것이다. 집사람의 오랜 우환에 시달린 마음을 힐링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모처럼의 3박4일 일정은 잠시나마 새로운 풍물과 문화를 접하는 소창의 기회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집에 오니 집사람이 고열과 설사증세로 이틀째 입원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코로나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4월은 이제 우리 앞에서 아름답게 그 위업을 완수하며 지나가고 있다. 사월은 화려한 꽃들의 피고 짐을 함께 아우르며 울창한 신록을 준비하고 당당하게 물러서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신 5월은 4월의 찬란한 업적을 치하하며 싱그럽게 초록빛 긴 망또를 드리우고 다가서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태양과 같은 생명력과 푸른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