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을 구하려면 새 입주단지를 알아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입주 단지엔 전세 물량이 풍부하고 전셋값도 다소 저렴한 게 일반적이다. 요즘엔 입주 단지 전셋값 약세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같은 평형대를 기준으로 새 아파트 전셋값이 인근 기존 아파트 전셋값보다 싼 경우는 다반사다. 심한 경우 절반 수준인 곳도 있다. 매매시장이 동맥경화 상태에 빠지면서 원하는 값에 집을 팔기 어려워진 집주인들이 일단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헌 집 주고 새집 얻으면 돈 남아
3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 주상복합아파트. 2003년 분양 당시 평균 75대 1이라는 치열한 분양 경쟁이 벌어졌던 이 단지에 요즘 ‘급전세’물량이 많다. 급전세 가격은 48평형이 3억원선.
입주 한지 10년 된 인근 구의동 프라임 아파트 47평형 전셋값(4억~4억7000만원)보다 25% 이상 싼값이다.
지난해 말부터 입주한 서울 양천구 목동 하이페리온2 주상복합 56평형의 경우 4억원대로 전셋값을 낮춘 매물이 아직까지 세입자를 찾고 있다. 2003년 입주한 인근 하이페리온1 같은 평형 전셋값은 5억~5억7000만원이다.
▲ 3월부터 입주를 시작했지만 아직 빈집이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 주상복합아파트.
다음달 입주를 앞두고 있는 강동구 암사동 프라이어팰리스의 경우 벌써 전셋값이 약세다. 33평형이 2억원대 초반으로 인근 현대아파트 같은 평형대 전셋값(2억5000만원)보다 한참 싸다.
수도권과 지방에선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다. 올 초부터 입주를 시작한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의 경우 30평형대 전셋값이 9000만원대다. 동탄에서 멀지 않은 수원 영통지구 내 같은 평형대 전셋값(1억8000만원 안팎)의 절반 수준이다.
대전에선 이달 말 입주 예정인 동구 가오지구 풍림아이원 33평형 전셋값이 7000만원대로 떨어졌다. 인근 코오롱아파트 같은 평형대 전셋값은 1억원이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특히 많은 대구 달서구의 40평형대 새 아파트 전셋값이 올 초보다 3000만원 이상 내렸다.
거래 안 되는데 입주물량 쏟아져
새 아파트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는 건 매매거래 시장 위축 여파가 크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더샾 공인 관계자는 “살던 집도 안 팔리고 새 집도 안 팔린다며 일단 전세수요자를 구해달라는 집주인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행복도시 개발 기대감을 업고 2~3년 전 아파트 분양이 봇물을 이뤘던 충청권에선 새 아파트가 애물단지다. 기대했던 만큼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부동산 규제로 처분조차 어려워져서다.
유엔알 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재테크 목적으로 충청권 아파트를 계약했던 서울 등 외지인 투자자들이 급한 대로 전세를 놓고 시간을 벌어보자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줬다.
대구와 부산은 수급이 완전히 엉켰다. 대구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2년간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대구 전체 가구수의 6%에 해당하는 3만5000가구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오를 기미가 없자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는 자취를 감췄고 덩달아 전세 수요도 크게 줄었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광개토공인 관계자는 “입주 단지에 전세물량이 쏟아지고 있지만 전세수요자들은 살던 집에 눌러 않아 있으려고만 한다”고 설명했다.
역전세난 우려
경기 오산시 궐동 우남공인 서기열 사장은 “오산 지역 전세수요자들이 값싼 전세를 찾아 인근 동탄으로 이사 가고 있다”고 들려줬다. 때문에 올 봄 1억1000만~1억2000만원선이던 오산 지역 30평형대 전셋값이 최근 80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수원도 마찬가지다. 영통동 영통서브공인 이용근 사장은 “1억8000만원선이던 30평형대 전셋값이 최근 2000만원 가량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대구 지역은 전셋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한국부동산정보회에 따르면 대구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4월 첫째 주 이후 11주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역전세난 우려도 나온다. 전셋값이 크게 떨어지면 집주인은 새로 받은 전셋값에 자기 돈을 보태 기존 세입자에게 내줘야 한다. 집주인의 자금사정이 넉넉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셋값 반환 문제를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대기중인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많고 전세 수요가 적어 역전세난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