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시절 1950년대,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 동네 입구 당산나무(수꿀나무) 높은 우듬지 위에서는 까치의 청랑한 울음소리가 유난했다. 까치 울음은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증좌였다. (전문가의 의견인 즉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는 신호라고 한다.) 과연 먼 객지 타향을 떠돌던 자식들, 출가한 딸자식이 오랜만에 부모 친척 문안을 오는 길이었다. 그 시절 명절이란 일 년 열두 달, 먹고 사는 일의 곤고함을 떨치고 조상님과 이승천륜의 인연을 챙기는 간절하고 지엄한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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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설.
‘설’을 맞아 순 우리말인 ‘설’의 말뜻을 한 번 되새겨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설’은 ‘낯‘설’다’에서 보이듯 ‘익숙하지 않다’, ‘초면이다’, ‘처음 겪는다’에서 유래했다 한다. 오랜 세월 전에는 다시 맞을 미래를 예견할 과학적 사회체계가 미흡했던 만큼 새로이 맞닥뜨릴 미래,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새로운 시간이 과연 어떤 길흉화복의 형태로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경외감이 지금보다 훨씬 막막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충분히 간다. 더불어 그때 사람들이 생존을 의지했던 농경사회, 그 농경을 좌지우지했던 자연재해가 인간에게 그다지 자애롭지 않았음은 불문가지. 천지불인(天地不仁). 그래서 새로운 한 해의 첫날을 ‘설’로 명명한 한민족 집단 무의식과 언어 명명이 예사롭지 않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에 남은 낯‘설’음은 공포감이었다. 네 살 때 쯤(1957년), 우물에 물 길러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혼자 창문틀에 앉아 있을 때 창문틀을 기어내려 오던 큼직한 지네를 보았을 때 왔다. 그 시절 또 하나의 낯‘설’음은 기억은 국민(초등)학교 운동장 둘레를 빼곡히 둘러 선 벛꽃나무 숲에서 봄철 내내 하염없이 휘날리던 하얀 꽃잎 폭설.
나는 일생 비교적 낯‘설’은 세상을 산 셈이다. 35년간 교직으로 옮긴 직장만 해도 여덟 군데다. 한해마다 출석부로 이름을 외워 불러야 하는 이름이 기 백 명. 이름도 얼굴도 웃음소리도 체취도 머리에 꽃은 핀도 제각기 다르고 낯‘설’었다. 직장 이직 족보를 대자면, 마산무학여고, 야간특별과정, 성지여고, 성지여중, 민족사관고, 영어학원 강사, 보따리 강사로 떠돌았던 남해대학, 경남대학, 천운으로 전임 임용된 거창대학 경영과 주간, 야간과정.
글자 ‘설’이 화제가 되니 생각나는 낯‘설’은 기억중의 하나. 1980년, 총각 선생으로 첫 담임을 맡았던 여학교, 한 학기가 끝나는 2월 말,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어 있었다. 마지막 종례. 아이들은 모두 책상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고 나는 교실 벽에 기대어 쓰러질 듯 엉엉 울었다. 창밖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1990년대, 미국의 한 대학 교환교수로 살았던 교수 아파트. 그 당시 신문물인 식기세척기가 낯‘설’었다. 미제 중고차 뷰익의 브레이크 굉음이 불안스럽게 낯‘설’었다. 미제 인간, 이국 인간들의 체취가 낯‘설’었다. 석사과정을 밟던 대학 캠퍼스 강변에 철새들이 내질러 놓은 분뇨 냄새가 낯‘설’었다. 대학 임용 후, 같은 경상도인데도 억양과 어휘가 고성-마산과 다른 거창 사투리가 귀에 귀‘설’었다. 지금 사는 동네의 절에 의탁하신 스님이 데리고 산책하는 개의 모냥새도 낯‘설’다.
어느 입담 거친 양반 왈,
‘자고 일어나는 하루하루가 ‘설’레이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버려라!’
고 하였다. 말인즉 폼 나는 말,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아침에 우물쭈물거리며 일어날 때마다 ‘오늘 하루를 무슨 일로 채우지?’를 생각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낯‘설’은 세상을 만나고 겪는 일은 두렵고 힘들다. 그러나 용기를 낸다. 5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란 이름으로 지구상에 태어나 운명하신 1070억 명의 조상님들이 치열하게 부대낀, 똑같이 낯‘설’음은 세상과 만나는 두려움이지 않은가? 그러니 안심입명하고 구태의연한 일상을 깨부수며 떨쳐 일어나는 오기를 발휘하자. 이 생은 다시 한 번 올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낯선 세상과 익숙한 세상, 두려움과 편안함, 그 사이의 균형을 중용이라 부를까?
돌이켜 보자. 나의 현생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내가 이 세상 살며 죄를 비교적 덜 지은 사실을 인정하시는, 어디 계신지 모르는 그분이 있다 치자. 그 분이 내 생애 마지막 소원을 하나만 더 들어주신다면, 내 마지막 날 저녁노을 시간까지 내가 평생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마다 느꼈던, 나를 사무치게 사로잡았던 신선함, 경이감, 황홀함, 긴장감, 경외감에 전율하는 그 감성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허하시기를 빈다. 무수히 넘어지면서 걷기를 배우는 어린 아기처럼, 수천수만 광풍노도의 대양을 헤매어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던 무수한 탐험가들처럼.
구태의연한 세상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풀꽃, 새로운 새소리, 새로운 구름의 유영, 마을 앞 호수물 위 명멸하는 윤슬, 새로운 일기장 책갈피, 처음인 듯 반가운 친구 전화 목소리..... 욕심에는 경계가 없다지, 희망하기는, 다음 생이 있다는 전제지만, 그 세상에서도 아침마다 깨어 일어나는 하루하루가 부디 가슴 ‘설’레이기를!
그러고 보니 내일이 ‘설’이다. 바라옵건대 ‘설’ 익은 사람이 아닌 제대로 익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