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사회를 뒤흔든 신정아 사건과 올해 초의 삼성 특검이 갖는 소재적 공통점은 미술품이다. 신정아 사건은 학력 위조와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관계, 그리고 기업의 미술품 구입에 외압이 있었는지가 관심이었다. 삼성 특검의 핵심은 불법 비자금 조성이다. 그렇게 조성된 비자금이 해외에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 수백억대에 달하는 미술품을 구매하는데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미술시장은 이상 과열에 휩쌓여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화가들이야 좋은 일이겠지만, 미술품 구입이 애호가들의 진심 어린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면, 투자의 매력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 후반부에 등장한 영화는 초창기에는 많은 화가들이 영화제작에 참여를 했다. 그들은 영화를 새로운 시각예술의 하나로 생각한 것이다. 살바드로 달리나 피카소, 혹은 장 꼭토 등이 영화를 제작하거나 감독했고, 피카소는 출연한 적도 있다. 지난 해 칸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며 최근 국내 개봉한 [잠수종과 나비]의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기도 하다. 패션잡지 [엘르]의 프랑스판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한쪽 눈만 깜박일 수 있는 식물인간이 된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으로 줄리앙 슈나벨은 얼마 전에 발표된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현재 아카데미에 감독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상태다.
또 미술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예술가 영화도 많다.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 뉴욕 거리의 화가였던 [바스키아](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데뷔작이다), 팝 아트의 선구자 잭슨 폴락의 일대기를 그린 [폴락], 혹은 그림 공장을 만들고 작업하던 앤디 워홀을 그 주변의 한 여성을 통해 바라본 [팩토리걸] 등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독특한 삶을 살다간 화가들의 일생을 스크린에 옮겼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들도 있다. [다빈치 코드]는 처음으로 루브르 미술관에서 촬영되었고,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와 [암굴의 성모]에서부터 시작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품 복원을 하는 주인공 쥰세이가 헤어진 연인 야오이를 잊지 못하며 일어나는 일들이 펼쳐진다.
미술품 도둑에 관한 영화는 의외로 많다. 우선 지금은 헐리우드로 가서 존 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오우삼 감독이 홍콩 시절에 만든 [종횡사해]가 있다. 오우삼의 영화라고 해서 모두 비장미 넘치는 [영웅본색]류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윤발, 장국영 주연의 [종횡사해]는 도둑들의 이야기이다. [할렘의 여시종]이라는 고가의 그림을 훔쳐서 달아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펼쳐진다.
숀 코네리가 고가의 미술품 전문 도둑으로 등장하는 [엔트립먼트]도 영화 속에 뛰어난 그림들이 자주 등장한다. 미모의 케서린 제타 존스와 공연한 이 영화에서 숀 코네리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거액의 미술품을 감쪽같이 훔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촬영중인 [론리 메이든]은 모건 프리먼과 크리스토퍼 워켄이 주인공인데, 미술관에 근무하는 세 경비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이들은 수십년동안 미술관에서 경비를 서면서 애착을 가진 미술품들이 다른 미술관으로 옮겨지려고 하자 그 미술품들을 훔치려고 하는 내용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술품 딜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도 있다. [준 벅]은 시카고의 미술품 딜러 메들린(에이미 아담스 분)이 주인공이다. 잘 나가는 화가의 작품보다는 주류에서 소외된 강렬한 아웃사이더 아트에 투자하는 딜러다.
영화는 모든 장르의 특성이 총체적으로 결집되었지만 시각예술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순수미술과의 소재적, 표현적 겹침 현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러티브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