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조금은 어색하고 어눌한 발음으로 누군가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고 있습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눈을 돌리니 두리번거릴 것도 없이 한눈에 구분되는 외국인 스님들이 철철 내리는 비 아랑곳하지 않고 운구 행렬을 따르며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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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영결식장에 등장한 영문만장입니다. “What am I? What am I?"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하나의 화두인 듯 합니다. 이 외에도 방하착의 또 다른 표현일 ”PUT IT ALL DOWN" 이란 영문 만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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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여느 스님의 다비식에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많은 외국인 스님들이 조문객으로 상주로 영결식장엘 참석하셨습니다. 비구스님이라고 부르는 남자스님도 계셨고 비구니스님이라 부르는 여자스님도 계십니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 그리고 커다란 덩치에 큼지막하고 오뚝한 코를 가진 서양인 모습의 스님들이 빡빡 머리에 잿빛 승복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외국인 스님들도 계십니다. 가끔 뉴스 속에서나 접하던 외국인 스님들이 입적하신 숭산스님의 영정을 들고 가신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듯 그렇게 어눌한 발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영결식장으로부터 다비장으로 법구를 옮기는 이운 행렬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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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루 종일 비가 나리는 데도 수덕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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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피부와 눈빛 그리고 외형으로 볼 때 그 분들은 분명 이방인이었지만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그분들의 진지함과 애잔함은 더 없는 상주며, 그 동안 보아왔던 주변의 스님들이었습니다.
불교, 스님하면 아무래도 복잡한 한자에 알 듯 모를 듯한 범어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숭산스님의 영결식에는 스님의 살아생전 행적을 기리고 이력을 대변하듯 다양한 만장이 등장했습니다. 큰스님들 영결식장에서 주를 이루었던 한문으로 쓰여 진 만장은 물론 영어와 불어 그리고 범어와 한글로 된 글귀가 써진 색색의 만장이 물결을 이루고 숲을 형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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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스님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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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또 한 분의 큰스님을 잃어야 하는 많은 불자들의 애석함이 하늘에 닿아 날씨조차 눈물을 짓 듯 12월 4일 수덕사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앞 아래마당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선 지난달 30일 입적한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10시 30분부터 엄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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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결식장에서 다비장으로 가는 길은 만장이 물결을 이루고 염송하는 "나무아미타불"소리가 메아리를 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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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궂은 날씨에도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모여든 8000여 불자와 조문객으로 영결식장과 다비식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산사에만 머물지 않고 일찌감치 해외 포교에 힘쓰며 30여 국에 선방을 개설해 수많은 외국인 제자를 둔 스님의 영결식장이니 여느 스님들의 영결식과는 뭔가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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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나무를 쌓아 만든 더미에 생솔가지로 치장한 연화대에 거화를 하고 있습니다. 숭산스님의 다비식은 조금은 특이한 수덕사 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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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영결식이 끝나고 600여 m 떨어진 다비장까지의 운구행렬을 따라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나무아미타불” 염송엔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기도가 빗줄기 속에 녹아들어 형형색색의 만장과 합장으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속세의 대소사가 문중과 가풍에 따라 다르듯 다비식도 절에 따라 다른 가 봅니다. 수덕사는 수덕사 나름대로의 다비식 풍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보아왔던 다비식장은 법체가 이운되기 전에 이미 연화대가 마련되었거나 만들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수덕사 다비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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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화를 하고 몇 시간이 지나니 그 높던 연화대가 이제는 작은 모듬불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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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순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공터에 다비장이 있었습니다. 그 공터 중앙에 땅을 파고 양옆으로 커다란 돌을 놓아 한길만큼을 도랑처럼 골을 만들고 그 위에 아름드리에 가까울 만큼 굵은 통나무를 가로로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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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한 아름드리 통나무, 높다란 연화대 오 간데 없이 한줌의 재가 되어 움푹 파인 돌 사이 고랑에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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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구들형태를 이룬 이 도랑은 연화대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통로도 되겠지만 최종적으론 타고난 재와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유골이나 사리가 모아지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꽃상여로 운구 해 온 법관을 가로로 놓은 나무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관 안에 장작을 넣고 밖에도 마른 장작을 쌓았습니다. 뚜껑을 덥고 그 위에 다시 굵고 가는 통나무를 쌓아 둥근 형태의 더미를 만들고 삭정이와 생솔가지를 덮으니 연화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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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불기가 남아있는 잔재를 꺼내 깨끗한 철판에 펼치며 유골을 거둬 백자 항아리에 넣는 것으로 다비장의 불빛은 사라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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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연화대에 불을 붙이는 거화를 하니 불꽃 따라 연기가 하늘을 덥습니다. 쏟아지는 비 아랑곳 하지 않고 불꽃은 활활 계속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불길이 6시간쯤 지나고 무성한 아름드리 통나무, 높다란 연화대 오간데 없이 한줌의 재가 되어 움푹 파인 돌 사이 고랑에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직 불기가 남아있는 잔재를 꺼내 깨끗한 철판에 펼치며 유골을 거둬 백자 항아리에 넣는 것으로 다비장의 불빛은 사라졌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렇게 거둔 유골을 다비장 우측 자연 바위에 만들어져 있는 돌절구에서 쇄골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님의 유골은 그냥 거두기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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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볼 수 있던 스님의 모습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흔적으로 항아리 속에 아주 적은 유골을 남겼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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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주변은 찰흙 같은 어둠에 덮이고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부질없는 이승의 연을 아쉬워하듯 그칠 줄 모르고 흐르기만 합니다. 스님 잃은 불자들 가슴에 드리웠던 그 암담함처럼 그렇게 캄캄하기만 한 다비장도 내일이면 다시 광명의 밝음이 반복되고 마음 쓸어내린 빗줄기는 생명수 되어 흐르게 될 겁니다.
스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포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락함과 위안을 주셨지만 가실 때는 결국 그렇게 한줌의 재로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가셨습니다. 스님은 그렇게 한 줌의 재로 가셨지만 스님이 남기신 포교와 가르침엔 죽음이란 울타리에 갇히지 않을 해탈과 영혼 불멸의 길과 방법을 제시해 주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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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포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락함과 위안을 주셨지만 가실 때는 결국 그렇게 한줌의 재로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가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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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임윤수 |
| 스님의 운구 행렬이 이어지던 '다비장 가는 길'이 다시금 걸어 나올 땐 생활로 돌아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의 오솔길일 뿐입니다. 손전등에 밝혀진 그 길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진흙길이었지만 기꺼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다비장 가는 길과 일상의 길이 이렇게 다르지 않음이 작은 깨침으로 가슴에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