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줄어들고,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 국내산 농산물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먹거리 안전’과 생산 농민도, 소비자도 웃을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장기 연재기고를 시작한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우리 사회의 4대악(惡)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먹거리 안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통상적으로 불량식품이 가리키는 것은 식품위생법을 위반하거나 혹은 생산·유통·가공·조리 과정에서 비위생적으로 관리되는 식품을 지칭한다. 그러나 불량식품은 먹거리 위험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종자부터 밥상까지’ 이르는 먹거리의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한 위험요소의 많은 부분은 불량식품이라는 것으로는 표현할 수도 없고, 불량식품 근절만으로는 걸러낼 수도 없다. 현행 법률, 제도, 정책 등이 위생적이라고 인정하는 먹거리조차도 안전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먹거리 위험 문제는 불량식품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것에 담겨진 의미는 밥상과 먹거리의 안전 문제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헤아렸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는 국무총리실,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검찰과 경찰 등 범정부 차원의 ‘불량식품 근절 추진단’이란 것을 발족시키고, 불량식품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소위 불량식품 근절 종합대책에 담겨진 내용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아주 친절하게 일깨워줬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3년도 법무부·안전행정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문방구 때려잡고, GMO·패스트푸드 봐주는 ‘불량식품 척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은 딱 ‘불량식품’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인식 수준은 밥상과 먹거리의 위험을 걱정하는 국민의 눈높이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식품안전을 말하면서 유전자조작에 의한 종자로 재배된 농산물과 이것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개선방안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산 GMO 먹거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데 이 부분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뿐만 아니라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을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시키는 사안에 대해서도, 감미료와 착색제 및 착향제 등 식품가공 과정에서 첨가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먹거리 위험을 유발하는 근원에 대해서는 눈감는 대신에 겉으로 드러난 위생불량에 대해서만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엉뚱하게도 그 불똥이 문방구로 튀었다. 마치 문방구가 아이들의 먹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인 것처럼 만들어 문방구에서 식품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발상이 버젓이 종합대책의 핵심과제에 포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문방구 주인들은 거리로 나와 머리띠를 메고 구호를 외쳐야 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에 맞게 제조된 동일한 군것질거리 식품이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는 판매해도 되고, 문방구에서는 판매하지 말아야 하는 불량식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형 패스트푸드점에서 팔고 있는 햄버거, 대기업이 판매하는 인스턴트 식품은 안전한 먹거리가 되고, 문방구의 군것질거리 식품은 위험한 먹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현상과 기형적인 인식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방법이 도저히 없다.
게다가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에 대해서는 전자조달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 학생들의 먹거리 안전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문조차 막혀 버린다. 경쟁입찰을 유도하는 전자조달 방식 때문에 저가의 질 낮은 식재료 문제로 학교현장이 골머리를 앓아 왔고, 수많은 급식 사고가 발생했다는 현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이미 서울을 비롯해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전자조달 방식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점차 확대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조달방식을 확대하겠다는 그들의 발상은 분명히 퇴행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문구생산 유통인들이 정부의 문방구점 규제 조치에 대해 규탄하는 첫 전국 생산·유통인 생존권호소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종합대책을 좀 더 들여다보면 그들이 말하는 믿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것은 대규모의 자본과 시설이 투입되어 식품위생법이 요구하는 위생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농가 혹은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가 생산하는 먹거리는 대규모의 자본과 시설이 투입되지 않지만 선진국에서 장려되는 먹거리이며, 지역 주민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런 먹거리보다는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되는 식품을 더 믿으라고 강요하는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 비싼 음식점, 대형 식당은 위생적이어서 믿을 수 있지만 피맛골과 청진동 골목의 정겨운 작은 음식점들은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단속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위생 기준이라는 것은 우리가 먹는 먹거리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먹거리는 시설위주의 위생 기준만으로 절대 충족될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위생기준을 충족시키는 대기업의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을 안전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음식문맹’
위와 같은 내용을 고려할 때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려고 하는 ‘불량식품 근절대책’은 범정부 차원의 대규모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인식수준은 음식문맹(飮食文盲)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종덕(경남대 교수.「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저자)은 음식문맹의 특징으로 음식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허위의식을 갖고 있는 것 등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먹거리 위험 문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허위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울러 겉으로 드러나는 위생문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먹거리의 이면에 깔려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음식문맹에 좀 더 가까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