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에게 전하는 말 2 바람의 노래 2 --첫사랑 이종혁 바람아 나의 사랑노래 들어주렴 2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 선생님 오랜만에 선영이 인사올립니다. 선생님이 주신 답장 고마웠습니다. 한동안 글쓰기 열심히 하고 게시판에서 많은 가르침 전해 받았지요. 그런데 전개를 해나갈수록 이 글은 실패로구나 싶더라구요. 날씨는 무더웠고 전 심신이 힘겨웠지요.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불경기라 그런지 학원강사자리도 나지 않았고 과외도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한명 가르쳐서는 도저히 생계가 어려울 것 같아서 번역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자신이 없더군요. 하면 할 수는 있겠는데 다시 시작해야하는 그 과정이 부담이었습니다. 벌써 9월 초가 되어버렸네요. 그동안의 사연 얘기해보고 싶어요. 그때는 아마도 8월도 중순이 다되었을 거예요. 아직도 그 지겨운 무더위가 끝나지 않은 시기였지요. 전 많이 힘들었답니다. 한번 꺾인 글쓰기는 좀체 다시 시작할 수 없었지요. 자기전에는 내일은 기필코 하루 모두를 글쓰기에 바치리라 다짐하곤 했답니다. 그러나 내 몸은 어제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어요. 무더위도 한 이유가 되었지만 그 이유를 깨닫기엔 많은 번민과 방황이 있었네요. 글쓰기에 어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 원인을 알아내긴 어려웠습니다. 내 몸과 정신은 퍼져버려서 외출도 거의 못한 나날이었지요. 그런 어느 새벽, 난 너무도 힘들어 새벽산책을 나섰네요. 어린시절 자주 산책을 했던 대학 캠퍼스까지 거닐었어요. 그 근처 살때는 참 자주 산책을 했던 캠퍼스였는데 이제는 2킬로를 걸어야 그곳을 갈 수 있었지요. 세상은 이토록 고요한데 나만 홀로 외기러기가 된 느낌이더군요. 그날, 그 넓지 않은 캠퍼스를 3시간 정도 거닐었나 봅니다. 처음엔 힘겨웠는데 거닐면 거닐수록 기분이 좋아졌지요. 그래서 지치고, 지치고 또 지쳐도 그 산책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를 생각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오더군요. 난 저항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나에게 고통뿐이었던 준영 선배와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는 거예요. 옛시절 우리 거닐 때 나눴던 많은 대화들이 떠올랐어요. 오빠의 상큼한 채취와 따스한 웃음도 기분 좋게 했구요. 난 결국 그를 잊어야한다는 걸 포기하게 되었네요. 그래,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의미가 될 때까지는 그냥 추억하리라. 나에게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될 때까지는 다시 떠올리리라. 난 그의 핸드폰에 메시지를 넣고 싶은 충동을 안았어요. < 오랜만에 아침산책을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오빠의 많은 대사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네요. 오빠, 더 이상 원망하지 않을래. 그토록 좋아하던 그 언니랑 행복하지 ? 열심히 잘 살아. 그런데... 올가을에 멀리서나마 한번 보고싶다. 추석에 고향에 내려오지 않나 ? > 그런 대사들이 마음에서 오가고 있었지요. 물론, 결코 보낼 수 없는 메시지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말예요. 난 사실, 그 언니를 많이 미워했네요. 오빠가 그토록 사랑했는데도 오빠를 너무 힘들게 했던 사람. 그럼에도 결국 오빠를 데려가 버리고만 그 여자.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너무 궁금했어요. 난 사실 알고 있었죠. 나와 만나면서도 오빠가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몇 번 나는 물은 적이 있었어요. "준영오빠, 그 여자 그리 나쁜 여자인데 뭐가 그리 좋았어 ? " 오빠는 대답을 한사코 거부했지만 어느 날 말하더군요. " 걘 너무 재밌어.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 없는 요정같은 애야. " 우리 몇 번 싸운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가 말하더군요. " 넌 너무 침울해. 같이 있으면 기분이 업 되지 못하고 다운될 때가 너무 많거든 " 그녀와의 비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난 가끔 그녀의 장점을 얘기들을 수 있었죠. "같이 있으면 한시도 지루한 적이 없어. 걔 감성은 너무 솔직하지. 너무 발랄하고 밝아. 감정 기복이 심한건 단점이지만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 " 그래서 난 그녀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여자일까 정말 궁금했네요. 정말 미워하면서도, 불행해지기를 바랬으면서도 난 그의 결혼식에 몰래 참석했네요. 맑고 예쁜 여자더군요. 성깔도 있어 보였구요. 그후로도 난 가끔 궁금했어요. 그들의 데이트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들의 신혼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옷에 도청기라도 달아보고 싶더라구요. 그들의 침실에도 말이죠. 결국 내가 못나서 실패했다는 결론을 얻었네요. 그 새벽 산책에서 그의 마음을 많이 떠올려봤답니다. 못생기고 성깔 나쁜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좋은 느낌만 일어 가슴이 아팠네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다시금 너무도 그리워질까봐 두려웠네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 그는 나를 만날 때 어떤 기분이었고 그녀를 만날 때는 또 어떤 기분이었을까. 결론은 간단했어요. 그녀를 만나면 마음 고생은 심해도 재밌다는 것. 즐겁다는 것. 난 그런 즐거움을 그에게 안길 수 없었나봐요. 내 인생을 주욱 떠올려보았죠. 죽기 전 주마등 같은 인생 스쳐가듯이. 내 인생의 분기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난 어린시절부터 그리 건강하지 못했고 그리 밝지는 못했지요. 그런 나에게도 정말 빛나는 청춘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애를 만난 건 중학 3학년 여름방학 때였죠. 고교입시공부에 치여 건강이 염려된다는 엄마의 권유로 저녁산책을 할 때였어요. 캠퍼스 운동장에는 걷기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어요. @ 콱콱콱콱~~ @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 쳐다보았어요. 두명의 남자가 맹렬한 속도로 달리며 지나가더군요. 거친 숨소리, 생동하는 활력을 느꼈네요. @팍팍팍팍~~@ 멀어지는 그 소리가 기분이 좋았어요. 나도 모르게 생동감이 일어 힘이 나더라구요. 한명은 대학생 같았고 한명은 내 또래였지요. 그애도 중학 3학년, 종혁이라는 애였지요. 우린 자주 만나며 호감을 가졌지만 나에겐 엄마가, 그에겐 청년이 있었죠. 그애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나를 인식할 수 있었지요. 혹시나, 혹시나 나에게 말을 붙여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설레임은 처음이었습니다. 기다림은 힘겨움이었지만 내 안의 사랑이 커나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드디어 그런 날이 와 주었어요. 어쩌면 그애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몰라요. 우리 첫 데이트는 어느 비오는 날 다음날이었어요. 비가 와서 절척거리는 운동장, 운동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던 날 그도 나도 혼자 나온 날 드디어 그가 말을 걸어왔어요. "안녕 ? " 마치 오래 알았던 사람처럼 상큼한 미소를 던지며 말을 걸어왔어요.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죠. 하지만 내 가슴은 아주 심하게 쿵쾅거렸어요. "운동하기엔 너무 안 좋은 운동장이지 ? " 수줍음으로 말이 없는 나에게 그애는 여전히 상큼한 미소로 받아줬어요. "몇 학년이니 ? 난 3학년인데. " 왜 그리도 기뻤을까요. 동갑이 그리도 기뻤나 봐요. 상큼한 그애의 미소를 한번 올려다보고 눈길을 피했죠. "나...나도... 3학년..." " 그래 ? 정말 반갑다 ~! " 활짝 웃는 걔 얼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네요. 우리는 거닐면서 얘기하다가 걔의 꼬임에 빠져 캠퍼스산책에 나섰네요. "질척거리는 운동장말고 캠퍼스를 거닐지 않을래 ? " 걘 언제나 싱싱한 건강미를 느끼게 했어요. 같이 거닐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지요. " 난 운동이 좋아. 달리면 기분이 너무 좋아지걸랑 ! " 싱싱한 웃음을 머금으며 그애가 말했죠. " 내 꿈 ? 학교 체육선생님. " "왜 ? " " 운동이 좋고 공부를 별로 못하걸랑 " " 에게 ? 공부를 못하는 선생님이 다 있니 ? " 갠 머리를 긁적였지요. "삼촌이 그러는데, 운동을 잘하면 특기생이 될 수 있데. " "그런 거니 ? 넌 정말 될 수 있을 것 같아. 달릴 때 너무 힘차거든. ^^ " 걘 또 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었죠. 환한 웃음이었어요. 걔 특기는 달리기, 취미는 자전거. 그리고 노래부르기. 그날 우리는 아주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캠퍼스를 다 돌고도 돌아오는 길까지. 소녀의 가슴은 온통 핑크빛으로 출렁거렸어요. 여름밤 바람의 촉감이 그리도 좋은 거란 걸 알게 해 주었지요. 우리를 방해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싱싱한 그의 건강미가 소녀를 흥분시켰고 그애의 팔이 스칠 땐 짜릿한 전율감이 흘렀지요. 왜 그리도 흥분되는 밤이던지요. 산책이 그리도 흥분되고 신나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연인과의 데이트가 그리도 멋진 셀레임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소녀는 그날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그애의 싱싱한 건강미, 그 미소, 웃음, 활달한 목소리 떠날 수 없었거든요. 나에게도 첫사랑이 정말 시작된 거예요. 우리는 남들의 눈을 피해 데이트를 즐겼어요. 시간이 흐르며 엄마는 눈치를 챘지만 모른 척 해주셨어요. 걔는 30-40분 정도 달리기를 하고는 캠퍼스쪽에서 기다리곤 했지요. 우린 또 30분 정도를 거닐었고 자전거도 자주 탔어요. 자전거 산책은 말예요, 안단테로 한다나요 ? 그렇게 느리게 자전거를 몰 때 그애는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휘파람 노래도 부르곤 했지요. 자전거 뒤에서 걔 허리를 안으면 싱그러운 땀냄새가 진동했어요. 아마도, 남자를 처음 느낄 때였다고 지금은 믿어지네요. 운동장에서 달릴 때는 성난 들소 같은 그애. 스파이크를 벗어 운동화를 신고 운동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으면 걔는 정말 깨끗한 학생이미지였죠. 맑고 순수한 웃음이 그렇게 착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우리 그 가을 참 행복했었나봐요. 그런데 고교입시라는 장애물이 있었기에 나는 날마다 산책을 할 수 없었고 늦은 시간이라 우리 데이트는 짧아졌지요. 그래도 우리는 가끔 손을 잡고 거니는 정도로 발전했어요. 낙엽지던 계절, 주말 어느날이었어요. 벤치에서 얘기하던 우리들, 즐거웠지요. 그런데 걔가 갑자기 침묵으로 들어갔다고 느끼며 눈길이 뜨겁다는 생각을 할 때 걔가 날 안아왔어요. 난 당황했지만 뿌리치지 못했죠. 그런데 내 가슴에 걔 손길이 느껴질 때 나도 모르는 공포감을 안았네요. 거칠게 뿌리치며 도망쳤어요. 일주일동안 고민이 많았죠.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다른 일체를 포기해라, 남자 생각은 하지도 마라. " "우리 크리스마스 때 다시 만나지 않을래 ? 우린 학생이고 지금은 공부해야할 때잖니. " 일주일 고민 끝의 결론이었어요. 걔 눈이 많이 슬펐다는 기억이 안타까움으로 남았네요. 내 마음도 많이 슬퍼져 그날의 산책은 발걸음이 무거웠네요 그말을 남기고 난 산책을 나서지 않았죠.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 채. 12월초 드디어 그 지옥같던 입시는 끝났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일주일쯤 앞둔 어느날 우표 없는 편지가 한통 우편함에 있었어요. < 선영에게, 나 종혁이야 그동안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런데 오늘 난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이런 글 써도 될지 미안할 정도로 집안사정이 말이 아니네. 지금은 새벽 2시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님들 지금 잠을 안자고 있어. 우리집 내일, 아니 오늘 아침 이사한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나도 몹시 당황스럽다. 저녁, 바로 몇 시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런 통보였다. 이사짐도 다가져가지 못해. 큰짐들은 삼촌이 처분하실 거야.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동업자인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지. 결국 길이 보이지 않아 채권자들로부터 도망치는 거지. 세상 참 무섭데. 그리 착해보이는 아버지 친구가 배신을 때릴 줄이야. 돈이라면 평생 넉넉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거지신세라니 믿기지도 않는다. 나 그동안 너 많이 보고싶었다. 그런데 집안이 엉망이 되고 너는 보이지 않고 세상 참 야속하데. 입시도 끝났으니 산책 나와줄만 하련만. 그때 내가 그리도 미웠던 거니 ? 나 다시 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린 아마도 서울로 올라가려나 봐. 내가 너 많이 좋아했다는 거 알지 ? 넌 내 이상형이었다~ ! 너무 착하고 참해보였고 착한 색시같았어. 나, 너같은 애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다. 엄마가 부르셔. 너희집 주소 아니까 가끔 편지할게. 넌 너무 소심하고 눈물이 많더라. 그런 감성적인 면이 좋긴 했지만 좀 더 건강하고 힘차게 살아야해. 시간이 없어, 다음에 봐. 새벽에 이 글 너희집에 넣어 넣을게. 그럼... 선영아.. 안녕-- > 날자도 발신인 이름도 남기지 못한 편지. 난 왠지 서러워져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네요. 너무 심했다. 좀 더 잘해줄 걸. 얼굴 한번만이라도 보고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죄책감과 아쉬움, 그리고 그리움이었습니다. 캠퍼스를 거닐면 그애가 생각나곤 해서 힘들었지요. 난 몇 번이고 그애 집을 찾곤 했어요. 이제는 그애가 없는 집. 왜 좀 더 일찍 마음을 주지 못했을까. 아, 마음은 이미 열었는데 왜 그리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을까. 종혁의 슬픈 눈물 생각하노라니 내 자신이 많이 밉고 죄책감이 일었지요. 이제는 아무리 그리워해봐도, 아무리 후회해도 돌아올 수 없는 종혁이... 내 사랑의 아픔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기만 했답니다. 다음해 1월 말 편지가 한번 더 왔었어요. 여전히 발신자 주소가 없는 편지였지요. 서울시 동대문구라는 우표소인만이 그애의 흔적이었죠. < 그리운 선영에게, 서울은 크다. 엄청 넓어. 그런데 이 넓은 서울에 우리 집은 없다. 아직도 여관신세네. 벌써 세 번째 여관. 가장 괴로운 건 학교문제야. 난 이번에 고등학교 못 들어갈 것만 같아 마음이 심란하다. 집안꼴이 이러니 나도 돈을 벌어야하지 않을지. 고교 들어갈 수 있으면 편지할게. 못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편지 못할 것만 같아. 난 그동안 식당 보이로 일하고 있었다. 엄마랑 같이 일하고 있어. 아버지가 힘을 내서 다시 직업을 잡아야할텐데 마음의 타격이 심하신지 몸이 좋지 못 하시지. 어쩌면 나는 이렇게 엄마랑 같이 식당일만 하다가 조그만 식당이나 차려서 살지 모르겠어. 앞날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난 아직도 날마다 눈물을 흘리곤 한다. 내가 이토록 약한 남자란 걸 이제서야 알았네. 못사는 애들, 그들의 부모 난 참 한심하게 생각했다. 노력을 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지. 그런데 인생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어. 난 어차피 공부는 소질도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지. 선생님이 못되면 운동선수라도 해보고싶었는데.. 이제는 머나먼 꿈만 같아. 나 너하고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데. 네 착한 웃음 오래 보고 싶었는데... 난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해. 6시에 일어나고 밤 12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지. 엄마도 같은 생활을 하시는데 불을 끄고 자라고 성화시네. 몇 일 후면 설날이구나. 설날엔 온가족이 화기애애했었는데 그시절이 머나먼 옛일인 것만 같아. 나 너 오래 기억할 거다. 그리고 능력 되면, 네 앞에 설 자신이 있으면 다시 편지할 거야. 나 기억해줄 거지 ? 혹시나 늦어져 세월이 흘러도 나 기억해줄 거지 ? 선영아, 오늘도 시간이 없어. 나 언젠가 자랑스런 모습으로 널 다시 보고 싶다. 그때까지.... 그때까지... 안녕...... 1993 1 27 친구 종혁. > 이번에도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더군요. 좋아했던 친구. 첫사랑이었던 남자. 걔의 불행을 오래도록 슬퍼하고 그리워했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종혁은 편지를 해오지 않았죠. 그렇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우리집은 이사를 했네요. 이제 그 그리운 캠퍼스도 자주 찾기 어렵게 되었고 난 산책이라는 취미도 잊은 채 소심하고 우울한 여고생이 되었어요. 책상에 머리 쳐 박고 입시만 생각하는. 그 친구를 오래 기억했고 그리워 했었네요. 내가 걔를 잊은 건 언제였을까. 대학교 3학년 정도일까 ? 그 언제부터인지 난 종혁일 잊고 있었네요. 그날 산책에서 난 종혁일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나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다. 그 친구를 계속 만날 수 있었다면 나도 멋지고 재밌는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을 떠올리게 된 거네요. 너무 일찍 피어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내 인생의 꽃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음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내 그리움과 아쉬움 너무도 크기만 합니다. 아, 그때 우리가 좀 더 만날 수만 있었다면.... 내 인생도, 내 청춘도 아름답게 꽃피었을 텐데... 준영선배와 종혁이.... 둘 다 착했죠. 준영선배가 지적이라면 종혁인 더 깨끗한 순수함이었을 거예요. 난 그날 아침 종혁이 인생이 궁금해지고 있었어요. 그 친구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걔는 성문중 출신이었죠. 누구 걔소식을 알만한 애들은 없을까... 오래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얼굴이 없더군요. 그런데, 일주일 전쯤이었어요. 캐이블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걔 얼굴을 보게 되었네요. 난 너무 놀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선수 얼굴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어요.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그 친구 얼굴, 그 이름이었지요. 챔피온조 바로 앞 조에서 경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그 조에서 챔피온과 준우승자가 나왔어요. 그래선지 대부분의 중계를 그 조에 맞추고 있었고 난 우연히 그 경기를 시청하게 된 거죠. 종혁인 아깝게 1타 차이로 우승을 놓쳤지만 그날의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했죠. 우승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 2라운드 선두와는 4타 차이가 났었기에 우승은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종혁선수의 선전이 저에게 큰 자극을 주더군요. 그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하면 웬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친구도 오늘 8언더파를 쳤고 저도 덕분에 6언더파를 칠 수 있었습니다." "네, 오늘 놀라운 역전 우승을 일궈내신 최승신 프로, 준우승을 차지한 이종혁 프로에게 공을 돌리고 있군요. 그럼 올해 프로가 되어 놀라운 선전을 펼친 이종혁 프로에게 소감을 묻겠습니다. " " 오늘은 웬지 꿈이 좋았습니다. 저는 항상 가을이 다가오면 그때부터 힘을 내는 타입입니다. 꿈에서 보았던 플레이를 많이 성공시킬 수 있어서 아주 유쾌한 날입니다. 올 가을엔 우승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 네, 이종혁 프로 인상적인 소감 잘 들었습니다. 깨끗한 메너와 상큼한 인상으로 여성팬들이 벌써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주 어렵게 프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소감 한마디 더 부탁드리지요. " " 과분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집안사정이 어려워져 고난이 많았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고싶었는데 고등학교를 갈 수 없어서 운동선수에 조그만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군 제대 후 식당 단골 중에 골프매니어 손님이 있어서 골프와 인연이 시작되어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운동을 시작했고 제 꿈을 아시는 어머님께서 작년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골프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가 아니어도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기쁨이 너무 클텐데, 프로까지 될 수 있어서 저에겐 큰 행운이었지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움으로 라운딩에 임하고 있는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 " 아, 감동적인 사연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어려운 가정과 청소년들이 참 많아서 안타까운데 많은 분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는 메시지 전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초심을 잃지 마시고 계속 정진하셔서 멋진 프로골퍼가 되시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자랑스런 종혁이, 대견한 종혁이.... 종혁이에게도 나에게도 그날은 의미 깊은 날이었지요. 그날부터 난 더욱 산책을 즐기게 되었네요. 무더위가 가시며 태풍도 끝나고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어요. 종혁이를 한번 만나고 싶더군요. 그리고 그와 같이 라운딩을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난 골프를 못 치니까 걔 캐디를 하면서라도. 그러다 보니 갑자기 캐디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아마도 힘든 일일 거예요. 무거운 장비를 들고 뜨거운 햇빛아래 잘 나가는 사람들 뒷수발을 들어야할 테니 말이죠. 그럼에도 그 시원한 홀을 마냥 산책할 수 있다니... 그런 직업도 괜찮겠다 싶더라구요. 난 어제 종혁이 꿈을 꾸었답니다. 걔가 소속된 골프코스를 내가 방문했더군요. 그의 플레이를 보는 갤러리들과 같이 그를 구경했어요. 그런데 있죠, 그의 팬들은 정말 여자가 많은 거예요. 그런데 걘 나를 알아보고도 날 모르는 척 하는 거 있죠. 설마, 설마 했는데... 너무 슬프더라구요. 그래도 경기가 끝나고 잠시 식사할 기회는 주더군요. " 난 널 잊은지 오래됐어. 군에 들어가기 전에 여자를 사귀면서 널 잊게 되었지. 그리고 걔가 고무신을 바꿔신자 난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여자에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 단지 현재를 즐기는 것뿐이지. 나 사실 식당 여자손님이 골프를 가르쳐주었지. 난 그녀에게 봉사했고 그녀는 나를 지원해주었어. 다른 더 좋은 여자 스폰서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지. 난 그렇게 살아온 놈이야. 얘전의 어린 종혁인 이제 없지. 난 이제 성인이고 쾌락주의적인 남자일 뿐이야. 야속하더라도 이게 현실이기 때문에 고백하는 거야. 너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 왜 그런 불길한 꿈을 꾸게 되었을까. 어쩌면, 어쩌면 우리는 다시 멋진 만남을 다시 가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내가 종혁이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일까. 많은 세월이 흘렀다. 12년의 세월. 강산이 변했고 세상도 변했다.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변해버렸지. 물질만능주의 시대, 아직도 종혁이가 어린시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꿈일지 모른다. 나의 어떤 기대감과 두려움이 그런 꿈을 낳게 한 건 아닐지.... 종혁이에게 어떤 기대를 건다는 것은 위험이리라. 내 인생에 또 한번의 리스크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종혁에게 자꾸만 기울어가는 내 마음.... 엄마는 올해는 꼭 선을 봐서라도 좋은 남자 만나야한다고 성화시다. 내 나이도 28. 지금 결혼을 한다고 해도 결코 빠른 나이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 나는 갑자기 서울로 떠나고만 싶어진다. 엄마에겐 번역일을 해보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고 말을 해뒀다. 그런데, 종혁이나 나타나지 않았어도 서울에 올라가고 싶었을지... 신춘문예의 계절은 다가오고 다른 작가지망생들은 다들 땀흘리고 있을 터인데 난 어떤 길을 걸어야만 할지.... 2004 9 10 금 오전 10:21 10월 12일 수정 산책시간 간만에 새벽산책. 오래 걸었다. 많이 힘들었기에 비워야할 것들이 많았다. 맘 같아선 아무 곳으로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 기분.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었던 것이 오늘의 새벽시간이었다. 덕분에 몸도 정신도 조금은 활력을 얻은 기분. 이 글은 사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보다 급한 밀린 글이 많았던 것. 그런데 산책시의 감상은 이 글을 써달라고 애원한다. 그동안 내 힘겨움의 원인을 조금 알았다. 난 아직도 실연증후군을 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것이 내 우울함과 허무감 그리고 무기력의 정체인 것 같다. 억지로 잊는다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차라리 적당한 정도로 그리워하는 것이 건강할지 모른다. 산책을 하면서 그녀와 많이 대화하였다. 그것이 내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정말 메시지를 전하고픈 충동을 안았고 추석엔 한번 보고싶은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아니겠지. 무리고 무익하겠지. 완전히 잊혀질 그날까지 적당히, 적당히 그리워하자. 너무 그리워하면 더 힘들테니 적당히... 확실히 나에겐 연애가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하나, 다음엔 조금 조용하고 차분하게 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마도 실연증후군이 두렵기 때문일 것. 산책은 정말 좋은 것. 산책, 비, 샤워, 빨래, 청소... 이런 것들이 정신을 맑게하고 글쓰기의 친구들 같다. 이제 글쓰기에 야망이나 욕심을 내지 않겠다. 일단, 내가 즐겁기 위해서 자주 연애하는 기분으로 써보고 싶은 마음. 올 가을엔 글쓰기와 산책과 여행에 빠질 수 있기를.
첫댓글 산책시간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산책시간님..좋은글 접할수있어 넘 감사드립니다..좋은하루 되세요.^^*
고마워요. 오랫 슬럼프를 벗고 간만에 글쓰기의 행복감을 느껴본 날이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고 싶네요.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