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오늘은 사도행전 강해를 잠깐 그치고 에베소서 4:27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사도가 주신 이 권면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일 설교를 위하여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제게 이 말씀을 주셔서 오늘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중에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엄중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마귀란 존재는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범죄하게 만들고 온갖 저주와 고통과 죽음과 지옥의 형벌을 모든 인간에게 가져온 악한 영 아닙니까? 마귀는 그 이후에도 그와 그의 일꾼들인 귀신들을 동원하여 계속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며 범죄케 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당하게 만들어 삶을 파괴시키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마귀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마귀와 귀신들은 보이지 않는 영이기 때문에 현실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기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바람도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전자파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은 존재하며 리모콘이나 차량 키들을 통하여 정확히 작동하여 tv도 켜지고 꺼지고 채널을 바꾸고 차량도 멀리서 문이 열리기도 하고 깜빡이도 켜지곤 합니다. 분명히 보이지 않지만 실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영이시고 천사도 영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마귀와 귀신들도 존재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두고 있지만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성도들은 더 이상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주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 예수님께서 그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그 몸을 성전 삼고 들어와 사시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틈을 탈 수 있는 것이지 아예 주인 노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을 가장 싫어하고 그냥 두지 아니하고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여 쓰러뜨리고 자기 영향 아래 두려고 늘 안간힘을 씁니다. 은혜받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사명을 저버리게 만들려고 덤빕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는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잘 믿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엄중하게 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란 무슨 뜻일까요? 틈은 원문으로 보면, ‘토푸스’라는 단어로서, “지점, 장소, 거점, 집, 땅, 기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들의 삶에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을 주지 말라고 사도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매년 여름이 되면 깔따구 벌레가 집안에도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창문에 방충망을 쳐놓았지만 깔따구는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주방에 있는 음식쓰레기 봉투에 몰려들어 날라다니곤 합니다. 음식 쓰레기가 없다면 깔따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 농촌에는 동네 길바닥에 소들이 짐을 옮기며 가다가 툭하면 대변을 누웠습니다. 그러면 영낙없이 파리들 특히 큼지막하고 붉은 빛도 나는 똥파리들이 날아와 알을 낳습니다. 이처럼 마귀와 귀신들도 아무 사람들에게나 마구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 거점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 귀신이 들어올 꺼리를 치워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틈을 타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먼저, 인간의 타락한 본성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 안에 깃든 원죄의 유전과 그 죄의 결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부패의 씨앗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타락의 영향으로 인하여 남은 부패의 영향력은 우리의 옛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기질과 행동과 우리 주변의 환경 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끊임없이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남아 있어 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면, 우리 성도들에게도 재물에 대한 욕심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아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거역하는 기질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평판과 인정에 마음에 약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말에 대하여 마음의 가책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인 호기심이 많고 영적인 집회를 분별없이 마구 참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보다 잘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질투심이 발동하고 화가 나고 끌어내리고자 하는 시기심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근심과 염려를 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늘 불평 원망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 일어날 일들을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조상인 아담 때로부터 우리의 혈통을 타고 우리 각 사람의 기질에 들어와 있는 것들입니다. 민족과 사회도 그러합니다. 상대적으로 기질상 근검 절약하고 준법 정신이 강하고 진실하고 성실한 나라와 사회도 있는 반면에 어떤 사회는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남이 잘되면 끌어내리기 좋아하고 거짓말을 많이 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방탕한 사회와 나라도 있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개인의 기질과 이러한 사회와 나라의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타락의 본성들은 마귀와 귀신이 틈탈 수 있는 좋은 자리를 깔아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잘한고 해서 마귀와 귀신들이 우리를 틈타지 못할 것이라고 자기 과신을 하면 안됩니다. 한번 하나님의 사람 다윗 왕을 생각해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 때부터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며 살았던 분입니다. 사울의 집요한 추적을 당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왔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왕위에 올라 모든 것이 잘 될 때에 전쟁터에 가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잠시 쉬는 중에 그만 유혹을 받아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우연히 보고 난 후에 그만 죄의 올무에 걸려 크게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노년에도 또 다시 마귀가 충동질을 할 때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가서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시할 때 순종해서 행해야 하는 인구 조사를 자기가 직접하여 자기의 치세의 위업을 자랑하려는 교만의 유혹을 받아서 넘어져서 하나님의 진노로 백성 중에 무려 칠 만 명이나 잃어버리는 징계를 받았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 때에는 많은 영적 시행착오를 통하여 다 성숙했을 것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는 때인데도 또 넘어졌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 병에서 살려주신 은혜를 입고 나라가 앗수르 제국의 공격에서 극적으로 구원받은 큰 은혜를 입은 직후인데도 불구하고 먼 나라 바벨론의 사절단이 왔을 때에 인간 자랑에 빠져서 그만 하나님의 무서운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들을 보면 우리는 절대로 자기를 믿으면 안됩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삼년 동안 늘 곁에 지냈던 사도들조차 늘 이리 저리 요동치곤 했는데 그러한 저변에는 제자들 자신의 연약함도 있었고 마귀의 유혹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제자로 부름받은 뒤 3년이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적인 성공, 입신 양명의 욕심이 강하여서 자기들끼리도 누가 더 서열이 높은가를 가지고 다투곤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마귀가 넘어뜨리려고 늘 시험하였으니, 마치 주부가 밥할 때마다 체를 가지고 밀을 까부르듯이 마귀가 그들을 체질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체포되기 전날 밤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었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31,32)
그러므로 자기는 절대로 마귀에게 속지 않고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귀와 귀신이 나를 넘어뜨리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과신하는 것은 절대 갖지 말아야 할 태도입니다. 가장 위험한 영적 상태는 바로 이러한 마귀와 귀신들의 공격에 대하여 전혀 주의력이 없고 자기 기질과 본성 속에 마귀가 틈탈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확신을 조심하고, 나에게도 얼마든지 마귀가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덤벼들 수 있음을 생각하고, 마귀에게 발판, 기회, 지점을 주지 않도록 늘 자신을 살피고 깨어 있어 그런 것들을 우리 안에서 깨끗이 치워내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잘못된 분위기와 기질도 잘 살펴서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성향에 물들 수 있음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타락의 모습들을 보면 나 자신도 그러한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흔한 거짓말을 피하고 육신의 정욕을 피하고 영적인 호기심을 내려놓고 사람들에 대한 시기심을 내려놓고 재물에 대한 강한 욕심도 내려놓고 자기 고집과 교만의 기질도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이런 기질과 본성을 악용하여 마귀와 귀신들이 그런 경향들을 강하게 만들어서 결국 범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에 보면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경건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늘 위태로운 길을 걸으면서 불안 불안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도 잘 믿으면서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 안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선지자 말도 잘 순종하였지만 나라 밖에 있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 왕과 교분을 맺고 절친하게 지냈는데, 아합 왕은 불경건하고 외국의 바알 신을 섬기고 주의 종들을 핍박하고 탐욕을 부리며 백성들을 압제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참 선지자 말은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말들만 듣고 기고만장한 자였습니다. 그런 사람과 자주 어울리는 것은 마귀가 좋아할 일인데, 여호사밧 왕은 그렇게 자주 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 죽을 뻔했고 함께 배를 만드는 사업을 벌였다가 배가 만드는 도중에 부숴지기도 하고 자기 자녀들도 불신자와 교제한 일로 인하여 큰 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가려 사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있게 추구해야 합니다. 자기 안에 성령의 경고도 있고 참 선지자들의 경고도 있었지만 인간의 정에 약한 기질 때문에 이렇게 결국 큰 실패와 징계를 함께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지만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늘 바른 길을 굳건하게 가지 못하고 갈짓자로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손해를 많이 본 것입니다. 마귀가 들락날락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대게 허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만 많아서도 안됩니다. 영적인 점에서는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면서도 그가 쓴 서신서에 보면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냉정합니다. 그가 써보낸 편지 요한이서 10,11절에 이르기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이 많은 분이지만 크레타 섬에서 사역하던 디도에게 보낸 편지의 디도서 3:10 말씀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한두번 말해도 듣지 않은데 계속 만나고 자기 집에 들이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교만하고 자기를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정이 있고 온유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좋지만 영적인 일에서는 냉정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게 되고 우리도 살고 화를 입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별을 잘해서 친구를 가려 잘 사귀고, 불신자와는 깊은 교제를 나누지 말고,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애를 쓰되, 정도 이상으로 깊이 사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게 되면 그 결과는 앞서 언급했던 분들만 봐도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다윗, 히스기야, 여호사밧, 예수님의 제자들 이런 분들이 다 믿음이 좋은 분들이고 다 구원받으시고 주님께서 귀하게 쓰임받은 분들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일로 인하여 쓰라린 대가를 다 지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신 요한복음 10:10 말씀은 바로 마귀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의 서로 상반된 결과를 단적으로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영적인 도둑인 마귀와 그 졸개들인 귀신들이 틈을 타면 첫 사람 아담 이래로 그러했던 것처럼 반드시 손해가 나고 슬픔과 고통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가 일어나고 궁극적으로는 사망과 지옥에 이르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에 그를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가까이 하며 살아가면 반드시 영혼 구원의 은혜를 얻을 뿐 아니라 삶에서도 풍성한 생명과 축복과 은혜로 가득찬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다음 몇 가지의 성경적 지침을 잘 따라야 하겠습니다.
먼저, 항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내가 옛 사람은 죽었다는 점을 자주 기억합시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는데, 예수님만 혼자 그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죽었고 예수님이 사흘 후에 부활하실 때에 그와 함께 다시 영적으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로마서 6:10,11 말씀에 이르기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순간부터 우리는 법적으로 이미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는 누가 찔러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모든 감각이 죽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처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타락의 본성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 죄의 유혹을 느낄 때 자기 자신을 분별하여 영적인 위험을 감지할 때 즉각 나는 이미 이천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살아있는 자로서 죄와 상관없는 의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기억하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이렇게 현실의 타락의 본성에 굴복하지 말고 시험이 올 때마다 우리 자신의 영적인 실상을 자주 상기하십시오. 나는 이천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았으니 이러한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성품의 기질들을 다시금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박아 죽이십시오.
“너 교만한 성품아 너는 이천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다, 너 육신의 정욕아, 너는 이천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완전히 죽었다, 너 물질의 욕심에 끌려가는 본성아, 너 세상 명예와 지위를 탐하는 기질아, 너도 예수님과 함께 벌써 죽었다!”
“나는 거룩하고 성결한 주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 나는 주님이 주신 재물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겸손하신 주님처럼 모든 이들을 즐거이 섬기는 자로 살아간다.”
라고 자기 자신을 향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자주 붙들고 옛 기질과 성품을 십자가에서 다시 죽이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워진 새 성품을 가진 자신을 늘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사모할진대 반드시 마귀가 틈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9:29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귀신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대표로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에 나가셔서 금식하며 사십 일 동안 기도하심으로써 결국 시험하는 마귀가 와서 여러번 시험했을 때 다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는 방법으로 성실하게 기도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4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복음 21:34.36)
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성실하고 꾸준하고 충분한 기도 생활은 마귀가 틈을 잠시 탈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가게 하는 강한 방어벽입니다. 나아가 꾸준하고 충분한 기도 생활에 힘쓰면 성령 충만해지기 때문에 마귀는 두려워하고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마귀가 와서 시험할 때에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에게 대답하여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사도 바울이 비유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날이 퍼렇게 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은 마귀가 함부로 덤비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읽고 묵상하며 암송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 말씀이 풍성한 마음에 마귀는 감히 비집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 119: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두었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1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공 예배에 자주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집에서나 어디 있든지 간에 기회가 되는 대로 성경을 읽고 듣기를 힘쓰십시오.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성경 앞에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차분히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를 습관화하십시오. 그러한 개인 경건의 훈련이 쌓이면 영적인 힘이 점점 강해져서 마귀와 귀신이 틈을 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와 귀신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대적 명령을 내리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라고 말ㄷ씀하셨고, 야고보 선생도 이르기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고 가르쳤습니다. 돌아가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중에 자기의 간증을 담아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조 목사님이 늘 기도하면서 살아가는데도 어떤 때는 마음이 눌림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공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자기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시간이 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두려움의 감정이 들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물밀듯 밀려들어와서 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가 분명치 않는데 기분이 몹시 나쁘고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괴롭힐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귀신이 붙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돌아보면, 믿음을 가진 초창기 때에 이러한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그러한 느낌이 올 때에는 자기에게 귀신이 붙어서 그러한 것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게 되어서, 그럴 때면 큰 소리로 더러운 귀신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곤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럴 때 염려와 의심과 미움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정되고 기쁨이 다시 찾아오곤 하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와 귀신이 믿는 자들에게 다가와서 생각을 통하여 은밀하게 공격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도 돈 욕심에 잡히니까 그것을 틈을 타고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그 마음에 집어넣어서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되었던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 속에 마귀가 이렇듯 조용히 다가와서 공격을 시도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영적 감각을 가지고 이상하다고 느낄 때에는 마귀와 귀신이 붙어서 그럴 수 있으니, 마음으로 꾸짖고 입술로 선포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당장 떠나갈 것을 반복하여 명령하십니다. 그럴 때 마귀와 귀신들은 주님의 지엄하신 이름 앞에 꼼짝없이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범죄한 경우에는 회개해야 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고 귀신이 자리를 잡으면 그것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먹을 것이 있으면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점점 그 사람의 삶을 다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범죄하면 반드시 귀신들이 그 사람의 삶에 허가증을 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그 사람의 삶을 이리 저리 종처럼 끌고 다니면서 실패와 고통을 안겨주며 영적인 혼돈을 가져다고 줍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귀신이 떠나가기 위해서는 틈을 준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철저히 깊이 뼈저리게 회개하십시오. 지은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의 계명을 어긴 일을 용서를 구하며,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통절하게 후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바꾸어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행실을 끊고 이제는 의롭고 바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틀어야 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그치고 열심히 일하여 선을 행하고, 거짓말하는 자는 그치고 참된 말을 하고, 더러운 행실을 행한 자는 이제는 거룩한 행실을 행하고, 분쟁과 시기를 행하는 자는 화평과 온유함과 축복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삶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입술의 기도와 눈물만 흘린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세상 줄을 끊는 결단을 행해야 합니다. 죄악의 끈을 끊고 주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래야 마귀와 귀신이 더 이상 틈타지 못하고 완전히 떠나갑니다.
물론 철저한 회개 뒤에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기 자녀들에게 내린 징계의 아픈 채찍은 오랫동안 삶 속에서 남아 있지만, 회개한 자에게는 주님께서 하나씩 회복시켜주시고 온전하고 든든한 영적 기초를 닦게 해주시고 영적으로 더 성숙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철저한 회개가 이처럼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시편 51:17 말씀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마귀와 귀신이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고 지켜주시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어 죄의 세력을 철저히 이기고 복을 받게 해주십니다.
이렇듯 오늘날도 이미 믿음을 가진 하나님 백성들을 향하여서도 마귀와 귀신들은 이렇게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기질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마귀와 귀신들이 쓰는 공격 방법도 각기 다릅니다. 사람마다 물질의 시험, 마음의 시험, 교만의 시험, 정욕의 시험, 영적인 시험 등 다양한 불화살들이 마귀의 화살통에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중 누구도 면제받은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절대로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바랍니다. 미리 경건에 이르기를 늘 힘써서 기도와 말씀으로 강하게 무장하여 든든한 방어책을 가집시다. 공격당하는 징후를 느끼는 성도는 무엇 때문에 이런 공격을 당하는지 잘 생각하고 살펴서 우리의 문제점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의인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기억하면서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옛 사람의 행실을 철저히 배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옛 죄의 쓰레기가 있다면 어서 철저히 회개의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버리십시오. 때로는 작정 기도와 금식으로 대청소를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심령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시오. 꾸준하게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하여 경건의 모양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갖춘 자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과 형제들과 이웃과 동료들까지도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내고 살려내고 복을 받게 하는 강한 주님의 영적 용사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