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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康씨 본관은 대부분 신천 강康씨 중시조 강지연공의 후손들이고 본관이 황해도 신천을 뿌리로-,
큰집 곡산- 작은집 강윤성 아들중 고려조에 불사이군 충절지킨 강득룡 후손인 재령 3곳이 기본입니다,
진주 강康씨는 한자는 같지만 시조 관향을 보면 옛지명에 강康자가 포함되있고,
연고 지명이 성씨 한자와 같을 경우 신라 고려왕조로부터 사성받았을 가능성 있습니다,
한자가 같은 성씨같지만 혈통이 다를수있다는 얘기죠,
같은 혈통일 가능성은, 마한 위치가 어디였는지가 중요하고, 강康씨 상계 이동은,
마한이 온조왕에 멸망한 후 신라와 함께 했기에 백제 땅이였다가 신라 땅이 됐다면,
원래부터 강康씨 혈통였을 가능성도 남아있긴한데,
적어도 최소한 신천강씨 시조 강호경 후손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신천강씨가 득성조는 요동, 시조는 북한 신천에 근거하고있기때문에,
강윤성때부터 번성한 곡산강씨 보다 많은 자손은 이해하기 어렵죠,
아마도 신천강씨 시조 강호경은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킬때 대장군으로 참가했던 상계를 참고하면,
그 후손이 정착했을 가능성 높죠,
중시조 강지연공 장자 분파는 평강平康 강씨로 남한에는 거의없고,
남한 신천강씨 대종회는 대부분 상산백 강서 곡산파 후손들이지만 상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
처음 대종회 찾았을땐 자기 조상이 무슨 파인지도 모르던 사람이,
어느날 밑도끝도없는 상세 세보 제시도 없이 문중 최상위 서열 분파 후손이라는 사람도 있고,
정말 강康씨 후손인지 Y DNA 검사 필요한 사람도 있는, 본관 전체 검사하지않는 이상,
검사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진 알순없습니다,
한자 편안할 강康은 말그대로 편안한 상태면 붙일수있는 지명으로,
기자가 5천유민을 이끌고 평양으로 왔다에서 평양 의미와 같습니다,
평양平壤=넓고 평평한 땅이란 뜻, 양평壤平으로도 쓸수있는 이 지역은 요동을 지칭하고,
현재 평양과 전혀 다른, 라오닝성 선양시인가? 요동성이 존재하던 지역으로 생각되는,
요하 문명 홍산문화와 기자 상나라가 깊은 연관있기에 본향으로 돌아온거로 보이고,
넓고 평평한 땅이 있으면 평양이란 지명을 붙일수있는겁니다,
한국 강康씨 본향이 북한지역이기에 한국엔 당연히 10만명정도로 인원이 적은데,
신천강씨52,945명 진주강씨1,354명, 곡산강씨29,107명, 재령강씨 3,401명, 평양강씨3667명, 강령강씨955명,
분포를 보면,
같은 혈통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할만큼 동일한 강康자를 쓰고있어,
구분할 수 있는 강姜씨와 달리 골치 아픈 문제로,
요즘은 그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옛날농경시대와 달리,
섞여사는 산업시대기 때문이죠,
강康씨 가 한국 고대 역사에서 갖는 중요한 의미는, 역사 요소 요소마다 등장하고있고,
득성조를 중국 주나라 문왕의 아홉째 아들인 위卫강康숙 희姬 봉封을 상계로 하고있기때문으로,
이 상계가 한국 남북한 사학계로부터 숭조사업 일환으로 부정되고있기에 사실 여부 판단이 필요하죠?
주周나라 상계 성姓이 희姬성이고 지역에 제후로 봉하면 씨氏가되는 구조로,
위강숙 희봉 후손은 중국에 13성이 있다고 알려지고있고,
康 卫 凌 冰 宁 鹿 石 孙 戚 及 常 寇 商
강 위 릉 빙 저 록 석 손 척 급 상 구 상
卫와衛는 같은 위씨로 옛날 글씨냐 요즘 글씨냐 차이뿐으로 같은 성씨,
기본적으로 위강숙 희봉은 요즘 성명으로치면 희봉 강봉 위봉 3가지로 불릴수있습니다,
아버지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상商나라 서백西伯, 성명: 희姬 창昌, 어머니가 정비 태사라, 희봉인건 당연하고,
동복 형인 주周나라 무왕 희발이 봉한 첫번째 분봉지가 강康나라니까 강봉이고,
삼감의난 평정후 조카인 주周나라 성왕, 동복 형인 섭정 주공 단이 반란지역에 위卫를 세웠고,
제후로 강숙 희봉을 분봉했으니 위봉이 되는 희姬, 강康, 위卫 衛, 3개 성씨를 동시에 갖게되는겁니다,
신천강씨 상계가 숭조사업 허구냐, 후대 기록 손실로 부실화된 진짜냐 여부가 갖는 의미는,
한국의 역사중 상고사인 고조선에 대한 인식중 1300년간이나 존재했던 기자조선과 기승전결을 함께했던 가문이기때문이고,
제가 현재까지 다양한 검색결과를 통해 인식하기론 상商나라는 고朝鮮 동이족으로 생각되고,
기箕 자子 서여胥餘는 상商나라 왕족이니 당연히 고조선 혈통,
위강숙 둘째 아들이 현재 요동땅으로 기자를 따라와서 한국 강康씨의 시조가 됐으니,
주周족 뿌리가 현재 화북=오르도스 지역이니, 상商나라 기자와 주周나라 위강숙 둘째 아들은 종족혈통이 완전 다르죠?
한국 상고사에 기자조선 군신관계로 함께했다고 문중 상계 조상 관직과 흔적에 기록돼있고,
성씨 뿌리가 강康씨는 고려-조선 왕조 창업과 밀접히 관계하며,
강康봉균 강康경화 장관 지금까지 이어지고있고,
상나라 왕족 기箕(분봉지명) 자子(상나라 姓) 서여胥餘(이름) 기자조선은,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에 망했는데, 위만이 조선사람이라는 망발도 보이던데,
성씨에서 위강숙 후손임을 알수있습니다,
위성미(魏聖美)도 한자가 다르니까 위강숙 후손이 아니라 생각할수있는데,
위魏씨는 위강숙 후손은 아니지만 배다른 형제인 필공 고의 후손,
아버지 주 문왕 서백 희창 같은 후손으로 남자라면 Y 유전자 일관성 있어야겠죠,
아버지는 남자일테고,
한국 성씨가 중국 성씨를 차용해서 쓴 경우나 고려 조선왕조에서 사성한 성씨도 있으므로,
혈통적으로 같은 성씨인진 Y유전자 대조로 확인 할수밖에없죠,
한국 신천강康씨가 중국 위강숙 후손들과 Y유전자 일관성 갖느냐 못갖느냐 의미는,
고조선에서 1300년 큰 비중갖는 기자조선 실존 문중기록이 뒷받침되느냐 무시할수있느냐 중요합니다,
위만조선과 기자조선 위키로 검색하면, 위만조선엔 한국의 역사가 뜨고, 기자조선엔 뜨지않습니다,
200년도 안되는 주周나라 위강숙 후손인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은 한국의 역사 편입,
1300년도 넘는 고朝鮮 요하문명 일부로 생각되는 상商나라 왕족 자 서여가 세운 기자朝鮮은 외면받는,
이상한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상商나라가 중국의 역사라 생각하면 사대주의 일환이라 볼수있지만,
홍산문화 유적 분포나 연대를 참고하고, 요동지역에 주로 나타나는 한국인 유전자 분포를 볼때,
상商나라는 한국의 역사=갑골문자,한자=韓字, 기자 자서여=朝鮮인 일관성 갖게되는,
사기 기록은 분명 기자는 상나라유민 왕족이고,
제후국 주나라 역성혁명에, 기箕 제후였던 자子서여胥餘가 조선朝鮮을 세웠고,
기자箕子 후손 준왕準王(기준(箕準)=한준(韓準))은 마한韓을 세웠고,
朝鮮은 고朝鮮을 이었고, 대韓민국은 삼韓을 이은 국가로,
기箕(분봉지명) 자子(상나라 왕족姓) 서여胥餘(이름) 후손들은,
기奇씨 선우鮮于씨 한韓씨로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는걸 문중 상계 기록이 함께하고있습니다,
은본기 주본기를 읽어보면,
상나라 왕족은 기箕 자子 서여胥餘외에도 미자 계도 있고,
성은 자子, 이름은 계啓 이다. 미微 나라에 봉해졌고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므로 '미자(微子)'라고 한다.
삼감의 난 평정후 상商 수도 조가 일대를 2개 지역으로 분할 위강숙을 위나라에 봉했고,
미微 자子 계啓를 송宋나라에 봉했습니다,
송성(宋姓), 종성(鍾姓), 화성(華姓), 묵성(墨姓), 화성(花姓)의 선조,
상商 나라 왕족인 자子 계啓, 자子 서여胥餘 자子성 같은 혈통이 역사 기록상으론 틀림없죠?
한국과 중국 송宋씨 Y도 비교 검증 필요하고,
송宋씨와 한韓씨도 같은 Y부계 계통이란게 역사 기록상 검증 필요,
기성용奇誠庸 기奇씨도 마한 한준의 후손이란 문중상계 있는걸 참고하면,
송宋=한韓=기奇=선우鮮于 이들 Y혈통 조상은 역사적으로 중국 자子씨같기에 Y검증 필요합니다,
물론 이 검증 이전에 선행되야할건, 성씨가 없던 계층이 주인집 성씨 따랐거나 위조 족보,
본관별 진짜 Y부터 명확히 확립해야하고, 임금 성씨는 아니라서 어렵진 않을겁니다,
강康씨 시조 위강卫康숙 희봉封 아버지 주周 문왕 희姬 창昌에서 파생된 성씨도 있고,
주 문왕과 둘째 아들 주 무왕 희발發과 함께했던 군사 태공망 강姜상相에서 파생된 성씨도 한국에 많죠?
한국 강姜씨가 중국 강姜씨 Y 대조도 필요하고,
파생된 120개 성씨중에 노태우 노씨도 있었기에 유투브에 강태공 사당 제 올리는 영상 올라온거죠?
Y 검증 정말인지 확립해서 아니면 문중상계는 숭조사업인게 증명되는거라 삭제 권유해야합니다,
신천강康씨 상계 기록은 기자조선~마한왕조 멸망까지 함께했고, 이후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위만이 기자조선 멸망시킬때 전투에서 사망있고, 마한이 온조에 멸망될때도 전투 사망 기록됐습니다,
이 모든것이 허구인가 진실인가는 광범위한 기록상 같은 혈통인 가문 Y DNA 대조밖에 없습니다,
조선 개화기때 마당쇠도 주인 성씨 따르기도하고 임금 성씨인 김이박 성씨 썼기에 많은 가문이 혼선있겠지만,
기자 기箕씨 후손과 위강숙 강康씨 후손 한중 성씨 Y-DNA 문중 비교는,
강康씨 유래가 다른 가문과 달리 3420년이란 한국의역사 대부분만큼 길기때문입니다,
상나라 자子씨 까지 거슬러 올라가게되는 기箕 기奇씨 선우鮮于씨 한韓씨도 마찬가지로,
성씨 유래가 신라 고구려 고려에 국한되는 다른 가문과 다른 검증 필요한 이유입니다,
부계 상계가 불분명한 태조왕건 외6대조가 강康씨 신천강씨 시조고,
왕건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 어머니는 4세손강康한진의로 3세손 강보육의 둘째 딸이며,
강보육의 형인 3세손 이제건伊帝建은 딸 4세손 강덕주德州를 삼촌 보육에 시집보냈고 강보육의 부인이 됐다,
작제건 이제건, 뭔가 일치되죠? 이제건이 당선종이 아닌이상 당 선종은 허구인, 당선종 이름은 이침李忱입니다
신라 마지막 여왕도 삼촌과 근친였고, 동생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상황을 볼때,
보육의 딸 진의 아들 작제건과 보육의 형 이제건 이름 일관성은,
요즘 우리 시각으론 이해하기 어렵고 그때도 어려웠겠지만 가능한 현실였고,
따라서 상황을 정리하면 왕건 역시 강康건建 가능하죠?
신천강씨 유래에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근친때문에) 왕건이 외6대조를 국조로 제를 올렸다는 언급있습니다,
한국 왕王씨가 살아남아있다면, 강康씨와 Y DNA 대조 필요한 내용이죠?
아버지는 당나라 선종 태자 시절이라는 썰만있지 중국 당나라 관련 문헌고증없는 불분명하고,
왕건부터~외6대조 사이엔 동생에게 딸을 시집보낸 근친혼도 있었던걸 보면,
작제건 아버지 역시 당 선종 썰보단 근친일 가능성 상존 Y DNA 분석이 필요하죠,
이런 내용을 알면,
천추태후와 김치양 불륜의 씨앗 목종을 8세손강康조 장군과 아버지 7세손 강태주가 폐위에 관여했는지 이해됩니다,
왕王=강康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다른 씨가 자기 권력에 침투하는걸 방관할수없기때문입니다,
강조 장군은 알다시피 거란족에게 죽었고, 이후 목종 폐위에 따른 역모죄로 가문이 몰락 상계가 불분명해진 원인됐고,
14세손인 중시조 강지연이 몽고침공 강화도 몽양때 호종공신으로 가문이 자리 잡고 현재에 이른겁니다,
신천강씨 57개 분파도엔 강충의 아들은 보육 보전 2명으로 나오는데,
위키에서 여러 검색하다보면 강충의 아들은 이제건 보육 보전으로 검색되고, 네이버 역시 마찬가지,
역사적 사료가 있으니까 문중분파도엔 없는 이제건이 검색될테고,
문중 분파도는 아무래도 강보전 직계 후손들이고, 문중 주요인물인 왕건과 관련된 보육-왕건 라인을 표시한건데,
이제건을 표시하게되면? 요즘 정서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 아닌가 싶네요,
문중 기록은 보전 보육 형제만 표시하고있고, 김관의가 쓴 편년통록에 강충의 아들이 이제건 손호술(보육) 보전 3명으로 표기,
문중기록이 맞다면 왕王=강康은 성립할수없고, 김관의가 쓴 편년통록이 맞다면 두 성씨 Y DNA는 일치 할겁니다,
본관별로 Y DNA 분류 작업이 필요할텐데,
그렇게 하는 작업은 없나보죠? 정부3.0 자료 살펴보려해도 없는걸보면 관련작업이 없는거죠?
혹시 강康씨 기箕씨 연관 한국과 중국 Y DNA 비교 자료 충분히 축척되면 관련내용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현재 문중 상계 기록이나 사기 기록을 참고하면 주周나라 문왕 서백 희창 111세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 싸이트 검색하다보면, 주周나라 문왕 DNA 정보까지 검색되던데, 얼마나 신빙성있는건가요?
"O2a2
周文王,姓姬,名昌,中国商朝末期周氏族首领。周文王多支后代的检测结果属于O-M117-CTS9678这个单倍群,推测周文王有很大概率也属于这个单倍群."
주周나라 문왕 Y DNA까지 정확히 도출하려면 정확한 성씨 계보와 방대한 유전자 자료 비교가 필요할텐데,
중국에서 그런 과정이 과학적으로 이뤄졌는지 믿지 못합니다.
주나라 문왕=상나라 서백=희姬 창昌과 정실부인 태사에겐 10명의 아들이 있었죠,
太(태)姒(사) 正妃(정비)
장남: 백읍 희고(伯邑考) 상나라 주왕에게 살해당함, 죽을쒀 아버지 문왕 유리 성에 7년간 갖혀있을때 먹임,
차남: 무왕 희발(武王 發) 역성혁명 상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로 대체함(장남 살해에 대한 가문의복수),
삼남: 관숙 희선(管叔 鮮) 상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
오남 채숙 도와 주 성왕때 반란 주공 희단에 제압됐고 처형됨,
사남: 주공 희단(周公 旦) 노(魯)나라에 봉해졌고, 주 성왕때 삼강의 난 평정,
오남: 채숙 희탁(蔡叔 度) 도? 삼강의난가담 제압된후 추방됨, 아들 채중(蔡仲)
호(胡)를 채(蔡)나라에 봉해 제사 모시게함,
육남: 조숙 희진탁(曹叔 振鐸) 조(曹)나라
칠남: 성숙 희무(郕叔 武) 성(成)나라
팔남: 곽숙 희처(霍叔 處) 곽(霍)나라 삼감(3명의 감시자)의 난 가담,
구남: 강숙 희봉(康叔 封) 강(康)나라 삼감의난 평정후 상나라 유민을 둘로 나눠 강숙을
위(衛)나라 봉했고 사구(司寇)로 삼아 성왕보좌,
상나라왕족 미자(微子) 계(啓)를 송(宋)나라에 봉했고 제사 모시게함,
서자 소공 희석(召公 奭)이 몇째 아들인진 모르겠네요, 연나라 시조,
배다른 형제 서자 포함한 주문왕 18명 아들
http://tol6560.tistory.com/14?category=285384
삼감의난(3명의 감시자의 난)을 상나라 태자 무경과 함께 일으켰던 형제는 관숙 희선, 채숙 희도, 곽숙 희처 3명으로,
대부분 시호 첫글자가 분봉지역명=희姬 성姓에서 파생된 씨氏가 됐습니다.
부계 Y DNA가 이복형제들에게도 동일하게 유전된다면,
문중 상계 기록상, 저 사람들 후손 Y DNA와 한국 강康씨 Y DNA는 일치해야 합니다,
중국 주周나라 희성 씨들 Y DNA가 본관별 체계가 갖춰져있고, 한국 강씨와 일치한다면,
기자 朝鮮은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실존적 역사입니다,
일치 하지않는다면 문중 상계는 소설이되니 삭제하는게 사실을 반영하는겁니다,
제 조상은 주周족일까요 조선朝鮮족일까요?
중국 한漢족은 하은주 이후 전한시대 듣보잡 유방 후손들을 말하는거로,
유방이 세운 나라가 한漢나라, 한漢족이 주周족과 동일한 개념은 아닌,
유방 조상 상계는 제대로 나와있는게 없죠?
그 보다 훨씬 이전 국가인 주周 상商 나라 성씨 상계까지 사마천 사기에 기록된 마당에,
유방 상계 기록 찾기 어려운걸보면,
한漢족은 고대 중국 성씨 계보에서 고조선 상나라 자子씨에 기자에 비하면,
역사가 짧은 대륙 성씨 계보에서 정통성이 낮은 듣보잡이란 얘기가 됩니다,
혈통에선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는 국가 개념은 없는,
어느 문중이냐가 핵심으로 그사람이 어느 국가에 살던 상관없이 문중사람인거죠,
유전자 분석 기술이없던 시절엔 족보를 사서 문중 후광을 얻는 오류도 있었겠지만,
Y DNA 분석 기술이 있는 현재는 그런 오류는 없기에 전보다 더 문중은 강화될수도 있고,
따라서 Y DNA만 생각하면, 같은 문중 사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거지,
한국인 몇% 중국인 몇% 일본인 몇% 비율 분석보단 어떤 Y DNA 계통인가,
계통도를 문중성씨와 대조 알수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것이 활성화되야 유전자 검사 상업성도 강화되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자료도 가능해질겁니다,
미아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게되지않나요? 부모를 못찾아도 적어도 문중에선 보호해줄테니까요,
어떻게? 성공한 사업가들이 기부한 문중 재산이 수백억 수천억입니다,
당연히 확인되면 해외입양보단 문중보호 정착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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