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첫땅에서 시작하는 달마고도 트레킹.
흰 바위로 된 거대한 산은, 햇빛을 되쏘는 빛 무리로 은은하다.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울퉁불퉁한 기암 괴 봉이 일만의 바위 군으로 7 km나 이어지는 산은, 눈과 입을 멍하니 열게 하고, 가슴을 건반처럼 두드린다. 게다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빛을 보낸다는 보석 오팔처럼, 미황사의 자비로 가득 찬 눈에 비치는 산은, 허연 낮달 같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산이, 달마 산(489m)이다. 이 산은 국토의 가장 남쪽 땅 끝에 있고, 기암괴석 흰 바위 군이 빼어나고, 수려한 풍광 장엄한 기상으로,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 운다. 달마고도의 출발점인 미황 사를 먼저 둘러본다.
*미황사 답사
달마산과 황금비(黃金比)를 이룬 대웅보전에 들린다. 1754년 중수할 때, 한 단청은 250여년이 지나면서 고운색이 바래지고, 느티나무로 된 기둥과 벽면은 고풍의 멋을 자아낸다.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와 천불벽화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미적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 중국 둔황 막고 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어 지기도 한다. 유일스님(1720 - 1799)의 책 ‘임하록’에 “미황사는 예부터 1천불이 출연할 곳이다.” 는 내용에서 1천불의 출연을 염원하며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천장 곳곳에 그려진 1천분의 부처님 때문에 절 세 번만하면, 삼천배가 되는 셈이 되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속세에서 부처님의 나라로 건너가는 배를 뜻하는 대웅보전을 나와, 석축을 따라 시부저기 올라간다. 동백꽃으로 외벽 담을 두른 작은 규모의 응진 당 주련이 망막에 각자를 새긴다. “낮에 달이 뜨고 밤에 해가 돋으며 (晝現星月夜開日), 여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 무지개가 서 네 (夏見氷雪冬見虹), 눈으로 듣고 코로 보고 귀로 말을 하네 (眼聽鼻觀耳能語), 마음을 텅텅 비우니 무한한 힘이 나타나네(無盡藏中色是空). 깨달음의 노래다. 우주는 대극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축의 반작용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내밀어야 한다. 과학에서 배운 지식의 해독을 깨뜨리고, 한번만이라도 겨울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눈으로 듣고, 마음의 코로 보아야한다. 마음만 깨달으면 눈과 코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귀로 말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그것이 가장 잘 말하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성(聖)은 귀(耳)로 잘 듣는 것으로, 입의 역할을 하는 왕(王)이라는 뜻이다. 입당하여 가운데 석가모니불, 좌우 아난존자 가섭존자에게 세 번 절을 한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낮추면 자기를 볼 수 있다. 하늘아래 한 점에도 못 미치는 산에서, 그 보다 더 작은 미황 사 응진 당에서, 지금 내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이렇게 절을 하면,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나를 있게 한 모든 연기(緣起)가 보였다. 수 없이 내 것을 버리면 환희심이 불땀처럼 피었다. 당을 나와 마당에 선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감동한다. 환상의 뷰 포인트다. 특히 해질 녘 진도와 주변 섬들이 붉은 바닷물 위로 떠 있는 절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부도 전, 명부전, 삼성각을 다니면서 절을 한다. 절은 절을 많이 하라고 그렇게 부른다. 사적 기를 본다. 경덕왕 8년 (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돌배가 사자포구 (현, 갈두 항) 에 닿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이것을 소등에 싣고 오다가 소가 드러누운 산골짜기에 절을 지어 미황사라 했다. 미황사도 의조 스님의 꿈에, 소가 미(美)라고 우는 울음소리와, 금인(金人)의 황금빛에서 황(黃)은 가져와 미황사라 지었다고 한다. 미황사 하고 부르면, 황금의 워낭소리가 들린다. 이제 달마고도로 떠난다. 그 때 누군가가의 트랜지스터에서 음악이 흐른다. 아그네스 발차의 감미로운 크로스 오버 곡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이었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우린 모두 떠 나야하는 거야. 나는 달마고도로 12시에 떠난다.
*달마고도(達摩古道) 트레킹
달마고도는 미황사 금강스님의 발원에 의해 시작되고, 공사비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로 재직할 때, 도비 총 12억 7000만원을 지원하였다. 달마고도를 조성 하면서 자연훼손을 피하기 위해 삽, 호미, 곡괭이를 사용 기존 옛길의 돌이나 나무를 최대한 살렸다. 하루에 40명의 인부가 250일에 걸쳐 땀을 흘린 큰 역사였다. 1000년이 넘은 옛길을 자연친화적인 치유의 길로 만들었다. 2017년 11월 18일 개통식을 하고, 메스 콤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많은 탐방객이 찾아오고, 태고의 땅 달마고도는 남도 명품 길로 거듭났다. 달마고도는 산 중턱 길로, 평균 고도가 200 내지 300 m이며, 모두 4코스로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로 아이콘을 세웠다. 달마고도는 달마 산 주변 옛 12개 암자를 이어주는 암자 순례 로드로, 옛 길을 복원한 것이다.
달마고도를 코스별로 보면 (총 17.74km / 일반인 : 6시간 30분소요).
제1코스 (2.71km) 미황사 - 큰바람재. 제2코스 (4.37km) 큰바람재 - 노지랑골
제3코스 (5.63km)노지랑골 - 몰고리재. 제4코스 (5.03km)몰고리재 - 미황사. 이다. 오늘 트레킹은 4코스다. 자연 그대로의 길을 시나브로 걷는다. 부도전과 이름 모를 암자 터를 지난다. 편백나무 숲이 있어 잠시 머문다. 상쾌한 공기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흰 규암의 너덜지대는 잘 다듬어져 있어 지나는 발길이 거뜬하다.
용담과 도솔암 트레킹
이제는 도솔 암 가는 이정 목을 따라간다. 예까지 와서 도솔 암은 꼭 봐야하는 비경이므로 가팔막지지만 땀을 흘리며 오른다. 길목에 있는 용담 굴에 들린다. 온통 바위투성이 틈에 꽤 넓은 굴이 있고 바닥은 옹달샘이다.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벼랑길 끝에 이런 곳이 있다니 신의 솜씨다. 옛적 용담 굴에 천년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용이 있었다. 드디어 천년이 되는 날, 용은 커다란 용트림을 하며 승천했고, 용이 살았던 바위굴은 옹달샘, 용담이 되었다. 용담에서 조금 더 오르자, 도솔 암이 나타나고, 절경의 절벽 위에 있는 도솔 암을 촬영하기 위한 포토 존도 있다. 도솔 암에 다다른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기도 도량이다. 그 후 의조화상이 이곳에서 수행 정진하다가 미황사를 창건했다. 도솔 암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면 난들과 바다가 흐리마리하다. 마치 천상의 그것처럼 황홀한 비경이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온다는 도솔 암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지만, 특히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의 오소소한 까치놀은 남도 제일 경으로 너무 아름다워,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비경 중에 비경이라고 한다. 시간이 썰물처럼 빠지자, 날머리 마봉리로 옴나위없이 내려간다. 현대병을 앓는 우리는 트레킹 로드를 걸으면서, 스스로 내적 치유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걸어 내려가, 내 뼈를 찾고 내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끝)
첫댓글 상기 글은 약 6년전 영남일보 위클리 방방곡곡 길을 걷다.
에 연재 한 것입니다. 사진까지 옮기는 능력이 없어
글만 등재합니다. 부족하지만, 많이 읽어주시고
이끌어 주시기 부탁합니다.
회장님 잘 모았습니다.
김영근 시인이시고, 교장 선생님'.
격려 배려 말씀 감사합니다.
김찬일 회장님 방방곡곡 트레킹은 테마가 있어 늘 동경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맞을 때 동참하려 합니다.
응원 합니다
방종현 대구문협 부회장님. 잘 계시죠. 반갑습니다.
모든 일에 덕망과 배려, 성의와 진심으로 주위를 바로잡아
주시는 마음 씀씀이에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행복하시고 귀 가정에도 만복과 편안함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