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이 셋이었다. 부처님 모신 금당(金堂) 또한 셋이었다. 천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지금 남은 건 탑 둘과 당간지주 둘뿐,
빈터만 보고도 한눈에 사찰의 크기가 대단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익산의 대표 유적 미륵사지를 두고 하는 얘기다.
미륵사는 백제 후기 때 창건한 사찰이다. 국력이 다시 찬란해지기를 바라며 지었지만, 백제의 운명은 야속하게도 곧 끝이 났다.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미륵사의 흔적 위에서 익산 여행을 시작했다. 근대의 시간을 품은 골목과 오늘날의 지성이 모인
책방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지난 시간의 아쉬움과 다가올 시간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던 한겨울의 여행이었다.
연못 수면에 비친 미륵사지 풍경
풍경화처럼 다가온 미륵사지와의 첫 만남
이른 아침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긴 겨울밤의 어둠을 밀어내던 햇살이 석탑의 잠을 깨우고 있을 때다. 추위가 내려앉은 탓인지
이 넓은 미륵사지에 인적 하나 없어 빈터를 잠시간 혼자 소유할 수 있었었다.
입구를 지나면 연못이 나온다. 덩그러니 탑 둘이 자리한 절터의 황량함을 감추듯 연못은 수면 위에 두 탑을 그리고 있었다.
미륵사지를 다정하게 안아든 미륵산의 봉우리도 물 위에 배경처럼 떠 있다. 미륵사지에서 본 첫 풍경화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앙상함이 안쓰러웠지만 천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사찰의 고요한 아침을 느낄 수 있었다.
미륵사지 동탑
미륵사지의 아름다움이 가장 반짝일 때를 꼽아보자면 이른 아침과 저녁이다. 여명이 뒤덮고 있는 미륵사의 너른 터와 노을이 물들어가는
탑의 단단한 표면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광경이 될 게 분명하다. 동쪽 탑으로 향했다. 현대에 와서 복원한 탑이다. 아랫부분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개의 출입문을 달아놓았는데, 허리를 깊이 숙여 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불교에서 탑 내부는 성역과 같은 곳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나 불경 등을 비밀스럽게 이곳에 모시기 때문이다. 그런 곳으로 감히 들어갈 수 있다니. 우리나라에 수많은 사찰이 있지만,
탑 안쪽까지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동탑의 문턱에 앉으면 서탑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여행객이 많을 때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곳이다. 서둘러 미륵사지에 발을 들여놓은 덕분에 동탑이 마련해 준 자연의 스튜디오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미륵사지 동탑 안쪽에서 서탑 방향으로 촬영했다.
비워서 채워주는 절터의 풍경
동탑 구경을 마친 뒤 서탑으로 향했다. 국보로 지정받은 미륵사지의 대표 보물이다. 절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탑은 여전히 남아
우리 앞에 서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서탑은 과거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위쪽 부분이
허물어진 채 오랫동안 방치한 뒤 덕지덕지 시멘트를 발라놓았다. 식민지 조선의 운명을 떠 안 듯 백제의 석탑은 무거운 시멘트를
제 몸에 붙인 채 수십 년 세월을 견뎌야 했다.
미륵사지 서탑
서탑을 본격 해체하고 보수를 시작한 때는 2001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석탑의 복원에 20여 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9년에 와서야 미륵사지 서쪽 탑은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복원 과정에 뜻하지 않은 선물도 발견되었다.
탑의 1층 심주석 아래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미륵사 창건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가장 확실한 열쇠였다. 사리장엄구는 국립익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절터의 북쪽 영역으로 향했다. 미륵사지를 끌어안는 미륵산의 따뜻한 품이 시작하는 곳이다. 산을 등지고 서면 미륵사지의 넓은 공간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대략 잡아도 동서로 약 260m, 남북으로는 약 640m에 달한다. 멀리 입구에서부터 당간지주와 두 석탑, 금당의 흔적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다. 미륵사지를 주제로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을 찍는다면 최적의 장소가 바로 여기다.
미륵사지 북쪽 영역에서 본 풍경
미륵사지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최대 면적을 자랑했던 사찰이다. 백제가 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크고 작은 건물들이 이곳을 채웠었다.
지금은 한때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알려주는 탑과 당간지주만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남은 건 흔적뿐이지만 사라진 절터는 찾는
이들에게 빈 공간을 내어주며 스스로를 다시 채워 넣을 여유를 선물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석조물들
절터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여겨 남은 석탑과 당간지주만 보고 돌아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륵사지는 여행자를 위해 충분하고 넓은 품을 이렇게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1년의 마지막과 시작 즈음에 다녀오기에 미륵사지는 참 좋은 선택이었다.
익산의 귀한 보물을 모신 곳,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미륵사지 입구에 있는 국립익산박물관은 모습이 독특하다. 주변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입구가 지하로 숨어있다.
마치 1,400년에 걸친 백제의 절터 앞에 바짝 엎드려 예를 표하는 것 같다. 주인공인 미륵사지 자리를 넘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절묘한 디자인으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미륵사의 땅 밑에 서 있는 셈이다.
익산의 보물을 보관하는 최적의 요새에 들어선 듯했다.
국립익산박물관 로비에 전시 중인 미륵사지 목탑 축소 모형
입구 로비에는 지금은 사라진 미륵사지의 목탑 축소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최소 높이가 40m에 이르렀다는 탑이다. 목탑 전체에 정교한 장식이 조각돼 있어 백제 시절 높은 수준의 기술을 그대로 담아냈다. ‘화려하다’는 표현은 미륵사 목탑을 위해 아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금동제사리외호
금제사리봉영기
국립익산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익산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로 나뉜다.
미륵사지 서쪽 석탑과 왕궁리 오층석탑의 사리장엄구를 이곳에서 알현할 수 있다.
정밀한 세공 기술과 고운 빛깔 앞에 백제 문화재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쌍릉 대왕릉에서 나온 나무널도 볼 수 있다.
대왕릉에 묻힌 이는 백제 무왕으로 미륵사 건립을 지시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륵사지 관람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박물관 지붕 전망대에 올랐다. 두 석탑은 물론 미륵사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보살 손
두 명의 집사가 가꾸는 익산의 독립서점, 두 번째 집
미륵사지를 뒤로하고 익산 남부시장으로 향했다.독립서점 두 번째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떠들썩한 시장 골목에 책방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찾아간 길이다. “자신의 집을 나와 갈 수 있는 또 다른 집이란 의미를 담아‘두 번째 집’이라고 책방 이름을 지었어요.
책이란 사람들과 함께 짓는 두 번째 집인 것 같다고 말한 손님도 있었고요.오시는 분들이 책방 이름의 의미를 보태고,또 보태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해 물었더니,이새나 두 번째 집 대표의 답이 이렇게 돌아왔다.
이름 때문일까.두 번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책의 숲에 파묻혀 느긋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집이란 그렇게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독립서점 두 번째 집 입구
독립서점 두 번째 집 입구
100년이 넘은 전통시장에 자리 잡은 두 번째 집은 이제 두 해째를 맞았다.
책방에 쌓인 시간의 두께는 아직 얇지만, 두 번째 집이 독자들을 위해 준비해둔 지혜의 바다는 넓고 깊다.
든든하게 서 있는 책장에는 두 번째 집의 대표 두 명이 고르고 고른 인문과 문학, 예술 분야의 책들이 꽂혀 독자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책의 숲에 파묻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서점 두 번째 집
두 번째 집에서는 책 판매는 물론 읽고,쓰는 모임도 진행한다.글쓰기와 미술활동,희곡과 시 낭독 등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활동들이다.독자들이 만나고 싶은 저자를 직접 섭외해 북 콘서트도 열었다.손님이 구입한 책의 목록을 정리한 개인카드를
일일이 만들어 책방에 보관하기도 한다.정성 없이는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이다.
늘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집
늘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집
책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언제든 두 번째 집의 문을 열어도 좋겠다.책을 주제로 소통할 책방의 대표와 독자들이 그곳에서 늘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두 번째 집의 대표 둘은 스스로를 집사라 칭했다.책방에서 나오기 전 집사라는 호칭이 궁금해 물었다.
“저희 책방 이름이 두 번째 집이잖아요.저를 포함해서 두 명이 대표인데요.대표란 말보다는,집을 가꾸고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집사’가 어떨까 싶어서 그렇게 불러요.두 번째 집을 운영하는 집사 말이죠.”
책이란 우리가 함께 짓는 두 번째 집이다
낯선 거리에서 만난 익산의 근대 건축물
남부시장 주변에는 짧게는 수십 년,길게는100여 년의 세월이 담긴 건물들이 모여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은 이곳을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 이름 붙였다.솜리는 익산의 옛 지명이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된 이후 익산 지역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1914년에는 동이리역이 생겼는데 이때쯤 솜리시장
(지금의 남부시장)과 주변에 바느질거리,주단거리가 함께 형성되었다.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들은
이때쯤부터 지은 건물들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 대교농장 사택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의 시작점은 3.1독립운동기념공원 앞에 있는 구 대교농장 사택(등록문화재 제763-1호)이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아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한복거리 방향으로 1분 정도 가면 모퉁이에
구 신신백화점(등록문화재 제763-2호)이 나온다. 1960년대에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3층 건물이다.
오늘날의 크고 화려한 백화점에 비해서는 작지만 한때는 주변 지역 상권을 주름잡던 중요한 곳이다.
구 신신백화점으로 쓰였던 건물
구 신신백화점을 시작으로 근대시기 건물이 이어진다.상가나 주택,한약재 건조창고,금융조합으로 쓰였던 곳이다.
첫댓글 오늘 미륵사지 한바퀴 돌고 왔는데 돌 하나도 소중하고 오랜유물이
잘 관리 됫는지 관리하시는분들 수고가 뭐라 말할수가 없이 노력이
보였어요 지금은 주변 조성과 유물이 제자리를 못찿아 아쉽긴 하지만
코로나가 물러나면 많이 찿아 주세요~
그러셨군요 아까운 문화재죠 예전의 모습 되찾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늦은시간 편안한 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