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에 울리는 알람이 조용한 집을 가득 채웠다.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에 거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태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할 때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알람이 꺼졌다. 작게 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면 머리에 까치집을 가득 지은 채 방문을 열고 나오는 동혁이 보인다.
“굿모닝 마이 태일...”
눈도 못 뜬 채로 간신히 인사만 건네는 동생의 모습을 부며 주방으로 향하는 태일이다. 오늘 오픈조 너야? 앞선 형을 쪼르르 따라 온 동혁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며 프라이팬을 쥐는 태일의 등에 고개를 묻고 머리를 비빈다. 잔뜩 지은 까치집이 태일의 홈웨어에 이리 저리 비벼지느냐고 일어나는 정전기가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동생이 자신의 등에 대고 머리를 어찌하고 있든 묵묵히 불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다.
“얼른 씻고 나와. 계란 후라이 해줄게.”
“내가... 형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몰라도 되지? 얼른 씻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끙끙 앓던 동혁이 깊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몸을 돌렸다. 방 화장실로 향하던 동혁이 자신의 신세를 중얼거린다. 나 고생 안 하게 해준다면서, 아침 8시 기상이 말이 되냐고 말이.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톡 하고 나와 열심히 움직이던 입술이 쏙 들어간 건 벌컥 열린 방 문 때문이었다.
“동혁이 일어났네?”
“엄마야, 어, 누나 잘잤어?”
어색한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 동혁이 아무렇지 않은 척 영원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들었나? 설마, 나 되게 조용히 중얼거렸는데. 못 들었겠지? 부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에 힘을 주며 짧은 보폭으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 동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문을 닫았다.
제법 깜찍한 막내의 행동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삼키던 영원이 방 문이 닫힘과 동시에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흔들며 복도를 지나면 어느새 계란 후라이를 마무리한 후 식탁에 접시와 주스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있는 태일이 보인다.
“정우 아직이야?”
“어. 5시 시작이랬으니까 곧 들어오지 않을까?”
“정우 들어오는 거 보고 오빠도 얼른 자.”
대답 대신 웃음을 보인 태일을 뒤로 한 채 물 한 잔을 마신 영원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빈속에 커피 마시면 위 아프다는 태일의 잔소리를 비지엠으로 깔아둔 채였다. 오빠는 잔소리하는 목소리도 좋다.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은 원래 목소리가 좋은 건가? 시답지 않은 대꾸에도 지치지 않고 공복 커피가 유발하는 질병들에 대해 늘어놓는 목소리가 단정하다. 자신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기어코 커피를 내려가는 영원의 모습을 눈에 담던 태일이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들었다. 양배추를 잔뜩 먹여야겠어. 위에 좋은 식재료를 이것 저것 다 주문하고 나서야 만족하는 듯 한 태일의 시선이 고정된 건 핸드폰 상단의 시계였다.
지금이 8시 반이니까... 곧 들어오겠네
다녀오겠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없는 정우를 생각하는 태일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동혁이 이른 아침부터 창고 문을 통해 들어온 카페는 어제 정리한 그대로 깔끔했다. 테이블 하나 없이 홀만 넓은 가게를 한 번 훑은 동혁이 카페 문을 열기 위해 출입문으로 향했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시원한 바깥 공기에 깊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면 카페 간판이 보인다. 정갈한 글씨체로 제작된 밀크티에이드. 정우가 지은 이름이다. 가게 이름 뭐로 하지? 라는 영원의 말에 도영이형 지금 뭐 먹고싶어? 나? 음, 밀크티. 마크 너는? 나?? 에이드! 그럼 우리 카페 이름을 밀크티에이드야. 땅땅땅 끝. 이제 나 필요한 거 얘기해도 되는 타임이야??
그렇게 후다닥 만들어진 이름은 다음 날 바로 간판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특별한 메뉴까지 같은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이 카페의 특별 메뉴. 특별한 주문. 특별한 음료
밀크티에이드
평범한 카페에 평범하지 않은 메뉴인 밀크티에이드는 특별한 제조법을 가진다.
밀크티에이드에 들어가는 샷
그들이 제거할 타겟의 수
밀크티에이드에 들어가는 시럽
그들이 받을 페이의 0갯수
밀크티에이드의 핫, 아이스
타겟의 상태
죽이거나, 생포하거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카페
실상은 국내외 각종 사건이나
국정원의 은밀한 의뢰를 해결하는
이곳은 밀크티에이드입니다.
신여주 (30)
CODE NAME 영원
IMF에서 영원을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동시에 신여주를 아는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얼굴과 '영원'이라는 이름을 매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IMF에 속한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들어봤을 이름인 영원. 스스로 본명보다 활동명을 편해하는 탓에 밀크티에이드 팀원들도 영원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유본부장의 눈에 띄어 기구에 소속되었으며 그로부터 1년 후 현장에 처음 나선다. 유본부장의 명령으로 헤일리라는 가명에 숨어 어수룩한 사무직 직원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굵직한 사건들에서 영원의 이름이 빠질 수 없을 정도였으니, 기구 내에서 영원의 입지는 말 그대로 대단했다.
여주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유본부장이 살해된 직후 IMF는 빠르게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미리 읽고 준비를 해놨던 그는 국내 요원들의 정보를 챙겨 조용히 국내로 들어왔다.
영호와 모종의 거래 후 아지트를 숨길 수 있는 건물을 하나 구입, 눈속임용으로 가게를 하나 차리기로 한다. 빠른 속도로 아지트 정리를 끝낸 여주가 다음으로 한 건 여기저기로 흩어진 국내 요원들을 모으는 것. 기구가 붕괴된 후 숱한 죽을 위기가 있을 테지만 뭐, 죽으면 실력 없단 뜻이지 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여주가 가장 먼저 데려온 건 이곳의 유일한 힐러. 태일이었다.
문태일 (32)
밀크티에이드의 유일한 힐러
9월. 팀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위치가 발각된 영원이 복부에 깊은 자상을 입은 채 겨우 목숨만 구한 상태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숨을 껄떡이고 있을 때 그를 구해준 게 태일이었다. 월등한 점수로 의대에 입학, 늦은 만큼 열심히 살아 촉망받는 의대생 타이틀을 얻기도 잠시였다. 그는 인간만도 못 한 아버지에 의해 도박 빚에 쫓겨 하루하루 도망치는 삶을 연명 중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낯선 땅에서 살기 위해 도망치던 중 영원을 발견했고 다친 사람을 도저히 두고 갈 수 없는 성정이 곧 그 자신을 살렸다. 영원을 살린 보답으로 인간다운 삶을 얻은 태일은 영원이 마련해준 집에서 지내며 종종 자신을 찾아오는 그를 치료했다. 언제 어디서 다쳐 오든, 이유 한 번 묻지 않고 묵묵히 치료해주는 태일이었다. 한동안 찾아오지 않는 영원이 걱정돼 무작정 밖으로 나가 골목을 뒤지고 다닌 지 며칠째,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에 서 있는 건 영원이었다.
나랑 한국 들어가자. 오빠 힘든 일 없게 할게.
그게 무슨 일이든 상관없었다. 힘든 일이든 위험한 일이든, 어쩌면 죽음을 가까이 두는 일이든.
그 말 한마디에 짐을 챙기기 시작한 태일은 밀크티에이드에 입성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김도영 (31)
밀크티에이드의 작전담당
17살의 나이에 MIT에 조기 입학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천재. 1년 뒤 돌연 자퇴를 하며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괴짜.
말간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순진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있자면 이 맹한 애가 무슨 천재? 싶을 수 있지만 동글뱅이 안경에 감춰진 날카로운 눈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재정립하는 중이다. 자퇴 2년 후 돌연 하버드에 입학하더니 대학마저 조기 졸업해버리는 괴물 같은 존재. IMF에 스카웃되어 최연소로 작전전략본부 본부장을 제안받아 입사한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굵직한 정보는 모두 도영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반적인 작전의 수립과 진행은 모두 그가 도맡아 했다. 적은 물론 팀원들조차 예상할 수 없는 수를 놓기도 하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까지 모두 고려한다. 단 한 번의 선택에 수십 수억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큰 부담감을 느끼진 않는다. 자신이 실패할 거란 생각조차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런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도 신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감행했을 때 그의 인생에서 첫번째 변수가 등장한다. 죽음의 문턱을 밟았을 때 그를 구해준 영원. 이후 자신과 함께 일하자는 제안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예측들이 뒤엉켰고, 결국 결정을 내린 건 그의 충동이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은 예측의 실패였다.
그가 영원과 함께 한 건 오로지 충동에 기인한 선택이었다. 함께 가보고 싶다는 순간의 강력한 욕망. 그가 움직인 이유였다.
정재현 (30)
CODE NAME J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며 분해도 하고 조립도 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던 아이. 천재라는 수식어가 부족한 사람.
국내외 해킹대회란 대회는 휩쓸고 다니던 탓에 인터넷에는 정재현만 치면 수두룩하게 나오던 정보들이 단 하루아침에 귀신같이 사라졌다. 정재현을 찾아온 유본부장 때문이었다. 자신과 함께 일하자는 말에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의 정보부터 지워버린 그는 18살부터 유본부장 밑에서 해커로 착실히 성장해나갔다. 메인으로 하는 일은 해킹이기 때문에 보통 현장에 직접 나서는 일 없이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움직이지만, 가끔 중요한 작전이 있을 경우 현장 인근에 위치해 즉각적인 상황에 따른 작전 변경까지 지시했다.
주로 활동한 지역은 파리와 런던, 바티칸, 암스테르담, 그리스.
김도영이 유일하게 믿었던 해커이자 동료. 얼굴은 몰라도 J와 진행하는 일이라면 추가적인 검수 없이 일을 진행했다. 믿고 따르던 유본부장이 살해되고 오랫동안 몸담은 기구인 IMF가 붕괴되자 가장 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게 숨어버린 동시에 오직 영원에게만 실마리를 남겼다. 그가 자신을 찾아내길 기다리면서 쥐죽은 듯 지냈다. 유본부장 입에서 마르고 닳도록 나왔던 이름인 영원. 그 사람이라면 내 신념을 버리는 일 없이 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고 오직 영원에게만 힌트 아닌 시험을 남겼다.
나를 찾아봐, 그 정도는 돼야 너랑 일하지- 하고.
김정우 (29)
CODE NAME 제우스
밀크티에이드의 저격수. 총을 잡은 순간 내가 신이야. 신 중의 신, 왕 중의 왕 제우스.
그가 자신의 활동명을 짓게 된 과정이다. 정우는 총의 차가움과 무거움이, 총을 잡고 있을 때의 안정감이 좋았다. 그의 신념은 단 하나였다.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은 죽이지 말자. 어떠한 명령도 그의 신념을 앞설 수는 없었다. 실력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은 유일한 이유였다. 기구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는 제 일을, 자신의 기구를 좋아했다. 커리어와 젊음을 갈아 넣은 IMF가 무너져내렸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 든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이게 말이 돼? 다른 것도 아니고 IMF가 무너졌다는 게? 어이가 없는데 말이 되네.
일주일 내내 잠만 잤다. 그를 가득 채운 건 허탈함과 약간의 무력감, 현장에 다시 나가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고? 나 제우스를? 점점 좀이 쑤시는 몸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건 마크와 영원이었다. 그리고 같이 가자는 영원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이게 덫이고 저들이 곧 나를 죽이려 한 대도 상관없었다. 내가 겨누는 총이 더 빠를 테니까.
허무하게 죽을 생각도, 자신도 없으니까.
이민형 (28)
CODE NAME 마크
아시아지부에서 북미지부로 넘어간 그는 캐나다출생이었다. 캐나다의 특수부대인 JTF-2에 속해있다가 24살의 나이에 IMF에 속하게 된다.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IMF로 소속을 옮긴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말이 오가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특수부대원 출신답게 몸을 잘 쓰는 것은 물론 총기류를 아주 잘 다루는 편이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의 저격까지 커버할 수 있다. 일전에 캐나다에서 벌어진 대규모 테러 진압 작전에서 혼자 3인분 이상을 해내는 영원을 보며 속으로 감탄한 전적이 있다. IMF가 붕괴되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목숨의 위협에 은신처에 숨어있을 때 자신의 정보를 쫓는 흔적을 보고 J의 소행임을 직감한다. 일전에 같이 작업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그가 주는 흔적을 캐치할 수 있었다. 그 후 눈앞에 나타난 영원, 자신과 함께 가자는 말에 망설임 없이 뒤따랐다. 영원이라면, 같이 해도 괜찮겠다는 막연한 믿음과 재미있을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의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외롭기만 했던 삶에 처음으로 가족이 생겼으니까. 혼자 정보를 빼돌리러 들어갔다가 총알 하나를 배에 박고 나왔을 때 옆에서 같이 아파해주는 친구랑 동생이 있고 엄한 표정으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치료를 이어가는 형이 있으니까.
이제노 (27)
CODE NAME 제노
태어난 직후 보육원에 맡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2년 후 양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또 다른 보육원으로 향한다. 유년시절부터 IMF 산하 기구에서 훈련되어 요원으로 자란 케이스.
18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남들과 부대껴 지내지만, 정을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가 배웠던 건 자신을 지키고 남을 해치는 방법과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뿐이었다. 그런 제노에게 처음으로 곁을 내어준 존재가 재현이었다. 고작 19살이었던 제노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파리에서의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였다.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옆에 있던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작전 중 제노를 포함한 몇 명의 인원이 현장 근처에서 작전을 진행 중이던 J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급하게 몸을 움직였지만, 목숨 온전히 J에게 갈 수 있었던 건 제노가 유일했다. 말 그대로 머리에 총알이 박히기 직전이었던 재현을 요단강에서 건져내 준 게 제노였다. 그 후로 둘은 종종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재현이 함께하자는데, 같이 살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영원이라니. IMF에서 자란 것과 다름없는 그가 영원을 모를 수 없었다.
기억이 시작된 이후 삶 대부분은 현장을 위한 훈련이었기 때문에 그는 주먹과 몸이 주무기이다. 손에 잡히는 것이 곧 무기인 그는 활동반경 넓게 몸을 쓸 수 있는 작전을 선호한다. 평소 강아지 같은 얼굴로 형 누나 하는 귀여운 막내지만 현장에서의 제노는 누구보다 가차 없다.
형... 나는 저 새끼 저거 적으로 만났으면 지렸을 거야 해찬이 농담처럼 하는 말은 언제나 진심이다.
이동혁 (27)
CODE NAME 해찬
밀크티에이드의 막내이자 돌격형 행동대장. 제노와 같은 보육원에 맡겨졌지만, 입양이 불발되었다. 14살의 나이에 홀로 살기 시작한 그는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같이 살 부대끼는 존재가 간절했다.
물 흐르는 듯 유연한 성격 덕에 문제 하나 없이 평화로운 교우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들은 동혁과 살을 부대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허기짐을 채운 건 몸을 괴롭히는 공부와 운동이었다. 처음 그가 육사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당당히 수석입학을 해냈다. 이어 707특임대를 거쳐 IMF에 속하게 됐을 때 그의 직속 사수가 영원이었다.
동혁은 날것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싸울 때 예측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주곤 하는데 그 한 수가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움직임이 아닌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특임대 출신답게 맨몸격투부터 단검, 권총 등 다루지 못 하는 무기가 없지만 총보다는 단검을 좋아하는 편이다.
육사에서부터 707특임대에서까지 누군가와 겨룰 때 단 한 번도 완벽하게 눌린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언제나 동혁이었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짙은 패배감을 안겨준 이가 영원이었다. 그 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맨몸격투 훈련을 해 온 덕에 겨뤄볼 수는 있을 실력까지 끌어올린 지금도 그는 영원을 동경한다.
IMF가 무너져도 별 감흥이 없었다. 영원이 무너진 게 아니니까. 누나는 내 눈앞에 있으니까.
나재민 (27)
CODE NAME 나나
밀크티에이드의 저격수. 밀크티에이드가 자리를 잡은 지 5개월쯤 지난 후 쟈니의 추천으로 영입하게 된 인물로 가장 늦게 합류하게 됐다.
IMF가 붕괴된 후 자취를 감춘 인물 중 하나였던 그는 간신히 목숨만 건진 상태였다. 활발하게 활동할 때 대규모 불법 무기를 밀매를 위해 내전을 일으키려는 마피아를 사살하는 바람에 너무 큰 적을 만들게 됐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기구가 사라지자 하루도 쉬지 않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를 구해준 게 쟈니였다. CIA와 IMF가 합동하는 작전에서 처음 만났던 쟈니는 재민을 눈여겨봤으며 상황을 알게 된 후로 영원과 재민을 연결시켜줬다. 재민을 팀에 합류시키기 전 가졌던 회의에서 ‘나나’라는 닉네임을 듣고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정우였다. 어? 나 얘 알아! 통통 튀는 목소리로 재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우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독한 놈이었다.
단 한 발의 저격을 위해 28시간을 대기하는 아주 미친놈. 재민은 그런 저격수였다. 커피가루를 씹어먹는 한이 있어도 완벽한 저격을 위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다림을 감내하는, 기어코 완벽한 한 발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처음 팀원들을 만날 때 특유의 파란 머리를 휘날리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저격수 머리가 그래도 괜찮으냐는 말에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재민이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나 보기 전에 죽어 하고.
서영호/쟈니 (32)
CIA출신 엘리트. 미국에서 하버드를 졸업하고 CIA 전략본부팀장으로 입사.
미국에서 우연히 영원을 만났고 서로 일이 생기면 종종 협력하던 사이였다. IMF의 비정상적인 흐름을 미리 영원에게 흘린 인물. 예상대로 조직이 붕괴되고 연락이 끊긴 영원이 걱정돼 조용히 수색하던 중 ONE라는 이름으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시간과 장소만 담긴 성의 없는 메일이었지만 단숨에 영원이 보낸 메일임을 직감한 영호였다. 전반적인 상황을 전달받은 영호는 영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국정원에서 의뢰하는 케이스를 담당해줄 수 있느냐고. 본격적인 이직을 하기도 전에 제안부터 하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영원과의 만남 후 남들은 엘리트 코스라고 부르는 CIA 전략본부팀장 자리를 뒤로하고 국정원으로 둥지를 옮겼다. 국장이 한걸음에 달려와 쥐여준 작전본부팀장 명패를 버리고 애매한 사이즈의 케이스를 다루는 업무보조팀장 자리를 요구했다. 그의 파격 행보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 했지만, 국정원장과 모종의 거래를 끝낸 그였다. 언론에 심지어 국가에도 공개하기 어려운 더러운 케이스들, 모두 다 자신이 정리해주겠다고. 그가 요구한 건 단 하나였다.
자신이 진행하는 일에 어떠한 터치도 하지 않을 것.
결국, 밀크티에이드는 서영호에 의해 시작되었다.
첫댓글 세상에 저 이런 장르물 좋아해요 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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