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한다...통과하기전 기다리는 관광객들.
내가 명 13릉 을 간다하니 친구가 말한다. 남는 황후 하나 있으면 구해서 데리고 와달라고.....
명황제 만나서 " 남는 황후 있으면 어떻게좀 안될까요????......"
했더니 황제가 하는말...
"야 이 사람아!!!!!!!!! 다른것은 다돼도 황후는 안되네, 목숨이 아깝거든 빨리 돌아가시게...." 한다...
왜그러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 많은 황후 다 뭐할려고???????
"그것봐... 내가 뭐랬어???달랠걸 달라고 해야지 안된다고 했잖아!!!!!!
내 그리 말하니 친구는 뭐라 뭐라 혼자 투덜투덜한다.
우야튼.... 어제는 명 13릉,
오늘은 천안문...
베이징 서역에서 전철을 타고 전철 1호선 군사박물관에서 갈아타니 천안문 동역까지 대여섯 정거장이다.
전철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처럼 길게 줄을 서있다.
엣날 천안문 사태 때문에 혼줄이 났는지 모든사람이 천안문을 가기 위해서는 가방은 엑스레이 통과해야 하고 신분증 확인을 한다.
30분이상 기다렸다가 내차례가 돼서 들어가면서 보니 젊은 여자애들이 검사를한다...
헬로우!!!!! 했더니 무표정이다.... 이쁘게는 생겼더만...
이쁘기만 하면 뭐해? 친절하고 상냥해야지...
검색대를 통과해서 나오니 저런 풍경이...
찬인문 쪽도,,,, 도로건너서 국립박물관, 마오쩌퉁 유해가 있는 기념관 있는 맞은편쪽도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천안문 광장은 들어올수가 없다.
여기 천안문도 몇번 왔지만....
오늘은 시간도 많고 하니 천천히 한번 돌아볼예정이다.
몇년전 중국 국경절때 사진상 뒷쪽으로 보이는 천안문 망루로 박근혜 대통령이 곱디고은 빨간 한복을 입고 시진핑 그리고 푸틴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란히 올라가는 모습이 텔레비젼에 나왔을때는 여성 대통령이 외교는 참잘하는구나, 여성 대통령이어서 좋구나 하면서 나름대로 뿌듯함을 가졌었는데
몇년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되었으니 후세의 역사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를 할까???
어찌됐든 이제는 경제, 외교, 안보, 국방, 민생, 모든면에서 능력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나갔으면 좋을텐데....
천안문 들어가는 입구...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들을 찍느라 정신들이 없다...
앞에 있는 다리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천상의 평화의 문'이라는 의미의 천안문(天安門)은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주 관문 중 하나이며,
광대한 천안문 광장은 이 문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광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880m, 동쪽에서 서쪽으로 500m의 넓이로 뻗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시 광장이다.
천안문의 건축은 1417년 명나라의 자금성 건축의 일부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략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699년의 개조 작업 때였다.
20세기까지 천안문 앞의 구역에는 정부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이 지역은 1902년 의화단 운동(義和團運動)으로 피해를 입어 비워지게 되었다.
1950년대 초에 중화문(中華門)을 헐고 그 주변에 형성되었던 좁은 거리들을 없애면서 공지는 더욱 넓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광장 주변에 여러 채의 중요한 건물들이 세워졌다.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 국립 박물관, 마오쩌둥 기념관 등으로,
기념관에는 1976년 사망한 '위대한 키잡이' 마오쩌둥의 방부 처리된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천안문을 통과해서 좀 가다보면 고궁이 있는데 이 고궁을 들어갈려면 입장권을 구입해야만한다.
여권을 제시하니 노인이라고 노인표를 내어준다.
만 60세이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외국인이라도 만 60세이상이면 노인표를 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뿐......
한국에서는 노인 우대를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데(한국에서는 65세이상인가요?)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먼저 받아보니 묘한감정이 생긴다.
천안문 광장은 그곳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로 유명해졌으며, 심지어 악명 높은 장소가 되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 인민 공화국의 탄생을 선언했으며,
이후 광장은 공산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집단적인 친정부 집회와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좀 더 최근으로 와서는 이 광장에서 저항 시위, 특히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시위는 1989년에 정점을 이루었고, 결국 당국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충돌로 인해 사망한 시위자의 수가 186명이었다고 한다
명조와 청조의 황제 궁전인 자금성의 건축은 1407년에 시작되었으며,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고생한 끝에 14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황제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설계된 자금성은, 천제(天帝)의 거처와 동등한 지상의 등가물이라 여겨졌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단지는–각 변에 주 성문이 나 있다–깊이 6m의 해자와 높이 10m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총 넓이가 약 72헥타르에 이르는 자금성 안에는 약 800채의 건물과 8,880개의 방이 있는데,
방의 개수가 좀 더 그럴싸한 숫자인 9999개라고 나와 있는 자료들도 있다.
이 건물들 중에 다섯 채의 커다란 전당과 열일곱 채의 궁전이 있었다.
자금성은 두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남쪽 구역, 즉 '전조'(前朝)는 황제가 매일의 정무를 보는 곳이었고,
황제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북쪽 구역, 즉 '내정'(內廷)이었다.
건물의 소재로는 목재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자금성 안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여 있으며, 지붕은 전통적인 왕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태화전 내부...
호화롭고 사치의 극치를 자랑하는 태화전에서 최고로 력서리한 곳은 바로 황제의 보좌이다. 15세기부터 오백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보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던가.
일부는 본의 아니게 이 보좌에 올라 자신의 성품과 운명을 바꾸었다. 그들은 이 보좌에 오르는 그 순간 정상에 오른 기쁨에 빠지는 동시에 비운의 종소리를 들었으리라.
외부에서는 천자의 지고무상한 지위와 그 막강한 권력만 흠모하지만 그 모든것을 가진 본인은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명왕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이 가족에게 "다시는 제왕가문에 태어나지 말라!"고 울부짖었겠는가.
1644년 명나라 뒤를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열 명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정부 소재지로 삼았다.
1912년, 신해혁명에 뒤이어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퇴위했고,
자금성은 결국 박물관이 되었으며 많은 보배와 진기한 물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유물들의 일부는 국공내전(國共內戰) 동안 대만으로 옮겨졌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완화되면서 자금성은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주요 명소가 되었다.
저 멀리 뒤로는 티벳 불교 사원도 보인다.
상당한 시간동안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많이 걸어 왔는데 아직도 끝이 날려면 멀었다.
젠장. 넓기도 하네...
중국을 기차타고 가다보면 다른것은 몰라도 땅덩어리 넓은것은 부럽기만 하다. 가도가도 평야 지역....
드넓은 평야에 온갖 작물들이 자라고......
고구려 시대에 저기 요녕성 심양쪽에 만주땅들이 모두 우리땅이었다고 하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추녀도 한번 찍어보고.....
그런데 밑에 CCTV카메라가 큰눈을 뜨고서 감시하는것 같아서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황제가 앉았던자리가 몇군데 보이는데 그쪽으로는 지식이 짧아서 그냥 패스....
저것이 그것이러구나 정도...
중국사람들 용을 정말 좋아하나보다.... 추녀에도 문에도 온천지에 용문양들로 꽉차있다.
자금성은 1987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자금성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금성은 오백여년동안 유지된 최고의 권력 중심지였고, 정원과 가구, 공예품 등을 수용한 9,000여칸의 방을 가진 방대한 건축군락으로 명청시대 중국문명의 견증자이다. "
베이징성 남쪽의 영정문(永定門)에서 시작되어 북쪽 종고루(鐘鼓樓)까지 이어지는 도성의 남북향 중심선은 7.8km에 달한다.
자금성은 바로 그 중심선상, 베이징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고 북문은 신무문(神武門)이며 동쪽과 서쪽에 동화문(東華門)과 서화문(西華門)을 냈다.
성안의 건물은 건청문(乾淸門)을 중심으로 황제가 나라일을 보는 외조(外朝)와 생활을 하는 내정(內廷)으로 나눈다.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는 보좌에 앉아 울면서 "나 집에 갈래" 라고 했고, 가정(嘉靖)제는 연단을 굽는데 빠졌으며, 만력(萬歷)제는 부를 모으는 재미로 살고, 천계(天啓)제는 목공일에 열중했으며, 순치(順治)제는 불교에 귀의했다. 황제의 보좌에 앉고 천하를 독차지했으나 자신의 생활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건청문을 넘으면 황제의 사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자금성이 세워져서부터 청왕조 옹정제가 침소를 양심전(養心殿)으로 옮기기까지 건청궁은 줄곧 황제의 침궁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청왕조의 세번째 황제인 옹정제는 침소는 건청궁에 두지 않았지만 왕조의 미래를 이 곳에 남겨두었다.
황권을 쟁탈하기 위해 형제가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황권승계자의 이름을 쓴 유조를 건청궁 정대광명(正大光明) 간판뒤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무엇인지 건축양식이 좀 다르다...몽고식 게르 같기도 하고...
그냥 요런것도 잇구나 하면서 패쓰....
다리가 아프도록 한참을 돌아다녔다. 자금성, 고궁을 지나서 끝까지 왔다. 마지막 문 신무문이다. 티켓을 자세히보니 천안문으로 들어와서 여기 신무문으로 나가도록 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모르고 신무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음여정이 천안문 맞은편 국립박물관이라서 다시 들어올려고 하니 경비가 안된다고 한다.
뒷쪽으로 보이는 도로를 건너 경산 공원에는 들리지 못했다.
경산의 중심 만춘전에서 자금성 과 베이징 시내를 내려다 보는맛은 심히 기가 막히다고 하는데 그 기막힘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광광전용버스 내부.
우야튼 신무문을 빠져나오니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어떻게 국립박물관까지 갈까 하고 궁리를 하는데 마침 앞에 관광전용버스가 있어서 보니 천안문 광장까지 가는 버스다.
후다닥 올라탄다.
여기 신무문 앞에서 만리장성, 명13릉 이화원,향산 등등 북경의 관광지로 가는 버스를 여기서도 탈수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왕푸징(북경의 명동 거리라고 보면 됨) 도 여기서 가까우니 나처럼 북경 서역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는것도 좋고 왕푸징에 베이스 캠프를 차려서 북경을 뒤집어 보아도 좋을것 같다.
천안문 앞까지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잠깐 틈을 내어서 셀파이 한컷.....
여기오기전에 천안문 혹은 자금성 혹은 고궁 등등 역사에 대해서 좀 공부를 하고 왔으면 좀 더 좋았으련만....
원래 그런스타일이 아니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서,,,,,,
하지만 그래도 여기를 한번 둘러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역사의 향내를 맡아보면서 짧은 지식이지만
전체적인 건물형태를.... 날아갈듯한 추녀끝을',,,,,문마다 새겨져 있는 용 문양을,,,,,, 황제의 의자를,,,,,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그사람들이 이리 저리왔다 갔다 하는 환영을 보는것 같기도 하고...
그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보고 인생을 보는것 같고 해서 훨씬 문화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배가 부른것 같고 뿌듯하다.
기분이 참 좋다.
생리적인 배고픔도 중요하지만 생각의 배고픔을 해결하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같다.
세계 어디 낮선곳을 가더래도 니네(풍경, 자연, 사람 등등)들이 있어서 나는 참좋다.
생각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니네들이 있어 나는 참 좋다.
에브리 바디..... 에브리 씽.... 쌩큐 베리머치!!!!!!!!
여행 Tip
1. 천안문 도착방법; 1.인천-북경 수도공항-북경서역 혹은 시내 어디라도...
전철 1호선, 천안문 동역. 혹은 천안문 서역
2. 입장료; 천안문(없음), 고궁(50위엔)
3. 소요시간;4-6시간정도(오고가는 시간 제외)
4. 기후; 한국과 비슷함
5, 특징; 산책, 역사기행,
6. 자유여행 추천
***** 다음은 북경 "중국 국립박물관, 왕푸징거리" 으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대단합니다/저렇케 궁을 짓기위해
인민들은 뼈가 부스러지는 곤욕을 당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