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문학상/소설] 내일 또 봐요(1) | ||||
박정원(본명 박정선)
관계를 맺은 것은 언젠가는
내일 또 봐요란 인사를 하고 그 다음날 병실에 들어서면
사라지듯 없어져버린 사람들…
침 기도를 마치고 병실로 향하는 동안 오늘은 또 누구와 이별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엄습한다. 그리고 대강 그가 누구인 줄을 짐작한다. 그러나 짐작을 뛰어넘을 때가 얼마나 많던가, 내일 또 봐요 란 인사를 하고 그 다음날 병실에 들어서면 뜻밖에 어디론가 사라지듯 없어져버린 사람들, 그들이 비워놓은 텅 빈자리는 잠시 화장실에 갔거나 산책을 나간듯한데 며칠이 가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새로운 환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얀 시트에 덮여 병실 밖으로 실려나간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이상 그들을 마음속에서 좀처럼 지우지 못한다. 그것은 관계 탓이었고 관계는 그토록 서러운 것이었다. 내가 그를 알았다는 것, 내가 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이별의 농도를 그만큼 진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어서 이런 병실을 떠나야지, 라고 마음먹지만 이상하게도 떠나지 못한다. 차라리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느끼지 않으리라고 마음 먹을수록 오히려 그들을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면 숨이 턱 막혀왔다. 처음에 두 달을 하고 그만두었을 때도 그랬고 2년 동안 중간 중간에 일주일 정도 쉬는 날엔 마치 공기가 차단된 밀폐 공간에 갇힌 것처럼 몸부림쳐야했다. 그건 아무래도 나 역시 미래가 누설되어버린 한 사람으로서 불안과 공포에 쫓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내 눈으로 그런 현상을 날마다 확인하고 체험하면서 이별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실에 들어선 내 눈길은 금세 여덟 개 침대를 차례로 훑어나간다. 나는 편의상 첫 번째 침대부터 번호를 정해놓고 환자를 구분한다. 1번부터 8번까지 모두 수심처럼 고요하다. 아침의 평화가 아니라 누군가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 마치 고요한 시간을 선택한 것처럼, 아니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슬쩍 사라지듯 아침이나 밤에 운명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벌써 창문에 아침 햇살이 젖어들기 시작하고 여덟 개의 침대마다 주렁주렁한 링거액 줄이며 산소호흡기 줄이 차갑게 빛난다. 8번 환자 곁으로 간호사들의 슬리퍼 소리가 바삐 움직이더니 담당 주치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8번 환자 코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고 급히 커튼이 쳐졌다. 한 달 전에 들어온 자궁암 말기환자인데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빨리 숨을 거둔 것이다. 두 명의 전도팀이 들어와 들릴락말락 기도를 하고, 기도소리가 끝난 뒤 곧이어 하얀 시트로 머리끝까지 덮어씌운 침대가 조용히 끌려 병실 밖으로 나가서야 가족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나를 포함해 305호실 전담 호스피스 박순애씨와 김명희씨도 병실 밖까지 배웅을 하러 나왔다. 어젯밤에 귀가하면서 '내일 또 봐요'라고 하며 인사했고 그녀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때마다 처음처럼 당황한다. 내일을 믿을 수 없는 목숨에 대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급히 영안실로 내려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덜그렁 거리는데 역시 그녀가 누웠던 자리는 환자가 잠시 화장실에 간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텅 비어 있다. 다시 물밑 같은 고요가 번지고 우리는 조금 전에 나간 8번 자리를 제외한 일곱 개 침대를 살핀다. 이틀 전에 들어온 바로 옆 7번 간암말기 환자가 흑 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호스피스 박순애씨가 재빨리 그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그는 박순애씨의 팔을 거부하며 돌아누운 채 어깨를 들썩인다. 말기 암 병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선 환자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는 앞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열 번 이상은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아직 삶이 연장되고 있는 증거라고 내심 반가워한다. 다시 침대 하나가 환자를 싣고 들어와 8번 자리를 메웠고, 다시 여덟 명이 된 병실은 가래 뱉는 소리로 뒤엉킨다. 환자들은 환자가 죽어나가고 새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긴장과 스트레스로 갑자기 가래가 끓어오른 탓이다. 박순애씨와 김명희씨가 그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환자들 목에서 가래가 나올 때마다 박순애씨와 김명희씨가 시원하죠? 라고 묻지만 환자들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아버린다. 결국 3번 환자가 가래를 뱉으며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북받쳐 오른 감정이 썩어 가는 위를 쥐어짠 탓이다. 올해 46세인 위암말기 여자다. 내가 급히 달려가 부축해 일으켜 앉혔다. 주로 내가 돌봐온 환자였다. 옆에 있던 박순애씨가 침대 밑에 있는 플라스틱 변기를 댔다. 누런 토사물이 플라스틱 변기에 가득 찼다. 그리고 각혈이 또 터졌다. 어제보다도 양이 많았다. 비릿한 냄새가 병실에 가득 퍼졌다. 박순애씨가 토사물을 가지고 급히 처리장으로 나갔다. 깨끗하게 씻은 변기를 다시 침대 밑 구석자리에 놓아 둔 후 나와 함께 3번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한다. 3번 환자는 며칠 전보다 더 움푹 팬 눈을 간절히 뜨고 싶어하고 간신히 벌어진 눈동자에는 무언가 속내를 토악질하듯 퍼내고 싶어한다. 그녀는 중환자실에 들어올 때부터 다른 환자들보다 더욱 심하게 입을 다물고 항상 눈을 감고 있었다. 아예 단단히 입을 봉해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영 심상치가 않다. 괜찮아요? 라고 박순애씨가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대답 대신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박순애씨에게 맡기고 나는 임파선암 말기인 1번 환자 김영옥씨에게 다가갔다. 영옥씨는 중환자실에서 가장 젊고 밝은 환자다. 건강했을 때는 무척 명랑하고 예뻤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녀 입에서 마스크를 벗기고 입안을 씻어내고 소변을 받아낸 후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려고 커튼을 쳤다. "아줌마, 내 젖가슴 좀 봐, 어제보다 약간 부풀어 올랐죠?" 영옥씨는 가늘고 창백한 손으로 젖꼭지만 달랑 붙어있는 제 가슴을 쓸어올리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래, 며칠 전보다 도톰해졌는데, 애인이 생긴 모양이지?" "나는 어제보다 오히려 더욱 달라붙은 그녀 젖가슴이 안타까워 그렇게 말했다. "어머나! 애인이 생기면 젖가슴이 커져요?" "그럼, 가슴이 마구 뛰니까." "세상에, 처음 알았네!" 영옥씨는 마스크를 벗겨내면 말이 많아졌다. 그동안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내가 옷을 입혀주고 입안을 닦아내 주고 구석구석 몸을 씻어줄 동안에도 김영옥씨는 내 손을 꼭 쥐는 것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가슴에 불을 지핀 것 같은 고마움을 느낀다. 나를 받아들여준 고마움도 그렇거니와 자기의 길을 잘 예비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 것이다. 런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호스피스라고 했다. 2년 전 처음 이 일을 해야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겨우 두 달인가를 하고 뒷걸음질쳤다. 감히 내가 무슨 능력으로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가였다. 씻어주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미음을 먹여주며 왔다갔다 동동거린다고 해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죽음을 맞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 교통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2번 대장암 환자 옆구리 주머니에서 김명희씨가 변을 끌어내고 있다. 변을 다 끌어낼 동안에도 환자는 김명희씨가 하는 일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무관심한 표정이다. 변 주머니를 소독할 동안에도 역시 환자는 무표정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창자 썩는 냄새가 무더운 공기처럼 퍼져나갔다. 며칠 전에 들어온 환자 보호자와 오전에 들어온 8번 환자와 그의 가족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보호자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더니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냄새에 익숙해졌을 법한 석 달째인 5번 환자 아내가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자 6번 환자 남편이 따라 나갔다. "저 사람들 너무한 거 아니예요?" 박순애씨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뭐가요?" "저 사람들 눈 맞은 거 몰랐어요?" 김명희씨가 이제야 그걸 알았느냐는 투로 거들었다. "조금만 더 참지. 앞으로 얼마 안 남았을 텐데…." 박순애씨가 안타깝게 다시 덧붙였다. 사실 나도 벌써 눈치 챈 일이었다. 그들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환자 가족들끼리 어떤 정보를 교환하거나 서로 하소연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환자 이상으로 지쳐버린 사람들이었다. 5번 환자 아내나 6번 환자 남편도 처음엔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화장품 외판원을 한다는 5번 환자 아내는 외판을 나가야할 때만 호스피스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자영업을 한다는 6번 환자 남편도 거래처에 나갈 때만 병실을 비웠다. 그들도 처음엔 서로의 처지를 교환하며 어떤 유명한 의사의 말보다도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의지가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서로 지친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기대며 커피타임이 거듭될수록 옛날 황홀했던 연애시절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옛날의 남편을, 남자는 여자에게서 옛날의 아내를 느꼈을 것이라고,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 간호사가 8번 환자 쪽으로 가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새로 들어온 8번 환자는 폐암말기 여자 환자다. 담배 한 개비 피우지 않았다는 데 왜 여자가 폐암에 걸렸을까 란 의구심은 이제 더 이상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폐암 환자들의 고통은 대단히 무섭다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정녕 무서운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TV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역적 같은 중죄인을 고문할 때 불인두로 살을 지지는 아픔인 듯 했다. 발병과 함께 그렇게 미친 듯이 통증에 몸부림치다 한두 달 만에 훌쩍 떠나기가 예사였다. 나는 앞으로 8번 환자가 겪어야 할 고통을 두려워하고 호스피스 팀장 조 간호사는 나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아주머니, 이분께서 잘 돌봐주실 거예요. 뭐든지 어려워 마시고 부탁하세요. 그리고 이분은 특히 책도 읽어주시고 이야기를 아주 잘 해주세요." 그러나 오십대인 8번 환자는 귓등으로도 듣는 척을 안 했다. 나는 통과의례라고 당연하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그녀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 앞으로 저랑 친하게 지내요. 제 이름은 이은영입니다." "가서 댁 일이나 봐요." 예상대로 8번 환자는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나는 일단 후퇴하여 김영옥씨에게로 가서 책을 꺼내들었다. "아줌마, 오늘까지 읽으면 마지막이죠?" "아니, 아직 열 장 정도 더 남아 있어." 내가 그녀에게 읽어주기 시작한 소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였다. "아줌마 그 주인공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사진작가 남자와 떠날 수 있을까요?" "어때, 영옥씨 같으면 그럴 수 있겠어?" "아니요, 난 못해요. 절대로." 그녀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괜히 이야기했다고 후회했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은 다 살아가게 마련이라죠?" 어느덧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를 생각했다. 나에게도 남편과 두 아이가 있다는 것과 그들과 나도 머지않아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말이 곧 내 이야기란 것을. "그래 남은 사람들은 다 살아가게 돼있어.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도 가야 하고." "그렇지만 남은 사람들이 떠난 사람보다 더 힘들 거예요. 도저히 만날 수 없는데 미치도록 그리운 건 무서운 고통이잖아요. 난 그걸 잘 알고 있어요…." 영옥씨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 생각에 젖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어요. 처음에 한 6개월 동안은 어머니가 잘 견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갈수록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리워서 못 견디는 거예요. 걸핏하면 산소에 찾아가고 사진을 붙들고 울다가 잠이 드는가 하면 옷장에 가득한 아버지 옷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아버지가 마지막 날 입다 벗어놓고 채 빨지 못했던 와이셔츠 목에 묻은 때 자국에 코를 대고 아버지 냄새를 맡는 거예요. 보다 못해 외할머니께서 아버지 유품을 모두 불태워 없애버렸어요. 그래야 어머니가 아버지를 빨리 잊을 수 있다구요." 며칠 전부터 김영옥씨는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주의를 무시하면서까지 말을 하고 싶어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8번 환자에게로 옮겨갔다. 모르핀 붙이는 시간이 넘었는지 8번 환자가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폐암환자는 끼니를 먹듯 모르핀을 일정한 간격으로 등판과 가슴 밑에 붙여야 했다. 8번 환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박순애씨가 조 간호사를 불렀다. 조 간호사가 담당의사와 함께 들어와 모르핀을 붙이고 주사를 놔주고 나갔다. 그런데도 환자는 얼굴을 펴지 못한 채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병실에 뜨듯한 냄새가 훅! 퍼져나갔다. 나보다 3년이나 선배인 박순애씨는 대변을 쌌다고 판단하며 옷을 벗겼다. 대변이 배꼽아래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와 박순애씨가 서둘러 처리하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뽀송한 환자복으로 갈아 입혔지만 환자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환자에게 그런 항변이 남아있는 것은 아직 삶이 급박하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는 안도한다. 한참 후에야 8번 환자 보호자인 남편과 시어머니가 들어왔다. 초췌한 남편과 시어머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시어머니가 한 번 더 크게 한숨을 쉬며 다른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을 봉해버린 듯이 말을 하지 않던 3번 환자가 갑자기 흑흑 울기 시작했다. 말기 암 병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그들의 감정 변화는 시시각각 달랐다. 무표정하다가 벌컥 화를 내다가 한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번에도 그녀의 입에서 각혈이 터졌다. 그녀는 가끔 각혈을 하는데 며칠 전부터 부쩍 횟수가 늘어가더니 오늘은 벌써 두 번째다. 내가 서둘러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는 내 팔에 머리를 기대며 이번엔 정말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녀가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라고 직감했다. 환자들은 갈 때가 임박해서야 마음을 열었다. 급사를 제외하고는 단 몇 초만 주어지더라도 꼭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최후 소망인 모양이었다. 마지막에라도 마음을 연 사람들은 가족에게도 못다한 속내를 실컷 퍼내고 실컷 울고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마치 육신의 암 덩어리처럼 영을 물고 늘어진 암덩이가 뭉텅 빠져나간 순간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목숨 끊어지게 후회했다. 목숨 끊어지게 누구에겐가 용서를 구하며 미안해했다. "그래 무슨 말이든지 해봐요. 무슨 말이든지…." "아줌마 나 천하에 없는 죽일 년이에요." 3번 환자는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은 아무리 가지런하게 살았다해도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하게 된대요." 나는 그녀가 안심하고 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기보다는 솔직한 인간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갑자기 엉엉 크게 울며 폭포수처럼 말을 쏟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나는 아주 몹쓸 년, 짐승보다 못한 년이라구요, 에미가 자식에게 그럴 수가 없어요. 남편과 사별하고 2년이 지났을 때 친구를 따라 우연히 카바레에 갔다가 남자를 알았어요. 그랬는데 그 남자는 결국 나를 협박해 끌고 도망을 갔어요. 그것도 우리 아들 대학 수능시험 치는 바로 전날 밤, 밤중에요. "아이고 세상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놀람을 나타내고 말았다. "사실은 남자가 나를 협박해서 끌고 갔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 남자를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도대체 뭣 때문에 자식을 버린단 말예요?" 이번에도 나는 부지불식간에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의 손 끝, 혀 끝, 모든 것이 마치 가뭄에 죽어 가는 풀잎을 일으켜 세우는 단비 같은 것이었어요. 남편과 아이를 둘 낳았지만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죠. 하루라도 그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금단 현상처럼 견딜 수가 없었죠, 아이들 생각을 왜 안했겠어요. 이러면 안되지 했다가도 그 남자 손길이 내 몸에 닿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나는 남자가 요구한대로 2층짜리 건물을 팔아주었는데, 남자는 내가 가진 몇 푼까지 몽땅 뺏어 먹고도 나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협박을 했어요. 나는 갈비집에 나가기도 하고 레스토랑에 나가 과일 깎는 일을 2년이나 했어요. 나중엔 남자가 내 몸을 더듬을 때면 소름이 끼치더군요. 남자 몰래 도망을 치다 열 번도 넘게 잡혀 개처럼 두들겨 맞곤 했는데, 어느 날 용케 도망쳐 아이들을 찾아갔더니 두 남매가 어디론가 가고 없는 거예요.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와 지금까지예요." 그녀는 창자가 딸려 나올 것 같이 흐느끼느라 다시 각혈이 터졌다. "아줌마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까요. 나는 그래서 죽는 것이 두려워요. 죽어서 그 벌을 어떻게 받을지 그게 무서워요. 우리 아이들 어떡하지요?" 나는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꺼져가는 생명 앞에 인간이 베풀 수 있는 것은 오직 위로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의인이 없다고 했어요. 그것뿐인 줄 아세요. 깨닫는 사람도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김점순씨는 지금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있잖아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 용서하신대요.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열심히 기도하세요. 살아있을 동안 단 한 시간이라도 말예요." |
[2007 영남일보 문학상/소설] 내일 또 봐요(2) | ||||||
헤어져야 하고 반드시 눈물을 징수한다
"끝없이 넓은 강이 어쩌면 그렇게도 푸를까요
그 강을 내가 건너가고 있었어요"
잠시 후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기진맥진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유언하듯 말했다. "아줌마 죄송하지만 제 대신 우리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기도 좀 해주세요. 제 입에서 어떻게 기도가 나올 수 있겠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3번 환자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컷 속을 퍼내고 난 후 내 가슴에 안겨 잠에 빠졌다. 나는 잠든 그녀 얼굴을 처음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강력본드로 붙여버린 것처럼 입을 봉했던 사십대 후반의 여자, 내 나이 또래였다. 서글펐다. 실패한 어머니였다. 세상의 온갖 실패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비참한 것이 어머니의 실패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녀가 눈을 뜬 채로 사지를 풀었다.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내 품에서 임종을 하고 만 것이다. 나는 쾌락이란 악마에게 짓이겨진 불쌍한 육신을 안고 짧게나마 기도를 해주었다. 나는 오늘만 해도 8번 환자와의 추억과 3번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가슴에 담아야 한다. 다시 하얀 시트로 머리끝까지 덮어씌운 3번 침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안실로 내려가고 우리는 배웅해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의 남매를 위해 꼭 기도하리라 마음먹었다. 박순애씨가 그녀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서성이며 피 묻은 휴지를 치우면서 가을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자꾸 창 밖을 바라보았다. 5번 환자 아내와 6번 환자 남편은 다음 날 병원에 오지 않았다. 5번 남자환자의 노모가 병실을 찾아와 며느리를 향해 ××가 커서 이놈 저놈을 찾아다닌 잡년이라고 욕설을 뱉으며, 가더라도 조금만 더 참았다 가지라고 분을 토했다.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는 5번 환자 노모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면서 영옥씨를 위해 다시 책을 잡았다. 사진작가를 따라 남편과 아이들 곁을 떠나려던 여자 주인공이 갈등하며 몸부림치다 결국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나고 김영옥씨가 모두가 이별이에요. 이별은 어떤 것이든 슬픔이군요. 라고 중얼거리며 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관계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관계를 맺은 것들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그것은 반드시 눈물을 징수한다고 말해주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던 영옥씨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손짓했다. 나는 안된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창문을 반쯤 열어주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들어와 병실을 헤집고 다녔다. 냄새가 창밖으로 빠져나가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왔다. 영옥씨가 황홀한 듯 바람을 마시며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녀 손 끝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병원 마당 저편에 늘어서 있는 벽오동 가로수가 넓은 잎을 술술 떨구고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넓은 잎을 줍기도 하고 한가롭게 나무를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아직 자기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겠지요?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라고 김영옥씨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결국은 모두 마찬가지야. 일찍 안 사람이나 좀 늦게 안 사람이나'라고 속삭이듯 말해주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봉숭아 꽃물이 손톱 끝 부분에 초승달처럼 남아있었다. 가늘게 남아있는 봉숭아 꽃물이 내 가슴에 예리한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그녀 손을 잡고 언제 물을 들인거냐고 물었다. 초여름에 제일 먼저 핀 봉숭아 꽃잎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들여줬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말했어요. 손톱에 들여놓은 봉숭아 꽃물이 다 지워지면 내 병도 말끔히 나을 거라고.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달처럼 변해 가는 손톱을 바라보며 좋아했는데…." 그녀는 벌써 세 번째 재발한 환자였고 세 번째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에 가깝다고 조 간호사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 딸의 소망과는 달리, 봉숭아 꽃물이 다 지워지기도 전에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인 김영옥씨는 다른 대기자들처럼 이 방을 떠날 것이 분명했다.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답게 두 달 전만 해도 그녀는 성난 짐승의 눈빛이었다. 첫날 호스피스 팀장 조 간호사 안내로 대면하고 손을 잡으려하자 완강하게 내 손을 뿌리쳤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들이 불쌍해서 당신 같은 천사들을 보냈나요?'라고 하면서 적대적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을 볼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요. 억울하다구요. 하면서 등을 돌렸다. 그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의를 걷어 올려 가슴 밑에 있는 수술자국을 보여주었다. 나도 당신처럼 죽어가고 있어요. 김영옥씨, 라고 하면서 나도 2년 전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몇 달인가 누워있었고 김영옥씨처럼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내 주치의는 이삼 년만 무사히 넘기면 10년은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이삼 년이 고비란 의미였지만 45세에 10년을 더해봐야 55세에 불과했다. 정말 그때 내 눈에 세상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갈 사람들로 보였고 온갖 아름다운 자연조차 그들을 위해 존재한 것으로 보였다. 가족들이 위로하고 태연한 척 할수록 나를 기만하고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치밀었다. 누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가족을 잃고 왜 하필 나인가! 라고 절규하는 것을 들을 때면 그 말이 여간 못마땅하다고 여겼는데 바로 내가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냐고 항의했다. 모두 다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버릴 수 있는가였다.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며 조금 먼저 가는 것과 조금 뒤에 가는 차이 뿐이라고 종교인들이 말할 때마다 신물이 난다고 항의하던 김영옥씨처럼 유유자적하게 위로하는 건강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내 삶을 몰래 훔쳐내어 자기 것으로 만든 것 같았다. 모두들 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바로 공격 대상이었다. 스스로의 변화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온갖 몸부림이 끝나갈 무렵에야 비로소 나는 오직 신만이 유일한 출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오직 혼자 가는 길,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그 무엇도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란 것을 알았다. 신을 의지하면서 가슴에 파고든 것은 동병상련에 대한 연민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나 같은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나의 길을 예비하리라 마음먹었고 그들을 통해 비로소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왜 하필 나만 죽어가야 하는가란 무모한 생각에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몸의 수술자국을 바라본 김영옥씨는 뜻밖이란 눈치였다. 나는 용기있게 김영옥씨 바로 당신이 나예요. 라고 말했고 비로소 그녀의 꼿꼿한 눈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옥씨가 잠든 것을 보고 잠시 병실 밖으로 나와 휴게실로 갔다. 박순애씨도 뒤따라 나왔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사람들 틈새에 앉았다. TV에서 충남 서산에 있는 천수만과 헤미천을 방영하고 있었다. 여름에 수해가 난 후 찍은 것이었다. 하천 주변에서 살던 새들 중에 개개미와 해오라기가 간신히 부들 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거기에 새끼들을 부화시켜 놓았는데 자꾸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해오라기는 그래도 좀 안전지대였다. 먹이를 물어온 개개미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려고 애쓰지만 물에 젖어 떨고 있는 새끼 개개미는 먹이를 받아 삼킬 힘이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시커먼 먹구렁이가 슬슬 새끼 개개미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가고 있었다. 어미 개개미는 위급한 상태를 알리느라 아무리 크게 울어도 새끼 개개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어느새 구렁이의 목 안으로 몸의 절반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미 개개미가 그 처절한 광경을 계속 바라보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박순애씨가 쯧쯧 혀를 찼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는 새끼보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새끼를 구할 수 없는 어미 새의 몸부림이 더 슬픈 것은 왜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쓰라린 이별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슬픔은 남은 자들의 처절한 몫이라는 것에 맞닿고 있었다. 박순애씨는 미물이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라며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순애씨가 앉았던 자리에 환자 보호자들이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 섞인 말을 퍼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석 달이라는데 집으로 가는것이 어떠냐?" "어머니도, 그 감당을 누가 해요. 숨이 뚝뚝 끊어지게 구르는데 환자도 환자지만 성한 사람이 못 견딘다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하루에 모르핀 값만 해도 20여만 원에다 입원비야 뭣이야 합하면 매달 돈천만 원이 쓰러진다고 하더라, 석 달이 될 지 다섯 달이 될지 누가 알아서." "그래도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죽어 가는 사람도 있는데…."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새끼들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의사선생님이 길어야 3개월이라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 달도 못 갈 것 같네요."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땡전 한 푼 없이 살길이 막막해서 하는 말이지." 8번 폐암 환자 남편과 시어머니였다. 남편 되는 사람이나 시어머니 되는 사람을 대충 봐도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말이 다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해가 서쪽 창문에 정면으로 젖어들기 시작하고 길가의 가로수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있다. 해가 지면 바람이 드세지는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은 마치 먼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처럼 느껴졌다. 조 간호사가 김영옥씨의 혈압을 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갔다. 나는 느낌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김영옥씨 곁으로 갔다. "아줌마 나 꿈 꿨어요." 뜻밖에 김영옥씨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꿈인데?" 나도 명랑하게 물었다. 사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면서. "끝없이 넓은 강이 어쩌면 그렇게도 푸를까요. 그런데 그 강을 내가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었어요." 순간 조 간호사가 나를 쳐다보던 눈길이 떠올랐지만 애써 지우며 다시 명랑하게 말했다. "응, 그건 좋은 꿈이네, 아주 좋은." "이번엔 내 차롄가 봐요 그 푸른 강을 건너가는." "그렇지 않아 이렇게 상태가 좋은데 그럴 리가 없어." 너무나 태연한 그녀 앞에서 내가 오히려 당황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해는 벌써 능선에 걸쳐있고 서쪽 창문에 석양이 마지막 빛살을 쏘고 있었다. 환자들이 곧잘 선택하는 고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김영옥씨 혈압이 눈에 보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른여섯 살 그녀를 감싸안았다. 지푸라기 같은 몸이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내 팔에 안겼다. 서른여섯에 이토록 의연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녀가 장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 나 목욕 좀 시켜줄래요?" 그녀가 뜻밖에 그런 부탁을 했다. "목욕을? 그건 의사선생님께 여쭤봐야지." "아니요, 의사선생님 몰래요, 조 간호사도 모르게요." 나는 안 돼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줌마 마지막 내 소원인데 안 들어주실 거예요? 아이들 아빠를 만나야 해요. 좀 산뜻한 몸으로."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더운 물을 받아와 그녀 몸을 닦아냈다. 비누를 묻혀 비누냄새를 풍겨주었다. "아로마 냄새가 나네요. 아로마비누죠?" "그래 피부가 맑아진다는 아로마 비누야, 영옥씨가 좋아한." "아줌마, 내 젖가슴 좀 봐, 아까보다 더 부풀어 올랐죠? 애인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마구 가슴이 뛰는가 봐요." 나는 그런 영옥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영옥씨는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대강 몸을 닦아낸 후 꽃무늬 새 환자복을 입히려고 했다. 그러자 김영옥씨는 입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아니 그럼 어쩌려고? 발가벗고 애인을 만날 테야?" "아줌마, 나 이 병실에 들어올 무렵에 참 재미있는 책을 읽었어요." "무슨 책인데?" "일본 Y대 의대 교수가 쓴 건데 말기 암 환자 이야기예요." "무슨 내용인데?" "말기 암에 걸린 자기 아내가 숨 거두기 전날 밤 홀랑 옷을 벗고 남편을 바라보더래요." "그래서?" "그래서 남편이 신혼 첫날밤처럼 아내와 마지막 밤을 지냈는데…." "마지막 밤을 지냈는데?" "정말 신혼 첫날 밤 같은 느낌이었데요. 그리고 아내가 죽은 후에도 늘 그런 기분으로 아내를 생각했다나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시트를 턱밑까지 끌어올려 몸을 덮어주었다. 해가 능선을 미끄러지듯 넘어가고 가을 저녁이 성큼성큼 어두워지고 있었다. 창밖은 수많은 불빛들이 전혀 딴 세상을 만들어가고 그것은 무엇인가 평온한 휴식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창 밖 세상을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 밖 세상의 불빛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불을 밝혔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녀 남편이 피곤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섰다. 그녀는 남편에게 바짝 얼굴을 갖다 댔다. 남편에게서 가을바람 냄새를 맡고 있는 듯했다. "어때, 오늘은?" 뻔히 알면서도 환자 가족들이 으레 하는 인사였다. "여보 당신에게서 가을바람 냄새가 나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까 그 냄새가…." 그녀의 허물어져 가는 발음이 내 귀에는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낯설다니, 요즈음 내가 회사 일로 병원에 오래 있지 못해서 당신이 섭섭했구나?" 그녀는 마른 팔을 뻗쳐 남편을 가슴으로 지긋이 끌어당겼다. 남편은 엉거주춤 상반신을 약간 엎드렸다. 그리고는 아내가 잡고 있는 손을 풀어 바람 한 점 못 들어가게 시트를 단단히 여며주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남편 팔을 잡아당겨 스스로 시트를 헤치고 남편 손을 바짝 마른 가슴위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커튼을 쳐주었다. 뼈만 앙상한 몸에 까만 유두와 듬성한 음모가 마른풀처럼 드러날 것이었다. "아니 왜 이래?" 남편의 놀란 음성이 새어나왔다. "당신 손길을 잊어먹어서요." "나보고 당신 위로 올라오라니, 당신 미쳤어?" 남편 목소리가 놀란 듯이 새어나온 후 잠시 말이 끊어졌다. 김영옥씨는 그날 밤 잠시 남편과 함께 아주 달게 잤다. 그리고 밤 9시도 채 못되어 하얀 시트가 덮여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쥐고 손톱 끝에 가늘게 남아있는 봉숭아 꽃물을 바라보았다. 봉숭아 꽃물은 아직까지 나는 젊어요! 라고 항변하는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영안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는 또 배웅을 해야 했다. 미래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라고 했던 그녀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2번부터 8번 환자들에게 '내일 또 봐요'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밖은 어두울수록 하늘에선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응급실 외엔 사람이 뜸한 병원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벽오동나무가 큰 가지를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벤치에 벽오동 잎사귀가 툭툭 떨어져 앉고 나도 벤치에 앉았다. 박순애씨가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앉았다. "또 울어요, 은영씨?" "아니, 그런데 박순애씨는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요?" "나라고 다를까, 새파란 사람이 훌쩍 떠나갔는데!" "정말 너무 새파랗죠." "그런데 참, 김영옥씨는 왜 그랬을까요. 젊은 여자일수록 죽어가면서 망가진 몸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악착스럽게 감추는데 심지어 머리가 빠진 것까지도." "글쎄요…?" "남편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요? 그리고 그런 상태로 가고 싶은…." "아니, 그 반대일 거예요." "무슨 뜻이에요, 은영씨?" "자기가 떠나버린 후 남편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한 거죠."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려서 보았던 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일본 Y대 의대교수가 쓴 책을 읽었다는 내용과는 전혀 달리 남편에게 서른여섯 살의 여자라기에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몰골을 각인시킴으로써 다시는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 어떤 간절함 같은 거라고, 그리고 그건 남편에 대한 마지막 사랑일 거라고 생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부지런히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영옥씨 손톱에 남아 있는 반달 봉숭아 꽃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