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로운 산사 '교종본찰 봉선사'
답답한 도시를 벗어난 버스는 광릉내 숲길로 접어든다
맑고 싱그러운 초록향 내음이 온 몸 가득히 스며든다. 자연은 늘~고마운 존재이다
광릉내 끝자락에는 맑고 향기로운 산사 ‘교종본찰 봉선사’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봉선사(선왕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사찰)는 세조의 릉, ‘광릉’을 수호하는 사찰이다
사찰 이름에 ‘봉’이 들어가는 사찰을 ’왕릉수호사찰‘ 운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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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일주문은 2005년 철안 스님이 신축하였다고 하며, 보통 일주문은 기둥이 2개이나 봉선사 일주문은 일렬사주(一列四柱)..화강암 배흘림 위에 붉은 나무기둥을 세운 모습으로, 창방ㆍ평방 위로 외4출목의 다포를 올인 모습이다. 정면 편액 한글 ‘운악산 봉선사’는 운허당 용하대종사의 유고에서 집자하였고.. 후면, 敎宗本刹奉先寺(교종본찰봉선사)는 정수스님의 글이라고 한다. 네모난 틀안에 도깨비 같은 형상은 인동의 신..키르티무카.. 그리고 원숭이의 세가지 모습.. 스님께서 많은 것을 설명하셨지만 세세히 적지 못하여 일주문에 대한 자세한 것은 다음에 쓰기로 하고 이렇게 문 하나에 가히 책 한권 쓸 만큼 많은 것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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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이란?..
교종은 경전(부처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종파이며 우리 나라 초기 불교는 주로 대승 불교의 교종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교종은 경전과 함께 의식도 중시하며, 왕실․국가의 안녕과 개인의 복을 비는 각종 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선종은 같은 대승 불교에 속하지만 경전보다는 참선(복잡한 교리를 떠나 조용히 사색에 잠김)에 의해 자기 안에 존재하는 불성을 깨우치려 한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 널리 유행하였다
봉선사 : 교종본찰 봉선사 敎宗本刹奉先寺
수덕사 : 선지종찰 수덕사 禪之宗刹修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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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일주문을 지나면 왼편으론 연꽃군락이, 오른편으론 선사들의 부도전이있다. 운허스님, 운경스님, 중창대시주공덕비, 봉선사중창비, 원초화상추모비, 운악산봉선사기실비, 운허대종사추모비, 만허대종사추모비, 지월당행적비 등이 있으며, 이체롭게 춘원이광수 기념비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춘원은 운허스님과 삼종지간으로 평안북도에서 1892년 같은 해에 태어나 어린시절 운허스님의 집에서 기거하였고, 중년에는 봉선사에 머물면서 운허스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친일파로 몰렸던 춘원은 6.25사변 때 이북으로 납치된 뒤로 소식을 모르는 터에 1975년 동지들이 그와 인연이 깊은 봉선사에 운허스님의 허락을 얻어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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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에서 운영하는 연꽃 유치원.. 경쟁이 치열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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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입구에 조성된 3만여㎡의 연꽃공원, 몸과 마음의 쉼~ 생태문화쉼터이자 정신휴양지..연꽃공원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형성되는데 이는 발심즉시성불을 강조하는 불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매년 여름(7월 하순 경)이면 이곳 봉선사 연꽃공원에서 연꽃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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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과원 승과평 터는 조선시대에 봉선사에 '교학 시험'을 관장하던 승과가 있었고, 봉은사에 선학 시험'을 관장하던 승과가 있었고, 명종 6년(1551년) 봉선사가 교종갑찰로 특선되었으며 서산, 사명 같은 고승께서도 응시하였다고 한다. 근대에는 월초 스님, 운허 스님, 월운 스님으로 이어지는 강맥으로 봉선사가 진정한 한국불교 교종본찰로써 자리매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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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연지가 있는 숲길을 지나면 봉선사와 함께한 느티나무와 하마비에 다다른다. 그 곳에는 청풍루가 보이고 청풍루 주변에 범종각과 동별당, 당간지주와 우물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청풍루를 지나 큰법당 앞에는 중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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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의 역사와 같이한 500여년 된 느티나무와 하마비는 정희왕후가 봉선사를 중창한 후,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봉선사가 자랑하는 보호수이다. 하마비는 사원이나 종묘, 궐문 등에 세워놓는 석비로 노소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존경을 표하라는 뜻이며 봉선사 '하마비'는, 1469년 조선 7대 세조대왕의 위패를 어실각에 모시고 중창불사를 하면서 세워진 것으로서 이곳을 지나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릴 것을 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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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청풍루(각'은 단층, 루(樓)는 2층 이상)는 6.25전 천왕문, 해탈문이 있던 자리에 모든 신도가조약돌 모으기 불사를 하여 지었다고 한다. 설법전을 청풍루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누각으로는 국내 제일의 규모를 자랑한다. 건물 남쪽에는 ‘여초 김응현’의 ‘청풍루’.. 북쪽에 ‘시암 배길기’의 ‘설법전’.. 서쪽 외벽에는 ‘심은 전정우’의 ‘불천회관’.. 동쪽 외벽에는 ‘진성스님’의 ‘중해운집’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청풍루 아래는 나라연금강역사와 밀적금강역사, 사천왕의 사진이 양쪽 벽에 걸려있어 청풍루 아래를 지나게되면 결국 금강문과 천왕문을 다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는 것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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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는 우리나라 5대 명산 중 하나인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운악산에 위치한 고찰로 국립광릉수목원과 광릉(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 탄문 스님이 운악사를 창건하였다. 1469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의 능침을 이곳으로 이전하여 ‘광릉’이라 하고 운악사를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로 개명하여 능침사찰로 삼아 크게 중창 하였다.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중창되었을 때에만 해도 모두 89칸에 달했다고 하며, 예종은 친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하였고, 명종 6년(1551년)에는 교종의 수사찰로 선정되어 많은 승려들이 모여 교학을 공부하던 도량이기도 했다. 명종 때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선종의 본찰로, 봉선사를 교종의 본찰로 삼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대부분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1956년에 화엄 스님이 범종각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운허스님, 운경스님, 능허스님, 월운스님 등이 복구를 하여 지금의 봉선사로 거듭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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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비는 봉선사 삼층 석탑에는 부처님 사리가 봉안되었다는데..
봉선사 정중탑은 경복궁 국립박물관에 있는 갈항사탑'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탑의 상륜부, 탑신부, 기단부?..등등..포교 보살님이 쉽게 설명해 주셨건만 가물...
큰법당 앞에는 당간지주와 흡사한 특별한 날에 건다는 쾌불걸이(맞나?)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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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중정은 교종 수사찰의 위엄을 보여주 듯 정연된 축대 위에 장대하게 가람이 들어 서 있는데, 큰법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지장전과 관음전이 있으며, 요사채로서 방적당과 선열당이 중정을 감싸듯 들어 서 있다. 봉선사에는 현재 큰법당을 중심으로 지장전, 관음전, 삼성각, 조사전, 개건당, 청풍루, 범종각, 일주문, 방적당, 다경실, 동별당, 서별실, 판사관무헌, 선열당 등의 전각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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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큰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637년 계민선사가 중수하였고 1970년 운허 선사(1892~1980)에 의해 건립되었다. 대웅전 편액을 큰법당이라 한 것은 운허 스님의 뜻에 따라 이름하였으며 운허 스님께서 현실적으로 대웅전을 큰법당이라 부르는 예에 따라 ‘운봉 김인석’이 썼다고 한다. 불교 대중화에 힘을 쓴 운허스님은 절 대부분 건물 기둥의 주련(기둥 글)들도 한글로 하였다. 봉선사의 한글 이름 ‘큰법당’은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노력이다. 운허 스님은 평양 대성중학교 출신으로 속명은 학수, 법호는 운허, 법명은 용하이다. 중국 봉천에 동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힘쓴 데 이어 청년기에는 항일투사, 종교인으로서는 불경의 번역가, 교육자로서는 후학의 양성에 전념하셨다고 한다. 그는 산문(山門)에 들어선 뒤 불교경전을 파고들었는데, 광복 이후에는 봉선사에 머물며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대웅전 전각을 큰법당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불경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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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관음전은 노전스님이 머물었던 곳으로 6.25때 전소되어 1999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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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은 원래 ‘어실각’으로 세조와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다.
6.25때 전소되어 1999년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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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동종(보물 제397호)은 높이 238cm, 입지름 168cm, 두께 23cm, 무게 2만 5000근이다. 봉선사 대종은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동종 중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것으로 예종 원년(1469)에 정희왕후가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봉선사를 세울 때 함께 주조된 것이다. 종의 정상부에 쌍룡의 유(鈕)가 있고 음통이 없는 것이 조선종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용은 머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하였는데, 앞발로는 여의주를 잡고 양 몸체를 구부려서 그 정상부에 또 하나의 여의주를 받들고 있다. 봉선사에는 2개의 범종을 볼 수 있다. 범종루에는 본래의 대종이 걸려 있고 그 뒷편의 범종각에는 새로 만든 종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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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대종의 글자가 서로 다른 현판.. '범종각 梵鐘閣' 과 '범종각 泛鐘閣' 이다. 차이점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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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삼신각은 전쟁 중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칠성, 산신, 독성 등 세 분 성인이 봉안되었으며.. 산운각, 북두각, 칠성각 세 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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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전은 계민선사와 월초스님을 비롯한 근대 봉선사 조사스님 영전을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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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를 창건한 정희왕후와 중건한 계민선사를 모신 개건당은 개산과 중건의 글자를 따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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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다경실은 차를 마시며 경을 읽는다는 뜻이며 1978년 애월재가 있던 자리에 운허스님의 퇴로지처로 지은 것으로 역대 조실스님께서 거처하시던 곳이다. 이곳 다경실에서는 춘원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이광수 기념비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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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겸손하면 사람이 보이고.. 눈이 교만하면 조건과 외모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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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가는 길 ..
의정부역, 또는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광릉내 가는 21번, 21-1번 버스를 타고 봉선사 입구에서 내린다
봉선사 전화 : 031) 527-1951~3 / 홈페이지 http://www.bongsunsa.net
불기 2556년 4월 14일 (서기 2012년 6월 3일) 일요일
봉선사에서 민초호야 합장 _()()_
첫댓글 기본과정 회향후..관음전에 잠시 들려 삼배만 하고 내려와 멀리서 오신 보경님과 정정희님 점심 약속하고 올라가서는
사시예불 1000일 기도를 봉행하고 계신 스님의 기운 탓인지... 그 스님의 근기에 끌려 자리 잡고 예불을 올렸네요..
도저히 내려 올수 가 없었습니다...
기다리던 두분은 다음을 약속하고 천안으로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그 예불 모습이 멀리 앵글에 잡혀 있네요..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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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고..두번가고...그래도 다 보고 느끼지 못한 부분을 민초호야님의 설명을 새기며 다시 한번 가고 싶어지는군요..
그날의 사진과 함께 사찰 설명까지 곁들이니..더욱 그날의 환희심이 느껴집니다...고맙습니다..나무 아미타불 _()_
연촉축제 때... 저도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
수목원으로 해서.. 광릉으로.. 그리고 봉선사 연꽃축제의 장으로... 말입니다
금강지님!~ 성불하세요 _()_
잘 찍은 사진, 다양하고 적절한 설명, 봉선사에 꼭 가보고 싶게 만드는군요...나무아미타불!
혼자하는 여행도 참 좋아요
관선님!~ 가끔은 그렇게 떠나보세요 ^^
카메라 앵글에 잘 드리워진 [운악산/봉선사]와 사찰 안내 멘트까지 곁들인 정성과 불심에 감사하게 살피고 갑니다...
우리 재가 불교계의 큰 밑거름이 되세요...<마하반야바라밀...()()...>
자료를 뒤져보면서 배우고 있답니다
불교?.. 참 오묘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성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보면서 배우고 쓰면서 배우고..
그렇게 불교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사찰안내 정말 대단하십니다 _()_
감사합니다
멋진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당장이라도 사찰 문화 해설을 하셔도 되실듯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아직 초짜인걸요.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