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說】
지난 장에서는 춘추시대(春秋時代)의 패자(覇者) 제환공(齊桓公)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한(漢)나라의 혜제(惠帝)의 보위(寶位)를 찾아준 상산사호(商山四皓)와 고대 상(商)나라의 임금인 무정(武丁)을 감복시킨 부열(傅說)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대상으로 열감무정(說感武丁)이 앞으로 오고 기회한혜(綺回漢惠)가 뒤로 가야 하나 문장의 운율상 전후가 바뀐 것임을 밝혀 둡니다.
기회한혜(綺回漢惠)
기리계(綺里季)는 한(漢)의 혜제(惠帝) 태자보위(太子寶位) 찾게 하고
기리계(綺里季)는 누구이며 한(漢)의 혜제(惠帝)는 어떻게 태자의 보위를 찾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전에 글자 하나하나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綺)는 사(糸) + 기(奇)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기(奇)는 '평범하지 않다'의 뜻으로, 사람의 눈길을 끌 정도의 '고운 무늬 비단'의 뜻입니다.
회(回)는 상형자(象形字)로, 물건이 회전하는 모양을 본떠, '돌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한(漢)은 수(水) + 난(難의 古字)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한(漢)은 산시성(陜西省) 영강현(寧羌縣)에서 발원(發源)하여 후베이 성(湖北省)을 관류(貫流)하는 양쯔강(揚子江)의 지류입니다. 산시(陜西), 후베이(湖北) 두 성(省)을 한중(漢中)이라 하며 약(略)하여 한(漢)이라고도 합니다.
혜(惠)는 심(心) + 전(專)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전(專)은 실감개의 상형으로, '외곬'의 뜻으로, '남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기울이다, 베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기회한혜(綺回漢惠). 이 뜻은 기리계(綺里季)가 한(漢)나라의 혜제(惠帝)를 돌려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혜제를 돌려놓았다는 것은 제자리를 찾게 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즉 잃을 뻔한 보위(寶位)를 되찾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정비석(鄭飛石, 1911~1991 ) 선생이 쓴 《초한지(楚漢志)》5권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대목을 공부하기 위하여 다시 초한지를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주무왕(周武王)이 세운 주(周)나라는 태공망(太公望)과 주공(周公) 등이 왕실의 기초를 튼튼히 닦아 내려왔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는 왕의 마음도 창업의 정신의 점점 엷어져 기강이 해이해져 갔습니다.
주나라가 중국의 천하를 다스린 것은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라고 하지만, 기원전 770년 주평왕(周平王) 원년에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긴 후 모든 권력은 제후들의 손에 쥐어져 새로운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형성되었습니다. 역사에서는 호경(鎬京)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이전을 서주(西周)라 하며, 그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합니다.
동주시대(東周時代)는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BC 453)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52~BC 221)로 나뉩니다. 춘추시대는 제후들이 주(周)왕실의 천자(天子)를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쳐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명분과 국통(國統)이 끊어진 나라의 종묘(宗廟)와 국통을 이어 주고 멸망한 소국(小國)들을 구원하여 복국(復國)시켜 줌으로써 천하의 안녕과 봉건제도 하에서의 강상(綱常)과 예악(禮樂)의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는 주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약해지고 저마다 왕(王)을 참칭(僭稱)하게 되면서 약소국을 병탄해 나가는 시기입니다. 전국시대 중에 이름 뿐이던 주(周)왕실이 진(秦)나라에 몰락하므로써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로 일곱 나라가 대표적인데 이를 일러 전국칠웅(全國七雄)이라 합니다. 이 전국시대는 칠웅 중 세력이 가장 강한 진(秦)이 모든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전국을 통일하여 통일제국(BC 221~BC 206)을 세웠는데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 재위 BC 246~BC 210)이 천하를 통일했지만 진시황이 통일제국의 영광을 누린 것은 불과 12년, 진시황 사후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유명한 환관 조고(趙高)가 정치를 농단하여 어리석은 호해(胡亥 BC 229?~BC 207)를 2세황제로 옹립했지만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94B3E5DD8880524)
기원전 209년, 빈농(貧農) 출신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기현(蘄縣) 대택향(大澤鄉)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秦)에 병합되었던 6국의 귀족들도 잇달아 봉기하여 독립하게 됩니다. 이들은 학정을 일삼는 진(秦)을 타도하여 천하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은 6개월 만에 진압되었지만 그 뒤는 항우(項羽 BC 232 ~ BC 202)와 유방(劉邦 BC 247 ~ BC 195) 이 천하를 놓고 격돌하게 됩니다.
항우와 유방은 초(楚)나라 사람으로 항우는 명문귀족의 후예이고, 유방은 가난한 농민출신입니다. 유방은 젊은 시절 별 볼일 없이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와 유력가문인 여공(呂公)의 딸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 여부인(呂夫人)이 오늘의 천자문과 관계되는 후일의 여후(呂后)입니다. 일찍이 항우는 숙부인 항량(項梁)과 함께 궐기하여 초나라의 왕족인 미심(米心)을 회왕(懷王)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갖추어 진의 수도인 함양으로 출격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이때 패현(沛縣)에서 궐기한 유방이 항량의 진영에 합류하게 됩니다.
나중에 회왕은 "최초로 함곡관에 들어가 관중(關中)을 평정하는 사람을 그곳의 왕으로 봉하리라."라는 교지를 내리게 되는데, 항우와 유방은 서로 다른 방향과 방법으로 함양으로 진군하게 됩니다. 항우는 가깝지만 험한 북로(北路)로, 유방은 멀지만 우회하는 남로(南路)로 가게 되는데 항우는 만나는 적(敵)마다 격퇴하면서 나아가고, 유방은 싸움보다는 회유책으로 민심을 얻으며 갔는데, 유방이 먼저 함양으로 쳐들어가 점령하게 됩니다.
이때 진에서는 간악한 조고가 2세황제를 농락한 후에 모살(謀殺)하고, 시황제의 맏아들인 부소(扶蘇)의 아들 자영(子嬰)을 옹립하였는데, 도리어 자영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초군의 유방이 함양에 입성하니 자영은 옥쇄를 들어 받치며 항복하고 맙니다. 이 일이 기원전 206년의 일입니다. 자영이 황제로 등극한지 43일 만이라고 하니 대진제국은 불과 16년 만에 결딴이 난 것입니다.
유방은 마땅이 관중왕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항우가 그 자리를 탐냄을 알고 아직 군사력이 미진한 유방은 장량(張良)의 계책대로 옥쇄를 항우에게 바치게 됩니다. 항우는 관중왕으로 자처하며 진의 3세황제였던 자영(子嬰)을 제거해 버리고, 회왕(懷王)을 의제(義帝)로 격상시키고 자신을 초패왕(楚覇王)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유방을 경계한 군사(軍師) 범증(范增)의 계책을 받아들여 항우는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봉하여 파촉(巴蜀)에 부임하게 합니다. 파촉은 산이 험하여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험지인데 유방은 이곳에서 장량의 천거를 받은 저 유명한 한신(韓信)을 얻게 됩니다. 유방은 이미 현신 소하(蘇何)와 장량(張良)을 얻었고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유방은 파촉에서 군사를 기른 다음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을 펼치고자 하였습니다. 한편 항우는 군사 범증(范增)이 한신(韓信)을 등용하던지 아니면 제거하라고 했건만 이를 귓등으로 듣고 등용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됩니다.
항우는 도읍을 팽성(彭城)으로 옮긴 후 걸림돌 같은 존재인 의제(義帝)를 시해하게 됩니다. 항우는 범증군사의 유방을 경계하라는 간언을 듣고도 지세가 험한 파촉으로 갔기에 별신경을 안 썼는데, 그런 사이에 유방은 한신을 파초대원수(破楚大元帥)로 삼아 군사를 훈련한 다음 항우를 토벌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쥐도 새도 모르게 군사를 내니 대의명분은 의제를 시해한 무도한 항우를 토벌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던 것입니다. 한신이 이끄는 군사는 파죽지세로 파촉에서 함양으로 가는 제1관문인 대산관(大山關)을 격파하고, 이어 초의 삼진왕(三秦王)을 일거에 격파하고 함양(咸陽)으로 입성하게 됩니다. 천하를 두고 본격적인 초한전쟁(楚漢戰爭)이 벌어진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F613B5DD8893124)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
한신은 싸울 때마다 승리하여 유방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한신 덕택에 10만이던 병력도 60만으로 불어나고 영토도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러고 보니 한신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게 되니 유방은 은근히 한신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래서 막강한 군사를 가지고 자신이 직접 나가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싹트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신을 후방에 남기고 한신을 대신할 총대장에 위표(魏豹)를 임명하고 싸움에 나가는데 그는 수수대전(睢水大戰)에서 항우와 싸워 궤멸되기에 이릅니다. 군사 10만을 잃었다고 하니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대패한 유방은 단신으로 산속으로 도망치다가 한밤중에 호롱불을 발견하고 몸을 의탁하게 되었는데 척씨(戚氏) 성을 가진 80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유방의 황금 전포(戰袍)를 보고 놀라 연유를 물으니 항우에게 대패하여 쫓겨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손수 정성껏 저녁상을 차려 유방을 대접하고는 열여덟 살 먹은 무남독녀를 불러 인사시키고 하룻밤을 모시게 합니다. 유방은 도망가는 처지에 안 된다고 사양했지만 낭자가 천하일색이고 주인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하룻밤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 여인이 본 천자문의 내용과 관계되는 척씨부인(戚氏夫人)입니다. 이 이야기를 쓰고자 길게 경위를 설명한 것입니다. 후일 이 여인이 한고조(漢高祖) 유방의 총애를 받은 척부인(戚夫人)입니다.
하룻밤을 자고 난 유방은 후일 이 낭자를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돌아온 그는 다시 한신을 기용하고 다시 파초의 대장정을 펼치게 됩니다. 이리하여 한신은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절대 무공을 자랑하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자살하니 초한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기원전 202년의 일입니다. 유방은 마침내 제위(帝位)에 오르게 되니 이가 바로 한고조(漢高祖 재위 BC 202년 ~ BC 195년)입니다. 이때가 기원전 201년의 일입니다.
초한전쟁이 끝나고 제위에 올랐지만 천하가 다 안정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소란은 계속되었습니다. 일등공신 한신(韓信)은 초왕(楚王)에 봉해졌으나 곧 팽(烹)당하고, 그 밖에 여러 장수들도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AC8445DD88BDF29)
여태후 여치(呂太后 呂雉)
유방이 제위에 오르자 맏아들 유영(劉盈)은 태자(太子)가 되었습니다. 고조(高祖)는 말년에 이르러 태자가 유약한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자를 바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방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는데 한 분은 정실부인(正室夫人)인 여황후(呂皇后)이고, 또 한 분은 수수대전((睢水大戰)에서 참패하고 도망치다 척씨촌에서 만난 척씨부인(戚氏夫人)입니다. 그런데 이때 여황후는 나이가 들어 늙었고, 척부인은 아직도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사실이 이러고 보니 유방이 누구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그런데 여황후에게는 '영(盈)'이란 아들이 있었고, 척부인 척비(戚妃)에게는 '여의(如意)'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영은 형이고 여의는 네 살 아래 아우였습니다.
유방은 애써 창업한 나라가 길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강건한 태자가 이를 이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어질기는 하나 유약한 맏이보다는 총명하고 무예도 뛰어난 둘째가 태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는 척부인의 베갯머리 송사가 많이 작용했습니다. 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여의로 바꾸는 문제를 공론화하자 여후는 길길이 뛰게 되었고, 조정의 대신들도 불가함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조는 흔들림없이 이를 관철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조는 여후의 성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척비와 그의 아들이 위험에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상냥하고 정성스러운 척비를 보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척비도 이를 염려하여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여후는 명문가의 여식으로 이름을 치(雉)라 하였는데 여걸다운 풍모를 지녔고, 항우와의 오랜 전쟁동안 남편 유방을 따라 다니며 조강지처로서 보좌역을 톡톡히 했습니다. 한때는 항우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고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천하가 평정되자 마음껏 사랑을 받고자 했으나 유방은 젊은 척비에게 마음을 쏟고 태자까지 폐위시키려 하니 사랑과 아들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되자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여후는 고조가 반란을 진압하러 나간 사이 권력을 위임 받아 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왕(楚王)으로 있다가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었던 한신(韓信)을 주살(誅殺)하였고, 양왕(梁王)으로 봉해졌던 팽월(彭越) 등을 간계로 주살(誅殺)시킨 바 있습니다. 이런 여후에게 척비가 공포를 느낀 것은 당연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826505DD890DF29)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러나 여후는 정실부인과 아들이 장자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 조정에서도 황제의 뜻을 되돌릴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여후는 장량(張良)에게 손을 내밀고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은 정치에 관여할 뜻이 없고 산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면서도, 한마디 했습니다.
"황제께서는 평소에 '상산(商山)의 사호(四皓)'를 무척 흠모하셨으니,
그들을 찾아가 보면 해결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여후는 상산의 사호를 찾게 하여 마침내 상산사호를 찾게 됩니다. 상산사호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그들은 상산(商山)에 살면서 영지(靈芝)라는 버섯만 따먹으며 사는 신선(神仙)들이라 합니다.
한 분은 동원공(東園公)으로 성(姓)은 중(重)이고 이름은 선명(宣明)이며, 한단(邯鄲) 출신이라 합니다. 또 한 분은 서원공(西園公)으로 성은 기(綺)이고 이름은 이계(里季)이며, 제국(齊國) 태생이라 합니다. 천자문에 나오는 기리계(綺里季)입니다. 또 한 분은 하황공(夏黃公)으로 성은 최(崔)이고 이름은 소통(少通)이며 역시 제국 태생이라 합니다. 나머지 한 분은 각리공(角里公)으로 성은 주(周)이고 이름은 술(術)이며 하내(河內) 태생이라 합니다.
이들은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이어서 '사호(四皓)'라 불리었으며 현자(賢者)로 이름이 높기에 일찍이 고조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상산에 은거한 현자였습니다. 여후는 이들을 비밀리에 모셔다가 태자에게 성학(聖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조는 여의를 태자로 책봉할 결심을 하고 강행하려하자 대신들이 또다시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굽히지 않다가 궁에서 머리가 희고 흰 수염을 날리며 태자의 뒤를 따르는 네 명의 노인네를 보게 됩니다.
"저 늙은이들은 웬 늙은이들이냐?"
그러자 사호는 고조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상산에서 내려온 '사호' 늙은이들이옵니다."
고조는 이에 놀라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네들이 사호라면, 내가 불렀을 때는 오지 않더니 지금은 어떤 연고로
태자를 모시고 다니오?"
그러자 그들이 말하기를,
"폐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어 현사들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에, 우리들은 불러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황태자는 인효공경(仁孝恭敬)한데다가 현사를
소중히 여길 줄 아시기에 우리들은 태자를 도와 드리기 위해 모두들 산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장차 태자께서 보위에 오르시면, 그때야말로 요순시대(堯舜
時代)와 같은 태평성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조는 태자를 바꿀 결심을 깨끗이 단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회한혜(綺回漢惠)입니다. 자칫 태자의 자리를 잃을 뻔한 것을 상산사호가 제자리로 돌려 놓게 된 것입니다. 태자 영(盈)이 후일의 혜제(惠帝, 재위 BC 194~BC 188)였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고조는 척부인을 찾아가 사실을 말해 주고 여의는 큼직한 나라의 왕으로 봉해 주겠다고 다독였으나 척비는 다가올 공포를 몸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고조는 13살의 여의를 조왕(趙王)으로 봉하고 주창(周昌)으로 하여금 국상(國相)을 맡게 하여 멀리 한단으로 보냈습니다. 최후를 염려한 일입니다.
고조의 병이 깊어지자 고조는 척비에게 간호를 받았는데 척비에게 빨리 조나라로 도망하라고 했지만 척비는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모시겠다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후는 최후까지 척비에게 가 있는 고조가 미워 죽을 지경이어서 강제로 떼어 놓기에 이릅니다. 고조는 자신에게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고 태자 영을 불러 후일을 부탁하고 63세로 붕어하니 고조 12년인 기원전 195년의 일입니다. 태자 영(盈)이 17세로 보위를 이으니 이가 바로 제2대 황제 혜제(惠帝)입니다. 여후는 혜제를 섭정(攝政)하게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CB83E5DD8995232)
척부인(戚夫人)
고조가 붕어하자 여후가 곧바로 시작한 일은 보복입니다. 당장 척비를 옥에 가두고, 조왕을 잡아다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신제(新帝)의 이름으로 가짜 조서를 꾸며 "선제(先帝)가 돌아가신 뒤에, 너의 생모께서 병이 위독하시니 빨리 오너라."고 모정을 이용하여 잡아 죽일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조왕의 나이 겨우 13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왕을 모시는 조창이 이는 가짜라며 가서는 안 된다고 하여 불발로 끝났는데 여태후가 여기서 중단할 인물이 아니었죠. 다시 간계를 내어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생모 척비의 편지라고 교묘히 속여 속히 상경할 것을 종용하여 마침내 조왕을 상경시키는데 성공하여 혜제가 없는 틈에 생모를 만나게 해 준다는 구실로 조왕을 불러내 생모가 거하는 서궁(西宮)이 아닌 태후가 머무는 미앙궁(未央宮)으로 불러들여 짐독주(鴆毒酒)를 먹여 즉사시키고 맙니다.
나중에 혜제가 이를 알자 어머니를 원망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성품이 어질었던 혜제는 조왕 여의가 어머니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알고는 정치에 의욕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태후는 이번에는 척비에게 보복할 계획을 세웁니다.
감금되었던 척비를 끌고 와서는 형리에게 명합니다.
"여봐라! 저년의 손목과 발목을 모조리 잘라서 두루뭉실로 만들어 버려라.
귀도 베고 눈알도 뽑아 내어 측간(厠間)에다 쳐 넣어라!
그래서 이제부터는 저년을 '인체(人彘)'라 부르도록 하여라!"
'인체(人彘)'란 '사람돼지'란 뜻입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명이었습니다. 증오심과 질투심이 부른 참으로 참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척비는 이리하여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처참한 몰골로 측간에 버려져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혜제가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우연히 변소에 들려 소변을 보다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괴상한 괴물이 변소에 있음으로 보고 기절초풍을 할 듯이 놀랐고, 즉시 이것이 무엇이냐고 시종들에게 물으니 시종들은 떨면서 아뢰기를 이는 척비의 변신이라며 '인체'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혜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통곡하고 태후를 찾아가 인덕을 베풀어야 할 어마마마가 이런 잔인무도(殘人無道)한 행을 벌였느냐며 성토했던 것입니다.
그후로 혜제는 정치할 뜻을 완전히 접고 술과 계집으로 소일하게 되었는데 여태후는 아예 정권(政權)을 빼앗아 올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혜제가 7년 만에 주색으로 병이 들어 세상을 뜨자, 혜제와 관련이 없는 어린 아이를 황제로 올리고 여태후는 대권을 장악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문제의 척비(戚妃)에 대해 끝을 보고자 했습니다. 인체(人彘)의 사지(四肢)를 수레에 매어 거열형(車裂刑)에 처하니 이처럼 처참한 죽음은 세상에 다시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척비에 대한 증오심이 깊었는지 이러한 악독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여태후는 중국의 3대악녀(三大惡女)로 꼽힙니다. 중국의 3대악녀로는 여태후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西太后)를 꼽습니다.
여태후(呂太后 BC 241~BC 180)는 실질적인 여황제가 되어 여씨 일족을 대거 등용하고 저항하는 황족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고 황제를 두 번이나 갈아치우며 천하를 호령했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기원전 180년에 그녀가 병사하자 여씨일족은 몰락하게 되고 유씨(劉氏)가 다시 황권을 찾게 됩니다.
질투와 증오, 과욕이 부른 참사를 기회한혜(綺回漢惠)를 통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이야기가 무척 길어져서 열감무정(說感武丁)은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https://t1.daumcdn.net/cafefile/pds104/4_cafe_2008_12_18_18_14_494a14808967f)
【字解와 用例】
【綺】 비단 기 실사(糸)部 8획.
1. 비단 기. 무늬가 있는 비단. 환기(紈綺).
2. 무늬 기. 문채. 채기(綵綺). 전(轉)하여 교묘하게 꾸미는 일.
3. 고울 기. 아름다움. 화려함.
기각(綺閣) : 화려한 누각(樓閣). 기관(綺觀). 기루(綺樓).
기년(綺年) : 젊은 나이.
기릉(綺綾) : 무늬가 있는 비단.
기어(綺語) : 교묘하게 꾸민 말. 아름다운 말.
기환자제(綺紈子弟) : 부귀한 집 자제. 기환(綺紈)은 무늬 놓은 비단과 흰 비단
을 말하고, 전(轉)하여, 화려한 옷감이나 의복을 말함.
【回】 돌 회 에운담ㆍ큰입구(口)部 3획.
1. 돌 회. ㄱ. 둥글게 움직임. 회전(回轉). ㄴ. 둥글게 굽음. ㄷ. 여기저기 걸어
다님.
2. 돌아올 회. 갔다 도로 옴. 회국(回國)-자기 나라로 돌아옴.
3. 돌아볼 회. 뒤를 봄.
4. 돌릴 회. ㄱ. 돌게 함. 방향을 다른 쪽으로 바꿈. 회선(回船).
ㄴ. 마음을 돌림. 뜻을 굽힘. 회용(回容)-법(法)을 굽혀서 용납(容納)함.
5. 간사할 회. 회사(回邪)-간사함.
6. 어길 회. 배반함. 서방불회(徐方不回)-서나라 지방이 배반하지 않거늘
7. 어그러질 회. 상위함. 구복불회(求福不回)-복을 구하는데 도리에 어긋나지
아니함.
8. 머뭇거리 회. 배회함. 배회(徘回).
9. 둘레 회. 주위.
10. 횟수 회. 일회(一回).
11. 멀 회. 빙 돌아 멂. 회원천리(回遠千里).
12. 피할 회. 회피함. 회피(回避). 회은(回隱)-피하여 숨음.
회갑(回甲) : 61세의 일컬음. 환갑(還甲).
회고(回顧) : 돌아다 봄. 지난 일을 생각하여 봄. 회상(回想).
회람(回覽) : 차례로 돌려 가며 봄.
회혼(回婚) : 혼인(婚姻)한 지 61년 되는 해.
【漢】 한나라 한 물수(水)部 11획.
1. 한나라 한. 대표적으로 유방(劉邦)이 진(秦)을 멸하고 세운 나라.
2. 물이름 한. 강이름. 한수(漢水).
3. 은하수 한. 은한(銀漢). 천한(天漢).
4. 사내 한. 남자의 천칭(賤稱). 촌한(村漢). 괴한(怪漢).
한방(漢方) : 중국에서 전래(傳來)한 의술(醫術).
한고조(漢高祖) : 한(漢)나라의 시조(始祖). 유방(劉邦). 초(楚)나라의 항우
(項羽)를 해하(垓下)에서 격파하고 제위에 올라 4백여 년의 왕조(王朝)를
창업(創業)하였음.
한강투석(漢江投石) : 한강에 돌 던지기. 효과가 없는 일.
【惠】 은혜 혜 마음심(心)部 8획.
1.은혜 혜. 인애(仁愛). 은덕. 인혜(仁惠).
2. 베풀 혜. ㄱ. 은혜를 베풂. ㄴ. 금전 같은 것을 줌.
3. 순할 혜. 유순함. 혜연(惠然).
4. 슬기로울 혜. 혜(慧)와 통함.
5. 꾸밀 혜. 장식함.
6. 세모창 혜. 날이 세모진 창 혜. 이인작변집혜(二人雀弁執惠)-두 사람이
작변을 쓰고 세모 창을 들고....
혜고(惠顧) : 은혜를 베풀며 돌보아 줌.
혜긍(惠肯) : 호의(好意)를 가지고 내방(來訪)함. 남의 내방의 경칭(敬稱).
혜서(惠書) : 남에게서 온 편지의 경칭. 혜찰(惠札).
혜화(惠和) : 온화함.
【說】 말씀 설ㆍ달랠 세ㆍ기뻐할 열 말씀언(言)部 7획.
1. 말씀 설. 언론 또는 의견. 정설(正說). 이설(異說). 사설(邪說).
2. 말할 설. ㄱ. 밝히어 말함. 해석함. 설명(說明). 해설(解說).
ㄴ. 서술함. 진술함. 연설(演說). ㄷ. 알림. 고함. ㄹ. 타이름 깨우침.
설유(說諭). ㅁ. 이야기함. 담화를 함. 담설(談說).
............................................................................................................
3. 달랠 세. 남에게 귀에 솔깃하도록 말하여 자기 의견에 따르게 함. 유세(遊說).
4. 머무를 세. 정지함. 세가(說駕)-어가(御駕)가 머무름.
.............................................................................................................
5. 기뻐할 열. 열(悅)과 통용. 열희(說喜). 학이시습지불역호(學而時習之不亦
說乎).
.............................................................................................................
6. 벗을 탈. 탈(脫)과 통용. 용탈질곡(用說桎梏)-질곡을 벗김이 이롭다.
《周易》
7. 놓아줄 탈. 사면함. 여복탈지(女覆說之)-네가 도리어 놓아 주도다. 《詩經》
설경(說經) : 경서(經書)를 설명함. 불경(佛經)을 설명함.
설득(說得) : 잘 설명하여 납득시킴.
설파(說破) : 내용을 밝히어 말함. 상대자의 이론(理論)을 깨뜨림.
세객(說客) : 유세(遊說)하러 다니는 사람.
열락(說樂) : 기뻐하고 즐거워함.
【感】 느낄 감 마음심(心)部 9획.
1. 느낄 감. 깨달을 감. 느껴 앎. 감각(感覺).
2. 감동할 감.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감읍(感泣).
3. 감응할 감. 감촉(感觸)되어 통함. 감응(感應).
감개(感慨) : 깊이 느끼어 탄식함. 마음속 깊이 사무치게 느낌.
감격(感激) : 감동하여 분발함. 대단히 감동함.
감구지회(感舊之懷) : 지난 일을 회상하여 감동한 회포(懷抱).
감오(感悟) : 느끼어 깨달음. 알아차림.
【武】 호반 무 그칠지(止)部 4획.
1. 호반 무. 무관(武官). 군인(軍人). 무인(武人). 무사(武士).
2. 굳셀 무. 무용(武勇)이 있음. 용감함. 무맹(武猛).
3. 군용(軍容) 무. 병위(兵威). 위력(威力).
4. 병법 무. 전술.
5. 병장기 무. 병기ㆍ무기. 무고(武庫).
6. 무사(武事) 무. 군사(軍事)에 관계되는 일.
무가(武家) : 대대로 호반(虎班)의 벼슬을 하는 집. 무관집.
무강(武强) : 굳세고 강함.
무단정치(武斷政治) : 무력(武力)으로 억압하여 전단(專斷)하는 정치.
무학(武學) : 무사(武士)가 닦아야 할 학문. 병학(兵學).
【丁】 넷째천간 정 한일(一)部 1획.
1. 넷째천간 정. 십간(十干)의 넷째. 오행(五行)으로는 화(火)에 속하고,
방위로는 남방에 배당함. 정해년(丁亥年).
2. 성할 정. 왕성함. 강성함.
3. 장정 정. 성년(成年)의 남자. 부역(賦役)에 징집(徵集)되는 남자. 정역(丁役).
4. 일꾼 정. 하인. 노동자. 포정(庖丁)- 백정(白丁). 마정(馬丁)-말을 돌보는
사람.
5. 당할 정. 일을 만남. 조우(遭遇)함. 정우(丁憂)-부모의 상(喪)을 당함.
6. 벌목소리 정. 말뚝박는 소리 정. 바둑두는 소리 정. 물방울 소리 정.
거문고타는 소리 정. 문두드리는 소리 정. 옥소리 정. 정정(丁丁).
정간(丁艱) : 부모의 상을 당함. 정우(丁憂).
정강(丁彊) : 젊고 기운이 있는 사람.
정구(丁口) : 인구(人口)ㆍ호구(戶口).
정남(丁男) : 장정. 청년.
정향(丁香) :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落葉灌木).
감사합니다. 백우 _()_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BE8354FB8B66A01)
첫댓글 천자문을 통하여 고대 중국의 역사를 더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천자문을 올렸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광대한 역사를 정리하려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니 읽어 보세요.
여태후의 잔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네요.![ㅜ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7.gif)
질투와 시기심, 보상심리, 야망이 이루어진 잔혹하고 참혹한 독부의 보복에 소름이 끼치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
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여태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입이 딱 벌어지는 느낌입니다.
천자문보다 중국의 역사 이야기가 더 흥미롭군요. ㅎ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_()_
명문가의 규수로 패현의 건![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같은 유방과 결혼하여 갖은 고생 끝에 황후의 자리에 올랐는데![흥](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57.gif)
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기대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뜻하지 않은 척비의 등장에 질투와 한은 하늘을 찔렀지요. 이 여인이 조금만 관후한 성품의 소유자였다면
수많은 공신들도 어이없이 팽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척비도 살아남기 위한 손을 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참혹한 일을 벌이고 권력을 탐하지만 내일은 다 도로 받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모두
여자의 한은 한 여름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여태후는 그 이상이네요.![^0^](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0.gif)
_()_
기회한혜(綺回漢惠) 담긴 글 잘 봤습니다.
여태후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천하의 명장 한신도 때려잡고, 개국공신도 처단한 강골이고 보면![^-^](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척비 쯤이야 갈아마셔도 분이 풀리지 않았겠지요. 보복이 너무 소름끼칩니다.
권력을 한번 쥐게 되면 휘둘러 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이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구분에 대해서 짚어 주셨고, 진시황의 천하통일과 이어진 분열,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앗](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5.gif)
, 통일후의 여후와 척비. 시![앗](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5.gif)
싸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궁중 암투는 여인들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초한전쟁 속에 싹 튼 갈등의 씨
사랑전쟁인 것 같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궁중생활... 시기, 질투, 중상, 모략 등이 판치는 세상이 궁중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끔찍한 일도 서슴치 않지요. 그 중에 여태후의 악행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악독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배신감 증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여인들의 궁중 암투,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전쟁이지요. 총애는 곧 권력이기에 시![앗](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5.gif)
전쟁은 죽음을 불사합니다.![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려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다음도 기대해 보세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이 싸움에 희생된 사람이 부지기수이나 제왕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늘 시기, 질투,
중상, 모략, 배신, 인간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권력이 좋다고 불나방처럼
지요. 척비의 소생이 권력을 잡았다면 저런 비극은 없었겠지요
나이들어 천자문을 외워보는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들러 재미있게 읽고나니 저절로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