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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학대학원2006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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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자료 스크랩 광개토대왕비와 진흥왕순수비
소망 추천 0 조회 62 10.03.20 17: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광개토대왕릉비문-중앙박물관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능비이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으며, 응회암(凝灰岩) 재질로 높이가 약 6.39미터, 면의 너비가 1.5미터이고, 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라고 된 부분으로 광개토대왕의 비석임을 알게 해주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또한 전한(前漢) 예서(?書)의 서풍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확인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청의 만주에 대한 봉금제도가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클릭하시면 원본사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져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래 위치의 북한산 순수비

▼중앙박물관내의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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