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1075m) 정도면 화려한 산세로 봐서 국립공원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법하다. 설악이나 지리산의 산세에 비해 웅장함이나 화려함 측면에서 속된 말로 꿀릴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자의 어설픈 복받침에 동행한 전문 산꾼들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지긋이 짓누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산세의 비범함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덩치가 웬만한 국립공원에 비해 턱없이 왜소한데다 그리 멀리 않은 거리에 제천 월악산이나 보은 속리산, 영주 소백산이 보란듯이 '국립공원'이란 명패를 달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데가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그랬다. 적어도 여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하고많은 봉우리는 비범함이 묻어 나왔다.
도읍을 자기 산자락에 두기 위해 서울의 삼각산과 자리다툼을 할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주흘산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 바로 문경새재와 조령산.
주흘산은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조령·鳥嶺)를 가운데 두고 조령산(1025m)과 마주보고 있다. 조령산은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과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한 능선. 흔히 주흘산을 두고 백
주흘산 깊은 골의 맑고 청아한 물이 한 방울씩 모여 이뤄진 높이 25m의 3단폭포인 조곡폭포. | |
문경새재는 바로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깊고 깊은 계곡길이다. 얼마나 험하고 깊었으면 1·2·3관문으로까지 나뉘어져 있을 정도. 예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던 문경새재는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던 길이었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에 이를 수 있는 길은 문경새재 이외에 죽령과 추풍령이 있었다. 죽령길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길은 가깝기는 했지만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어 대부분의 선비들은 문경새재길을 선호했다.
문경의 옛 지명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희(聞喜). 결국 과거급제의 꿈을 안고 걸었던 문경새재는 바로 고향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의 길이었던 셈이다.
산행은 문경새재 주차장~매표소~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대궐샘)~주능선~주흘산 주봉~주흘산 영봉~꽃밭서덜~제2관문(조곡관)~문경새재길~제1관문 순. 순수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길은 또렷하며 이정표 또한 친절하게 돼 있어 길찾기는 전혀 문제없다.
봄에 진달래가 지천인 꽃밭서덜. 지금은 공덕탑이 꽃밭을 이뤘다. | |
제1관문인 주흘관을 통과하자마자 우측 소로로 간다. 곡충골이다. '주흘산 3.8㎞'라고 적힌 이정표도 보인다. 왼쪽 저멀리 조령산, 오른쪽으론 주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흰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수와 그늘진 숲길은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이 맛에 많은 산꾼들이 계곡산행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곧 여궁폭포 갈림길. 폭포는 우측 제법 가파른 길로 250m 오르면 만난다. 바위절벽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높이가 20m인 이 여궁(女宮)폭포는 여자의 엉덩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선녀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폭포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숲으로 향한다. 계곡과 나란히 달리는 숲길 주변 절벽과 계곡 바위에 낀 이끼와 수많은 덩굴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계곡 또한 한 굽이 오르면 소와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35분 뒤 혜국사(惠國寺) 앞 갈림길. 혜국사는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파천했던 계기로 나라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잠시 들렀다 되돌아와 우측 주흘산 방향으로 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땀이 비오듯 흐른다. 실계곡을 건너면 산죽밭. 이 산죽길을 통과하면 너른 터에 닿는다. 공민왕이 행궁을 설치, 머물렀다는 대궐터다. 해발 850m인 대궐터 한쪽에선 샘터가 흐른다. 뒤돌아보면 조령산이 훤히 보인다.
평탄한 삼지구엽초 군락지를 지나 15분 뒤 벼랑끝 삼거리. 건너편 절벽 위 노란 원추리 군락이 눈길을 붙잡는다. 여기서 10분 뒤면 주흘산 주봉(1075m). 끄트머리 절벽에서 바라보는 발아래 지능선들의 행렬, '과연!'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날이 흐릿해 우측 뾰족봉인 꼬깔봉과 조령산 끄트머리가 보일 뿐이지만 맑은 날이면 월악산 운달산 백화산 소백산도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장 높은 주흘산 영봉(1106m)까지는 여기서 북으로 35분 거리. 좁다랗고 아기자기한 숲길이다.
지적 하나. 전망이 막힌 영봉은 주흘산의 명실상부한 최고봉이지만 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는 주봉이다. 주봉이란 산세를 평할 때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곳을 의미하므로 주흘산 주봉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
영봉 직전 갈림길. 영봉은 우측 하늘재 방향으로 30m 거리에 있다. 정상석이 있으므로 확인할 것. 다시 내려와 왼쪽 제2관문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죽길이다. 30분 뒤 계곡물과 만난다. 얼마나 더웠으면 계곡 위쪽에선 아예 벗고 몸을 담그는 산꾼들도 보인다. 주흘산의 명물 꽃밭서덜(서덜은 너덜의 사투리)은 여기서 7분 거리. 너덜지대의 돌을 이용해서 세운 작은 공덕비가 수백개나 서있다. 봄에 진달래가 만개해서 꽃밭서덜이라고 명명됐다지만 작은 돌탑이 마치 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제부턴 편안한 계곡산행. 나란히 달리기도 하고, 수 차례 건너기도 한다. 40분 뒤 제2관문인 조곡관 안내소. 조곡문과 조곡폭포를 보고 새재길을 따라 걷는다. 매표소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며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5분 소요된다.
# 떠나기전에
# 주변 문경온천·'태조 왕건' 세트장
드라마 '태조 왕건' 세트장 입구에 만개한 홑왕원추리꽃. | |
문경 주흘산은 산행뿐만 아니라 볼거리 먹을거리와 명물 온천이 모두 반경 10분 거리에 모여 있어 산행이 아니라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주흘관 왼쪽 용소골에는 하늘나리꽃이 만발한 가운데 드라마 '태조 왕건' 야외세트장이 있고 이어 조곡관까지는 길손들의 객사였던 조령원터,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던 교귀정과 조선시대 한글로 된 산림보호비인 '산불됴심비', 높이 45m의 3단 폭포인 조곡폭포 등이 있다. 최근에는 퇴계 다산 율곡 매월당 등이 이곳을 넘나들며 남긴 주옥같은 한시를 자연석에 새겨 놓아 운치를 더해준다.
매표소 옆 새재박물관, 그 인근의 도자기전시관과 유교문화관이 놓쳐선 안될 볼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집도 가까이 있다. 새재 관리사무소 앞 '새재 초곡관 문경약돌돼지'(054-571-2020)집에선 문경의 명물인 약돌돼지를 맛볼 수 있고, 그 아래 '소문난 식당'(054-572-2255)에선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경의 전통 건강식인 묵조밥도 즐길 수 있다.
문경새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문경온천은 새재와 함께 문경관광의 양대 축.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가지 온천수를 한 욕탕에서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황토빛의 칼슘 중탄산천과 맑고 투명한 알칼리 온천수가 바로 그것으로, 첫 경험자들은 아주 신기해 한다.
[산&산](29)경북 문경 주흘산
역사에 있어 가정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면 그 또한 의미가 적지않다 하겠다. 경북 문경의 주흘산(1,106m)은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최후 방어선은 충북 충주의 탄금대였다. 여기에 조선의 장수 신립은 8천여명의 병사와 함께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을 맞았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용감히 싸웠지만 결과는 조선의 대참패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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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이 첩첩한 '산의 나라' 문경에서도 내로라 하는 산을 제쳐 놓고 진산의 자리에 올라 있는 주흘산. 오른쪽 둥근 바위봉이 잠두봉으로 불리는 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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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군사는 수적으로 열세한데다 급조한 오합지졸이 대부분인 반면 왜군은 잘 훈련되고,조총이라는 신식무기로 무장한 '막강전력'이었다는 것. 이럴 경우 분지인 탄금대에서 정면승부를 펼치는 것보다 지형지물을 이용,기습 또는 매복전을 치르는 것이 더욱 현명한 병법이라는 것. 사정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립은 천혜의 요새인 조령을 버려두고 무모한 전투를 벌이다 패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막막한 세월이 흐른 지금,주흘산에 흐르는 역사의 회한은 바로 그 조령이 주흘과 어깨를 겯고 있는 영마루인데서 비롯한 것이다.
이곳 출신의 시인 초운 이우철은 이렇듯 복잡다단한 감회를 아래의 시로 읊었다.
주흘산은 문경읍을 병풍처럼 감싸며 구름 높이 솟아 있다. 용의 이빨처럼 뾰족한 하늘금은 기세도 당당해 '산의 나라' 문경에서 내로라 하는 뭇 산들을 제치고 진산의 반열에 올라 있다.
산은 이렇듯 면모만 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긴긴 역사의 길목을 지켜온 문경새재도 품고 있어 여느 산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수많은 사화(史話)와 길손의 갖가지 사연은 곳곳에 산재한 흔적과 계곡의 물소리,능선의 바람소리로 만날 수 있다.
드러낸 것보다 감춰놓은 것이 더 많은 산은 그래서 마음으로 걸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행은 다양한 코스로 이뤄진다. 그 중 가장 인기있는 코스가 곡충골로 해서 주봉으로 오르는 혜국사 방면이다. 주흘산을 처음으로 찾는다면 권할 만한 코스다.
산&산에서 소개하는 코스는 기존의 등로로 올라본 경우나 산을 색다르게 타고 싶은 사람들에게 알맞다. 모 산악전문지에도 소개됐던 이 코스는 문경읍에서 본 하늘금 왼쪽의 뾰족한 봉우리(관봉 1,039.1m 일명 고깔봉)와 주봉(1,075m)과 영봉(1,106m)을 한꺼번에 오르는 게 특징이다. 구체적 경로는 문경관광호텔~관봉(고깔봉)~주흘산 주봉~영봉~꽃밭서들~제2관문~제1관문~새재매표소 순이다.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30분쯤 되며 휴식시간을 포함한다면 6시간쯤 잡아야 할 것이다. 이 코스는 그러나 산불 경계령이 내리면 통제될 가능성이 높아 입산 전에 허용여부를 알아보고 오르는 것이 좋다(문경시청 문화관광과,산림과 산림보호 담당자 054-550-6060,6312).
들머리는 문경읍 중초리 문경새재공원 입구 문경관광호텔이다. 호텔은 주차장 매표소를 지나 새재매표소에 닿기 전 200m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50m만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보인다.
호텔로 돌아가는 지점에 약돌돼지식당과 목련가든민박이 있고 맞은 편엔 공원관리사무소가 있다.
산길은 관광호텔 왼쪽의 돌계단으로 올라 호텔 뒤편으로 나아가면 무덤 있는 능선으로 열린다. 본격적인 산행은 무덤을 지나 외길 능선으로 오르면 비로소 시작된다.
고깔을 덮어쓴 듯 뾰족한 형상의 관봉은 들머리에서 2시간쯤 걸린다. 길은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생각하면 등로를 이어가는데 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된비알로 오르는 구간이어서 가쁜 숨을 각오해야 한다. 봉우리 못 미친 바위지대는 오른쪽 아래가 수십 길 절벽이어서 조심해야 할 지점이다. 들머리에서 하초리갈림길까지 35분,로프 걸린 지점까지 35분, 정상까지 20분쯤 걸린다.
관봉에서 주봉으로 이어지는 칼날 마루금은 이번 산행의 백미다. 곧추 세운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지는 문경의 산수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행히 등로는 절벽을 피해 안전하게 나 있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위험은 없다.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과 비슷해서 잠두봉이라고 불리는 주봉은 주변의 산줄기를 호령하는 산세가 인상적이다. 남북으로 날개 같은 긴 능선을 거느리며 동쪽 하늘로 박차고 오르는 모습은 호쾌하기 그지없다.
주봉은 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시원한 산그리메가 압권이다. 일대의 뭇 산은 물론 멀리 도솔봉과 소백산도 한눈에 조망된다.
주흘산은 다른 산과 달리 주봉이 상봉이 아닌 것이 눈길을 끈다. 상봉은 주봉에서 북쪽으로 1㎞쯤 떨어져 있는 영봉이다. 산 아래에서는 영봉을 볼 수 없어 근대적인 계측이 이뤄지기 전까지 주봉이 상봉의 역할을 대신했었다.
주봉에서 시간이 마땅찮다면 영봉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하산할 수 있다. 조곡골로 해서 제2관문으로 가면 30분쯤 단축할 수 있고 곡충골로 해서 제1관문으로 바로가면 1시간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상봉인 영봉은 주봉에서 35분쯤 걸려 닿는다.
영봉에서의 하산은 영봉을 되돌아나와 이정표의 제2관문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영봉에서 직진하면 부봉이나 하늘재로 가게 된다.
곳곳에 세워놓은 돌탑군이 인상적인 꽃밭서들은 내리쏟는 능선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산죽밭과 합수지점을 지나 만난다. 이후 길은 수레가 다닐 만큼 넓고 반반하다. 급하게 서둘지 않아도 30분이면 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매표소까지 3㎞는 그 옛날 선비와 장사꾼들이 무수히 오르내렸던 애환 짙은 영남대로다. 길 곳곳에 당시의 문화 유적지가 즐비해 하산길이 지겹지 않다. 특히 지금은 탐방 열기가 식었지만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드라마 촬영세트장도 만나볼 수 있어 발길을 즐겁게 한다. 새재매표소까지 4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