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리 텔리비전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바지 석장을 묶어 3만9,800원에 드립니다’라는 코리아홈쇼핑의 광고방송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8분, 4분으로 구성된 코리아홈쇼핑의 의류 브랜드 잭필드 광고방송은 하루에 여러 방송 채널을 통해 70시간이 넘게 전파를 탄다.
공중파 아닌 케이블TV를 통해서만 광고가 나가지만 잭필드 바지는 2001년 첫방송을 시작한 이래 40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대한민국 남성의 20%는 잭필드 바지를 입어본 셈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도 2,500억원. 1만장만 팔려도 ‘대박’이란 이름이 붙는 의류업계의 현실에 비춰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치지만 박사장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인포머셜(정보성 광고) 홈쇼핑’을 통해 잭필드 신화를 만들어낸 박사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경영철학을 들었다.
-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홈쇼핑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뛰어드셨는데,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습니까.
“삼성물산에 근무하면서 맡은 업무는 해외영업 파트였습니다. 특히 미국에 자주 갔는데 홈쇼핑을 접할 기회가 많았죠. 괜찮은 시장이다 싶어서 그쪽 상황을 공부해 봤더니 QVC 같은 대형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포머셜 홈쇼핑이더군요.
수십년 역사의 미국과는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국내에서도 케이블 TV 시장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인포머셜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 인포머셜 홈쇼핑 업체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최대한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고 광고해서 잘 팔고 있으면 다른 인포머셜 업체들의 부당행위 때문에 도매금으로 비난 받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가장 억울한 것은 타업체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자꾸 일등 브랜드인 잭필드 바지 광고가 비춰지는 일이었어요. 워낙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기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 인포머셜 업체들이 대부분 도산하고 현재 남은 업체들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코리아홈쇼핑만 끄떡없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직접 제조한 상품들을 판다는 데에 강점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TV홈쇼핑 업체들도 하지 못하는 부분이죠. 잭필드 바지도 그렇고, 최근 뜨고 있는 마르조를 비롯한 의류 브랜드들은 중국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제품들입니다.
디자인이나 품질에서 유명 브랜드 제품과 큰 차이가 없는 상품을 위주로 방송을 편성한다는 전략도 주효했습니다.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니까 바로 반응이 오더군요. 다른 인포머셜 업체들은 중소기업의 물건을 소싱(구매)해 팔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고, 소비자 이목을 끌어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 TV홈쇼핑은 방송위의 심의를 받는데, 인포머셜 홈쇼핑은 어떻습니까.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는 인포머셜 홈쇼핑은 케이블 채널의 광고 방송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사전심의를 받은 녹화 테이프를 통해서만 방송할 수 있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쇼핑호스트나 모델의 과장광고나 말실수의 위험이 있는 생방송 TV홈쇼핑보다 소비자에게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TV홈쇼핑은 사후심의를 거쳐 문제점이 나타나도 담당자 문책이나 간단한 사과방송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거든요. 우리는 애초 문제점이 있으면 방송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 ‘3장에 3만9,800원’이라는 카피는 코리아홈쇼핑의 얼굴이 됐습니다. 굳이 가격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뭡니까.
“저가정책은 인포머셜 홈쇼핑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한시간씩 방송하는 TV홈쇼핑이 고객에게 상품의 장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데 비해 우리는 8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구매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정한 가격이 3만9,800원입니다. 바지 한장에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기 때문에 고객이 오래 생각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거죠. 모험이었지만 성공했고, 이제는 ‘아르마니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잭필드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저가정책과 후불제로 돌풍
- 코리아홈쇼핑은 방송과 인터넷쇼핑몰에서 모두 후불제를 채택했는데.
“2001년 4월, 처음으로 후불제를 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모두 반대했습니다. 판매대금을 회수하는 데 한달 넘는 시간이 걸리고, 게다가 우리는 제조업까지 하는 입장이라 없는 자금도 끌어모아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접 입어보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의류제품에서는 후불제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에 밀어붙였습니다. 결과적으로 2000년에 100억원이던 매출이 후불제 시행 후 300% 이상 뛰었습니다.”
- 선불제를 실시하고 있는 TV홈쇼핑들도 일부 짓궂은 소비자들로 큰 피해를 봅니다. 판매대금 회수는 문제가 없는지.
“우리 회사는 전국에 외상고객을 항상 40만명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번 달에 들어오는 대금은 지난 달에 물건을 산 사람들이 결제한 금액이죠. 후불제를 시행하고 난 뒤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 사회가 아직 살 만하다’는 것이었어요.
대금 미회수율이 2%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회사 모토도 ‘고객을 신뢰하자’로 정했습니다. 고객을 믿으면 고객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경험적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반품률도 시간이 갈수록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11.8% 선인데, TV홈쇼핑사들이 20~30%의 반품률인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죠.”
유통 채널 통합으로 시너지 기대
- 회사의 ‘챌린지20’이라는 경영혁신 캠페인이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챌린지20은 효율을 20% 높이고, 비효율을 20% 감소시킨다는 기업문화 개선 캠페인입니다. 통신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고객들을 직접 상대하는 텔레마케터와 배송직원입니다. 결국 그들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400명에 달하는 텔레마케터들을 정식직원으로 채용하고 직업 환경 개선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훼미리넷을 통해 ‘전용 택배차량 운영’을 실시키로 하고 200대를 운행중인데 신규고객 확보와 고객만족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챌린지20 캠페인을 통해서만 20% 이상의 매출상승 효과가 기대됩니다. 결국 노, 사, 소비자 모두 이익인 셈이죠.”
- 얼마 전 회사를 신유통 그룹으로 키우겠다고 공표하셨는데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의 유일한 유통 채널이 홈쇼핑 방송이었습니다. 성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300만명이 넘는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카탈로그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제품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양질의 데이터베이스 덕분인지 꾸준히 2억원이 넘는 일일매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후불제 인터넷쇼핑몰인 점보코리아(jumbokorea.co.kr)를 지난 4월에 오픈했습니다. 이 세개의 유통 채널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면 초대형 유통그룹으로 성장하는 것도 막연한 꿈은 아니라고 봅니다.”
- 향후 종합 홈쇼핑으로 회사를 바꿀 계획도 있습니까.
“현재 있는 TV홈쇼핑 5개사만으로도 종합 홈쇼핑 시장은 포화상태라 생각합니다. 사실 TV홈쇼핑 후발주자들은 순익기준으로 봤을때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월등히 적은 품목을 취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앞서고 있는 셈이죠. 홈쇼핑이 등록제로 바뀌어서 우리가 인가 사업자가 되더라도 전문적인 부분에만 치중할 생각입니다.
의류와 중저가 생활제품을 위주로 우리가 가장 자신있는 부분만 해나갈 겁니다. 잭필드 같은 제품 10개만 만들어 낸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회사 이름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몰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박인규 사장 프로필
1960년 부산 출생
1986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1985∼91년 삼성물산 해외사업부 근무
1994년 우영패밀리 대표이사 사장
2000년 (주)코리아홈쇼핑 대표이사 사장
2003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