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郊外(교외)
Ⅰ
無毛(무모)한 生活(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
더우기 이렇게 숱한 풀버레 울어 예는 西(서)녘 벌에
한 알의 圓熟(원숙)한 果物(과물)과도 같은 붉은 落日(낙일)을 刑罰(형벌)처럼 등에 하고
홀로 바람 외진 들길을 걸어 보면
이젠 자꾸만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들의 생각밖엔 없다.
멀리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그 구름 포기 하나 떠오름이 없다.
Ⅱ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풀밭엔 꽃 잎사귀,
과일밭엔 나뭇잎들,
이젠 모든 것이 스스로의 무게로만 떨어져 오는
山(산)과 들이 이렇게 無風(무풍)하고 보면
아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하늘, 푸르기만 하던 바다, 그 보다도
젊음이란 더욱더 답답하던 것.
한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 가는
피비린 終焉(종언)처럼
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Ⅲ
바람이어.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北(북)녘의 검은 山脈(산맥)을 넘나들던
그 無形(무형)한 것이어.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무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愛撫(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어.
불어 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불어 다오. 바람이어.
아, 사랑이어.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FALL
앞뜰에 능금이 익어서 떨어진다. 無數(무수)한 나뭇가지 그 끝에서─ 그리고 그냥 風靡(풍미)를 계속하던 비와 바람 속에서만 몇철 ──스스로 무르익어 體重(체중)들을 마련한 능금들이 뚝뚝 무르익어서 떨어진다.
玄關(현관)을 차고 나가 鋪道(포도)에 이르르면, 스스로의 무게만한 뉴톤의 가벼운 나무잎들이 맴돌며 떨어진다. 나는 지금 내가 선 나의 높이에서 따 위에 이르는 距離(거리), 그 조그마한 空間(공간) 속의 旋回(선회)까지를 許諾(허락)받지 못한 채 垂直(수직)으로 떨어진다. 太陽(태양)과 그리고 無數(무수)한 그의 衛星(위성)들은 다시금 불이 붙는 南(남)녘의 바다로──경사가 진다.
아, 지금 모든 것은 무르익어서 떨어진다. 높이가 있는 것, 그 一切(일절)의 것이 한결같이 地上(지상)으로 떨어져 돌아온다. 나무잎과 果物(과물)과 太陽(태양)과 해바라기와 그리고 有形無形(유형무형)의 온갖 것들이 무르익어서 떨어진다, 시들어서 떨어진다. 아니 이 殺伐(살벌)한 季節(계절), 그 全體(전체)가 그대로 무르익어서 떨어진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능금
가을을, 듣고 있었다.
지금 저기 저렇게 殺伐(살벌)한 나뭇가지에 익어 있는
(마치-어디론가 멀리 기울어만 가는 태양의
마지막 수확처럼 가지 끝에 익어 있는)
저 향 짙은 體重(체중)에 귀를 기울이고
뵈는 것보다도 더 많은 가을을
듣고 있었다.
…맨 처음엔 몹시도 가까운 距離(거리)에서 마구 설레는
一陣(일진)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다음엔 그 바람 소리가 쓸리는 데로 흩어지는
無數(무수)한 나무잎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마지막엔 하나의 크낙한 鍾(종)이 내는 音響(음향)과 같은
해맑은 소리가 到處(도처)에서 들려왔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바람 부는 날
오늘따라 바람이
저렇게 쉴 새 없이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희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풀잎에
나뭇가지에
들길에 마을에
가을날 잎들이 말갛게 쓸리듯이
나는 오늘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희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아 지금 바람이
저렇게 못 견디게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또 내가
내게 없는 모든 것을 되찾고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花甁風景(화병풍경)
그는 나이어린 妊婦(임부)모양
아래가 불러 앉아 있었다.
모란이 花紋(화문)을 이룬
붉고 또 푸른 커틴을 제치면
아침 햇살에는 사뭇
눈부신 빛깔을 머금고,
옛날──아 실로 먼 옛날
나이어린 어머님이 나를 배듯
꽃 항아리는 妊婦(임부)모양
배가 아래로 불러 앉아 있었다.
──어느 아침 유달리 푸르러 있는
그 花甁(화병)의 아래를 쓰다듬으며
나는 차라리 풀잎같은 물이 올라
어느 窓邊(창변)에 앉아 있었다.
영원히 分娩(분만)할 수 없는 것을 하나
내가 孕胎(잉태)하고 앉아 있었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果木(과목)
果木(과목)에 果物(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事態(사태)처럼
나를 驚愕(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薄質(박질) 붉은 黃土(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滅裂(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恍惚(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恩寵(은총)을 지니게 되는
果木(과목)에 果物(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事態(사태)처럼
나를 驚愕(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詩(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果木(과목) 奇蹟(기적) 앞에 視力(시력)을 回復(회복)한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가을 序說(서설)
자아, 이젠, 또 가을이 왔습니다.
자아, 이제, 또 가을이 와서
마른행주로 琉璃(유리)그릇을 닦아 내듯
大氣圈(대기권)의 물기를 말끔이 닦아 냈읍니다.
우리들의 眼球(안구)를 닦아 냈읍니다.
자아, 이젠, 또 가을이 왔읍니다.
푸우런 푸성귀가 그대로 살아 있는
아침 밥床(상)을 미뤄 내거든
어린것들의 손목이라도 잡고, 아내의 팔목이라도 끌며
가까운 들길에라도 나가 보십시오.
벌써 들에는 온갖 곡식들이 무르익어 가고 있읍니다.
昆蟲(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반짝반짝 마른 햇볕에 날리고 있읍니다.
자아, 이젠, 또 가을이 왔읍니다.
무좀과 結膜炎(결막염)의 여름은 가고
湯(탕)을 들러 나온 우리들도 푸근한 內衣(내의)를 갈아입었읍니다.
果園(과원)의 과일들도 모두 또다시 視力(시력)을 回復(회복)했읍니다.
자아, 이젠, 또 가을이 왔읍니다.
눈을 감고는 못 배길 가을이 왔읍니다.
귀가 없이는 못 견딜 가을이 왔읍니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處暑記(처서기)
處暑(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天地(천지)를 울리던 우레 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山脈(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 보다.
역시 나는 子正(자정)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時間(시간)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이는 소리라도 듣게 되나 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서는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 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處暑(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은 깨어 있다가
저 우레 소리가 山脈(산맥)을 넘고 설레이는 벌레 소리가
江(강)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세상이 琉璃盞(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메밀꽃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메밀꽃을 보러 간다.
섬돌가 귀뜨라미들이
낡은 古書(고서)들을 꺼내 되읽기 시작할 무렵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나는 곧잘 마을 앞 메밀밭의
메밀꽃을 보러 간다.
病(병)든 수숫대의 가슴을 메우는
그 수북한 메밀꽃 물결,
때로는 거기 누워서
울고도 싶은 마음.
아, 때로는 또 그 속에 목을 쳐박고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꽃상여
喪服(상복)은 딱히 가마귀빛〔烏色(오색)〕이어야만 하는가.
상여는 또 꼭 흰새〔白鳥(백조)〕 빛이어야만 하는가.
파랑새빛이면 어떻고, 붉은빛이면 어떻고,
일곱 가지 빛 찬란한 새〔七面鳥(칠면조)〕 날개빛이면 또 어떤가.
한 평생 恨(한)으로 살다가
떠나가는 길, 그 마지막 길,
千里萬里만(천리만리) 마다 않는 五色挽章(오색만장) 뒤따르는
눈부신 꽃상여면 또 어떤가.
진정 어떤가.
『고향은 땅끝』, 1991, 문학세계사
고향은 땅끝이었다
고향은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최남단,
海南半島(해남반도), 그 중에서도
맨 꼬리인 花源半島(화원반도),
그 너머는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바다 같고, 하늘 같았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깃발이었다.
다만 바닷바람에
찢어지는 깃발이었다.
찢어져서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고향은 땅끝』, 1991, 문학세계사
달밤
아 얼마만인가
손바닥을 펴
달빛을 받아본다
아 이 얼마만인가
푸른 달빛은
두 손바닥 위에 철철 넘쳐서
풀섶으로 엎질러진다
아 이 얼마만인가
삼십 년쯤 전에
아니 한 사십 년쯤 전에
나는 곧달 달밤이면
이런 짓을 했었지
동리 밖 오솔길로 나와
이런 짓을 했었지
달이 뜨는 가을밤엔
이런 짓을 했었지
『고향은 땅끝』, 1991, 문학세계사
찔레꽃
울타리마다
울타리마다
찔레꽃이 피었다.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참고
찔레꽃이 피었다.
이런 계절엔
슬픔도 오히려
맑은 강물,
기진맥진하도록
찔레꽃이 피었다.
하늘은
하릴없이 푸르기만 한데
구름도 하릴없이
흘러만 가는데
오늘도
슬픔처럼
찔레꽃이 피었다.
울타리마다
울타리마다
찔레꽃이 피었다.
『꽃상여』, 1987, 전예원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街路樹(가로수)의 가지 끝에 피어있던 나무잎들,
그 물오른 皮膚(피부)와 葉脈(엽맥)의 綠素(녹소)들......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손처럼 품안으로 기어들던
부드러운 바람결,
흩어진 나뭇잎에 묻혀 울던 벌레울음,
아침과 저녁을 가려 壁(벽)들을 울리던
鐘(종)소리──그 녹쓴 쇠북의 늙은 餘韻(여운)들...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손을 모은 버릇들,
神(신)이 부른다는 것들 그 一切(일체)를 그냥
순순히 그대로 보내고 싶던 마음......
아, 진정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無數(무수)한 事物(사물)과 뜻깊은 哲理(철리)들
人間(인간)의 全部(전부), 하늘과 땅의 全體(전체),
宇宙(우주)의 그 一切(일체),
그와 비슷한 巨大(거대)한 것들......
그러나 아
다시 돌아와 깨닫고 보면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한낱 些少(사소)한 것들,
人間(인간)의 一部(일부), 한해의 側面(측면),
感傷(감상)이 逍遙(소요)하는 季節(계절)의 一部(일부),
그와 비슷한 微粒(미립)의 破片(파편)들......
落葉(낙엽)의 부스러기......休紙(휴지)의 부스러기......
『한국전후시집』, 1961, 신구문화사
車窓 風景(차창 풍경)
잘못 감아온 年輪(연륜)은
손가락 깨물던 어제의 終業日(종업일)로──
오늘의 즐거운 내 旅行(여행)은
三等(삼등) 列車(열차)에서 비롯된다.
사뭇 우둔한 여름,
풀버레 숨찬 한더위 車窓(차창)에서
구름 같은 사람들.
칡 순이 실뱀처럼 기어나리는 山峽(산협)에는
고향을 가늠할 里程標(이정표) 하나 볼 수 없고
누구를 가라는
黃土(황토) 피는 新作路(신작로)냐.
하늘 푸르고,
들 푸르러,
외로이 남는 두 줄기 레루에서
愛國(애국)을 의논하며 기웃둥거리는 것은
그래도 가난한 내 나라 사람들.
벼 피는 地平線(지평선)에
노을은 가랁고,
어데선지 또 한 송이
最後(최후)를 信號(신호)하며 가는 신음소리......
아 어젯밤 조국에는
山(산)을 잃은 歷史(역사)가 마련이더니.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昆蟲 學者(곤충 학자)
나는 어느 날 어느 昆蟲 學者(곤충 학자) 한 분의 宅(댁)을 방문하였다. 일찍이 ‘一生(일생)을 벌레와 함께 살기로 作定(작정)하였다」는 이 老學者(노학자)의 말을 나는 무슨 人生哲學(인생철학)처럼 귀담아 들으며 웬일인지 視線(시선)은 자꾸만 그 老學者(노학자)의 書齋(서재) 四面(사면)에 붙어 있는 昆蟲採集(곤충채집)의 額子(액자)들로 向(향)하였다. 그 額子(액자)들 속에는 갖가지 昆蟲(곤충)의 아름다운 날개들이 핀에 꽃인 채 푸두둑거렸다.
四面(사면)이 鬱蒼(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속에 그 昆蟲 學者(곤충 학자)의 집은 있었고 더욱이 書齋(서재)는 높은 二層(이층)에 位置(위치)한 탓인지 언젠가 한 번은 그 壁(벽)에 걸린 昆蟲(곤충)의 날개로 하여금 이 老學者(노학자)의 家屋(가옥)은 기어코 어디론지 푸두둑 푸두둑 날아가버릴 것 같은 氣勢(기세)를 보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내 四肢(사지)에도 크낙한 昆蟲(곤충)의 날개들이 돋아나고만 있는 것 같은 錯覺(착각)을 일으켰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가족전
어느 心理學者(심리학자) 한 분이 그의 硏究(연구) 材料(재료)를 위해 어느 날 그들의 아마추어 家族展(가족전)을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家族(가족)은 國民學校(국민학교) 兒童(아동)에서부터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모두가 太陽(태양)만을 그려야 한다는 書題(서제)를 제시해 주었읍니다.
家族展(가족전)의 準備(준비)가 시작되자 國民學校(국민학교)의 꼬마들은 一齊(일제)히 그중 환하고 붉은 크레용들을 다투어 집어들고 커다란 太陽(태양)들을 그리기 시작하였읍니다. 그것은 끝없는 바다의 水平線(수평선)에서나 아득한 풀밭 그 땅끝에서 새로이 솟아오르는 그러한 밝고 아름다운 太陽(태양)들이었읍니다.
戰爭(전쟁)에서 돌아온 큰 아들과 大學(대학)에 在學(재학) 中(중)인 둘쨋놈은 웬일인지 숯덩이처럼 새카만 크레용들을 집어들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太陽(태양)이랍시고 둥근 것들을 그리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太陽(태양)이 아니라 흡사 커다란 숯덩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되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도 家族展(가족전)이 열리기 전에 더욱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읍니다. 이 집에서 가장 늙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太陽(태양)을 그리지도 못한 채 얼떨떨해 있었읍니다. 까닭인즉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太陽(태양)이란 것이 도대체 어떤 形像(형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빛깔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이미 잊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성룡 시선』, 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신의 餘滴(여적)
나는 한 방울
神(신)의 餘滴(여적)
하필이면 그것을
韓半島(한반도) 고달픈 땅에
떨구어 주셨음을
神(신)에게 감사한다.
고달픈 歷史(역사)를 지녔으나
진한 핏줄이 면면한
韓半島(한반도) 그 중에서도
海南半島(해남반도)의 땅끝마을
가난한 땅에
한방울 남은 神(신)의 餘滴(여적)
떨구어 주셨음을 하늘과 땅에 감사한다.
그것은 한낱
바닷가 寒村(한촌)의
물거품이었지만,
그것은 또 황토언덕 풋보리밭 이랑의
이슬이었지만
나는 그 한방울 神(신)의 餘滴(여적)에
감사해 한다.
『풀잎』, 1998, 창작과 비평사
동행
두 사람이 아득한 길을 걸어왔는데
발자국은 한사람 것만 찍혔다
한때는 황홀한 꽃길 걸으며 가시밭길도 헤치며
낮은 언덕 높은 산도 오르내리면서
한 사람 한눈 팔면
한 사람이 이끌며 여기까지 왔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달프기도 했던 평행의 레일 위에
어느덧 계절도 저물어
가을꽃들 피기 시작한다
『풀잎』, 1998, 창작과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