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맑음. 오후는 덥다.
다시 차를 몰고 달려간다. 우리의 목적지는 애리조나 주의 페이지(Page)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거번먼트 캠프(Government Camp)였으나 1936~1943년 미국의 USBR(United States Bureau of Reclamation)의 국세청장 존 C. 페이지(John C. Page)의 이름을 따서 변경되기에 이르렀다.
지형이 파웰 호수와 비슷해진다. 파월 호(영어: Lake Powell)는 미국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의 경계에 있는 콜로라도 강에 있는 저수지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바위들이 특이하다. 황량한 들판에 오래된 도로를 달린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98번 도로를 달려간다.
언덕위에 경찰차 한 대가 보인다. 그 순간 오른쪽에서 앤터로프 캐년 나바호 투어(Antelope Canyon Navajo Tours)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 방문하려고 했던 앤터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이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다. 차를 돌렸다. 투어를 하고 갈 수 있으면 하고 가기로 했다.
원래는 페이지 마을에서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로우 투어와 어퍼 투어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져 있다.
로어 투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에서 가까웠다. 주차장이 넓다. 들판이 뜨겁다. 차를 세워두고 매표소로 향했다. 투어를 지금 신청할 수 있단다.
입장료는 두당 71달러다. 켄스 투어 예약이다.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한다. 화장실을 다녀온다. 간이 화장실로 시설이 부실하다. 입장표를 잃어버려 한바탕 소동이 난다.
화장실에서 찾았다. 성조기와 나바호 족의 깃발이 나부낀다. 안내판을 쳐다본다. 앤터로프 캐년 나바호 투어(Antelope Canyon Navajo Tours)는 애리조나 주 페이지에 위치한 이 장소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립공원 1위인 그랜드 캐년과 마찬가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나바호족이 관할하는 곳이다. 나바호 족인 가이드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나바호족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종족이다.
앤터로프 캐년은 어퍼 캐년과 로어 캐년으로 나뉜다. 두 투어는 시작하는 부분부터 차이가 있다. 어퍼는 별도의 차량을 타고 주차장에서 캐년의 입구까지 이동하는 것이고 로어 캐년은 그냥 도보로 걸어서 이동한다.
어퍼는 반대쪽 까지 갔다가 걸어서 되돌아오고 로어는 반대쪽으로 빠져나가서 주차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실질적인 소요시간 자체는 아주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 어퍼 캐년 쪽이 좀 더 좁다보니 북적이는 느낌이 많이 난다.
전체적인 느낌은 어퍼나 로어나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한다. 바위 모양이 다를 뿐 사진을 찍다보면 무수히 사진을 찍게 되는 건 똑같다.
어퍼 캐년은 땅 위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평한 길을 걷는다면 로어 캐년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땅 밑에 있는 v모양의 지형이라 조금 이동하는데 힘이 들고 어퍼에 비해 걷는 거리도 길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로어를 선택했다. 가격이 좀 저렴하다. 오후 3시 30분 남자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점검하고 데리고 간다. 가이드는 친절하고 한국어도 제법 하고 전통악기도 잘 분다.
조심해서 갈라진 틈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내부에서 친절한 가이드분이 직접 카메라 설정법도 알려주고 한사람씩 찍어주기도 해서 여유있어 좋았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진한 주황색을 띤 위로부터 어두운 푸른색과 보라색의 바닥까지 빛과 색의 대조를 이뤄내는 캐년의 황홀한 풍경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벌어진 바위 틈 사이로 강렬하게 비쳐오는 빛의 예술이 아름다운 기둥을 만들고, 물의 흐름을 연상하는 비탈의 아름다운 유선이 오랜 세월 속에 만들어온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한다.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앤털로프 캐년은 늘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드물게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날씨가 안 좋을 때면 이곳을 봉쇄하곤 한다.
또한 이곳에 날씨가 맑다 하더라도 캐년 부근의 상류지점에 비가 온다면 이 계곡이 침수될 위험이 있어서 입장을 제한한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할 때면 반드시 날씨를 체크해 보란다.
당일 이곳의 입장 여부는 나바호 족 관리국이 결정한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홍수에 의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방문할 수 없고 반드시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이곳을 들어갈 수 있다. 앤털로프 캐년은 오묘하고 환상적인 빛의 예술이 있는,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죽기 전에 가고 싶어 하는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Antelope Canyon에서 벌어지는 빛의 향연은 너무도 아름다워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금은 앤털로프 캐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1997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1997년은 엘니뇨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때는 1997년 8월 12일,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앤털로프 캐년의 Lower에서 동남쪽으로 15마일 가량 떨어진 LeChee Rock 부근에서 거대한 구름이 생성되었다.
이 비구름은 사전에 아무런 예고나 전조도 없이 갑자기 생성되어 짧은 시간 동안 주변에 많은 비를 뿌렸다. 하지만 8월 12일, 앤털로프 캐년의 Lower에는 아주 잠시 동안 살짝 흩뿌렸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관광객들은 평상시처럼 Lower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바호 원주민의 땅인 LeChee Rock 주변에 내린 비는 홍수가 되어 앤털롭 캐년의 Upper를 통해 빠른 속도로 Lower로 돌진해 왔다.
물론 이 상황을 Lower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Upper 주변을 지날 때 물의 높이는 약 11ft(약 3.3m)였다. 대부분의 길이 평지로 이루어진 Upper와는 달리 Lower는 경사지고 매우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홍수가 있던 그 시각, Trek America를 통해 관광을 온 프랑스, 영국, 스웨덴, 그리고 미국에서 온 11명은 앤털롭 캐년의 Lower를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28세였던, Poncho Quintana가 이 팀을 가이드하고 있었는데 가이드 포함 모두 12명이 Lower 안에 있었다. 잠시 뒤에 일어날 비극적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앤털롭 캐년의 아름다음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좁은 협곡을 통과해 들어오는 사자의 울부짖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Upper를 지날 때 물의
높이는 11feet에 불과했지만 좁은데다 내리막길인 Lower를 지날 때에는 30ft(약 9m)의 높이로 불어나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은 갈색, 초콜릿색의 거대한 홍수가 쓰나미 처럼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공포에 질린 그들이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성난 파도 같은 홍수는 그들을 삼켜 버렸고, 그 홍수는 그들 모두를 사정없이 캐년의 벽에 내동댕이 친 다음 파웰 호수(Lake Powell)로 토해 내었다.
이 사건이 그들에게 비극이었던 이유는 그들은 이미 앤털롭 캐년의 구경을 마치고 가다가 그들 가운데 6명이 다시금 Eagle of the Eye까지 가서 그들의 남아있던 필름으로 촬영하기를 원했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남아있던 필름을 사용하기 위해 다시 캐년 안으로 들어가던 중 이 비극을 만난 것이다. 지금은 캐년 아래쪽에서 위로 한 번 올라오면 더 이상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없지만 2014년까지만 해도 Lower에도 셀프 포토 투어가 있어서 엔털롭 캐년 안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때였다.
앤털롭 캐년에서 1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유럽 비롯한 전 세계에 전해 졌다. 더불어 앤털롭 캐년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지 전 유럽과 미국 전역에 순식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희생자 가족의 한 사람은 앤털롭 캐년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을 싫어한다고.” 이곳이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희생자들은 이곳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었을테지만.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가이드 Quintana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Lower 입구에는 그날에 희생당한 사람의 국적과 명단이 기록된 기념비가 서 있고, 오늘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앤털롭 캐년의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고 돌아간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빛과 색깔, 그리고 바위가 만들낸 아름다운 자연의 예술을 감상하고 있으면 어느새 빛이 만들어 놓은 화상적인 분위기에 넋을 잃고 만다.
물결치는 듯한 협곡의 빛에 의해 만들어진 암각화같은 그림자가 생기를 느끼며 노란색에서 보라색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다양한 빛의 굴절이 카메라 셔터를 게속 누르게 한다.
이곳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호강을 한다. 영상촬영은 금지되어 있는데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밑으로 꽤 가파른 곳을 걸어내려가기 때문에 물 가지고 가실거면 주머니 있는 옷이 꽤 유용하게 쓰인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가방도 들고 갈 수 없다. 물과 핸드폰만 가져가실 수 있다. 1시간 투어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투어를 진행이 된다.
나중에 또 해보고 싶을정도로 너무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는데 한국어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알아듣는데 어려움은 없다.
카메라를 계속 눌러대지만 원하는 만큼, 보이는 만큼 사진에 안 담긴다. 기술 부족이다. 그러나 즐겁고 놀랍다. 여인상, 원숭이 상, 사자상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해마 모양을 사진에 담아준다.
가이드의 악기 연주는 울림이 참 좋다. 구슬픈 가락에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다. 쇠 사다리 층계를 올라오니 참 신기하다. 좁은 틈새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오는 인원을 파악하는 직원도 보인다. 공룡발자국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거친 가시나무 덩굴에는 하얀 꽃이 가득 피어있다.
이번에 미국에 가면 꼭 찾아볼 것이라고 다짐했던 장소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지도를 본다. 페이지 마을과 주변의 파웰 호수 그리고 홀스슈밴드, 레인보우 브릿지도 찾았다.
모두 페이지 마을 주변에 있다. 주차장을 벗어난다. 바위 산과 들판 언덕을 올라서니 페이지 마을이 보인다. 숙소를 찾는다. Rodeway Inn at Lake Powell.
애리조나 주 페이지(Page)의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숙소다. 아직 해가 떠 있다. 뜨겁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들고 숙소로 가는데 수영장에서는 몇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다.
숙소 건너편 슈퍼 매장 주차장에는 오래된 고목 두 그루가 세월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저녁은 또 라면을 끓여서 먹는다. 매일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