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15D553E4EB4FD0B06)
새벽녘 겨울을 부르는 늦가을비가 적셨다.
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낙엽들로 울긋불긋
단장을 한 길목이 가을이 지고 있음을 세삼 느끼게 한다.
버스를 타고 잊혀진 추억을 찾아 화원유원지로 향했다.
화원유원지가 속한 화원읍은 내게 현역 군생활의 추억과
유년시절 소풍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가 한창인 화원읍내를 지나
구마고속도로 위를 지나 성산리 화원유원지로 가던
추억의 육교가 사라지고 지하도를 건너 버스 차창밖에는
이제는 폐허가 되어 남겨진 옛 경북 제2면허시험장이 보인다.
성산리를 지나 버스의 종착지 화원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나 혼자뿐..
사람들로 차들로 북적여야할 유원지 주차장은 버스한대가
전부인 황량한 벌판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26년 만에 다시 찾은 화원유원지는 더 이상 대구사람들이
그 당시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최고의 장소였던 그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버스위로 고가교위로 화원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잇는 도로만이
오가는 차들로 분주 할뿐 그 아래 화원유원지는
그저 적막하기만 하다.
터덜터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유원지 입구를 찾아 가는데
26년 만에 찾아온 길이어서 그런지 입구를 못 찾아 잠시
헤매 이다 간신히 식당과 매점 옆길을 지나 화원유원지
정문으로 들어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7BE3E4EB4FD0D1E)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낙동강위로
옛 사문진 나루터가 있던 자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사문진대교가 놓이며 대구와 고령을 이어주고 있었다.
이미 일제시대 강점기에 유원지로 조성되어있었으니
제법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낙동강을 굽어보듯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 길은 화원유원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AB93E4EB4FD101D)
전망대로 이어진 화원동산 길은 강변을 따라
산으로 이어져 있는데, 26년 전 봄에는 이길 주변이 온통
목련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어서 춘삼월 이른 봄 이 길목은
온통 새하얀 목련꽃들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어느덧 11월..
가을이 빠르게 지고 있다.
봄과 여름을 수놓던 나뭇잎들은 지난 시간을 보내듯이
미련 없이 낙엽을 무수히 떨어뜨리고..
인적 없는 동산 길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산등성인지
분간이 안 갈만큼 가을낙엽이 한가득 길을 덮어버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BAF3E4EB4FD161A)
1985년 5월 초순..
당시 신성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소풍을
이곳 화원유원지로 왔었다.
신성초등학교는 봄 소풍을 다소 먼 곳으로 장소를 잡아서
시내버스를 타고 갔었다.
요즈음은 관광버스 대절해서 가는 시절이지만 그때는
관광버스도 특별한 사람들이나 이용하던 귀한 버스였다.
하다못해 버스를 대절하는 학교는 타 학교 스쿨버스나
지금은 추억이 되어 사라진 예비군수송버스를 대절해서
갈 정도였으니..
우리 때는 단체로 시내버스를 타고 소풍을 갔었다.
인근 복현초등학교는 지금은 유통단지로 침산교로 이어진
상습정체구역 도로가 되어버린 연암로 길로 변해버린
산격정수장 부근이나 경산고교 뒤편동산 아니 면은
달성공원이었으나 신성초등학교는 냉천자연농원
화원유원지로 갔었다.
1984년 용계동-금구동 구간을 운행하던 36번 버스가
전부였던 큰고개-신청초등학교 구간에 새로이 126번과
127번이 연장되어 운행을 시작하면서 그간 시내와
동대구역 터미널로 가는 버스 편이 없어 불편했던
번거로움을 한번에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몰랐던 낯설 은 화원유원지의 존재를 알게 해주었다.
당시 126번은 화원유원지-반월당-화원유원지를 순환하는
노선이었으며, 127번은 본리동-반월당-본리동을 순환하는
노선인데 반월당을 기점으로 두 노선이 서로 편도운행을
하는 특이한 노선이었다.
당시에는 시내로 나갈 때는 126번버스..
집으로 돌아 갈 때는 127번 버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어있었고, 그렇게 두 노선버스가
자리를 잡아갔다.
아무튼 신성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지어 대군이 이동하듯
저마다 과자와 음료수 김밥이든 형형색의 배낭을 메고
좋다고 서로들 떠들고 장난치며 지금의 신성초등학교 정류장에서
126번 버스에 한반씩 나누어서 타고 소풍을 떠났는데
126번 중 일부는 설화동으로 가는 노선도 있어서,
화원유원지행 126번이 떠나면 다음 차는 설화동 행선판이
걸린 126번 버스가 뒤따라 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9793E4EB4FD1B2B)
인적 없는 산책길에 벤치위로 낙엽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춘삼월 봄이 오고, 개나리 망울 터뜨리고 벚꽃피던
따스한 봄날이 온다고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가을이 떠나는구나..
26년 만에 다시 찾아온 화원유원지..
그때 이곳으로 소풍을 왔던 개구쟁이들은
이제 다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어른이 되어
이제는 자신이 아이들을 소풍 보내는 부모가 되어
바쁜 나날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 녀석들도 가끔은 생각나겠지..
어쩌면 나처럼 이렇게 추억을 되새기며 이곳을 찾을지도..
아이들 손을 잡고서..
신성초등학교를 출발한 126번 버스는 한시간반은
족히 넘어서 멀고먼 화원유원지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버스 안 중간에 멀미를 하던 여자애들은 울고 보채고,
선생님은 비닐봉지 들고 이리저리 버스 안을 돌아다니고..
남자애들은 버스 안에서 장난치다 운전기사 아저씨한테 혼쭐나고..
화원유원지 주차장에는 대구의 다른 학교에서도 소풍을온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복잡했다.
126번 버스 옆에는 막 도착한 31번 버스가 한가득
학생들을 내려놓는데 교련복을 입은 덩치가 있는 고등학교
형들과 우리만큼 재잘거리며 떠들며 내리는 누나들이었다.
이날 대구의 초,중,고 학교에서 대거 화원유원지로
소풍을 나온 것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D333E4EB4FD1E18)
이 길옆은 상화토대라고 불리는 옛 토성의 흔적인데
신라 경덕왕이 가야산에서 병으로 요양중인 세자 문병 차
왕래시에 이곳에 행궁을 두어 유상하던 곳이라 하여
상화대라고 전해오는 곳이다.
화원유원지안에는 군데군데 옛 성의 흔적과 고분들이
남아있어 역사의 현장학습으로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85B3E4EB4FD221D)
토성 옆 등산로를 오르자 이내 탁 트인
나지막한 동산이 나온다.
지금은 산을 둘러싼 산책길이 전부였지만 70~80년대
화원유원지는 동촌유원지에 함께 위락시설이 있던
유원지이름에 걸맞던 풍경이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냉천 자연농원의 반 정도 수준에
이르는 놀이기구들이 있었는데, 특히 풍차와 꼬마자동차,
커피잔돌아가는 기구 등 몇 가지가 있었다.
당시 놀이 이용료가 300원 했던 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도 놀이기구의 흔적도 모습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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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옆에 가만히 서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지친 다리를 쉬었다.
점심으로 싸온 김밥과 소고기 장조림등 학우들과
돗자리위에서 과 음료수를 푸짐하게 저마다
내놓고 배터지게 마음껏 먹고 떠들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산위에는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교 형들이 삼삼오오
잔디밭에 모여앉아 통키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어린 우리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어 보여서 형들 옆에
나란히 앉아서 노래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잔듸밭 여기저기에 중 고등학생 형들과 누나들은 당시 유행가를
부르거나 손수건 돌리기를 하는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순수하고도
낭만적인 소풍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다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을 그때 형과 누나들..
그 형과 누나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꼬맹이들도 서른을 넘겨버리고..
가는 세월이 참 야속하다..
그 시절의 낭만 가득했던 화원유원지는 이젠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고,
여기저기 버려지고 방치되듯 이름뿐인 유원지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현역 군복무시절 당시 내무반 고참들이 휴일 외출을
받아 나가서 단골 슈퍼마켓에서 버너를 빌려서 화원유원지가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놀다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잊고 있던 화원유원지를 알게 되었지만 이내 내 관심에서는
멀어져 버렸다.
나는 고참시절 휴일 외출을 받는 날에는 동기들과
두류공원이나 동성로에서 술을 마시고,
오락실 만화방을 돌아다녔다.
화원유원지는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었다.
늘 가까이에 살면서도 26년이란 시간동안 단 한번도
찾지 않았던 화원유원지..
저무는 가을 속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없는
텅 빈 옛 유원지를 돌아보며 저무는 떠나는 가을처럼
돌아올 수 없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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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인적 없는
화원유원지 종점에는 달서3번
버스한대만이 주차해있다.
31번과 126번이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한가득
채우고 나머지 긴 줄을 서있던 학생들을 뒤로 하고 주차장을
떠나던 26년 전의 풍경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987년 대구를 떠나 인천으로 가면서 화원유원지와
126번 버스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1995년 다시 대구로 돌아 왔을 때 126번은 더 이상
화원유원지로 다니지 않았다.
31번과 좌석 331번만이 다니고 있을 뿐..
126번은 일부 운행하던 설화동으로 종점이 변경되었다.
98년 노선개편과 함께 31번은 사라지고, 30번 분리구간으로
개통된 650번과 좌석608번 일부 다산면으로 가던 836번이
화원유원지를 운행하였으나, 2006년 노선 개편으로
608번은 사라지고, 650번은 화원유원지를 거쳐 사문진교를 넘어
다산면으로 연장되었다.
그 빈자리는 지선노선으로 개통된 달서3번이 화원유원지
주차장의 새 주인이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4B7E3E4EB4FD2A1A)
사라진 마을버스
5번 노선과 합쳐진 달서3번..
31번과 126번이 유원지 행락객들을 숨 쉴 틈 없이
싣고 오가던 그 시절은 이제 두 번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첫댓글 옛날에 31번 운행하면서 월배 초등학교 소풍나온 학생들 3반(120명)을 태우니 그야말로 만땅! 시끄러워서 죽는줄 알았습니다.요금은 인솔 여선생님께서 신문지에 둘둘말은 동전으로 한방에 계산.....
그 시절에도 화원유원지로 소풍가던 학교가 있었군요..ㅎㅎ 아이들 버스안을 도때기 시장분위기로 만들었겠어요.
얼마전 726번에도 한 초등학생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서 타던데요.. 인솔교사는 손짓으로 타라는 신호나 보내고 애들은 카드찍는다 현금낸다 난리법석.. 기사님은 하 이거 가야되는데.. 하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해 있고... 저는 427번 407번 등을 칠곡에서 어린이회관까지 탄 기억은 납니다. 아 '98년도 이전엔 16번 316번이었네요..
한꺼번에 많은 단체승객들이 기사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할거에요..
수건돌리기 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애매하게 뒀다가 싸움 날 뻔 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ㅎㅎ
맞아요..수건 때문에 멱살잡을뻔한 웃지못랄 헤프닝도 있었죠..
저도 초등학교때 화원유원지 갈때 650번 기억나네요. 달서3번도 신흥으로 가면서 화원유원지가 기점이 되어버려서, 이제 종점으로 쓰는 노선은 없죠.
썰렁하더군요..버스 주차장이..
예전에.. 중학교 다닐때 중학교 전체가 655번 타고 학생문화센터 간다고 버스에 탔는데.. 완전 만땅 태우고도 모자라니
뒷차가 붙어오고 완전 기사님들의 시끄러운 하루가 되었을것이라는 생각이... 그러나 이제는 한켠의 추억이기도 하지요...
소풍시즌인 봄 4~5월에는 기사님들이 이래저래 고생하는 계절이죠..
아!! 중고생때는 우방랜드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향토기업 살리기니 어쩌니 하면서... 그런데 칠곡에서는 0번 250번의 존재는 항상 묻혀있고 527번은 이럴 때마다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독선이나 마찬가지 구조인데 손님은 미어터지지..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은 머엉- 한 눈빛으로 버스를 쳐다보기만 했고.. 한두차례 그런 일 겪고난 후 저는 아예 북부정류장에서 356번 타고 7호광장에서 걸어가곤 했습니다.
아...600번 우방랜드로 가는 노선 이른아침에 학생들로 터져나가더군요..
저 31번 노선은 정말 우리 회사와는 아찔한 추억입니다. 바로 지금의 상인역을 우리회사의 31번 노선이 통과하자마자 기계공고 넘어갔을 때 지하철 폴발사고가 일어났었는데, 다행히도 우리회사 버스는 모두 피해가 없었지요...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참사를 입을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는데요....앞순번은 31번 넘어와서 운행중이었고, 저는 뒷순번이라서 33번을 오전반 운행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1995년..3월4일에 대구로 다시 이사오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났지요..사고현장에 처첨한 모습으로 나뒹굴어진 불탄 버스 한대가 아직도 잊을수 없네요..이 구간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신분들은 그날의 악몽을 쉬이 잊으시기 어려우시겠어요..
저도 기억이 납니다.^^ 소풍을 가면 모두 집에 갈때 친구몇몇이선 사문진나루가 있어서 100원인가200원인가로 고령으로 배타고 왕복으로 다녀온후 비교적 한적한 종점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