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의 골목길. 좁은 길에 중국 인도 이슬람 문화가 혼재돼 있다. |
저에게 말라카는 그 사건으로 갑자기 친근한(?) 도시가 됐습니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왜 그 지역에 해적들이 많은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동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원유의 87%가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
350㎞에 이르는 좁고 긴 수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으면
멀리 인도네시아 남쪽으로 우회해야 합니다.
물류비가 엄청 치솟을 것입니다.
말라카를 지배하면 인도양, 다시 말해 동아시아와 유럽, 아랍권을 잇는 뱃길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세계 열강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말라카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가 뒤섞인 독특한 역사 문화를 간직한 도시가 됐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푸트라자야에서 말라카까지는 약 130㎞. 그런데 버스로 3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시내버스도 아니고, 분명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 같은데도 말입니다.
하도 신기해 말라카에서 푸트라자야로 돌아가는 야간 버스에서 운전석의 속도계를 살펴봤습니다.
평균 시속 50~60㎞. 어지간해서는 70㎞를 넘지 않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말레이시아의 언어입니다.
영어와 비슷한 것 같은데 조금 다릅니다.
October(영어 10월)-Oktober(말레이시아 10월),
August(영어 8월)-Ogos(말레이시아 8월) 등으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 동·서양에 아랍·인도 발자취까지 아우른 '모자이크 도시'
- 15세기 추방당한 인도 왕자 정착 후 세워
- 힌두교 전파되고 中 불교·이슬람도 들어와
- 교통과 문명 요지 부상에 유럽 열강 쟁탈전
-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주인 교체
- 각국 고유 건물·문화 혼재하는 풍경 만들어
말라카는 1400년대 인도에서 추방당한 왕자가 정착해서 처음 도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중국에서 비단과 도자기 등이 전해졌고, 불교 유교 등이 유입됐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전파됐다. 말라카 왕국은 아랍과의 교역 확대를 위해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교통과 문명의 요지로 떠오른 말라카는 항해술이 발달한 유럽 열강의 표적이 됐다.
특히 후추를 유럽으로 수출하는 무역항으로 떠오르면서 쟁탈전이 벌어졌다.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말라카에 발을 디뎌 100년 이상 통치했다.
1600년대에는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하고 200년 이상 다스렸다.
대영제국이 패권을 차지하면서 말라카의 주인이 또 바뀌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일본까지 말라카에 손길을 뻗었다.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말라카는 약 500년 동안 피지배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기나긴 시간 동안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등 지배자들은 말라카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겼다.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짙은 동양권 문화와 말레이시아 고유의 이슬람 문화도 강하게 남아 있다.
흔히 국제화된 도시나 국가를 '인종의 용광로' '문명의 모자이크'라고 부르는데
말라카처럼 이 표현이 적확한 지역을 찾기 어렵다.
유네스코는 2008년 말라카 구시가지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치열한 쟁탈전의 흔적들
말라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 크루즈가 운행하고, 강변에는 이색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무역항. 현지 발음으로 '믈라까'
또는 '믈레카'처럼 들리는 말라카 여행의 출발점은 네덜란드 광장이다.
짙은 분홍빛을 띤 말라카 아트 캘러리와 그리스도 교회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다.
교회 앞 광장 가운데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분수대와 시계탑이 자리를 잡았다.
교회는 1753년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시절 지은 것으로, 요즘에도 예배가 드려진다.
광장 한쪽에는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으로 쓰였던
스타더이스(Stadthuys)가 역시 짙은 분홍빛을 띠고 있다.
스타더이스는 네덜란드말로 시청(City Hall)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가 말라카에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이 건물을 지었다.
영국이 말라카의 새 주인이 됐을 때 스타더이스는 학교로 사용됐고, 지금은 말라카의
역사와 관련된 각종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동양에 남아 있는 네덜란드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인력거(트라이쇼). |
네덜란드 광장은 항상 떠들썩하다. 주변으로 각종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인력거(트라이쇼·사진)는 형형색색 꽃으로 장식한 채 북적거린다.
그들은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올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있었다.
광장에서 말라카 해협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왼쪽에 작은 언덕이 있다.
박물관으로 오르는 길의 언덕 위에 성바울 성당이 있다.
수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지붕은 무너지고 벽면만 남았다.
벽면의 두께는 1m는 충분히 될 만큼 두껍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었다는 얘기고,
그만큼 말라카를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성바울성당에서 바라보는 말라카 해협은 평화롭기만 하다.
말라카 시내를 둘러보면 확실히 '모자이크'가 맞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쪽은 붉은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인상적인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같고,
그 옆에는 돔 형식의 이슬람 사원이 눈에 띈다.
중국식의 기와지붕도 더러 보인다.
■유럽+중국+인도+이슬람=말라카
25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캄풍 클링 모스크. |
네덜란드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넌다.
강(운하)을 따라 걷다 보면 성 하비에르 성당을 만난다.
1849년에 지은 고딕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웅장한 맛은 없지만 네덜란드 광장에 있는 교회와는 또 다른 맛을 준다.
강을 따라서는 카페가 늘어서 있다.
해 질 녘에 서늘해지면 산책을 나온 관광객으로 강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가게마다 독특한 조명을 밝힌다.
동양의 작은 도시라기보다 유럽의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강하다.
때문에 말라카 크루즈는 빼놓을 수 없는 인기 관광상품이다.
포르투갈 보물선을 복원한 해양박물관 근처에서 출발한다.
말라카 해협에서 강을 따라 도시 중심부를 타고 올라간다.
특히 해가 지고 난 뒤의 야간 크루즈는 말라카의 화려한 밤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의 도시 베니스를 연상케 한다.
건물마다 은은한 불을 밝히는 데다 벽화를 그려놓은 곳이 많아 볼거리를 더한다.
네덜란드 광장 반대편, 존커 스트리트는 좁은 골목길에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빽빽하다.
미국 뉴올리언즈의 프렌치쿼터와 유사한 분위기다.
말라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템플 스트리트,
일명 하모니 스트리트라고도 불리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중국 인도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다.
먼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알려진 '쳉훈텡'이다.
1640년대에 명나라의 장군이 세웠다. 사원 입구에 흰색 말이 두 마리 서 있다.
말라카에는 1785년 세워진 '스리 포야타 비나야가르 무르티'라는 긴 이름의 힌두교 사원도 있다.
힌두교 사원으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1710년 세워진 성 베드로 교회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지붕은 부서지고 벽만 남은 성바울성당. |
말라카 해변 쪽으로 걷다 보면 말레이시아의 독립선언 과정을 보여주는 기념관과 술탄왕궁,
대포가 남아 있는 산티아고 요새 등이 나온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이방인들에게 신기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식도락. 말라카는 중국에서 이주한 남성 '바바'와
말레이 토박이 여성 '뇨나'가 결혼해서 만든 '바바뇨나' 라는 독특한 문화를 자랑한다.
전혀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개성을 만들었는데 음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말레이풍의 팥빙수인 '캔돌', 생선 국물에 쌀국수를 넣어 신맛과
독특한 향을 내는 '아삼 락사', 주먹밥에 닭요리를 곁들인 '치킨 라이스볼' 등이 유명하다.
#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쇼핑을 원하면 버스 타고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로
말라카에서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까지 버스 등으로 연결된다.
두 도시에서는 말라카와는 달리 현대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특히 명품매장이 밀집한 쇼핑가는 이들 도시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쿠알라룸푸르
네덜란드 광장 바로 옆에 있는 300년 이상된 수차. |
유명한 쇼핑센터가 밀집한 곳은 쿠알라룸푸르의 부킷 빈탕지역이다.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번화한 곳 가운데 하나다.
백화점 명품매장은 물론이고 고급 레스토랑과 푸드코트까지 밀집해 있다.
부킷 빈탕에서 특히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은 파빌리온(Pavilion)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쾌적한 쇼핑환경을 자랑한다.
450여 곳의 매장이 줄지어 있고, 영화관 서점 스파 미용실 등이 들어서 있다.
부킷 빈탕의 중심에 있는 스타힐 갤러리(Starhill Gallery)는 최고급 브랜드만 모아 놓은 쇼핑센터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가장 세련된 쇼핑공간으로 알려진 곳이다.
7층짜리로 각 층마다 테마별로 매장을 꾸몄고, 특히 맨 위층의 아트 갤러리도 들러볼 만하다.
1977년 문을 열어 30년 이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숭에이 왕 플라자(Sungei Wang Plaza)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서울 동대문시장을 닮았다.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와 말레이시아 상품이 많아 관광객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저렴한 전자제품과 장남감 액세서리 등을 파는 가게가 500개 이상 밀집해 있다.
수리아 KLCC(Suria KLCC)는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있다.
쇼핑은 물론 스카이 브리지 투어와 공원 산책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총 여섯 층의 대형 복합 쇼핑몰에는 백화점은 물론이고 대형 수족관인 아쿠아리움과 과학관,
뮤직 홀, 아트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 상. |
마리나 베이 샌드호텔은 세 개의 빌딩이 거대한 배를 떠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배 모양의 옥상에는 수영장이 있어 싱가포르의 새로운 명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타워 1, 2, 3이 연결되어 있는 지하와 1층 로비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명품 브랜드가 입주해 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만 해도 약 300개의 매장 있으며,
건물 안에 인공수로를 만들고 곤돌라까지 띄웠다.
마카오의 베네시안 호텔을 연상케 한다.
마리나 베이 샌드호텔 쇼핑센터에서도 가장 인기를 모으는 매장은 루이뷔통.
'루이뷔통 아일랜드 메종'으로 이 회사가 그동안 내놓았던 제품들이 고급스럽게 전시돼 있다.
또 이 매장은 얼핏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호텔과는 아쿠아리움처럼 물속의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다.
호텔 바로 앞에는 연꽃 또는 손가락 모양의 예술과학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바다 건너편에는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인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상이 보인다.
말레이시아 말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