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聖靈(성령)으로 풀어 가는 신 구약 성경 通讀(통독) 영해-창 14장 (15P)
- 진정한 십일조생활에 대하여 -
창14:1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제 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 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 가서,
15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 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1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12절:소돔에 살던 롯의 최초의 봉변이 나온다. 부족 간의 전쟁의 희생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간 것이다.
사실 모든 불행과 재앙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경우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재앙과 불행은 자신의 방탕과 범죄, 욕심에서 기인한다.
롯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롯의 탐욕, 롯의 이기심, 롯의 불신앙적인 세상적 생각이 그를 마침내 이러한 파멸의 궁지로 몰고 간 것이다. 이것은 다음에 다가 올 재앙에 비하면 하나의 서곡일 뿐이었다. 장차 다가 올 불행과 재난에 대한 예고였다.
이 한번의 경고의 때에 롯이 소돔성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레로 막는다.” 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 매를 한 대 맞을 때에 즉시 돌이키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련하기가 그지 없다. 일생동안 동일한 어리석음을 계속 반복한다.
14절:아브람은 부족장이었다. 개인 용병을 318명이나 거느릴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가진 자였다. 인근에서는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아브람은 큰 한 부족의 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잘 예비되고, 훈련된 정병으로 조카 롯을 사로잡은 연합군인 적군을 능히 물리치고, 개선했다.
유비무환이라 했다. 유사시를 위하여 대비하는 자가 가장 현명한 자이다. 신앙생활이란 준비하는 생활이다.
장차 천국에의 소망을 갖고, 오늘 미리 준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천국 상속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예비하는 생활이 바로 신앙에의 길이다. 우리는 오늘이라도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즉시 떠나 갈 수 있도록, 허리 띠를 묶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18절:‘살렘 왕’은 ‘예루살렘 왕’이다.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이다. 십일조를 바침은 지극히 높으신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헌신한다는 의미이다.
19절: ‘축복’ 은 제사장(목사) 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신의 대리자로서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다. 일개 사람으로서는 축복기도를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축복선포는 할 권리가 없다. 제사장(목사) 만이 축복선포권(축도)이 있다.
예배에서 축복 선언이 축복 기도로 바뀌고 만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창14: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고후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 (고후13:13절의 축복 선포) : 원칙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축복 기도) : 변질 (장로교 통합 측)
20절:최초의 십일조 언급이다.
이 구절 이후 십일조는 모든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기준을 측정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십일조는 우리의 생명과 소유에 대한 하나님 주권의 최소한의 표시이다. 감사의 표시요 의무의 이행이요 인간의 위치를 확인하는 신앙의 기본이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표식이 십일조이다.
레위기 27:31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레위기 27:32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민수기 18:21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수기 18:24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수기 18:26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 18:28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신명기 12:6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명기 12: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 가고,
신명기 12:17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신명기 14:22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14: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명기 26:12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사무엘상 8:15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역대하 31:5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 왔으며,
역대하 31:6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 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 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역대하 31:12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의 책임자가 되고, 그의 아우 시므이는 부책임자가 되며,
느헤미야 10:37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느헤미야 10:38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느헤미야 12:44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기 때문이라.
느헤미야 13:5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개정 4판총 27건
느헤미야 13:12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아모스 4:4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말라기 3: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말라기 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마태복음 23: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8: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23절:이제 영적으로 장성하고 성숙한 아브람은 부정한 재물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참으로 성결하고 놀라운 구별된 삶의 표현이다.
이전의 아내를 팔아 먹던 때와 얼마나 다른가?
이제는 진정 성숙한 신앙이다.
성도는 비록 이 땅 위에 살지라도 이렇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십일조와 헌금생활
- 십일조생활은 성도의 기본입니다 -
말라기 3:7-12절
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 하는도다.
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죄 짓고, 탐욕 부리고, 나쁜 짓 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아 내가 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교회 오는 일, 믿음 갖는 일, 주일 성수하는 일, 예배하는 일,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는 일, 십일조 하는 일 등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집회에 빠지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걱정하셨지요. 아빠가 너무 반대를 해서 못 갔어요. 새벽예배는 꼭 나가겠습니다.”
얼마나 예의 바르고, 사랑스러운 교인의 예절입니까?
좋은 것은 배워야 합니다. 올바른 것은 배워 실행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예배 빠지면 이렇게 전화 한 통화 정도는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서, 주님이 몸소 세우신 교회 성도의 일원으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형통하고 축복된 삶을 위하여 몇 가지 기본적인 신앙의 의무를 부여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일 성수, 십일조 생활, 복음 전도의 삶, 성결한 신자의 삶, 기도생활, 말씀 묵상의 삶, 찬송생활 등입니다.
이 시간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 중의 하나인 ‘십일조헌금’ 에 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고 이 생명의 말씀을 경청하셔서, 여러분의 삶 속에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직접 체험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헌금 설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십일조생활’ 이란 내 삶의 1/10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생활입니다. 1/10 중 제일 먼저 구별할 것은 ‘물질’입니다. 본문 7절 말씀은 ‘물질’을 드리기 전에, ‘마음’을 먼저 드릴 것을 요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 하도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증거가 무엇입니까? 8절에 보니, 바로 “십일조와 헌물(봉헌물)을 드림” 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1.십일조에 관한 간증
1>.박용묵 목사의 간증
부흥사 박용묵 목사님이 대구 <문화촌교회>에서 시무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심방을 가려고 교회를 나서는데 코가 문드러지고, 손이 오그라진 문둥이가 한 사람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을 좀 뵙고 싶습니다.”
“예! 제가 이 교회 목삽니다.”
“저는 경북 상주에 사는 사람인데, 목사님께 제 십일조를 드리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아니! 십일조는 본 교회에 바치셔야죠?”
“저는 떠돌이 걸인이기 때문에, 정해진 교회가 없습니다. 그저 길 가다 만나는 교회에 드리고 가지요.”
그리고는 35원을 깡통에서 꺼내어 박목사님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돈을 받았을 때 목사님은 마치 전기 줄을 만진 것 같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일 설교시간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전 교인이 감동을 받아 십일조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십일조생활은 감동을 받으면 하고, 감동을 받지 못하면 아니해도 되는 그러한 감정적 차원의 신앙적 의무가 아닙니다. 초보 신앙은 감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감정에 따라 요동하지 않습니다.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찬송 중에, 2절은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십일조생활은 하나님을 믿고 축복 받으려는 모든 성도가 반드시 엄수하고 이행해야 할 신앙의 최소한의 기본입니다.
수 많은 우리 신앙의 선진들은 십일조생활을 통한 구체적인 일상적 삶의 축복에 대하여 누누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 야곱,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과 규례, 바벨론 포로 귀환 후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 선지자들의 메시지, 신약의 여러 부분들은 하나 같이 십일조생활의 중요성과 당위성과 축복성에 대하여 재삼, 재사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 선배들의 간증 속에도 십일조 생활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철저한 신앙적 의무의 이행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내 삶의 현장 속으로 끌어 와야 하겠습니다.
2>.황영일 장로의 간증
서대문구 <불광동장로교회>의 황영일 장로님의 간증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이 분은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후, 퇴직금으로 대구 삼덕교회의 한 집사님과 동업을 하다가 몽땅 실패하고, 하루 아침에 산비탈 셋방살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직장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어, 경북 영천으로 이사를 가, 영천시장에서 지게를 지고 품팔이로 나날을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하루 최소한의 생활비가 300원이었던 그 시절에 이 분은 지게를 지고 일터로 나가면서 교회에 들러, “하나님! 오늘 300원만 벌게 해 주십시오. 그리해야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라고 간구한 후, 일터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300원도 채 벌지 못하는 날이 수두룩 했습니다.
1958년 겨울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허탕을 치고 저녁이 되었는데, 어느 부인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짐을 져다 드릴 테니, 택시 값만 좀 주십시오.” 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거절하던 부인이 끝끝내 택시가 오지 않으니까,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져다 주었더니, 겨우 단돈 60원을 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60원만 주십니까?”
“아저씨! 택시 값만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부인은 톡 쏘고는 대문을 닫고 들어 가, 버렸습니다. 하루 종일 굶고 60원을 들고 탈진하여 집으로 돌아 오는데, 수요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차! 오늘이 수요일이구나. 하지만 오늘 만큼은 그냥 집에 들어 가야겠어. 도무지 걸을 힘이 없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왜 나를 이렇게 고생 시키실까?”
그러나 성령의 강권하심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교회로 발걸음이 돌려졌습니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세미한 음성이 축복으로 인도하는 첫 걸음입니다.
교회 마당 한 구석에 지게를 세워 놓고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들이 웬 거지가 왔나 하고, 힐끔 힐끔 눈치를 보며 지나 앞자리로 갔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헌금에 관해 설교를 하면서 “특별히 십일조생활이 철저해야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다” 고 강조 했습니다.
예배 후 교회 출입문을 나서는데, 이 분의 마음에 갈등이 일어 났습니다.
“오늘 번 돈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그러나 어떻게 부끄럽게 6원을 드린단 말인가? 그나마 이 돈이라도 가져 가야, 식구들 한 끼라도 떼울 텐데...”
헌금함 앞에 오자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이 들어 가, 60원을 몽땅 헌금하고 말았습니다. 빈털털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 오니, 아내가 성경책을 펴 놓고 그 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성경책이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아랫목에는 딸이 이마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습니다.
세수를 하고 다시 방에 들어 오니, 아내가 웬 쌀밥을 한상 차려 왔습니다.
“아니! 웬 쌀이요? 재경이는 왜 다쳤소?”
“시장한데, 어서 잡수세요. 이야기는 천천히 해 드리지요.”
사연인즉, 딸이 학교에 가서 점심 시간에 도시락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급식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밥을 굶고 있는 동생이 생각 나서 동생에게 주려고 먹지 않고 가방에 넣어 두었더니, 반 아이들이 달려 들어 빼앗는 바람에 가방을 들고 도망을 치다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담임 선생님이 돈 6,000원과 쌀 2말을 추렴해 갖다 주어 밥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황씨는 하도 서러워서 밥을 입에 넣다 말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습니다.
그 때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 보니 조금 전에 참석했던 교회의 권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방으로 들어 오면서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따님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선생님! 학교는 어디를 나왔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육사 6기생입니다.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지 2년 되었습니다.” 했더니, 권사님이 깜짝 놀라면서 “세상에... 육군 중령이셨던 분이 지게를 지시다니...” 그러더니, “내일 아침에 사람을 보낼 테니, 일 나가지 마세요.”
그러고는 3만원을 딸 치료하라며 내놓고는 권사님이 돌아 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황씨의 집으로 웬 세단차가 들이 닥쳤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 대구 동성방직에서 사장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가시지요.”
기사를 따라 갔더니, 사장님이 웃으면서 환대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실장 자리를 주면서 “열심히 잘 해 보라.” 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권사님의 부친이 바로 대구 동성방직의 사장님이었습니다.
3>.남종우 장로의 가정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한 성도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목사로서 성도의 가정을 돌아 볼 때 온 가족이 믿음생활 하는 가정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그야말로 온 가족이 충실한 믿음생활 하는 가정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런 가정은 안수집사님이신 아버지와 집사님이신 어머니, 그리고 4남매가 어쩌면 그렇게나 착하고, 헌신적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지 감탄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고 2년 딸이 새벽에 일하는 엄마가 힘든다고 대신 밥을 짓고, 새벽기도 참석하고는, 교회에서 공부하다가 학교에 갔습니다.
이듬 해, 집사님의 4남매는 전부 중요한 시험을 쳤습니다. 교원대학 4학년인 큰 딸은 교사 순위고사를, 군 하사로 입대한 둘째인 아들과 쌍동이인 막내 두 딸은 각각 대학시험을 쳤습니다. 4남매는 어쩌다 생기는 용돈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어김없이 감사헌금과 십일조 헌금을 꼬박 꼬박 바쳤습니다.
집사님의 가족은 너무 가난해서 항상 헤진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안수집사님이 입고 있는 와이샤스가 목이 다 닳아서 떨어진 것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가정이었으나, 집사님의 6가족 중에 어느 누구 하나 예배 출석이나 헌금생활이나 봉사, 충성, 헌신에 있어서 부족함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큰 따님은 매주 감사헌금을 주님 앞에 어김없이 드렸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전 날 저녁에 저를 초대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제가 쌍동이 두 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이 훗날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을 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라는 것이다. 오늘 부모님이 이렇게 가난한 것은 훗날 너희들이 잘 살게 되었을 때,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아름다운 자녀로 만드시기 위함이다. 그렇게 살 수 있겠느냐?”
그들은 약속했고, 대학에 합격 했습니다. 언니는 순위고사에 합격하여 2-3년씩 적체되는 취업난을 뚫고 3월에 졸업한지 불과 두달 만에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3 동생은 보란 듯이 전문대학 전기공학과, 부산대학 의예과, 간호학과에 나란히 진학했습니다. 등록금도 누군가를 통하여 다 해결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 믿음으로 결단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따라 전진한 일은 결코 후회를 가져 오는 법이 없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십일조를 도무지 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신앙의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감히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축복을 필히 체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무궁교회 십일조 헌금자 실태 현황
교회 성도의 내실은 첫째 주일성수 현황, 둘째 십일조 생활 현황, 셋째 복음 전도의 삶, 성결한 신자의 삶, 기도생활, 말씀생활, 찬송생활 등을 살펴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ㅇ출석:무궁교회는 주일 평균 출석수가 600여 명인데, 이 숫자에는 청년 50여 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출석가능 청 장년 성도수는 자그마치 930여 명입니다. 이 숫자 속에는 청년 숫자 중 성도 자녀 120명, 개인출석 107명, 합계 227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 주일 결석자 비율은 매 주일 장년 결석이 160여 명, 청년 결석이 170여 명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결석하시는 성도들을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방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성도가 힘을 합친다면 해결책은 아주 간단합니다.
1.성도 여러분 개개인이 주일성수 정신을 확립하시는 길입니다.
주일에 놀러 가거나,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세상 일을 보지 않는 영성훈련을 철저히 쌓으셔야 합니다. 주일예배 시간 만큼은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시간이라는 구별의식이 철저해야 합니다.
2.구역장께서 매주 토요일에 구역 가족을 돌아 보시는 일입니다.
직접 찾아 가시거나, 전화로 주일을 지키도록 당부하셔야 합니다.
3.청년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반드시 데리고 교회에 오시는 일입니다.
이 3가지 대책만 효과적으로 수행되면 우리 교회는 다음 주일부터라도 당장 750명 출석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ㅇ십일조:무궁교회 총 세대수는 505 세대입니다. 이 중에 장년은 398세대, 청년은 107세대입니다. 총 505 세대 중에 지난 3개월 간 십일조헌금을 드린 성도님의 수는 94년 4월 231명, 5월 272명, 6월 246명입니다.
성도의 절반이 십일조생활을 하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청년 숫자 중에 출석하지 않는 허수를 제외하면, 무궁교회의 십일조 비율은 약 60 %선을 맴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우리 새성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100%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들여 생활의 축복을 필히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온전한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영육 간에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3.십일조 관련 성구
왜 십일조헌금을 합니까?
십일조헌금의 중요성은 무엇입니까?
ㅇ(십일조의 기원)
신12:11절-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 가고...
창14:20절-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ㅇ(부동산과 비현금의 십일조도 드려야 한다.)
신14:22절-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레27:30절-땅의 십분 일,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ㅇ(십일조는 오늘날 교회의 복음전도비와 교역자들의 사례의 근거)
민18:21절-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ㅇ(교역자는 성도의 십일조 만으로 살아야 한다. 이 뜻은 성도를 위하여서만 산다는 의미이다.)
민18:24절-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십일조 하지 않음은 목사를 굶어 죽으라는 것이다.
ㅇ(헌금 유기는 도적질이다.)
봅 헤링턴 목사가 십일조에 관하여 설교를 했는데,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한 집사님이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오늘부터 십일조생활을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집사된지 몇 년 됐소?”
“12년입니다.”
목사님이 웃으면서 대답 했습니다.
“이거. 야단났네. 날더러 눈 감으라 해 놓고, 내 주머니의 돈 훔쳐 가려는 것 아니요? 지난 12년 동안 하나님의 돈을 훔친 사람이 목사 주머니 속에 있는 돈 하나 못 훔치겠소?”
웃고 넘어 갈 이야기이지만, 뼈가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십일조생활의 유기는 신앙적 절도입니다. 주일 성수의 유기는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 하는 것이요, 십일조생활의 유기는 하나님의 물질을 훔치는 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이 가슴에 찔림을 받고 여러분의 잘못된 행실을 고치시기를 촉구합니다.
말3:8절-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헌금생활의 불성실은 바로 신앙적 절도임을 말씀은 분명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절도적 신앙생활 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께 복을 받으리요!
예전에 어느 여청년이 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자기의 조그마한 체험을 하나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희한하게도 자기에게 꼭 해당되는 말씀만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일도 매 주일 주일헌금을 1,000원씩 드렸는데, 그 날은 그만 깜박 잊고 주일헌금을 빠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주일헌금을 태연히 빠뜨리는 준비 없는 예배에 대하여 신랄하게 공격을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필이면 내가 잘못한 주일에 그러한 말씀을 전하실 수 있느냐?” 면서, 정말 설교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임을 깨달았다고 고백 했습니다.
어느 교회에 부자 교인과 가난한 교인이 있었는데, 부자는 매월 일만원의 헌금을 꼬박 꼬박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성도는 헌금을 제대로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십일조헌금에 관한 설교를 했는데, 부자는 그 날로 교회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성도는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 날부터 열심히 십일조생활을 준수해 나갔습니다.
몇 년 후에 그 가난한 성도는 예전의 부자 교인 보다 더 잘 살게 되었고, 헌신적인 예물을 주님께 바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느 성도는 헌금에 관한 말씀을 듣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성도는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 그대로 실천함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열린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 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이00 집사님은 제가 새벽기도회 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간단히 한번 말씀 드렸더니, 그 달부터 꼬박 꼬박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ㅇ(십일조는 영육간의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
말3:10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ㅇ(물질의 십일조 생활과 영적인 의와 인과 신의 인격적 신앙이 동반되어야 한다.)
마23:23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십일조와 생활 축복의 연관성
십일조생활이 철저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육 간에 풍성한 복을 받습니다.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헌금 강조 정신과 목사님의 간절한 축복 기도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물을 드릴 때 보니, 모든 성도가 헌금을 두 손에 꼭 감싸 쥐고 간절히 기도하며, 축복을 뜨겁게 사모하며 드리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헌금으로 드리는 물질은 바로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이요, 신용을 드리는 것이요, 생명을 드리는 것이요, 온 인격을 바치는 것입니다. 헌금생활이 부실하고, 십일조생활을 유기한다는 것은 신앙과 삶이 유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온전한 헌금생활, 온전한 십일조생활은 바로 삶으로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
눅6:38절 말씀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헌금과 이웃 섬김의 삶을 말씀한 구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드리면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도로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리면 주님도 우리를 헤아리실 것입니다.
“록펠러 어머니의 10가지 유언”은 참 소중한 교훈입니다.
1.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
9.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10.예배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으라.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는 성도는 최소한 다음 6가지의 사실 때문에 놀란다.”고 합니다.
1.자기가 주의 일에 바친 헌금의 액수를 보고 놀란다. 투자가 많은 곳에 정성이 간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2.십일조를 드림으로 깊어지는 자신의 영적 생활을 보고 놀란다.
3.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 9/10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음을 알고 놀란다.
4.십일조 보다 더 많은 헌금을 쉽게 바칠 수 있는 자신의 신앙적 성숙을 보고...
5.나머지 생활비 9/10를 보다 더 보람 있는 일들을 위해 사용하는 자신을 보고...
6.생활 속에 쏟아지는 축복을 보면서, “왜 좀 더 일찍 십일조생활을 하지 아니했을까?” 후회하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성실한 십일조생활로 놀라운 영육 간의 축복을 일상생활 속에서 창조하시는 모든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