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 외나무다리
마을 둑에 앉아
저 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외나무다리를 눈으로만 건넌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데
나만 홀로 고장 난 다리를 주무르며
눈으로만 몇 번이나 건너간다
다리, 다리, 다리
너른 금빛 모래밭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푸른 강물은
가버린 사람까지 불러 다리 회상에 젖게 한다
옛날을 곱씹어보며 쓴웃음을 삼키는데
바람은 간질이듯 속살거리고
키다리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손짓하며
기지개를 켜고 슬며시 미소 지으면서
말을 건네온다
“아가씨, 제가 손잡아 드릴 게 외나무다리 건너봐요.”
나는 어느새
하늘하늘 키다리 소녀가 되어 있었지만,
툭툭 무릎을 치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내 안의 외나무다리를
또 건너고 있었다
여심(女心)
눈빛과 눈빛이 만나던 날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던
그대와 나
카페 창문에 어른거린다
창밖엔 줄줄이 서행하는 차량
손 흔들어주는 가로수 잎사귀
바라만 보아도 웃음꽃 피어나는
우리,
멀리서 손뼉 치며 웃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은히 젖어 드는 선율
커피 향에 묻어나는 진한 눈물
말 없는 여심을 적시고
가슴으로 걸어온 길들이
잎사귀처럼 흔들거린다
때론 가득한 희열의 꽃
하염없이 피어나는 느린 햇살 꽃
묻혔다 다시 떠오르는
지난 사랑 꽃
시공을 훨훨 날며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보는
카페 창가에서
한잔의 커피로 넘쳐흐르는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운다
그리움이란 것
-어버이날에
어머님의 유해를 뿌린 강물이
푸르게 흘러갑니다
수목장 한 선산 큰 나무 밑에선
아버님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시는 듯합니다.
그리워지는 부모님
어버이날이면 더욱 보고 싶은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아립니다
지난 시절 농촌에 터전을 두었어도
논마지기도 없이
알량한 밭뙈기와 구멍가게로
생계를 이어가시던 아버지,
보따리장수로 여기저기 돌며
곡식, 고추, 마늘 등을 팔며
힘들게 살다 가신 어머니
부모님은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화장하라고 하시며
흘러가는 강물에
선산의 큰 나무 밑에 영면하셨습니다
흘러가는 강물도, 선산의 나무 밑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에
그리움만 가득 안고 울어봅니다
생각이 앞서가셨던 부모님,
자식을 위해 살다 가신 부모님,
그리움이 사무치는 오늘입니다
내 사랑 토토
귀여운 토토
몰티즈 잡종인 강아지
순종은 아니라도 귀여운 토토
토토와 놀아주면서 더욱 사랑을 느낀다
내가 나갈 낌새를 보이면
벌렁 배를 내보이며 누워 있다가도
저 먼저 현관문 앞으로 달려나가
꼬리를 살래살래 아양을 떨며 앞장서다가
나 혼자 나가버리면
현관문과 문간방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토토
옥상, 소리도 알아듣는 토토
아침 운동도 하고 배설도 하며
신나게 뛰고 노는 곳이 옥상이라서
저녁 무렵에도 옥상! 소리만 내면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 자세를 취하지만
그냥 들어가 있으라 하면
이내 실망하고 꼬리를 슬쩍 내리는 토토
토토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알아듣는 귀염둥이 애완견
나도 모르게 내 사랑이 되어버린 토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며 눈이 가늘어지는 토토
자식보다 살가운 토토라고
내 마음 알아주는 토토라고
그의 등을 어루만져준다
내 사랑 토토
나의 반려견 토토
봄비 내리던 날의 꽃 이야기
'은영이 집'은 비닐하우스로 된 식당이다
입구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화단에는
조팝나무꽃, 박태기나무꽃이
작은 꽃들을 휘감고 속삭이고
그 아래
파릇파릇한 완두콩 새싹이 앙증스럽다
식당 문 양쪽으로
쑥갓을 닮은 노란 꽃이 반겨주고
작은 연못가의 라일락은 아직 꽃봉오리
그 밑에 씀바귀 두 포기가
키를 높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앞뜰의 복숭아꽃은 반쯤 피어나고
아직 꽃 피우지 않은 사과나무
나무 밑 하얀 냉이꽃은 구름 따라 떠다니고
건너편 울타리엔 개나리가 등불인 듯 노랗고
연분홍 진달래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
봄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친구들의 우정은 무르익어 가는데
봄꽃들 빗소리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춘다
봄날의 꽃 향연
봄비 내리던 날의 꽃들은
꽃 세상, 꽃 마음을 열어주었네
'은영이 집'의 꽃 이야기는 깊어만 간다
아픔은 미소로 흘러내리고
흐린 날, 창가에 기대어
너를 들여다본다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졸림에서 깨어나
비로소 들여다본 아픈 육신이
절름발이처럼 걸어간다
휘어진 나뭇가지인 듯
몸부림치던 순간들이
어두운 거리를 떠돈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너를 맡기고
노을에 젖으면 그리움에
하얀 손가락을 맡기고
봄날의 꽃처럼 피어나서
한 톨의 씨앗으로 자라서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하며
크고 큰 소망 가슴에 담고
가시밭길 헤쳐가며
내 터전에 뿌리를 내렸다
온몸이 얼룩지고 뼈아픈 고통 몰아쳐도
벌판을 비추는 미소인 듯
먼 훗날 마주하며 이야기하듯
일상의 아픔을 미소로 감추며
고통은 생을 가꾸는 것이라고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듯
세월을 침묵하며 살아가련다
오늘도 미소꽃 한 송이 피워 보는 너.
너의 강가에서 서서
밀어를 가슴에 품고
너의 강가로 달려간다
심연의 깊디깊은 언어
감미로운 운율로 춤추는 수평선엔
추억을 쓰다듬는 손길이 출렁인다
깊고도 오묘한 강
정겹게 밀려드는
해맑은 너의 강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움
합장하여 기도하면
뼈아픈 희열들이 줄지어 선다
내 그림자 짙은 염원으로
빛바래지 않을 사랑이여
오늘도 나의 가슴은
맑은 미소로 두 팔 벌린
너의 강가로 달려간다
들꽃의 노래
내 삶 속 환희의 순간들이
가슴 벅차오르던 희열들이
그대에게 향하는 그리움으로 피어오르고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함께 인생을 노래할 수 있어서 좋다
소녀의 풋사랑 같은 감성이 남아
아직도 이렇게
그리움으로 가슴 떨리며
하염없이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좋다
한때 나는
묵정밭에 피어난 들꽃이었지
사랑은
조건 없는 기쁨
오직 그대에게로 향하는 이 마음
아직도 그대는 나의 태양이다
꺼져가는 내 인생에 빛을 비춰주고
버팀목이 되어 꽃을 피워 준 그대
여생을 고운 꽃길로 가꾸며
고개 숙여, 두 손을 맞잡고
함께 노래하며 살아가리
숲속의 연가
맑고 환한 하늘을
깍지 낀 손의 밀어를
가슴 가득 담고
오늘도 난 숲속에 와 선다
아, 아, 사랑이던가
너와 나의 가슴을 맞대던
꽃 무리 피어나는 숲속의 추억
해맑은 미소의 내 사람이여
그리움의 빛난 애수를 간직하며
난 짙푸른 네 숲속에
다가와 서서
영원히 변치 않을 소망을 노래한다
산책길은 꽃길이다
-석촌 호수를 돌며
석촌 호수로의 야경을 끌고
산책길을 걷는다
간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옛 송파강이 흐르던 이곳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니
하염없이 펼쳐지는 상념들
삶의 기쁨과 아픔이
석촌 호수 물결 위에 펼쳐진다
매직 아일랜드에서 자이로드롭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와
청춘들의 비명 지르는 소리
윙 윙 윙 기계 소리
번쩍이는 오색찬란한 빛을 보는 것도
산책하며 즐기는 풍경 중의 하나다
벤치엔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
남의 눈길 아랑곳하지 않는
진한 스킨십의 연인들
팔을 저으며 땀 흘리며 뛰는 사람들
애완견을 데리고 유유히 걷는 사람들
유모차에 의지하며 걷는 나이 든 분들
어느새 석촌 호수 한 바퀴 돌고 나니
하늘을 날 것 같은 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꽃길이다
검은 꽃 당신
-앳된 여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23년 7월)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이는 앳된 꽃인데
아름답고 순수한 자태의 여린 꽃봉오리인데
옹골찬 열매 맺을 미래의 꿈 다 접고
어찌 홀연히 검은 꽃길을 택하셨습니까
갓 피어난 여린 꽃으로
거센 폭풍우 몰아치는 교단에 홀로 서서
할퀴고 물어뜯는 상처의 고통을
얼마나 견디기 힘드셨을까요
꽃다운 청춘, 꽃봉오리 잘라버리고
매정한 현실이 싫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당신
작은 가슴으로 흔들리는 교권 앞에
마지막 열정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고
사명감과 모멸감의 틈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슬픔의 눈물을 삼키셨을까요
뜨거운 사랑으로 지켜내던 교정,
이제 아이들의 함성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못다 이룬 꿈
피우지 못한 꽃 한 송이 당신,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검은 꽃 당신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교권 확립의 기틀이 바로 설 때까지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때까지
당신을 위해, 이 땅의 사도를 위해 기도할 겁니다
높으신 그 이름 검은 꽃 당신이여!
이포초등학교 개교 백주 년 기념 시
-우리의 자랑 이포초등학교(2019년 봄)
우리 민족이 일제탄압에 항거하여
대한 독립 만세!
목메게 외치던 소리가
방방곡곡 퍼져나가던
기미년 초여름에
첫출발한 이포초등학교
어언 일백 년!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 발전과 함께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육의 요람
우리의 자랑 이포초등학교
반짝이는 금빛 모래 금사면의
옛 천양 나루터 배꽃 피는 포구 마을
백로의 드높은 기품 담은 이포보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금사참외의 달콤한 맛과 향 그윽하며
포근한 어머님 품속 같은 우리의 고향을
언제나 지켜온 이포초등학교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
우리의 모교
우리의 자랑 이포초등학교는
천년의 희망을 품고
영원히 진리의 빛을 밝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