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정해지자 다시 곽도가 나서서 말했다.
"이제 명공께서 조조를 치시고자 크게 떨치고 일어나셨으나
먼저 해야 할 것은 조조의 죄악을 모조리 헤아려 격문을 여러 군에 돌리시는 일입니다.
사방에 널리 그 죄를 성토하고 군사를 내셔야만 명분이 바로 서고 사
람들도 우리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원소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문전을 맡고 있는 진림을 불러 조조를 성토하는 격문을 짓게 했다.
진림은 지난날 하진이 환관들을 뿌리 뽑고자 사방의 군웅들을 불려들이려 할 때
그 같은 계책의 어리석고 위태로움을 지적하며 말리던 주부 진림 바로 그 사람이었다.
예견한 대로 낙양에 들어온 동탁이 난리를 일으키자
기주로 피신했다가 오래잖아 기주를 차지한 원소의 부름을 받아
문전을 관장하고 있었다.
☆☆☆
명을 받은 진림은 그 뛰어난 문장으로 격문을 써내려 갔다.
'대저 듣기로 밝은 임금은 변란을 억눌러 위태로움을 없이 하고
충성스런 신하는 어려울 때를 걱정해 권세와 위엄을 세운다 했다.
그러므로 비상한 사람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은 뒤에야 비상한 공이 이뤄지게 되니,
무릇 비상한 일은 오직 비상한 사람만이 뜻할 수 있는 바다.
옛적 진은 나라는 굳세어도 임금이 여려,
조고가 권세를 잡고 조정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위세와 화복이 모두 그로부터 나오니
그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껴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세 황제는 끝내 망이궁에서 조고에게 죽고,
조종은 모두 불타 없어지매, 그 욕됨은 오늘까지 전해와
길이 세상의 경계 할 바가 되어 있다.
그 뒤 한의 여후 때에는 여산과 여록이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해서,
안으로는 남군`북군을 함께 거느리고, 밖으로는 양과 조 두 나라를 아울러 주물렀다.
조정의 온갖 중한 일을 저희 멋대로 해치웠으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얕보고 대신하니 나라안 사람들이 모두 한심하게 여겼다.
이에 강후와 주허후가 군사를 일으켜,
포악한 역적들을 분노로 쳐죽이고 태종을 세웠다.
그리하여 왕도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빛남이 널리 드러나게 했으니
이는 곧 대신이 권세와 위엄을 세워 나라의 어지러움을 구한 뚜렷한 본보기이다.
사공 조조의 할애비인 중상시 조등은
좌관 서황 같은 내시들과 어울려 갖은 요사스럽고 못된 짓을 다한 자이다.
더럽게 재물을 긁어모으고, 거칠 것 없이 날뛰어,
세상의 풍속을 썩게 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조조의 애비 조숭은 원래 비럭질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조등의 양자가 된 뒤 뇌물을 써서 벼슬자리를 얻은 자이다.
바리바리 금, 은, 보옥을 권세 있는 이의 집으로 실어 날라
마침내는 태위까지 사게 되니 천하의 중한 일을 그대로 둘러엎은 꼴이다.
이제 그 아들 조조를 보자.
조조는 더러운 내시의 자손으로서
원래 아름다운 덕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교활하게 협행을 구미며,
어지러움을 좋아하고 화를 일으키기를 즐겨했다.
막부는 응양군을 이끌고 흉악한 역적의 무리를 쓸어 없앴으나,
잇달아 동탁이 나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나라를 힘으로 억눌렀다.
이에 칼을 뽑고 북을 울려 동하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영웅을 끌어 모음에 버릴 자는 버리고 쓸자는 쓰니,
그로 인해 조조와도 함께 의논하고 꾀를 합치게 되었다.
그때 조조에게 군사를 내어준 것은
그의 매나 개 같은 재주를 발톱이나 이빨로 쓰려 함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어리석고 계략이 짧아,
가볍게 나아가고 쉬이 물러남으로써 여러 번 군사만 잃고 싸움에 져 쫓기었다.
막부는 그런 조조에게 다시 군사를 나누어 잃은 것을 채워 주었고,
한편으로는 천자께 아뢰어 동군태수로 삼고 연주자사에까지 오르게 했다.
그렇게 하여 세력과 위엄을 쌓게 해준 것은
적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조조는 밑천이 생기자 함부로 날뛰기 시작해,
흉악하고 못된 짓을 멋대로 저질렀으며,
어진 이를 죽이고 착한 이를 해쳤다.
구강태수 변양은 재주 있고 씩씩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으나,
바른 말만 하고 아첨을 모르다가 죽음을 당해 그 목은 저자거리에 걸리고
그 아내와 자식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선비들이 그 일을 분히 여기고 백성들의 원망도 높아가,
한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자 모든 고을이 소리를 함께 해 조조를 욕했다.
그 때문에 조조는 서주에서 패해 그 땅은 여포에게 뺏기고,
동쪽으로 떠돌며 거처할 곳조차 얻지 못했다.
막부는 나라의 줄기를 든든히 하고 곁가지가 쓸데없이 무성 하는 걸 막고자
반역하는 무리에 들지 않고 다시 군사를 내어 자리 말듯 밀고 나아가 적을 쳤다.
징소리 북소리 울리는 곳에 여포의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조조는 목숨을 건짐과 아울러 방백의 자리까지 되찾았다.
따지고 보면 막부는 연주땅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덕도 베풀지 못하고
헛되이 조조만 크게 도와준 셈이 되고 말았다.
그 뒤 천자께서 되돌아오시자
역적의 무리들이 떼지어 쳐들어왔다.
그때 막부는 기주에 있었으나,
마침 북쪽의 더러운 도적이 우리 백성을 놀라게 해
그 어려운 국면에 기주를 비울 수가 없었다.
따라서 막부는 종사중랑 서훈을 보내
조조로 하여금 먼저 낙양으로 가게 했다.
가서 불탄 종묘를 수리하고 어린 임금을 지키라 한 것인데 조조는
모든 걸 제멋대로 하고 임금과 신하를 겁주어 억지로 천자를 자신에게로 옮겨 가뒀다.
왕실을 낮추고 욕보였으며, 법을 뒤엎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
앉아서 3대를 거느리고 조정의 일을 제멋대로 하니,
상과 벌이 모두 그의 마음에 달렸고 죽이고 죄 주는 일 또한 그 입 끝에서 정해졌다.
그의 아낌을 받으면 5대가 빛났고,
미움을 받으면 3족이 죽어 없어졌다.
여럿이 모여 떠들면 드러 내놓고 죽였으며,
마음속으로 욕하는 이는 아무도 모르게 죽이니,
모든 벼슬아치는 입을 다물고 다만 눈짓으로 뜻을 통하며,
상서는 다만 조회를 적을 뿐이고, 공경은 그저 자리나 채울 뿐이었다.
태위 양표는 일찍이 사도`사공을 지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벼슬자리를 거친 이였다.
그러나 조조의 눈밖에 나자 죄 아닌 죄로 갖가지 고문을 당하고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니,
조조가 제 마음 내키는 대로하며 나라의 기강을 돌보지 않음이 그와 같았다.
또 의랑 조언은 충성스럽고 바른 말을 해
옳음이 하나같이 받아들일 만했다.
조정에서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때로는 잘못을 고치고 때로는 그 충성을 상 주었으나
조조는 나라의 권세를 훔치기 위해,
바른 말을 못 하게 하려고 조언을 죽이고 천자께 아뢰지도 않았다.
또 양효왕은 선제와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간이니
그 묘소는 떠받들어져야 하고, 둘레의 소나무 잣나무까지도
마땅히 귀히 여겨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조조는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고 가서,
그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깨어 시신을 드러내면서까지 금은과 보화를 꺼냈다.
천자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백성들이 모두 슬퍼해 마지않은 일이다.
조조는 또 발구중랑장이니 모금교위니 하는 벼슬아치를 내세워
닥치는 대로 무덤을 파헤치게 하니, 보물과 함께 묻힌 해골 치고
드러나지 않은 게 없다 할 만하다.
몸은 비록 3공의 자리에 있다 해도 그 하는 짓은 도둑이나 다를 바 없다.
실로 나라를 더럽히고 백성을 해치며 사람과 귀신에게 아울러 독한 짓을 하는 자이다.
거기다가 그 다스림의 세세함은 끔찍하고도 모질다.
법과 형벌을 두루 펴서, 세상살이 곳곳에다 함정을 파고 길을 막으니
손을 들면 그물에 걸리고 발을 움직이면 함정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연주`예주의 백성들은 즐거움을 모르고,
천자 계신 서울은 원망소리만 드높을 뿐이다.
세상의 책을 모조리 들쳐 무도한 신하를 찾아낸다 한들
조조보다 더 욕심 많고 잔인하며 가혹한 자가 어디 있으랴.
막부는 한창 바깥의 간사한 역적을 치느라 바빠
그런 조조를 다스리고 가르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너그러이 용서해 그가 마음을 고쳐먹기만 바라며
그때 그때를 때워 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늑대같이 컴컴한 마음으로
가만히 화를 일으킬 음모를 키워나갔다.
나라의 기둥 같고 대들보 같은 신하들을 휘어잡아 한실을 외롭고 약하게 만들고,
충성되고 바른 이들을 내쫓거나 죽여 홀로 우뚝한 영웅이 되었다.
지난번 우리가 북을 울려 북쪽의 공손찬을 칠 때,
굳센 적은 모질게 맞서 에워싸이고도 1년이나 버티었다.
조조는 적이 깨뜨려지지 않음을 보고 몰래 글을 주고받아,
겉으로는 우리를 돕는 체하면서도 안으로는 가만히 우리를 덮치려 했다.
다만 그 심부름꾼이 우리에게 잡히어 흉계가 드러나고
공손찬 또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칼날을 감추고 못된 꾀를 거두어
우리를 해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조조는 오창에 머물러 우리가 강을 건너기 어려움만 믿고
버마재비의 앞발 같은 도끼로 수레바퀴 같은 우리의 군사에 맞서려 한다.
막부는 한실의 위령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는 바,
긴 창을 든 군사 백만에 말 탄 장수의 무리만도 천이다.
옛적의 중황이나 육`획 같이 날래고 씩씩한 장사가
좋은 활과 강한 쇠뇌를 갖춰 떨쳐 일어남이니,
병주의 고간은 태행산을 넘고
청주의 원담은 이미 제수와 탑수를 건넜다.
대군은 그 머리를 앞으로 향해 황하를 건너고,
형주 군사는 완성과 엽성으로 내려가 조조의 뒤를 끊었다.
우레처럼 울리고 범처럼 나아가
저의 근거지에 모이는 날에는 타오르는 불로 마른 쑥 덤불을 사르듯,
푸른 바다를 뒤엎어 단 숯불을 끄듯 적을 칠 것이니,
누가 죽어 없어지지 않고 견뎌낼 것이랴.
거기다가 조조의 군사와 벼슬아치들 가운데
싸울 만한 자는 모두가 유주`기주땅 사람들로,
더러는 일찍이 내 밑에 있었던 적도 있어
모두 돌아오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흐리며 북쪽을 바라고 있다.
또 그 나머지는 연주`예주땅 백성이거나 여포와 장양을 따르던 무리로,
주인이 망한 뒤 위협(威脅)을 못 이겨 억지로 따르고는 있되,
각기 조조와의 싸움에서 다치고 상한 적이 있어 그를 원수로 여기는 바다.
한번 우리가 깃발을 휘두르며 높은 곳에 올라 북만 울려도,
바람에 쓸리듯 모두 항복해 와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스러지듯 할 것이니,
칼날에 피를 묻힐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한실은 힘을 잃고 기강은 풀어졌으며,
조정에는 돕는 신하가 없고 종실에도 역적을 막을 세력이 없다.
도성 가까운 곳의 바른 말 하던 신하들도 이제는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나래를 접은 채 어찌 할 줄 모르는 새 새끼 같은 꼴이다.
비록 충의로운 신하가 있다 할지라도
포학한 신하에게 억눌려 버렸으니 어찌 그 절개를 펴 보일 수 있으랴.
또 조조는 자기가 거느린 군사 7백으로 궁궐을 에워싸,
겉으로는 천자를 지킨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실제로는 천자를 가둬 놓고 있다.
그가 역적질할 마음이 그렇게 함으로써 싹튼 게 아닌지 참으로 두렵다.
이제야말로 충신이 간과 뇌를 땅에 쏟으며 몸을 바칠 때이며,
열사가 나라를 위해 크게 공을 세울 때이니
주가 가진 힘을 다 쏟아 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조는 또 어명과 나라가 정한 바에 따름이라 내세우고
사람을 흩어 군사를 모아들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고을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군사를 댈까 걱정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럿의 뜻을 어기고 역적질에 가담하는 짓이 되며,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고 천하의 웃음소리가 될 뿐이니,
밝고 생각 깊은 사람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로 유주`병주`청주`기주 네 곳에서 아울러 군사를 낼 것이니,
이 글이 형주에 이르거든 형주도 얼른 군사를 일으켜 건충장군과 성세를 합치도록 하라.
그 밖의 주군도 각기 의로운 군사를 가다듬어 경계에 벌여 세우고,
크게 무위를 떨쳐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잡으라.
그리함으로써 비상한 공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조조의 목을 얻는 자에게는
5천 호후에 봉하고 50만 전을 상으로 내릴 것이며,
조조 아래의 장수나 장교, 관리라도
항복해 오는 자는 그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널리 이 너그러움과 믿음을 펴며 벼슬과 상을 걸고 천하에 포고한다.
천자께서 갇히고 핍박받는 어려움 속에 계심을 알리나니 영이 떨어지는 대로 따르라.'
☆☆☆
진림이 지어 올린 격문을 본 원소는
매우 기뻐하며 여러 벌 베껴 급히 각 주군에 돌리게 하는 한편,
뭍과 물의 주요한 길목마다 방으로 붙이게 했다.
격문은 오래잖아 허도에도 이르렀다.
그 무렵 조조는 두풍을 앓아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조홍이 송구한 듯 그 격문을 가져다 바쳤다.
그걸 읽자 조조는 모골이 송연하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더니 두풍까지 싹 가셔 버렸다.
그만큼 진림의 글은 매서웠다.
"이 격문은 누가 지었다고 하던가?"
펄쩍 뛰듯 일어난 조조가 물었다.
조홍이 불길 이는 눈길로 대답했다.
"듣기로 진림이란 놈이 지었다고 합니다."
눈앞에 있다면 금방 한 주먹으로 으깨어 버릴 듯한 태도였다.
조조와 사촌인 조홍으로서는 당연했다.
그러나 조조는 역시 달랐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하는 자들은 싸움하는 재주를 당해 내지 못한다.
진림의 글이 비록 아름답다 하나
원소의 싸움하는 재주가 그에 따르지 못하니 어쩌겠느냐?
원소가 내게 깨뜨려지는 날은
반드시 내 손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런 다음 곧 여러 모사들을 불러 놓고
원소를 맞아 싸울 의논을 했다.
전에 북해태수였던 공융이 그 소식을 듣고 왔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소는 지금 세력이 엄청납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화해를 하도록 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원소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위인인데 무엇 때문에 그와 강화를 맺는단 말이오?"
순욱이 공융을 나무라듯 물었다.
공융이 그 말을 받아 계속했다.
"원소는 거느린 인재가 많고 백성들도 강성하오.
그 밑에 있는 허유`곽도`심배는 모두 지모가 있는 사람들이며
전풍과 저수는 충직한 사람들이오.
안량`문추의 용맹은 3군을 덮을 만하고
고람`장합`순우경 등도 모두 세상에 드문 명장들이외다.
그런데 어찌 원소를 쓸모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나 순욱은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원소의 군사는 많으나 정연하지 못하고
전풍이란 사람은 강직하여 웃사람을 자주 거스르며,
허유는 탐심이 많아 지혜롭다 할 수 없고,
심배는 지모(智謀)보다 고집이 세고,
봉기는 쓸데없이 과단성만 앞세울 뿐이오.
거기다가 이 사람들은 서로 뜻이 맞지 않으니
오래잖아 반드시 서로 싸우게 될 것이외다.
장수도 마찬가지요.
안량`문추는 그저 하찮은 무리의 용맹뿐이니 한번 싸움에 사로잡을 수 있고
그 나머지 용렬한 무리들은 백 명에 이른다 한들 입에 올릴 가치도 없소이다."
그러자 공융도
잠시 그 같은 순욱의 말을 되씹어 보는 듯 말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순욱을 편들었다.
"그렇지. 모두 문약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는 곧 유대와 왕충을 불러 영을 내렸다.
"유장군은 전군이 되고 왕장군은 후군이 되어 군사 5만을 이끌고 서주로 가시오.
승상의 기호를 그대들에게 내 줄 터이니
반드시 그걸 앞세우고 유비를 공격(攻擊)하도록 하시오."
공융과 순욱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서주 쪽에 보낼 장수까지 마음속에서 결정해 둔 모양이었다.
명을 받고 나가는 둘을 보며 정욱이 조심스레 말했다.
"유대와 왕충이 과연 맡은 몫을 해낼지 걱정됩니다."
유대는 원래 연주자사였으나 조조에게 항복하여 편장 노릇을 하고 있었고,
왕충은 그보다도 더 이름 없는 장수였다.
조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역시 이들이 유비의 맞수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소.
다만 허장성세로 유비를 속이려는 것뿐이오."
다시 말해 조조는 모든 역량을 원소와의 싸움에 집중시키기 위해
유비를 우선 서주에 묶어 두기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대와 왕충이 서주로 떠나기 앞서
덧붙인 당부로 더욱 뚜렷했다.
"결코 가볍게 나아가지 마시오.
굳게 지키며 내가 원소를 깨뜨릴 때까지 기다리면
그때 서주로 대군을 몰고가 유비마저 깨뜨릴 것이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 조조는
원소의 대군과 80리 거리를 두고 진채를 내렸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원소의 대군이라
섣불리 덤벼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의 허실을 탐지한 뒤 싸우기 위해
호를 깊이 파고 담을 높이 쌓아 방비부터 든든히 하니
이번에는 원소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서로 멀지 감치서 상대가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새에 두 달이 흘렀다.
가을 8월에 떠나 초겨울 10월에 접어든 것이었다.
☆☆☆
원래 이치로 보아서는 원소 쪽이 공격에 나서야 했다.
먼저 와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공손찬이란 강적을 쳐부순 지도 오래되지 않아 사기도 드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원소의 진영은 마침내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끌 고질을 앓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내분이었다.
먼저 허유는 심배가 군사를 이끌고 자신은 한낱 모사로 나앉은 것이 즐겁지 아니했다.
진격해 공을 세워봤자 제 공이 못 되리란 생각으로 굳이 속전을 주장하지 않았다.
다음 저수는 또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써주지 않은 것에 한을 품었다.
만약 그 싸움에서 원소 쪽이 이기게 되면
지구전을 주장한 자신의 계책은 더욱 그른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싸움을 애매한 상태로 두는 데 힘을 썼다.
만약 원소가 확고한 주견이 있고 과감하게 결단할 수만 있어도
그 정도의 불화는 큰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이말 저말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니
군사는 그대로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초조하게 원소의 공격을 기다리던 조조도
두 달이 지나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소가 급히 맹공으로 나올 수는 없으며
또 나온다 해도 그리 대단한 힘을 보이지는 못하리란 판단이 든 것이었다.
이에 조조는 장패를 불러 청서를 지키게 하고,
우금과 이전은 하상에 둔병하게 한 뒤 조인으로 하여금 관도에 머물러
그들 모두를 함께 감독케 했다.
그리고 자신은 몸을 빼어 일단 허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