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양태영의 시 세계 생명과 시간성 그 존재의 융화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생명의 의미’와 시간성 우리들이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화두(話頭)를 끌어안고 앉아서 골돌하게 집착하는 모습은 작금(昨今)의 고뇌가 아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해법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대답이 신뢰를 확보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시인들이 추구하는 시적 진실이 바로 우리들 생명과 존재의 문제와 상관성을 갖기 때문에 자아(自我)의 인식에서부터 고뇌와 갈등 등의 화해로 성찰과 기원의식에까지 열정적으로 탐색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들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현대시의 주제는 그 시인의 체험 속에서 숙성된 정한(情恨)의 다양한 형태들이 그의 진실로 승화했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작품으로 태동하여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면의 진실이 적절한 언어를 통해서 형상화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양태영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 』의 원고를 일별해보면 이와 같은 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지향점이 바로 존재의 의미와 생명성에서 융합(融合)하는 시간(혹은 세월)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현실적 교감을 이해할 수 있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게 된다. 일찍이 미국의 사상가이며 수필가인 R.W.에머슨이 말하기를 ‘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라는 언지로 시의 진실은 현실보다는 이상(理想)에 대한 우리 마음의 향방(向方)에 따라서 진리와 진실이 보다 고차원으로 현현된다는 논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생명이 의미를 알 것도 같습니다 시간의 모습을 느낄 것도 같습니다 당신에 표정을 알 것도 같습니다 당신에 음성을 들을 것도 같습니다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은 아무래도 좋은 황혼입니다 머물러도 좋고 떠나도 좋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한순간도 놓을 수 없는 것도 애달픈 생의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한 순간의 기도」전문 여기 그의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제야 인식할 수 있는‘생명의 의미’이다. 이 생명성이 다시‘시간의 모습을 느낄’수 있는 시적 상황(situation)의 설정은 양태영 시인이 그동안 인지하지 못한 인생학적인 요소들을 시를 통해서 자인(自認)하는 단계를 적시하는 그의 발성법(發聲法)이다. 그는 이미 ‘한 순간의 기도’라는 암시(暗示)에서 ‘당신의 표정’과 ‘당신의 음성’을 알 수 있다는 어조(語調)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듯이 그는 이러한 다감(多感)한 발상의 원류에서‘아무래도 황혼’이며‘아름다운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한순간도 놓을 수 없는 것도 / 애달픈 생의 집착을 놓아야’한다는 비장한 언술은 그의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적시하는 인생의 메시지로서 공감(共感)의 영역을 확대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거울을 바라보며 일상의 괴로움과 설움 눈물의 절규로도 떨어 버릴 수없는 인생의 사치와 향락 빛이 없는 비애 속의 삶보다는 차라리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다만 순간의 망각만의 영원하도록 세월이여! 이대로 돌이 되게 하여라 천 년의 비바람에 시달린 고통의 참맛을 맛볼 수 있도록 바람이여 이대로 돌이 되게 하여라 --「삶」중에서 그렇다. 양태영 시인은‘삶’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일상의 괴로움과 설움’그리고 ‘인생의 사치와 향락’은 그에게서는 ‘눈물의 절규로도 떨어버릴 수 없는’‘삶’의 저해요소로 나열되고 있어서 그는 ‘빛이 없는 비애 속의 삶보다는 / 차라리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 다만 순간의 망각만의 영원하도록’‘세월(시간)’에게 ‘천 년의 비바람에 시달린 / 고통의 참맛을 맛볼 수 있도록 / 바람이여 이대로 돌이 되게 하여라’라는 강한 어조로 그의 진정한 내면의식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러한 어조는 작품 「인생 1」중에서 ‘가을이 가는 길목에서 / 생이 즐거움을 노래하고 / 웃음으로 살아가는 / 인생길을 거북이처럼 / 소처럼 살아가자.’라거나 「인생 2」중에서도 ‘발버둥 쳐본들 / 시간이가면 / 어차피 너와 나는 /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 잠속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등의 인식 단정은 그가 ‘삶’에서 체득한 인생이나 생명성에 대한 성찰의 집념이 강하게 분출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인생과 생명은 작품「돌 위에 앉아서」「살다보면 안다」「가는 곳 걷는 길」「우리는 지금」「흐르는 세월」그리고「그 마음 알길 없네」등에서 진솔한 인생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생명의 의미와 시간성의 융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2. 고적한 공간과 기원의식 양태영 시인에게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심저(心底)에는 성찰에서 분사한 기원의식을 위한 절대 고적(孤寂)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그에게 내재(內在)한 심리적인 변환(變換)일 수도 있겠으나 현질적인 생활(real life)에서 도출(導出)된 고뇌와 갈등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인생의 행로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기원으로 형상화하여 다소나마 그 지향점을 명민(明敏)하게 적시하려는 그의 간절한 여망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간구(懇求)의 언어는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계기로써 당연한 귀결(歸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비록 허망일지라도 시인들이 즐겨 구사하는 시법임은 틀림 없다. 내게만 차갑게 향을 켜 대는 산은 묵향 내음 이고서 손을 내밀어 보면 불어 올 것만 같은 당신의 숨결 오늘과 내일의 겹으로 이어지는 고독이 포함된 이 밤에 영원한 숨결은 끝나리니. --「밤은」전문 우선 양태영 시인은‘고독이 포함된 이 밤에’라는 시간과 공간 개념을 동시에 설정함으로써 그가 여망하는 ‘영원한 숨결’이 어떤 기원을 전제로 하는 서막(序幕)으로 ‘밤’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고적한 발현은‘중천에 달이 보이거든 / 모두가 잠든 밤에 저 세상에 묻혀 / 다시는 떠오르지 않게 하라(「모두가 잠든 밤」중에서)’거나 ‘외로운 밤에는 / 자꾸만 별을 보고 싶다 / 더 외로운 밤에는 / 찬란한 유성이 되고 싶었다(「외로운 밤」중에서)’그리고 ‘달아 네 사랑아 / 내 그대와 함께 / 이 한밤을 이 한밤을 / 이야기하고 싶구나(「달밤」중에서)’라는 진솔한 어조와 같이 ‘밤’이 주는 고적함과 외로움에서 그의 기원은 출발하게 된다. 별이 되렵니다. 누가 가지려 하겠습니까? 별이 되렵니다. 누가 빼앗으려 하겠습니까?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만이 주어진 아무에게도 넘겨줄 수도 없는 빼앗길 수도 없는 자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자리 잡은 웅장하고 장엄한 별이 되렵니다. 무늬와 향기를 마음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별이 되렵니다. --「 별이 되렵니다」전문 이 작품에서는 우선 기원의 의지를 현현하기 전에 ‘누가 가지려 하겠습니까?’ 혹은 ‘누가 빼앗으려 하겠습니까?’라는 의문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그가 ‘별이 되렵니다’라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 전제된 의문인데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자리 잡은 / 웅장하고 장엄한 별이 되렵니다.’라는 강렬한 기원으로 주제에 천착(穿鑿)하고 있다. 양태영 시인은 이와 같이 ‘밤’의 고적함과 동시에 그가 절규에 가깝도록 토해내는 소망의 언어는 더욱 설득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공감이 확대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적시한 ‘무늬와 향기를 마음으로 느끼는 / 아름다운 별이 되렵니다.’라는 보편적인 기원과는 차원이 약간 고조된 감응(感應)을 유발하고 있어서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주제의식이 명징(明澄)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기원의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머니에 마음 고이고이 / 간직하여 마음속 깊이깊이 / 새기며 후회 없이 살으렵니다.(「 어머니 2」중에서) - 다시는 연약한 모래성을/ 쌓지 않기를 바라면서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을 피우렵니다.(「상사화」중에서) - 계절이 바뀌면 정원에 아름다운 꽃 / 다시 피워 벌과 나비 새들 노랫소리 / 옛 시인의 노랫소리 듣고 싶어라.(「갈색바람 속 석양」중에서) - 높고 깊은 사연도 하늘 밑 사연이련만 / 언제나 이루어지려나? / 우리에 사연은.(「사 연」중에서) - 꽃이 시들지 말도록 껴안지 말고 / 등불이 바람에 꺼질까 외투로 덮지 마라 / 힘차게 노 래 부르면 거문고줄 끊어지나니 / 스스로 흘러가는 저 강에 둑 쌓지 마라(「흐르는 강 물」중에서) - 이 나라에 가슴에 핀 / 자랑스러운 꽃이 되도록 / 노래 부르렵니다.(「모닥불」중에서) - 하얀 백지를 그리다 잊혀버린 / 추억 속에 사라진 조각달 / 오늘 산 중턱에 걸렸구나 / 바람이 불어와 데리고 가도 / 남아있는 전설 위에 홀로 가득하여라.(「마음」중에서) 보라. 양태영 시인의 기원은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의식속에 잠재한 다변적인 상황들이 현실과 갈등하면서 구현하려는 이상적인 실현이 그의 진실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3. ‘사모곡’과 연민의 이중주 양태영 시인의 내면에는 또 영원한 불망(不忘)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징표가 빛나고 있어서 그가 진실로 구명(究明)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표상이 연민과 함께 이중주로 노래하고 있다. 갈대 한 잎으로 여자로 태어나 칼날 위로 손을 얹어 세상을 다스려 두고 갈 말은 없어도 손끝에 남은 흔적 당신을 위하여 언제나 노래 부르렵니다. --「 사모곡」전문 그의‘사모곡’은 ‘당신을 위하여 / 언제나 노래 부르렵니다.’라는 결론과 같이 그와 ‘어머니’는 영원한 공존의 의미를 내포(內包)하고 있다. ‘어머니’의 위대한 생명성은 우리들이 공감하는 시적 질료(質料)이지만, 양태영 시인이 구가(謳歌)하면서 탐색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범상(凡常)치 않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둡고 긴 폭풍이 밤을 침묵으로 밝히 우고 이제 또 여명을 맞는 오늘 그 험한 세파 에도 묵묵히 외면 할 줄 아는 당신 인간도 따르지 못하는 인고의 꿈을 머금고 번득이는 굽이 사이로 세월에 시달린 잔주름이 아프다 말을 할 순 없어도 하늘을 열수 없어도 항상 미소로움은 내 깊음이 무한함을 말해주고 천 년을 하루같이 살면서 침묵할 줄 아는 당신이기에 이렇게도 부드러운가 보다. --「 어머니 1」전문 그는 ‘어머니’에 대한 연작시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매료(魅了)하고 있어서 그의 뇌리(腦裏)에는‘인간도 따르지 못하는 / 인고의 꿈을 머금고 / 번득이는 굽이 사이로 / 세월에 시달린 잔주름이 아프다’는 어조로 그가 평소에 존경하고 흠모(欽慕)하던‘어머니’가 이제는‘세월’과‘세파’에서 침묵’뿐인‘당신’으로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사모곡은‘어머니!/ 오늘 불현듯 생각나는 그 얼굴 / 당신이 생전 모습 생각납니다 / 오직 아들이 건강만을 위해 / 정성으로 빌고 빌어주던 어머니(「어머니 2」중에서)’또는‘어머니 / 당신의 나라는 정말 고요 하였습니다. / 단 한 뼘의 깊이에도 / 스스럼없이 밀려오는 파도 / 구름은 갈매기처럼 하늘을 엽니다(「바다」중에서)’라는 그의 효심(孝心)은 우리들의 감동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차가운 달빛 속에 너의 미소 아스라이 떠오르는 한줄기 그리움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운 속에 겹겹이 쌓여가는 내 진실이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섭리 앞에 나래를 연 나의 사랑은 누구를 위한 바램인가 누구를 위한 그리움인가? --「 그리움 1」전문 양태영 시인에게는 어머니 외에 또 다른 ‘그리움’이 있다. 그것은‘나래를 연 나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누구를 위한 그리움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그의 사랑학은 ‘그리움’이라는 관념화법의 다양한 언어로‘차가운 달빛 속에 너의 미소 가’그의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그리움과 함께 / 피고 지는 꽃과 함께 / 너와 나는 그리움을 담아 / 사랑을 나누고 있구나.(「그리움 2」중에서)’라거나 ‘어쩌다가 지나는 밤에 만나는 당신은 / 한 줌에 구름이요 불어오는 바람이련가 / 그 높은 곳에서 오는지 낮은 바다에서 /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그리움 따라 / 그대가 잠이 든 후에 만나고 싶은 / 만나도 좋은 구름 속 여인이여(「연가」중에서)’라는 그의 간절한 그리움이 심연(深淵)에 흐르고 있다. 한 번 만이라도 사랑한다 말해주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며 이생이 다하도록 복사꽃 향기를 품고 살아가도록 운해의 가슴속에 들어와 영원토록 함께해주오 사랑하는 내 여인이여. --「 사랑하는 내 여인이여」중에서 보라. 그의 사랑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의 언어를 통해서 강조하는 애원(哀願)의 호소로 ‘사랑하는 내 여인’을 절규하고 있다. 이는 양태영 시인이 만유(萬有)의 현실적인 외연(外延)에서도 오로지 ‘당신’을 위한 사랑 맹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 번 만이라도’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그가 ‘당신’을 위한 진솔한 고백일 수도 있어서 영원성을 내포(이생이 다하도록)한 ‘내가 사랑해야 할 / 단 한 사람’에 대한 연가의 한 대목이다. 이 밖에도 연가풍의 시편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작품「사랑한다는 것은」「기다림」「일편단심」「너」 「보름달」「회상」등등에서 감지하는 연가의 지향점은 ‘어머니’와 ‘내 여인’이라는 실체에서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되고 있다. 4. 자연 서정의 동화와 진실 양태영 시인은 그가 사유하는 관념의 보편성을 초극(超克)하여 외적인 응시(凝視)에서 흡인(吸引)하는 자연 서정에서 그의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 자주 대하게 되는 자연 사물이 그의 정서와 합일할 때 발흥(發興)하는 시상(詩想)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서정에서는 시론(詩論)에서 흔히들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라는 감상적인 오류(誤謬)를 많이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자연관은 인간정신에 존재 근거를 두고 있어서 자연은 인간의 정서에 좋은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간과 일체감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이얀 박꽃처럼 피어오르는 그림자 저녁노을에 쌓인 모습인양 어둠 진 빛 희미하다 깊은 산속 샘물 옆에 피어있는 한 송이 꽃향기가 내 가슴 속에서 타는 듯 그리움은 밀려오는데 한마음 되는 무지개는 파란 하늘을 덮은 채 남아있다. --「하이얀 박꽃처럼」전문 이 작품에서는 동화의 요소가 시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꽃’이라는 자연 사물을 양태영 시인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이것을 내적인 인격화하고 있다. ‘내 가슴 속에서 타는 듯’이라는 어조는 바로 ‘내’가 그 자연 속으로 몰입해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풍(作風)은 자연 서정의 극치(極致)를 이루면서 어떤 정경(情景)에 함몰(陷沒)하는 시흥(詩興)의 발원지와 같은 안온한 경지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깊게 자리한 주제는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빗속 하늘 새벽 가지 흔드는 바람 소리에 몸을 뒤척이면서 새벽 창가에 앉아 강가를 바라본다 강 언덕 위를 오르던 날 날아오르던 산비둘기 푸드덕 날갯짓하는 소리에 햇살은 구름에 가리고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던 날 맑은 가을 하늘은 수재의 먹물로 뿌려져 愁心수심을 달래었고 가을 하늘은 여물어 가는 가지가지마다 오곡백과를 찾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비가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들어 잔잔한 바다 된 옥빛 물소리는 가을 바람결을 따라 뜰을 채운다. --「가을 하늘」전문 우리의 서정시가 내포하는 궁극적인 의미의 중심축에는 음풍영월(吟風詠月)의 고전적인 메시지보다는 정적인 묘사(描寫-skech)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중요한 주제가 내재되어 있어서 ‘수심’이나 ‘내 마음’이라는 ‘내(혹은 나)’라는 화자(話者)를 통한 정서의 정리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연 정경을 가장 미적(美的)으로 구성하고 거기에 투영시킬 주제를 자기 자신의 현재 상황과 일치시키는 시법은 우리들을 공감으로 매료하고 있다. 이것이 서정시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을과 새벽 등의 시간성과 여기에 부합하는 빗속 하늘, 창가, 강 언덕, 대지, 가을 하늘, 강, 뜰 등의 공간 그리고 바람소리, 날개짓하는 소리, 새들의 노랫소리, 옥빛 물소리 등등의 청각적인 이미지를 고르게 융합함으로써 작품의 구성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정감을 요동(搖動)시키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음에 경탄(敬歎)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서정성은 풍성하다. 그의 주변의 체험에서 획득한 ‘영주산’과 ‘영산’, ‘영실 ’,‘우도봉’, ‘어리목’등등의 지명에서 발상된 작품에서도 그가 지향하려는 서정적인 진실의 원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양태영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그의 감수성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소재를 취택하고 고차원의 주제를 투영하려는 그의 열정을 확인하였으며 그가 앞으로 정진(精進)해야 할 시적 향방(向方)을 가늠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는 오늘도‘가을의 山情은 그러나 우리에게 맑은 예지(銳智)와 / 생명(生命)의 충일감(充溢感)을(「산정」중에서)’주기 위해서‘대지위에 쌓인 눈을 보면서 / 즐거움을 느끼고 / 다가 올 봄을 기다리며 / 삶의 노래를 부(「춘하추동」중에서)’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