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만·그레씨이커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페이지] F01 원작 : 헬만·그레씨이커 번역 : 죠지·화이트 역 : 박영희 연출 : 임영웅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전 2막 〈ROYAL GAMBIT〉 극단「산울림」제4회 공연작품 1971. 10. 21-25까지 국립극장에서 [페이지] F02 나오는 사람들 헨리 8세 카타리나 앤볼린 제인 쎄이모어 클리브스의 안나(30세) 캬스린 하워드 케이트 파아 [페이지] F03 Theatre Arts 1959년 7월호에 완재된 본 작품은 이 해의 뉴욕 무대의 마지막 시즌을 장식한 주요 몇 작품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으로 독일작가 헬만·그레씨이커 원작이다. 영어로써는 죠지·화이트의 번역으로 그해 3월 객석 149의 매리나 스테이지인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 설리반스트릿 프래이하우스에서 공연된 것이 최초이다. 뉴욕타임스의 브록스 뒛킨스는 일컬어 독창적이고 충동적이며 성숙한 작품--- 분분한 의문의 가지가지가 대답이 될 수 있는 짜임새 있게 훌륭히 쓰여진 작품이라 했다. 헤랄드 트리뷴에는 원터 키가 평을 썼다. 「참신한 소재를 참신한 방법으로 다룬 보기 드물게 흥미 있는 실험극이다」 등장 인물의 수효는 적다. 남자〈헨리八세〉와 여섯 명의 여자(그의 부인) 가 전부다. 독일에서는 1957년 첫 공연이 있었으며 그 뒤를 잇달아 국내 각 도시와 오스트리아의 주요 극장에서 계속 공연되었으며 1958년에는 게하트 하우프트만 상을 획득했다. 1903년 마젠부르그에서 태어난 그레씨익커는 이십 년대 초기 독일 [페이지] F04 연주계에 활약한 바 많다. 삼십년 때에는 도이체스 띠아터 벨른 띠아터에서 처음엔 라인하트의 조수로 있다가 하인즈 힐버트의 조수로 계속 일했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쓰기 시작하기는 이차대전 이후부터다. 율리씨스의 귀향을 소재로 한 첫 작품 Rainbow는 1947년 공연되었다. 두 번째 작품으로는 1951년에 공연된 The Golden Years로 쎄네카와 네로를 주제로 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작품으로 본 Poyal Gambit가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註〉 이 극에서 헨리8세는 하나의 현대 인간형을 대표하고 있다. 헨리8세의 호색적이면서 도덕적인 일대 희비극을 통해 현대라는 양상은 전개된다. 여섯 명의 아내를 거느린 헨리8세의 사적인 사건을 타고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헨리가 역사와 시대를 주욱 거쳐 산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앞으로 전개될 일들과 헨리가 시작한 사실들이 논리적으로 어떠한 [페이지] F05 결과를 가져온 것인가를 헨리와 그의 여자들은 주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간의 경과는 대사로써만 손쉽게 처리되면서 훌쩍 미래도 뛴다. 대신 이들 대사의 치밀한 처리가 요구된다. 시작에서 자칫 소홀해지면 혼동을 일으키고 표현하기가 극도로 암담해지기 쉽다. 의상과 분장에 있어서 헨리8세는 극중 내내 일관 되어야 하며 반면에 여자들의 의상은 조심스러운 스타일로 골라가면서 르네상스 시대에서 현대까지의 시대의 변화를 암시할 수 있어야겠다. 무대 장치는 가능한 한 복잡하지 않어야 하며 소도구는 일체 필요없다. 특히 이 극에서 각별히 유의할 점은 극 진행중 등장 인물 이외 다른 인물(무대 조수들을 포함) 들을 절대 무대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페이지] F06 [막] 1막 [페이지] 001 [막] 제1막 ((조명은 훗트 라이트만 사용한다. 여섯 명의 여자들이 관객을 향해 주욱 앉아 있다. 모두 베일을 쓰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어지면 베일을 벗는다. 이들 뒤에 커다란 십자가가 희미하게--- )) [헨리의 목소리] (충심으로 쭉 한 調로) 나, 헨리 튜더는 그대 아라곤의 카타리나를 유일한 내 아내로 삼고 죽을 때까지 그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을 맹서하노라--- 나 영국의 왕 헨니 튜더는 그대 앤 보올린을 나의 유일한 아내로 삼고 죽을 때까지 그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을 맹서하노라--- 나 헨리 튜더는 그대 제인 쎄이모어를 나의 아내로 삼고--- 그대 클리보스의 안나를 내 아내로--- 그대 캬스린 하워드를 내 아내로 삼고--- [페이지] 002 그대 케이트 파아를 내 아내로 삼고 죽기 전까지 그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을 맹서하노라. [아라곤의 카타리나] (엄숙하게 그러나 체는 없이) 그리하오니 주여! 그를 보살펴 주소서--- 사실은 이러하옵니다. 저만이 죽기까지 그분의 아내였으면 전 아직도 모든 시대를 넘어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앤 보올린] 사실은 이러하옵니다. 그분은 저를 위해 한 세계를 포기하고 새 세계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절 사랑했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제인 쎄이모어] 저는 그분에게 사랑보다도 더욱 소중해 하셨던 걸 드렸습니다. 그분에게 전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아 드렸습니다. [클리브스의 안나] (농조로 그러나 살벌하게) 그분에게는 다른 여자들이 전혀 모르는 일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 압니다. 우린 무척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 겁니다. 그분이 저를--- 원했다면 말입니다. [캬스린 하워드] 그분은 늙어가기 시작했고 남성적인 정력과 패기는 줄어들게 [페이지] 003 됐습니다. 이런 때 전 그의 인생에 다시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그분은 절 살인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케이트파아] 그분이 죽기까지 보호를 한 사람은 저입니다. 전 주장했습니다. 폐하께서 이루어 놓은 사실들을 직면하고 그것 때문에 초래될 결과를 똑바로 보시라구요. 새로운 시대가 탄생되었습니다. [앤 보올린] 폐하가 시작한 시대--- 폐하와 다른 인간들 [케이트파아] --- 폐하보다 위대한 인간들 [앤보올린] 그 시대가 소위 우리들 정신력의 항거로 일컫는 현대라는 것입니다. [아라곤의 카타리나] 神의 시대가 아니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 시점. 인간과 인간의 두뇌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낡은 질서는--- 결국은 이렇게 불리워지고 말았죠--- 저의 결혼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위대한 神의 배교자인 저의 남편은 당신에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앤·보올린을 보면서) [페이지] 004 ((클리브스의 안나, 캬스린 하워드, 케이트 파아는 좌측 우측으로 시름없이 퇴장한다. 동시에 무대 전체에 조명 들어온다. 웨스티민스터의 방 제인과 앤이 카타리나 뒤에 대기상태로 서 있다. 궁정의 트럼펫 울린다.)) [헨리] (요란스럽게 등장한다. 기쁨을 감추지 않은 채 두루말이를 흔들며 외친다) 신앙의 수호자! 나는 신앙의 수호자다! [카타리나] 오! 나의 남편이시여! 주님의 사도로서 그 칭호를 받으심이 성부에게도 기쁨이 되시리라. [헨리] 벌써 받았어야 할 칭호야! 교황도 드디어 결단을 내리곤 무척 즐거워하셨어. [카타리나] 이교도에 대항해 싸우신 당신의 노력에 합당한 훌륭한 표창이십니다. [페이지] 005 [헨리] 보잘 것 없는 루터 때문에 나는 성례에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어. 그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고 난 이를 세금으로 충당하거든. 위대한 신학론자를 국왕으로 맞은 행운의 영국이여! [카타리나] 행운의 영국! 교회의 가장 강력한 섬으로 당신이 보존만 한다면--- [헨리] (시녀들에게 집중해서) 내가 왜 실패를 하겠나? 응? [카타리나] (조심스럽게) 수도원 세 군데가 또 당신의 이름으로 몰수되고 당신의 치부에 돌려졌다 합니다. [헨리] (시녀들 앞을 부산스럽게 오락가락 한다. 시녀들 약간 뒤로 물러선다. 제인의 턱을 들어 얼굴을 쳐든다. 어깨 뒤로 카타리나에게) 당신의 시녀 제인 쎄이모어의 얼굴이 창백한데. 이 여자도 노래를 지어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시인이 필요한가? 그 노래엔 암사슴이라고 했지요? 앤 보올린? 눈동자가 어쩜 그렇게 반짝이지? 무슨 비결이야? [페이지] 006 [앤] (끝내 입을 다물고 있다) --- [헨리] 응?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앤] 폐하께서는 훌륭한 의사이시군요? 창백한 제인의 얼굴이 그만 다홍빛이 되었어요. 폐하께선 저에게 창피를 주어 제인을 치료하시는군요. [헨리] 너에게 창피를 주다니? 내가? 천만에! 너를--- 창피스럽게 만든 것 그 톰 와이엇트야. 널 암사슴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단단히 혼을 내 주렴. [앤] 루터는 폐하를 숫나귀라고 부르대요. 루터를 혼내시죠. [카타리나] (마음놓고 웃는다) [헨리] (잠깐 아연해 있다가 곧 기분을 바꾸어 기분 좋게 웃으며) 입이 잽싸군! 내 취미에 맞는 사슴야. (앤에게 다가가 뚫어져라 보며) 그렇지만 이 암사슴은 우리 왕실의 보호가 필요한데--- [페이지] 007 [앤] (발끈해서) 폐하! 이 자리엔 여왕도 계십니다. [헨리] (카타리나에게 아무 뜻 없이) 물론이지! 나의 사랑 카타리나 그렇지만 더 이상 내 복잡한 신학론을 지겹게 듣고 있을 필욘 없어! 먼저 들어가요. 보올린은 잠깐 여기에 두지 약간 내 충고가 필요한 것 같애. [카타리나] (약간 빗대며) 원하시는 대로 (헨리, 카타리나의 시선을 피한다. 카타리나 살짝 절을 하고 제인과 퇴장한다. 헨리 앤 주위를 빙빙 돈다. 앤은 몸을 도사려 공세를 취한다.) [헨리] (갑자기) 너하고 톰 와이엇트는 무슨 관계지? [앤] 폐하와 토마스 무어와는 무슨 관계죠? 에라스무스와는? 홀바인하곤? 도대체 폐하와 톰 와이엇트하곤 무슨 관계예요? [헨리] 나와 친분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타고난 사상가요. 예술가야. 나처럼--- 그렇지만 시녀가 시인나부랑이와 어울려 다닌다는 건 단정한 게 못돼. [페이지] 008 [앤] 전 파리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갖추어야 할 게 무엇인지 단정치 못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의 본산인 이태리에서부터 내려온 휴매니즘의 교훈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습니다. 폐하! 이 우주의 새로운 정기를 타고난 아우구스투스는 과연 누구입니까? 폐하께선 저를 마치 낡은 질서에 매달린 -경멸조로- 무식한 시골뜨기 남작취급을 하는데 그게 과연 마땅한 처사일까요. [헨리] 얘! 말대꾸를 아주 잘 하는데--- 내가 감히 폐하라는 사실을 갑자기 잊었느냐--- 이 일로 너를 꾸짖지 않는 것이 너에 대한 지극한 호의의 표시인줄 알아라. 자--- 이젠 (십자가 앞으로 앤을 끌며) 王 앞에서 말해라. 너와 톰 와이왓트는 어떤 관계지? [앤] 폐하가 제가 고해하는 신부는 아니옵니다. [헨리] 그 시인한테 네가 무엇이 되지? [페이지] 009 그건 그가 쓴 시귀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시는 누구나 다 읽습니다. 저를 도망하는 사슴이라고 불렀죠. [헨리] (혼잣말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감사하옵니다. (목소리의 톤을 바꾸어 은밀하게) 이리 와! 앤 내 곁에 앉지! (앤 멈칫거리며 앉는다) 넌 왜 나에게 좀더 친절치 못하지? 넌 나를 너무 멀리한단 말야. 왜 내가 앤의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나? 너의 언니 메리를 난 오년동안이나 귀여워해줬는데--- [앤] 그 고마움은 잘 알고 있죠. 언니에게 선물한 꼬마 아들을 전 극진히 사랑하고 있어요. [헨리] 그뿐인가 난 앤의 아버지를 재무상으로 승급시켰어. [앤] (뾰족하게) 그때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무척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했겠죠. [헨리] 앤! 바로 내 눈으로 지켜본 뚜렷한 사실인데 넌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어느 누구보다 가장 출중하게 성장했어. [페이지] 010 (헨리가 다가오자 앤은 뒤로 물러선다) 무슨 고집이 이렇게 세담! 믿을 수가 없어! [앤] 불란서 왕실에 있을 때 언니 주위엔 항상 많은 남자들이 있었죠. 아름다운 라 보올린! 언니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폐하께서 언니를 택한 이전 일이죠. 전 조금도--- 혹시라도 폐하께서 그런 의향이 있으시다면--- 언니의 뒤를 따를 생각은 없었습니다. [헨리] 네 마음을 움직여 나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은? [앤] 폐하의 선량하심으로 절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전 왕에 대한 의무로 백성이 폐하를 섬기듯 충심으로 사랑하겠습니다. [헨리] (벌떡 일어서며) 폐하! 폐하! 도대체 왕이 무엇이지! 나도 인간야. (스스로 감격한 표정) 네 앞에 서 있는 나를 똑바로 봐! 자! 각종 운동경기 레스링에서 난 일등을 했어. 터키사람들간에서도 난 스포츠맨으로서 당당하게 유명한 사람야. [페이지] 011 여자들에게 나 이상으로 쾌락을 줄 수 있을까--- 언니 메리에게 물어 봐! 아 아냐. 그건 관두는 게 좋겠군. (팔의 근육을 내 보이며) 여길 만져 봐. 네 이마보다도 더 단단하지. [앤] 돌보다 더 단단하시군요. 그 이유로 전 폐하를 사랑해야 되나요? [헨리] (천천히) 안될 것도 없지. [앤] 폐하의 가슴을 만져 볼까요? 얼마나 딱딱하실까 [헨리] (고민스럽게) 오 넌 날 이해 못하는구나. 넌 내가 정당한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날 이해 못하는 거야. 내가 왜 자꾸 이러는질 모르겠니? 너 때문야. 널 보고 있으니까 심장이 뛰고 머리는 그만 흐릿해지고 마는구나. 이제 내 말을 알아듣겠니? [앤] 전 무서워져요. [헨리] (앤을 감싸며) 아 넌 나의 입맛을 돋구는구나. 앤 보올린! [페이지] 012 너 스스로가 원하는 남자를 택하라. 너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해. 그러한 남자는 바로 여기 있어. [앤] 폐하 폐하! 그렇게도 당당하게 유명하신 폐하께서--- [헨리] 오! 내 자랑의 넋두리는 들을 필요가 없어. 날 있는 그대로 보아 줘! 나는 기록을 남길 순간에 그만 어쩔 수 없이 여자에게 매어서 물론 좋은 여자이긴 하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기품이 넘쳐흐르니까. 그렇지만 스페인 여자야. 그만 낡은 질서에 묶여서 새로운 내 개화정책에 따르기가 불가능한 여자. 그뿐인가 나에게 아들을 낳아 줄 축복도 받지 못했어. 결국 스페인과의 연합으로 영국을 부강케 하라는 목적 하에 이루어진 이 결혼은 결과적으로 영국을 약화시키고 있단 말야. [앤] (괴로워하며) 폐하께선 지금 우울한 얘기만 하시면서 오히려 [페이지] 013 만족하고 계시는군요. [헨리] 난 그만 낙담에 빠지고 마는 거야. 이런 처절한 때에 난 너를 발견한 거야. 앤 보올린 행복감에 가슴이 떨리는구나. 분명 넌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낸 것. 하느님께서 내가 역사적인 사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거야. 널 내 옆에 둔 채 우린 같이 하느님께서 내리신 사명을 이룩하는 거야. 자! 난 너의 것이다. 앤 보올린. [앤] 오! 폐하. 어떻게 그럴 수가--- [헨리] 너에게 청혼을 하겠다. [앤] 안되십니다. [헨리] 야곱이 라헬에게 청혼하듯 나도--- [앤] 곧 실증을 내실 걸요. [헨리] 천만에 칠 년이 걸릴지라도--- [앤] (단호하게) 아닙니다. 안돼요. [페이지] 014 [헨리] 네 말은 무엇이든 다 듣겠다. [앤] (분명하게) 절대 그러실 수 없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 칠년 내로도--- [헨리] 무엇이든 다 듣겠다. [앤] 그러실 수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렇게 하시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헨리] 네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앤] 아버지가 있는 히이버성으로 도망가겠습니다. (좌측으로 천천히 걸어가 서너 계단 올라가 앉는다) [헨리] 매일 편지를 보내고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겠다. [앤] 히이버에 계속 머무르겠습니다. [헨리] 계속 간청을 하겠다. [앤] 계속 머물러 있겠습니다. [헨리] 널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협박을 할걸--- [페이지] 015 [앤] 제발 그렇게 해 주십사고 답을 보내드겠습니다. [헨리] 내가 히이버로 가겠다. (앤에게 다가가) 너의 아버지가 나의 신하가 아니라 내가 아버지의 신하가 된 것처럼 해서 국사로 히이버성으로 떠나겠다. 오! 난 너의 하인이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무릎이 떨리고 너의 왕인 내 얼굴은 새빨갛게 붉어지고 있구나. [앤] 폐하께서 온갖 경기에서 용감하게 보여 주신 필승의 묘기를 생각하고 즐거이 웃겠습니다. [헨리] 나는 더욱 비참에 빠지고 황금 칠을 한 감옥에 기어 들어가 (되돌아간다) 더 많은 편지를 쓰겠다. 제발 조그만치의 호의라도 보여달라고--- [앤] 전 다정한 편지를 쓰겠어요. 수호성인 축제일에 삼촌께 드리는 편지처럼. [헨리] 부드러운 글자 하나하나를 굶주린 자처럼 집어삼킬 것이다. 다 [페이지] 016 시 한번 읽어 가다가 난 그만 이 이빨로 그 종이 조각을 갈갈히 찢어 버릴 거야. 내 손은 다시 텅 비게 되고 가슴에서 울려오는 탄원소리는 더욱 커질거야. [앤] 전 듣지 않겠어요. [헨리] 난 너의 명령에 복종하는 몸. 네 앞에 무릎을 꿇겠다. 그 이상 무엇을 원하느냐. 너를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를 해야겠느냐? [앤] 오! 아니옵니다. 모든 성자의 이름으로 맹서합니다. [헨리] 모든 성자의 이름으로 너의 마음을 끄는 방법이 무엇인가 말해다오. [앤] (천천히 헨리에게로 가서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진정으로 폐하께서 몸과 마음을 저에게 바칠 수 있다면 진정 제 소유가 될 수 있다면--- [헨리] 희열로 벅차 흐느끼며 앤에게 간다. [페이지] 017 [앤] 오직 저 혼자만의 남편이라면 [헨리] (사이를 두고 마음을 가다듬어) 그럴 줄 알았어. 난 네가 그걸 요구할 줄은 미리 알고 있었지. [앤] 폐하. 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폐하의 질문에 응답했을 뿐입니다. [헨리] (혼잣말로 확고한 음성으로) 카도릭교국에 사는 남자라도 누구든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하면 헤어질 자유가 있어. 나도 그렇지. 그렇지만 결혼은 신성한 것 신앙의 수호자인 내가 그럴 수는 없지. [앤] (천천히 헨리 쪽으로 걸어간다. 간단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헨리 튜더. 폐하와 저는 결합할 수 없습니다. 폐하의 사랑으로 저를 평안하게 놓아주시고 폐하께서도 당신의 일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헨리] (생각에 잠겨) 내 자신의 일이란 내 영혼의 평화다. 그 생 [페이지] 018 각만이 머리에 꽉 차 있구나. [앤] (섬뾵해서) 무슨 뜻이죠? [헨리] 법적인 부인과는 헤어질 수가 없어. 문제는 단 하나! (머뭇거린다. 결정적으로 감정을 억제한 대로 폭발한다.) 문제는 과연 내 아내가 법적인 아내인가 하는 거야. [앤] 여왕님 말씀이십니까? [헨리] 우리가 결혼하기 이전에 그 여잔 이미 과부의 몸이었거든. [앤] 폐하 형님의 부인이었죠. [헨리] 형수와의 결혼은 성서에 금지되어 있어. [앤] 폐하의 결혼식은 교황의 축복을 받은 결혼식입니다. [헨리] 그게 하느님의 축복은 아니지. [앤] 왕녀를 나셨어요. [헨리] 딸 하나에 넷을 사산했어. 하느님의 뜻에 거슬림이 분명해. [앤] 까다롭게 생각하십니다. [페이지] 019 [헨리]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단 하나! (무릎에 고개를 파묻는다) 난 너를 원하다. 널 꼭 갖고 싶고 그렇게 해야 되겠어. 그리고--- (위를 바라보고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듯) 이 죄스러운 결혼으로부터 양심의 속죄를 받고 싶다. [앤] (눈을 감고 황홀해서) 헨리 튜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헨리] 우리의 결합에 사랑이란 너무 연약한 말 (앤을 키스한다. 그리곤 엄숙하고 단호하게) 먼저 그 마음 착한 여자에게 그와 나의 영혼을 위해 빨리 이야기하겠어. [앤] (떨며) 오! 폐하! 여왕님께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헨리] (간단히) 정당한 것! [앤] 하느님께서 폐하의 선량한 의도를 잘 이끌어 주시기를--- [헨리] 선량한 의도라고? 맞았어. 바로 그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래 도대체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게 선량하지 않은 게 있을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지. (퇴장) [페이지] 020 [앤] (헨리를 바라보며) 그 후 폐하께선 여왕의 손을 잡으시곤 다정한 친구인 것처럼 우리들의 결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헛된 거라고 말씀하셨죠--- 여왕이 납득하실 거라고 믿었죠. 당신이 열살 때부터 당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여자--- 그 여자에게 폐하가 통감하고 있는 양심의 요구를 말씀 드렸죠. 그때서야 여왕은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시선을 피하려고 한다.) 그 양심의 요구가 무엇이었는가를 여왕께선 잘 아십니다--- 아라곤의 카타리나! 어머닌 스페인의 위대한 여왕 이사벨라 숙질은 독일의 황제. 이를 배경으로 여왕께선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투쟁을 했습니다. 폐하께선 거진 광적이 되어 버려 울시 추기경의 정책을 몰아내고 영국을 유럽의 최고주권자로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충고를 하는 자들과는 항상 논쟁이 일어났죠. 모든 걸 박차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 위해서 영국의 왕은 유럽의 조롱단지가 돼 [페이지] 021 버렸습니다. 스페인은 삼년동안이나 폐하를 견제하다가 마침내 교황이 사자를 보내어 폐하의 비탄을 듣기로 했습니다. 사자가 도착하고 재판은 소집되었습니다. 나라의 귀족들이 운집했습니다. ((조명 바뀐다. 나팔 소리.)) [앤] 원고인 폐하를 부르십니다. [헨리] (들어온다. 얼굴에는 고행의 표적이 역력하다) [앤] 상대 여왕을 부르십니다. [카타리나] (들어온다. 意識的인 보조로는 채 몇 발자욱도 가지 못한 채 헨리를 보는 순간 앞에 무릎꾼 채 쓰러지고 만다. 헨리 일으켜 세우려 하나 다시 쓰러진다. 귀족들이 앉아 있을 객석에 용서를 청하는 손짓을 쓴다. 이 동안 카타리나 계속 말을 한다.) 폐하께선 한때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과 주님의 사랑으로 저에게 공정을 내리십시오. 제가 폐하에게 충성을 다 하지 [페이지] 022 않은 적이 있습니까. 폐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저는 사랑했고 폐하가 멀리하는 사람을 전 멀리했습니다. 저의 존재와 모든 행동은 오직 폐하께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폐하! 간절히 비옵니다. 진정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의 모든 권한과 명예는 앗아가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 이 조그만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그렇다면 전 아픔을 견디고 이 사건을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심판하고 계십니다. 아멘. (일어서서 퇴장하려 한다) ((나팔 소리)) [안나] 아라곤의 카타리나 재판장은 아직 퇴장을 명하지 않았습니다. [카타리나] 어떤 재판장도 내 결혼문제를 다룰 권리는 없다. 그 권리는 아직 내 남편만이 갖고 있어. 그분의 판결만을 받아들이겠다. (여왕의 풍채로 좌측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급하게 절망적이 되어 부른다) 쎄이모어!--- 쎄이모어! [페이지] 023 [제인쎄이모어] (좌측에서 뛰어와) 네 여왕전하 [카타리나] 오! 제인!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침침한 조명 아래 둘이서 무대 위에 남아 있다. 카타리나는 생각에 잠겨 있고 제인은 이를 걱정한다. 나팔소리.)) [헨리] 존경하는 여러분! 저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여자입니다. 그러나 스페인 여자 물론 좋은 아내 충성스러운 아내임엔 틀림없죠. 그러나 여러분이 여기 오신 이유는 저 여인의 양심 때문이 아니라 저의 양심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저의 양심은 짓눌려 있습니다. 무거운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이 교회 재판소에 전 각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천진스럽게 냉소를 띄우고) 진실만이 기록된 그 각서에서 여러분들은 이 결혼이 진정 신성한가에 대해 제가 처음부터 의혹을 느낀 사실을 쉽게 찾아내실 것입니다. 이 의혹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그러면서 [페이지] 024 도 이 의심을 떨구기에 온갖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은 건 결국 이러한 결론입니다. 주님께선 이 결혼을 찬성하지 않고 계시다는 겁니다. 잇달아 일어나는 비극적인 조산 사산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 사실로 말미암아 전 당혹하게 되고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 그만 난감에 빠지고 맙니다. --- 존경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고통을 겪어서라도 이 죄스러운 결혼에서 벗어나 국가를 위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결함을 원하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 성직자 여러분 저의 자책을 받아 주시옵고 스스로 고행에 나선 저의 뜻을 양지해 주시오. 모두가 우리와 우리 국가의 번영을 위한 일입니다. (헨리 법정에 공손하지만 약간은 책략 적으로 절을 하고 퇴장한다.) ((마지막 나팔 소리. 앤. 긴 의자로 가 편히 앉는다.)) [페이지] 025 [카타리나]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분명하고 자유롭게) 제인!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최후로 나에게 합당한 일을 하겠어. 여태까지의 나의 행동은 나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었거든. 폐하는 현대 정신의 원칙이라는 명목으로 지난 수년간 나를 박해에 왔고 이에 대항하면서도 나는 그들의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 힘은 힘으로 기지는 기지로! [제인쎄이모어] 그건 모든 사람이 다 알고 감탄하는 사실입니다. [카타리나] 그렇지만 이제 그 방법은 전혀 상관이 없어. [제인쎄이모어]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카타리나] 물론. 나를 이해해다오. 이제야 나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어. [제인쎄이모어]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카타리나] 그가 거만스럽게 공격할 때 난 겸손으로 대하고 격분해 있을 때 난 유쾌하게 응수할 거야. 그가 지식의 독이 든 화살을 [페이지] 026 던지면 여자가 천부로 타고난 지혜로움으로 방패를 삼겠어. [제인쎄이모어] 전 감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카타리나] (고통스러운 듯) 제인 내 얘길 잘 들어 봐! 오래 전에 폐하는 너를 내 밑에 두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어. 너에게 새로운 여주인을 미래의 여왕으로 섬기라는 거야. [제인쎄이모어] 설마 여왕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신 건 아니겠죠. [카타리나] 때는 지금이다--- 지난 날 네가 나를 위해 바친 사랑과 복종에 감사한다. (제인을 키쓰한다.) 마지막으로 내 말을 듣거라. 그 여자에게 가도록 해! (제인 무대 우측으로 천천히 간다. 카타리나 십자가 앞에서 멈춘다) 오 주여! 저의 앞길을 인도하시옵고 시대의 격변에도 무사히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제인쎄이모어] (우측에서) 마님! [앤] (긴 의자에서 일어서며) 제인! 나를 만나러 온 거지? [페이지] 057 [제인쎄이모어] 마님의 시중을 들러 왔습니다. 명령이십니다. [앤] 폐하께서? [제인쎄이모어] 여왕의 명령이십니다. [앤] 오! 그건 좋은 징조이구나. [제인쎄이모어] 그렇습니까? 마님. [앤] 마님이 다 뭐야 제인!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옛날처럼 친구가 되어 내 옆에 앉아 줘! 우리가 다시 같이 있게 됐다니 넌 즐겁지 않니? [제인쎄이모어] (우울해서) 그래! (당황해서) 오 아닙니다! [앤] 아니라니? [제인쎄이모어] 용서해 주십시오. 제 머리가 둔한 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앤] 오, 제인! [제인쎄이모어] 그래! 그렇지만 나도 이방 저방으로 옮겨지는 가구는 아니잖니? 그리고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여왕은--- [페이지] 028 [앤] 아나곤의 카타리나 여왕이시지. [제인쎄이모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이셔. 훨씬 훌륭한 분야. [앤] 그 얘긴 충분히 알고 있어. [제인쎄이모어] 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조금도 불안하지 않니? [앤]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제인쎄이모어] 응 네가 아니지. 폐하께서 하시는 일말야. 너 때문에 [앤] 그분은 나 때문에 유럽을 안팎으로 뒤집어 놓았어. 그건 굉장한 일이지. 놀랄만한 일야. [제인쎄이모어] 그런 건 난 모르겠어. 그렇지만 앤! 난 두려워. [앤] 두렵다니? [제인쎄이모어] 넌 두렵지 않니? [앤] (깊은숨을 내쉬며) 그래 나도 두려워- 그렇지만 네가 두려워할 까닭은 뭐니? [페이지] 029 [제인쎄이모어] 이 커다란 성. 이 성곽은 항상 날 불안스럽게 만들어. 밤낮으로 쓰이는 이 어둠침침한 층계와 복도. 오 앤 난 일생을 왕실에서 보내진 않을 꺼야. [앤] 뭐? 네가? 제인! 넌 왕실의 피가 흐르는 쎄이모어가의 사람이야. 넌 무얼 더 좋아하니? 시골백작하고 어울려 촌구석에 쳐박혀 일생을 보내고 싶니? [제인쎄이모어] 그래 앤. 난 그런 생활이 좋아 백작을 만나 시골에 살고 싶어. 어린아이들과 양떼와 비둘기를 데리고 이것은 내 것이고 나한텐 저것이 있고 모든게 잘돼가는구나 하는 걸 매일 느끼면서 말야. 태양이 뜨지 않는 날에는 우박이 쏟아지겠고 풍년이 들지 않으면 흉년이 되겠고 죽어가는게 있으면 태어나는 것도 있겠구. 아무튼 일체의 악랄함이나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아니니. 그것이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고 때가 되면 죽음을 맞게 되는 또한 최선의 방법일꺼야. 주님의 손 아래서. [페이지] 030 [앤] 주님께서 너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를! 허지만 난 주님께 바라는게 너하곤 달라.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제인쎄이모어] 그게 무언데? [앤] 아이를 가졌지. [제인쎄이모어] 오 아들이길 바랍니다. [앤] (딱딱하게 적대시해서) 그런 말은 하지마. 그런 얘긴 남자더러 하라구 해. 아들이건 딸이건 잘 생긴 아이가 되어 그의 인생이 주님의 축복받은 일생이 되길.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다. [헨리] (기세가 등등해서 들어온다.) 사랑하는 앤! 기분이 좀 어때 [앤] 아버지인가? [헨리] (제인을 보며) 쎄이모어가 여기 있었군. 좋아 가서 여주인께 여쭈어라 내가! [앤] 여왕의 명령대로 그분과는 작별을 하고 저에게로 왔습니다. [페이지] 031 [헨리] 좋아! 좋아! 드디어 항복을 했군. (감정적으로) 착한 여자야 (앤에게) 당신의 시녀를 그 여자에게 보내어야지 와달라고 해 전할 소식이 있어 (제인 퇴장) [앤] 성회재판에서 판결을 내리셨습니까? [헨리] (조심스럽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야. [앤] 그럼 판결이! [헨리] 영국의 왕은 양심에 대해 비상한 민감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결정을 내렸어. (희극적이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그렇지만 그 왕은 더 이상 양심 때문에 고생을 겪지 않아도 돼. 아라곤의 카타리나와의 결혼을 상세한 검토 끝에 양심상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보았거든. [앤] (악랄하게 웃으며) 좋은 소식이란 무엇이죠. [헨리] 넌 날 잘 알지. 비소한 인간들이란 운명의 채찍을 당할 때 이성을 잃고 말지만 난 그 반대. 온갖 기지가 더 날카로워 [페이지] 032 지거든. [앤] 계속하시죠. [헨리] 쭈욱 생각해 봤는데--- (손가락 끝을 코에 대고)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어. 뚜렷하게 주님께서 깨우쳐 주신 내 양심의 문제를 교황이 인정치 않는다면 그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서 눈을 뜨고 있는 자가 아냐. [앤] 계속하시죠 [헨리] 계속할 수가 없구나. 할 수 없어. 내가 할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님을 굳게 믿고 있는 것뿐이었어. 그래 주님께서는 나의 눈을 밝게 해 주셨어. 주님은 나를 이 괴로움에서 건져내기 위해 나의 백성들을 로마의 폭군정책으로부터 해방시키도록 명하신 거야. [앤] 폐하의 괴로움을 떨구기 위해 영국 백성을 로마의 폭군정책으로부터 해방시키라는 게 주님의 뜻이라구요. [페이지] 033 [헨리] 넌 의심을 하느냐? [앤] 오 결코 주님께 찬송할지어다! [헨리] 맞았어. 앤 행복해 해. 때는 지금야. 나는 벌써 대주교에게 말해 놨어. 주님을 기쁘게 하며 우리 둘의 즐거움을 위해 주 앞에서 신성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대주교도 경건하게 맹서를 했단 말야. [앤] 우리들의 즐거움을 위해 또한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헨리] (앤을 십자가 앞으로 인도한다. 둘이서 무릎을 꿇는다. 올간 짤막한 전조) 나 영국의 장 헨리 튜더는 그대 앤 보올린을 나의 유일한 아내로 삼고 죽기까지 그대를 사랑하고 보호하겠노라. (올간 끝 둘 일어선다. 헨리 앤에게 키스한다) 나의 아내 머지않아 여왕에 즉위할 그대. 편히 방에 가 쉬시오. 상속자를 위해서. [페이지] 034 (후면으로 헨리 앤을 보호하여 나간다. 앤 어둠 속에서 혼자 계속 걸어간다.) [카타리나] (좌측에서 등장) [헨리] (카타리나 앞에 와 서며) 아라곤의 카타리나여 그대에게 이르건대 우리가 지난 여러해 동안 믿고 있었던 바와는 달리 우리의 결혼은 법에 어긋나는 결혼이었소. [카타리나] 우리 결혼은 성회에서 인정했습니다. [헨리] 영국교회의 최고자는 아니요. [카타리나] 영국교회의 최고자? [헨리] 영국의 왕이오 [카타리나] 영국의 왕도 교황의 거룩한 뜻엔 복종해야 합니다. [헨리] 그런 때는 이미 지났소. 영국의 주교들은 모두 일어서서 로마 교황의 우롱에서 영국을 건져내야 한다고 계속 탄원을 보내고 있소. 주검의 고통 밑에서 백성들은 바티칸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페이지] 035 기름부음받은 영국의 왕이야말로 영국 국교의 유일한 최고자이며 지상에 보내진 주님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소. [카타리나] 믿을 수 없습니다. 투터의 이단으로 위협받고 있는 이 때에 백성들의 영혼을 로마교황으로부터 멀리하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헨리] 우리 백성들의 영혼은 내가 지켜 줄꺼야. 루터교의 해독과 로마교로부터. [카타리나] 당신은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묻고 싶습니다. 구세주의 보혈로 봉안된 신의 약속을 파괴하려는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누구에요. 사탄 루시퍼인가요? [헨리] (처음엔 비틀거리면서) 내가 누구냐고? (이 말을 되새겨 본 후 사이를 두고 과격하게 일어서서 선언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 주마. 나는 현대의 인간 감각의 제한을 받지 않고 주님께서 내려주신 전능의 이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사람야. [페이지] 036 넓은 대양을 거쳐 그 대양 건너편에서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사람 나는 자연에게 서슴치 않고 질문을 하고 차례차례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야. 나는 하늘을 꿰뚫수 있는 천재적인 비상력으로 성서의 기록과는 달리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지구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야. 그래 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단 말야. 세상이 나아가는 길이라든가 마음의 갈 길이라든가 별들의 노래이든가! 그리고 양심의 소리라든가 난 그 진실을 알고 있어. [카타리나] (십자가 앞에서) 오 구세주요. 바라옵건대 지상의 왕국을 지켜 주옵소서. [헨리] 신을 모독하고 있구나. 십자가 앞에서 물러서라. (카타리나를 십자가 멀리 잡아끈다. 카타리나 바닥에 쓰러진다) 나와 십자가 우리 둘 사이에 너는 끼어들 수 없어. (십자가 아래로 뛰어간다) 주님의 이름으로 끝은 났다. 나를 의심하는 자는 곧 [페이지] 037 주님을 의심하는 자. 그러나 주님이 거부당할 때 난 주님의 편에 서겠다. 나는 신앙의 수호가 (이 말을 하며 헨리는 양팔을 펴서 십자가와 겹쳐지게 한다) [카타리나] (마루에서 올려다보며) 오 구세주시여. 이제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한 인간이 보일 뿐입니다. 그는 벌써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구세주시여 인간으로 하여금 꼭 한번 잠깐동안 땅의 유업을 맡게 하심이 주님의 뜻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대의 처음 찬란함과 마지막 공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먼저 전지 전능한 주님 앞에 머리 숙여 이 때가 빨리 지나기를 비옵니다. (카타리나 일어서서 좌측전면으로 간다. 멀어져 가는 목소리) 영국의 왕 헨리여 당신에겐 이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시작할까요? (카타리나가 말하는 대로 행동을 한다) 현대의 인간이여 그 팔을 내리시오. 이마에 손을 얹어 보시오. 땀을 흘리며 숨이 [페이지] 038 막힘은 전염병 때문이 아니오. 새로운 당신 존재의 악이오. 당신은 이제 주님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나 그 자유 때문에 번뇌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시렵니까? 영국의 왕이시어. [제인쎄이모어] (등장) [카타리나] 어느 날 폐하 앞에 제인이 와서 아기를 낳았다고 전했습니다. [헨리] 아들! [제인쎄이모어] 딸입니다. [헨리] (울며 소리친다) 아냐 하느님께서 그럴 리가 없어 그렇지 않어. [제인쎄이모어] (완강하게) 폐하 그건 바꿀 수가 없습니다. [헨리] (쓰라리게 경멸조로) 딸이라구! 그래 이름은--- 엘리지베스라고 해라. [카타리나] (조용히) 엘리자베스 여왕! 영국에선 일찍이 없었던 가장 위대한 여왕. 그리고 또 무슨 일이! [페이지] 039 [헨리] 난 아들이 필요해. [제인쎄이모어] (퇴장하려 한다.) [헨리] (이상스럽게) 쎄이모어! (제인 돌아선다) 가까이 오너라. [제인쎄이모어] (헨리가 훑어본다. 그 시선에 몸을 떤다) [카타리나] 그 순간에 폐하는 이미 다른 한사람에 대한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앤] (전면으로 쑥 나와 있다. 침침한 조명. 탑 안에 갇힌 앤) [앤 보올린] 이 축축한 돌벽 혼탁한 공기 딱딱한 침대. 이것들은 제가 새로이 시작한 생활의 또 한 명입니다. 너무나 반대입니다. 태양이 떠도 그 빛에 보이는 건 도끼날을 기다리며 목을 받치고 앉아 있어야 할 단두대입니다. 무슨 이유죠 (비명에 가까이) 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여자예요. 아마도 그들보다 더 아름답고 그리고 네, 거 [페이지] 040 만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로 저를 죽일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이죠? 그가 나를 너무 원했기 때문입니까? 내 앞길을 거쳐간 폭군이기 때문입니까? 새벽 동이 틀 때 난 무릎을 꿇습니다. 밝아오는 햇빛의 첫 줄기에서 전 당신이 도끼를 들고 내 위에 서 있는 것을 그려봅니다. 당신은 저 위에 있습니다. 헨리 튜터! 전시대를 통한 우리들의 승리를 위해 당신과 함께 모든 세계를 거부하고 나섰든 그 영광의 시절과 다름없이 오늘도 전 당신의 것입니다. 이제 그들로 하여금 마치 절뚝발이 당나귀를 죽이듯 제목숨을 끊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처럼 간음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거짓입니다. 전 당신에게 상속자가 될 아들을 못 낳아 드렸고 그리고 지금 깨단 바지만 그건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신을 즐 [페이지] 041 거히 할 수 있는 것은 곧 선한 것이었고 당신을 괴롭히는 건 곧 사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당신의 첫 번째 부인과 대항했었고 지금 당신은 나를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정당한 일입니다. 헨리 튜더 당신이 선택한 것은 모두 정당하고 최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앤 볼린 그대로 남아 있다.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 우측으로 촛불, 훗트 라이트와 평행으로 서 있는 침대 옆에 제인 쎄이모어 무릎꿇고 앉아 있다. 목메인 소리로 조그맣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모 마리아여. 여인 중에 가장 축복받으신 여인 마리아여. 저 여인께 중재하소서. 중재하시어! [헨리] (제인 뒤로 침대에서 일어서서) 제인!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새벽이 되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 있어야 해. [제인쎄이모어] 그 여자에게도 꼭 두 시간이군요. [페이지] 042 [헨리] 그 여자라니? [제인쎄이모어] 몰라서 물으세요. [헨리] 죄를 범한 자는 죽어서 마땅해. 그래야 착한 사람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지 자 이리와 잠을 더 자. [제인쎄이모어] 탑 안에 갇혀 집행인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겠어요. [헨리] 난 잘 수 있어. [제인쎄이모어] 아녜요. 폐하께서도 종이 칠 때마다 종소리를 세고 계셔요. [헨리]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다면 그건 내 옆에 네가 없기 때문야. 난 여자의 너의 따뜻함이 필요해. 그건 곧 내 몸의 피야. [제인쎄이모어] 폐하께서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헨리] 내가? 내가 두려워 해! (거칠게 웃는다) 무엇을! 그래 네가 잠을 안 자면 너의 배속에 있는 내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두렵구나. 자 어서 담요 밑으로 들어오너라. [페이지] 043 [제인쎄이모어] 헨리! 당신은 제가 앤 볼린을 위해 기도 드리는걸 금지하고 계시지만 전 어쩔 수 없습니다. 성모의 은혜가 내려오도록 기도하게 허락해 주소서. [헨리] 고귀한 여인이 한낮 음란한 죄인을 위해 성모의 중재를 기구한다니 도대체 이 나라의 도덕이 어디까지 떨어진거지? [제인쎄이모어] 그 여인은 폐하의 부인이셨습니다. [헨리] 나는 그 결혼을 무효화했어. 그러니까 그 여자는 나의 아내가 아냐. 내 말뜻을 알겠어? [제인쎄이모어] 뜻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폐하와 수개월 동안 잠자리를 같이 한 저도 음란한 것이 됩니다. [헨리] 아냐. 너의 추산력을 시험하는 것은 왕으로써 나의 의무였어. 그리고 넌 내 아이를 가졌어. 이제 우리는 거룩한 결혼으로 결합하여 우리의 행위를 신 앞에서 승인받게 되는 거야. 너는 나의 아내이다. [페이지] 044 [제인쎄이모어] 폐하께서는 그게 정당하게 보입니까? [헨리] 정당하게 보이다니? 그건 정당한 거야. [제인쎄이모어] (강경하게) 아닙니다! 아녜요! 그건 정당치 않습니다. [헨리] 중요한 건 정당에 대한 해석야 주님은 가장 적절한 해석에 축복을 내리셔. (자기 허벅다리를 치며) 왕과 그의 사랑하는 여자가 인문학적인 토의를 할 줄이야. 이런 토론에 능한 줄은 미쳐 몰랐어. [제인쎄이모어] 헨리. 폐하의 유일한 사랑이었든 저 여인을 살려주십시오. [헨리] (소리친다) 그 여자에 관해서라면 이제 한 마디도 들추지 말어. (억제하고) 우린 지금 인문학적인 토의를 하고 있었지. 그걸 계속해 (이 동안 침대 저쪽에서 바지, 구두, 로브를 걸쳐 입는다) 그 여잔 내가 마음이 달랐었다 해도 어쩔 수 없었어. 공명정대한 법정의 판결을 받은 것이고 통치자로써 그 판결이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야. (아무렇지 않는 듯 부른다) 자 [페이지] 045 뭘 좀 마실까? 난 의무를 잘 수행할까가 두려울 뿐이다. (침대를 빙 한번 돌아본 후 멈춰 선다. 이마에 땀을 씻으며 제인에게 로브르 입혀 앞으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마음 착한 여자여 와서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운 기분이 되어보자. [제인쎄이모어] 제가 어떻게 다시 즐거운 기분이 되겠습니까. [앤] (좁은 지역을 왔다갔다 한다. 처음엔 천천히 다음엔 빨리) [헨리] 첫닭이 울기 전에 넌 웃음을 찾고 말걸. [제인쎄이모어]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웃어요? 첫닭이 울기 전에! 도끼를 내려치기 전에? 주검의 종이 울리기 전에? [헨리] 너는 죄 지은 게 없고 너에겐 내가 있고 나의 아이가 있다. 너는 웃게 될 것이다. 자 모를게 있으면 또 물어보렴. [제인쎄이모어] 없습니다. [헨리] 없다고? [제인쎄이모어] (괴로워하며) 없어요. [페이지] 046 [헨리] 물어볼게 없다고? 네가 모르는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냐 하! 난 벌써 웃음이 나오는구나. 오 너도 웃고 있어. [제인쎄이모어] 전 아네요. [헨리] (악랄하게) 인문학적인 토의를 계속해야겠다. [제인쎄이모어] (이 말에 매달려서) 인문학적이란 무슨 뜻이죠? [헨리] 오늘날 번창하고 있는 학구적인 행동으로써 옛조상들의 모범을 따르자는 것이다. [제인쎄이모어] 그게 무슨 소용이죠? [헨리] 현명하게 생각하고 항상 인간다운 자비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인쎄이모어] 인간적인 자비? 그렇다면 더 이상 부당한 재판은 존재하지 않겠군요. [헨리] 전쟁도 [제인쎄이모어] (우아하게) 전쟁? [헨리] 이 진리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은 다 [페이지] 047 시 한번 주님 밑에서 평화로운 지역을 이룰 것이다. [제인쎄이모어] (비명을 지른다) 저기! [앤] (빠른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앉는다) [제인쎄이모어] 들어보세요. 종이 넉점을 치는군요. 이제 한시간밖에 남지 않았어요. [헨리] (오싹해서)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제인쎄이모어] 우리 손에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한다니, 그 고통이 어떤가를 감히 느낄 수만 있다면 [앤] (기도한다. 처음엔 온힘을 다 해서 그러나 차차 자신을 억제해 가며) [헨리] 포도주를 마시자 슬퍼할 건 없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도 안 될 일이지. 자 마시라니까. 그 녀석은 황금빛 쥬스에 곧 익숙해질걸. 미리부터 맛을 봐 두는 게 더 좋지. (부른다) 음악을 울려라--- 폭신한 담요가 몸을 감싸듯이 분위기엔 음악 [페이지] 048 이 최고야! 자! 우리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오 너와 토론을 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맹서하는데 넌 닭이 울기 전에 웃고 말걸. [제인쎄이모어] 이 연옥에서? [헨리] (협박조로) 무엇이라고? [제인쎄이모어] 저는 지금 연옥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헨리] 연옥이라고? 그건 교황들이 고해자들로부터 돈을 더 뜯기 위해 만들어 낸 거야. 난 벌써 이 착취제도를 없애고--- 세금을 올리기로 했지 (음악 들린다) 오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가 너는 내가 음악가라는 사실을 아느냐 나는 손수 많은 시를 써서 거기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부쳐 그 시귀들을 더 빛나게 했어. [제인쎄이모어] (약간은 포도주 때문에) 네로 황제도 그랬죠. [제인쎄이모어] (뽐내며) 차이는 막대하지 네로는 이교도였지만 나는 이 땅의 [페이지] 049 유일한 신의 대리인야 [제인쎄이모어] (말려드는 듯이) 오! 당신은 기적이십니다. 헨리 튜더. [헨리] (제인을 건너보며) 나의 아내여! (제인의 등을 친다) 너는 미인은 아니지만 너의 왕의 세속적 욕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위안과 즐거움을 주고 있어 너에게 지금 당장 영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왕좌를 주지 못하는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 [제인쎄이모어] 헨리. 폐하의 아이를 행복한 어머니 밑에 키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죠. [헨리] 물론 행복하게 자랄꺼야. [제인쎄이모어] 그렇다면 저의 청을 한 가지만 들어주십시오. [헨리] 무엇이든 내 선한 양심을 건드리지 않는 한. [제인쎄이모어] 앤의 목숨을 구하는 길이 폐하의 양심에 용납되지 않는다면--- 앤의 간음죄가 기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앤은 거만합니다. [페이지] 050 [헨리] 물론 앤은 거만해 [제인] --- 그렇다면 바라옵건대 또 하나의 여자를 고통과 빈곤 속에서 일생을 지나게 마십시오. 어서 카타리나에게 가 여왕과 화해를 하십시오. [헨리] (신음소리를 내며 제인에게서 멀리 간다) [제인쎄이모어] 여왕님은 친절하고 년명하신 저에겐 소중스러운 주인님이셨습니다. 그리고 폐하에겐 충성스런 부인이셨습니다. 여왕님과 폐하의 딸을 돌보아 주십시오. [헨리] (침을 꿀꺽 삼키고) 그건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 머지않아 너의 남편이 될 몸으로써 이십 년 동안이나 수치스러운 첩의 신분으로 지낸 여자를 찾아가라니 너를 두고 내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다른 청을 하여 보라. [앤] (새벽 해가 붉게 떠오르는 걸 보고 일어서서 옷과 머리를 매만진다) [페이지] 051 [제인쎄이모어] (제인 역시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고 비명을 지른다) 저게 뭐예요! 절 놔주세요! [헨리] 저거라니? [제인쎄이모어] 저길 보세요! 창밖이 붉어졌어요. 새벽빛이에요! 아냐 앤의 핏빛이에요! 저걸 없애 줘요. 부탁해요. 내 눈앞에 저게 보이지 않게 해 주세요. [헨리] 네가 괴로워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구나. (부른다) 횃불을 밝혀라! 횃불을 많이 밝혀 높이 들어라. (음악 한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이 시작한다. 배경은 불꽃이 격노하는 바다가 된다) 자 됐지 모든 것은 횃불의 화염 속에 사라졌어. (공포에 질린 듯 결정적으로 선포한다) 모든건 끝이야. [앤] (천천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온다. 헨리와 제인 사이를 지나 배경의 환한 불빛 속으로 간다) [헨리] (몸을 오싹 떨며) 왜 말이 없는 거지. (시끄럽게) 제인 우리 [페이지] 052 아들 에드와드를 위해 축배를 들자. [제인쎄이모어] (폭발하여) 아들이 아니라면? [헨리] 응? [제인쎄이모어] (떨며) 저를 재판정에 보내시겠죠. [헨리] 왜? [제인쎄이모어] (얼떨떨해서) 아들이 아닐테니까요. 아들이 아니라면! [헨리] (직선적으로 분개해서) 아내가 남편이 바라는 아들을 못 낳는다 해서 화를 내다니 그런 무모한 사고방식이 어디 있어. 말을 해봐. 아들을 낳는 게 어디 너의 힘인가? 그건 자연이 하는 일--- 그러지 말고 제인 쎄이모어 네가 충성스러운 아내가 된다면 물론 그러리라 믿지만 우린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꺼야. 그렇지만 만일 내가 이 왕성한 정력을 가지고도 아들을 못 낳는다면 그건 분명 악사의 노름이야. [제인쎄이모어] (난폭하게 헨리의 품 속으로 뛰어들며) 무서운 나의 남편. 나 [페이지] 053 의 왕이여 그건 그래요. [헨리] 넌 다시 행복해졌구나. 네가 곧 웃게되리라고 말하지 않았니? [제인쎄이모어] 웃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 여자의 아름다움 의식을 거부할 수 있게 된게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헨리] 좋아. 맹세코 우리는 일생을 즐겁게 보낼꺼야. 우린 선하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 행복한 일생이란 당연한 보수지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같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추자! 오늘 실컷 춤을 추면 네 허리통이 더 풍만해질꺼다. (제인 완전히 자기를 잊은 채 춤을 춘다. 둘이선 공포에 잠긴 채 요란스레 웃는다. 갑자기 무거운 종소리. 음악도 갑자기 그친다. 제인 계속 감정을 폭발해 버리듯 웃어제낀다.) [헨리] 왜 웃지? [제인쎄이모어] 행복하니까요. 저는 죄가 없어요. 저에겐 남자가 있고 그 남자에게 드릴 아이를 갖고 있거든요. 제인 쎄이모어는 행복해요 [페이지] 054 제인 쎄이모어는 살아있 어요. [헨리] (공포에 질려 제인으로부터 돌아서며 그만 펄썩 무릎을 꿇고 앉는다. 끙끙 앓는 사람처럼 중얼댄다) 앤! 앤 보올린! 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제인쎄이모어] (흐느끼며 침대위에 몸을 쓰러트린다) [헨리] (계속해서 혼자) 막중한 사명을 맡은 나에게 넌 유일한 동반자. 과거에도 미래에도 너 같은 동반자는 또 업을진저. 나의 욕망을 만족시켜 준 너. 너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너의 머리가 그 눈빛 그 입술의 키스 한 마디의 말. 하나같이 나의 즐거움이었던 그 머리가 이제 창백해져서 나를 밤마다 황홀시켰던 네 몸에서 짤리워 나가다니. 무서운 일이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구나. 불가피했덩 일.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힘으로 그걸 도리킬수는 없었다. --- 그렇지만 이 일을 어떻게 너에게 보상한단 말이야?--- 그래 약속인데 난 이 착한 [페이지] 055 여자의 말을 들어 카타리나를 찾아라 보살펴 줘야겠다. 이건 서약이다. (엄하게) (일어서서 후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제인쎄이모어]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 불행한 저 여인을 천국으로 데려가 자비를 베푸소서! 그런데 오! 저 남자는 어찌합니까? 손에 닿는 여자는 하나같이 파멸시키는 저 남자는 어찌하시렵니까? (촛불과 횃불 꺼진다) -막- [페이지] B-001 [막] 2막 (밝은 대낮 소박한 차림의 아라곤의 카타리나) [카타리나] (밝고 유쾌하게) 여길 오시겠다고 선언을 하신 지도 벌써 삼개월 석달동안을 폐하께선 이 핑계 저 핑계로 벼르고만 계셨어. 그러다가 하루 제인이 해산자리에 눕게 되자 폐하는 서둘러 약속을 이행하시기로 하셨지. (앉는다) 정원에서 기다리겠어. 내가 초라하게 살고 있는 꼴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어. 집안에서 보다 여기선 이 옷도 훨씬 나아 보일지도 몰라. 시월의 대낮은 온통 황금빛과 푸른색으로 반짝이는구나! 시종들을 왜 저 쪽에 남겨둘까! 인간적으로 자극을 받아 여기까지 오신 게 수치스러움이 분명해. 저기--- 대문을 두드리시는데 문 열어주는 사람이 없어. 소리를 지르시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저택으로 아셨나? 딸과 하녀가 하나 있을 뿐이에요. 모두 세탁일 하기에 바쁘죠. [페이지] B-002 빗장을 누르시기만 하면 돼요. 빗장을 걸어두지 않았다는 생각은 영 못하시나보죠. 또 문을 두드리시는군요. 화가 나서 쾅쾅 때리시는군요. 나무가 다 썩었는데 그만 대문이 헐리겠어요. 주먹이 먼저 들어올까 했는데 장화가 먼저이군요. 용감한 기사 당신은 성곽을 뚫고 들어오셨습니다. [헨리의목소리] (가까이서) 아무도 없느냐? [카타리나] (조그만 소리로) 네 아무도 없습니다. [헨리] (들어온다. 바로 카타리나가 앞에서 멈춘다. 큰 소리로) 헤이! 카타리나! [카타리나] 네. 전 숨어 있는 게 아녜요. 당신이 저를 보지 못하고 제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시는군요. 당신 혼자서 너무 크게 소리치시는 때문이죠. 당신 눈앞이 너무 밝으신 때문이에요. 폐하가 찾고 있는 것을 일생중 단 한번이라도 찾아내실 수 있을까요. 헨리 튜더. [페이지] B-003 [헨리] 내가 당신을 곧장 보지 못한 이유는 이곳이 너무 눈부신 때문이 아닐까? [캬스린] (들어오면서)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무슨 일로 오셨죠? [헨리] (그녀의 미모에 잠겨 기뻐하며) 여긴 과연 눈이 부시는구나. [카타리나] (혼잣말로) 물론. 암사슴의 냄새라면 놓칠리가 없죠. (무슨 일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그대로 기다리며 서 있다.) [헨리] 너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즐겁게 얼굴을 바라본다) [캬스린] (폐하인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폐하! [헨리] 나를 아느냐? [캬스린] 공주님께선 폐하의 초상이 새겨진 금화를 간직하고 계십니다. [헨리] 금화라고? 여기 그 공주의 어머니는 그 보다도 더 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너는 누구이고 나이는 몇이냐. 아직 처녀인가? [페이지] B-004 [캬스린] 캬스린 하워드입니다. 폐하. [헨리] 그럴리가! [캬스린] 그렇습니다. 폐하 더 아시겠다면 에드몬드 백작의 딸입니다. [헨리] 좋아! [캬스린] (카타리나를 보고) 폐하 공주님은--- [헨리] 응 내버려둬. 흠 노오포크 나무에 꽃이 피였구나. (약간 간사하게 위협조로 손가락을 흔들며) 너도 로마에 대한 의뢰심은 대단하겠구나. [캬스린] (머리를 숙이고 역시 간사하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옵니다. 폐하. [헨리] 네가 마음에 든다. [캬스린] 공주님께서--- [헨리] 너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해서 등을 돌리는 거냐. 나를 울적하게 하지말아다오. [페이지] B-005 [캬스린] 휘엉청한 달도 반짝이는 별의 비밀을 모를 때가 있을텐데 제가 어찌. [헨리] 호 명답이로구나. [캬스린] 공주님께서 폐하를 기다리십니다. (카타리나를 가르킨다. 헨리, 화가 나서 툴툴거리는데 캬스린 조심성 있게 퇴장한다) [헨리] (카타리나 앞에 와 우뚝 선다. 카타리나를 거진 보지도 않은 채 기계적으로 무뚝뚝하게 읊어댄다) 아라곤의 카타리나여! 그간 잘 지냈소. 딸에 대한 의무에서 그 보고를 하는건데 얼마전 수도원, 광산, 빈민요양소 등을 일제 검열한 바 있소. 그때 당신의 생계에 관한 문제도 대상이 되었는데 당신이 경제적으로 고충을 받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소. 그리고 조금 전에 직접 안건데 당신의 집의 대문이 수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소. 우린 그러한 몇 가지 결핍을 곧 보충해 줄 것이오. 물론 적당한 한계 내에서 우린 물론 당신의 딸을 방문할 것이오. 당신이 사의를 표 [페이지] B-006 할 필욘 전혀 없어. 우린 단지 왕실의 의무를 이행할 뿐이니까.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가 되어) 그런데 캬스린 하워드는 어떻게 알게 됐지? [카타리나] (아름답고 풍만한 즐거운 목소리로) 폐하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 호의가 조금도 필요한 것 같지 않고요. 제 힘으로 모두 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헨리] (감격해서 카타리나를 바라보며) 카타리나! 당신의 목소리. 당신 얼굴의 표정 무슨 일이 있었나? (빨리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애인이 생겼지? [카타리나] 아뇨. [헨리] 그렇다면 무슨 일이지. [헨리] 아마 자유겠죠. [헨리] 자유? 당신도 자유를? [카타리나] 네. 그러나 폐하의 말씀하시는 자유와는 전혀 다릅니다. 덜 떠들 [페이지] B-007 석하고 덜 강요를 받는다고 할까요. [헨리] 이 벽 안에 갇혀 살면서 자유라니. [카타리나] 저에겐 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의 푸른 하늘과 무성한 나뭇잎 새들이 보일 뿐입니다. 마드리드에서 갇혀 있었고 런던에서 갇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제 마음대로 살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헨리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헨리] (감동을 받아) 나를 이렇게 맞아주다니 더 없이 고맙소. 이곳에 오면서 불가피하게 올 수밖에 없었지만 난 무척 울적했었소. 그런데 그만 영광스러운 날이 되었구려. [카타리나] 여기 앉아 있으면 기분이 퍽 맑아지죠. (둘이서 앉는다) 카스린에 관해 물어보셨죠. [헨리] (생기가 나듯) 그래. [카타리나] 제가 캬스린의 대모입니다. 고아였으니까요. 여기 오기 전까지 노오포크성에서 숙모와 함께 살았었죠. [페이지] B-008 [헨리] 말하는데 재치가 있어 겸손과 기지가 반반야. 단맛도 있고 새콤한 맛도 있고 내 마음을 단단히 끌었거든. [카타리나] 책을 많이 읽었죠. 아름답게 시를 낭송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평생 결혼은 안 할꺼에요. [헨리] (천진하게) 내가 아내감을 찾고 있는 것은 아냐. [카타리나] 그야 너무나 당연하죠. [헨리] 나에겐 좋은 여자가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이 곧 닥쳐오는 중야. 그렇지만 만일 하나가 꼭 필요하다면 현재로선 루터교를 신봉하는 여자여야 해. [카타리나] (아직도 유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루터교인요? 신앙의 수호자인 폐하가? [헨리] 정권의 바람은 방향이 여러군데니까. 독일 황태자와 인연을 맺는 게 상책인 듯싶어. [카타리나] 이교도 황태자와? [페이지] B-009 [헨리]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서야. 신앙은 곧 영국의 보호를 필요로 하니까. [카타리나] 오 네. 영국. [헨리] 현실을 실제 문제적으로 직시해야 해. [카타리나] 실제 문제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런 표현방법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헨리] 새로 나온 현대용어야. 그렇지만 먼 훗날까지 애용이 될걸. [카타리나] 무슨 뜻인데요? [헨리] 음 예를 들자면--- 아내가 남편이 바라는 상속자를 낳지 못한다면--- 아 그건 좋은 예가 아닌데. [카타리나] 오! 알았어요. 그래요 만일 남편은 상속자를 바라고 있고 아내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그건 분명 실제이고 문제죠. [헨리] 그거야. [카타리나] 그런데 어느 쪽이 실제고 어느 쪽이 문제죠? [페이지] B-010 [헨리] (당황해서) 그 용어는 내가 발명해낸게 아냐. [카타리나] (우아하고 품위 있게) 캬스린을 시켜 포도주를 가져오게 하겠어요. 폐하의 기지를 일깨워 줄꺼에요. [헨리] (웃으면서) 당신의 기지는 당신의 피부처럼 깨끗하고 당신의 눈처럼 반짝이오. [카타리나] 시월태양빛으로 반짝이는 가을나무잎 때문입니다. [헨리] (부드럽게) 그래 태양의 반사일지도 모르지. [카타리나] (헨리의 기분에 흡족하여) 오 헨리 폐하께서도 변하셨습니다. [헨리] (힘차게)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 정원에 난 매혹이 되었소. [카타리나] 이곳이 다른 정원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눈이 부신 이곳은 폐하가 계시는 곳이겠죠. [헨리] 내가 사는 곳이라니 대수롭지 않은 곳이지. [카타리나] 여기도 그래요. 저주에서 해방을 시켜준 곳일 뿐입니다. [헨리] 당신과는 마음을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페이지] B-011 [카타리나] (조심스럽게) 그렇다면 말씀하세요--- 헨리, 이성이란 명분을 내세워 선포하신 시대. 그 시대는 어떻게 됐죠? 처음 이삼 세기 동안을 보세요. 잔혹한 전쟁뿐이었어요. 모두 신앙이란 이름의 허울을 쓴--- 말씀해 보세요. 이성이란 어떻게 된 거예요? [헨리] 잘 들어줘. 루터는 현대의 문 앞에 아흔 다섯 개의 조문을 비끌어 매 놓았어. 그렇지만 이 조문보다 더 강력한 세 명제를 난 망치로 박아놨거든. 황금--- 국가--- 권력. [카타리나] 그게 어떻다는 거죠? 아 알겠어요. 그 세 명제가 곧 실제 문제이군요. [헨리] 바로 그거야. [카타리나] 그럼 전쟁이 어떻게 신앙의 이름으로 계속이 된 거죠? [헨리] 우리 시대에 신앙이란 중요한 요소야. 당신도 그렇게 말 한적이 있는데. [페이지] B-012 [카타리나] 네 신앙이란 모든 세기를 통하여 창조의 힘이 되고 있어요. 헌데 이렇게 모든 요소가 폐하를 위해 작용되고 있는데 폐하께선 왜 새롭고 더 좋은 실존을 창조하지 못하시죠? [헨리] 왜 우선 새로운 것을 발명했어. 우선 물질주의의 승리! [카타리나] (일소해 버리며) 하느님을 위해서 요구된 것들이 황금과 국가와 권력이라고요? 괴상하군요. [헨리] 주님이 보여주시는 길은 항상 기적적인 것이야. [카타리나] 오 전 폐하만큼 신앙이 두텁지가 못한가 봅니다. 전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각국 왕들은 신앙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키는군요. [헨리] 그건 경솔한 사고방식이요. 양심의 소리를 경청해서 주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이득이 되는 모험을 수행하는 것이오. [카타리나] 아 인제 알겠어요. 그 밑받침으로 양심의 요구를 내세우는군요. 바로 그러한 경우는 우리에게도 닥친 적이 있어요. 그렇죠? [페이지] B-013 [헨리] 내가 양심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니요. [카타리나] 아니죠. 그 말은 폐하의 적수 루터가 창안한 말이죠. 그렇지만 폐하께서는 그 두말 양심이란 것과 실제문제라는 것을 묘하게 잘 짝을 지우시네요. 고결한 의도와 고결한 이득. [헨리] 당신과의 결혼문제는 거리낌없이 정직했었소. 카타리나. [카타리나] 제 말뜻이 바로 그거예요. 거리낌 없는 성직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니 그야말로 성과를 거두신 거죠. 위선자란 항상 존재해 왔지만 일체의 욕망, 거동, 현재에 와선 일체의 국가의 행동까지 신성화시키시다니. 마카벨리가 제시한 것처럼 거짓말로가 아니고--- 네 정직하게 폐하의 양심의 소리로써 신성화시킨다는 것은 과연 새롭고 놀랄만한 업적이시죠. 그 업적에 대해서라면 폐하의 공적이 분명합니다. [헨리] (잠깐동안 패배감에 몰린 듯하다 곧 들이켜서) 내 역사의 위치를 당신이 최초로 인식하고 있구려. 정말 기쁘오. 헌데 어떻 [페이지] B-014 게 그렇게도 잘 알지? [카타리나]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병만을 연구하듯이 전 일생동안을 당신만 연구해 왔거든요. [헨리] 좋아 이제야 겨우 웃음을 되찾았군. 정치 얘긴 그쯤 하기로 하지. 정치란 치사스러운 일야. [카타리나] (대답하려고 하자) [헨리] 제발 그만 해 두고 이 몇세기동안에 괄목할만한 역사적 변동 즉 지성의 도약을 인정하기 바라오. [카타리나] (아픔을 참아내며) 알고 있어요. 헨리. 감탄할 만한 일이에요. [헨리] (열심히) 아냐 당신이 [카타리나] 정말이에요. 진심으로 감탄해요.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할걸요. 무한한 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기 위해 가장 위대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사탄과 한패가 된 닥터화우스트 얘기를 꺼낼거에요. [페이지] B-015 [헨리] (갑자기) 내가 무얼 생각하는가 말해줄까? 나 헨리튜더는 권력의 단계에 있는 닥터 화우스트야. [카타리나] (즐기며) 첫 번째 두 단계는 이미 거쳤으니까요. 지식에 대한 탐구로 끝났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장도 끝이 났죠. [헨리] (입을 삐쭉한다) [카타리나] 아니죠. 헨리. 당신은 화우스트가 아녜요. 당신은 사탄의 하수인이에요. [헨리] (유모있게)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해 보지. 그렇지만 마지막에 사탄이 우릴 영원의 저주 속에 집어던질 것 같은가? [카타리나] 사탄이 왜 문제가 되나요? 당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텐데. [헨리] 물론 낡은 지식의 한계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그렇게 될 수 있는거야 당연하지. [카타리나] 그래요. [페이지] B-016 [헨리] (빗대서) 아우구스틴과 토마스아쿼나스의 지식으로. [카타리나] 낡은 지식이란 예전에 존재했던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에 길이 존재하고 있는 지식을 말하죠. 학교에 가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도 그 지혜로움을 깨우칠 수 있죠. 마치 한 농부의 단순한 정신이 한줌 흙에 뿌리박혀 있듯이 말입니다. [헨리]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우리가 그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 [카타리나] 아니죠. 폐하는 호기심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대양을 횡단하고자 하는 지식을 쌓았고 인도를 찾다가 그 곳에서 신대륙을 발견하셨습니다. 새로운 지식이란 이렇게 되겠죠. 계속 대양을 횡단해라. 그리고 계속 그 대양 건너편에서 신대륙을 찾기에 힘써라. 그렇지만 여기에서 이 중대한 계기인 대안이 바로 그 낡은 지식으로 되어 있는 겁니다. [카스린하워드] (흥분에 차 들어온다) 용서하십시오 폐하. 폐하께 전갈이 왔습니다. 건강한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페이지] B-017 [헨리] (마음깊이 감동받아 조용히) 오--- 다시 한번 말해보렴.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노래를 읊어라. 폐하 폐하 폐하 아들입니다. 주님의 은총 아래 나 영국의 왕 헨리 튜터는 승리의 왕조 헨리 튜더의 아들 헨리 튜터는 튜터 왕조의 여덟 번째가 되는 나 헨리 튜터는 아들을 낳았도다! [카타리나] 주의 섭리가 마침내 폐하께 이를 허락 해 주셨군요. 저도 무한히 기쁩니다. [헨리] (일어서서 다정하게) 고맙소.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유스러움을 살펴보시기를 다른 일체의 것은 내 원만히 보살펴 주겠소. (캬스린에게) 그리고 너에게도 사의를 표한다. 넌 아주 귀여운 전령사야. (키쓰해 준다.) 자, 나는 런던으로 돌아간다. [카타리나] (캬스린에게) 산모는 어떻데드냐? 전갈에 그 말은 없더냐? [캬스린] (공포에 질려 헨리를 바라보며) 산모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페이지] B-018 [헨리] 세례식은 다음 수요일에 거행한다. [카타리나] 어머니가 없이 영세를 합니까? [헨리] 그야 물론 어머니가 있어야지. [카타리나] 산모는 위태롭다 하지 않습니까. [헨리] 수요일은 점성학자가 택일을 한 특별한 날야. [카타리나] 산모는 위험합니다. 계속 자리에 누워있게 하십시오. [헨리] 관례대로 그 날 산모는 나에게 아들을 데려와야 해. [카타리나] 헨리! 제 얘길 들으세요. 자칫하다간 산모의 생명이! [헨리] 나에게 아들을 전해 주는 것은 곧 내가 한 모든 행위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수적이고 최선의 행위였음을 증명하는거야. [카타리나] 그 연극의 대가로 생명을 걸어야 하나요? [헨리] 설마 그렇게는 안되겠지. 주님께서 보호하실꺼야. [카타리나] 그렇지만 만일 생명을 잃게 된다면! [헨리] 그렇다면 분명 그건 주님의 뜻이야 주님께서는 내가 루터교인 [페이지] B-019 아내를 맞아드릴 것을 원하고 있는거야. 추천된 여자가 한명 있긴 하지. 클리브스공작의 딸인데 한창 나이는 아니지만 홀바인공이 그린 초상화를 보니까 상당히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얼굴야. (퇴장한다) [카타리나] (정중하게) 오 자비로우신 주여, 비노니 청천벽력같이 마구 날뛰는 저분을 도와주소서. (조명 바뀐다) [제인쎄이모어] (안간힘을 쓰며 침대에서 일어선다) (시녀들에게) 너희들의 심중은 잘 알겠어. 몸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뜻도 충분히 알어. 그렇지만 남편이 주장하고 계시는걸 그분의 주장이 그저 엉뚱한 고집만은 아냐. 난 그분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으면 안돼. 다만 친구가 주검을 당하고 있을 때 웃고 있었던 내 죄가 이 일로 속죄되기만 바랄뿐야. (요람에서 아이를 꺼낸다) 이리 오너라 넌 내 심장의 부드러운 열매, 난 너를 만인 앞에서 너의 아버지 권력의 왕에게 드릴 것이다. 국왕께서는 너를 받아 하 [페이지] B-020 느님 앞에 바치시리라. 자 내 아들아 안녕히 안녕히 착한 인간 선한 기독교인이 되거라. (제인 쎄이모어,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아이를 안고 걸어간다. 다채로운 불빛 쎄인트 폴 사원. 종소리. 헨리 후면에서 체품 있는 걸음걸이로 들어온다. 제인 곁까지 오자 손으로 제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의식(儀式) 적인 키스를 한다. 겸손하게 제인, 왕에게 애기를 드린다. 헨리 미소를 짓고 애기를 받아 후면으로 돌아서서 애기를 내려놓고 세례를 준다. 다시 애기를 집어드는데 제인 쓰러진다. 헨리, 엎드려 쓰러진 제인을 건너가 애기를 보여준다. 애기를 높이 든다. 자랑과 만족으로 만면한 얼굴.) (도버항 겨울 폭풍소리가 요란하다. 궁정나팔소리. 헨리와 캬스린·헤이워드 들어온다.) [페이지] B-021 [헨리] 저 만치 서 있거라. 그리고 커다란 소리로 시를 읊어라. 아니면 내가 지은 주옥 같은 쏘넬트가 폭풍소리에 말려 들리지 않게 되리라. [캬스린] (이를 벌벌 떨며) 폐하. 폐하의 싯귀가 제 입술에 얼어붙을까봐. 걱정이옵니다. [헨리] 내품에 들어오기 위해 어름이 꽁꽁 얼린 해협을 감히 건너오는 이 용감한 독일처녀를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라. (또 다른 나팔소리 보트가 도착함을 알린다) 오브에 소리가 마치 트럼펫 소리같이 들리는구나. 유럽이 나에게 다가오는구나. [콜리브스의 안나] (도착한다. 먼 데서 무릎을 굽혀 절한다. 헨리 아주 정중하게 이를 받는다. 안나의 얼굴은 베일로 가려졌다.) [캬스린] (안나 앞에 무릎굽혀 절한다. 추위로 몸을 덜덜 떨며 폭풍 속에 시를 외친다. 헨리, 시의 둔탁한 문학애호가 기질을 강조하면서) [페이지] B-022 대가의 화필로 그려진 그대 초상화를 본후 그대의 미소에 황홀해 가슴 태우던 그분이 이제 그대 아름다운 독일의 여인에게 혼례의 찬사를 보내노라. 저는 그분의 사랑을 위해 선발된 자. 폐하가 손수 지으신 시를 대신 낭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캬스린 다시 무릎 굽혀 절한다. 헨리 뒤에 자리를 정한다.) [클리브스의 안나] (베일을 벗는다. 지독하게 못 생긴 얼굴에 납작코다. 단연 준비해 온 스피치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칭송받는 영국의 폐하이시어! 폐하의 비상한 창작력으로 시에 그렇게도 아름답게 표 [페이지] B-023 현된 폐하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에 심신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폐하께 감사드리오나 또 한편으로는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시여 위대한 권력자인 폐하께서. [헨리] (안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처음엔 흠칫 뒤로 물러서다가 입을 삐쭉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눈을 부비고 안나를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크게 한숨을 내려쉰다.) 맙소사. 하느님 이건 너무 지독하군. 아냐. (도망친다. 캬스린에게 초조하게 귓속말을 한다) 나에게 친절히 해 줘 캬스린. 독일색씨의 초상화를 너도 보았지 (당황해서 캬스린 고개를 젓는다) 저 여자가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라니? [캬스린] (소용없는 노력으로) 아마 뱃멀미가 나셨던가 봅니다. [헨리] 뱃멀미라구? 왜 그 증세가 나타나면 코가 저렇게 삐뚤리고 납작해지나? 아냐 저 여자는 어쩌면 신부의 둘러리인지도 모르 [페이지] B-024 겠군. (다시 안나를 바라본다) [클리브스의 안나] (새로 시작한다)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권력자이신 영국의 왕이 저를 사랑하는 신부로 간택하신 것에 대해 전 자랑스런 마음을 금치못하겠습니다. 저는 애정과 충성을 가지고 폐하의 후계자를 낳고. [헨리] (후면에 소리친다.) 말에 안장을 올려라. [캬스린] 폐하! 폐하! [헨리] (손짓으로 캬스린을 막으며) 나는 싫다. 어떻게 저 여자를 안돼. 천만에 그건 안돼. [캬스린] 폐하! 전 유럽이 폐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헨리] (낙담해서) 유럽! 그래 독일의 암소눈깔을 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저 여잔 오이로파종이고 내가 그 수컷이란 말야. (비탄하며 어쩔 수 없이 소리 지른다) 말을 내버려둬라. (혼잣말로) 내 스스로가 안장을 치겠다. (안나에게 어거지 [페이지] B-025 경례로) 계속하시오. 아니 계속하지 마시오. 그대가 추위에 몸을 떠는 걸 보니 내 가슴이 아프오. 신부의 전당으로 가서 따뜻한 불에 몸을 녹이시오. 펀치를 듭시다. 우린 펀치가 필요할 것 같소. (안나에게 바른쪽으로 가라는 손짓을 하고 뒤따라간다. 암담한 표정으로 안나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캬스린 안나의 외투를 들고 퇴장한다. 헨리 자기 외투를 벗고 난로 앞에 안나와 같이 자리잡고 앉는다. 유리잔 두 잔에 펀치를 따른다.) [헨리] (떨떨하게) 클리브스의 안나. 내 소중한 신부를 위해서. [클리브스의 안나]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나의 소중한 남편 폐하의 건강을 위해서 (둘이서 맛있게 술을 들이킨다.) [헨리] 여행이 무척 고달팠던 모양이군. [클리브스의 안나] 오 그때 흔들리든 것은 고작 제 발밑의 보트뿐이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군요. (한숨에 잔을 비운다.) [페이지] B-026 [헨리] (안나가 술을 한숨에 들이키는 걸 보자 감격해서 안나에 대한 경의가 부풀어 오른다) 심장에 고삐를 채워 욕망을 누르고 봄까지 기다리는 게 우리한텐 좋을 뻔했어. [클리브스의 안나] 교황의 분통을 터뜨릴 욕망이 성급했었죠. [헨리] (한숨을 쉬며) 맞았어! (안나 당황해서 말이 없다) (할 말을 찾으려다가) 앤! 아 같은 이름의 여자를 겪은 적이 있소. [클리브스의 안나] (공포에 질려 외친다.) [헨리] 왜 그러시오. [클리브스의 안나] (긴장해서) 놀라운 사실인데요. 폐하의 계보라면 상세히 조사를 해봤지만 앤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어요. [헨리] 삭제하라고 명령했거든. (슬픈 얼굴로 술잔을 바라보며) 그 여잔 아름다웠지. 그렇지만 법정에서 모욕을 받은 여자 (안나를 보고) 당신은 분명 정숙한 여자임에 틀림없지. [페이지] B-027 [클리브스의 안나] 폐하의 대사에겐 이미 여러 통의 추천장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물론 저의 처녀성을 인정하는 산부인과의 진단서도 첨부했습니다. [헨리] 음 모두 괜찮어 내가 하려는 말은! [클리브스의 안나] 정숙하긴 하나 못 생겼다 그거죠. [헨리] 모든 순교자의 눈물을 두고 맹서하는데 당신처럼 당당한 여자의 머리 속에 어떻게 차마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요. 당신의 얼굴은 첫째, 당신의 귀는 마치 조개껍질처럼 예쁘게 생겼구려. [클리브스의 안나] (말을 툭 잘라서) 흠 아름다운 여자의 눈동자와 입술이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듯 당신은 내 귀모양이 충분히 그런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둘째번 예까지는 들지 않으셔도 됩니다. [헨리] (치밀어서 홀바인공의 눈을 뽑아 내 눈에 대신하고 싶구나 그가 초상화를 그리며 너를 보았듯이 나도. [클리브스의 안나] 그 초상화라면 지금 저에게도 있습니다. [페이지] B-028 [헨리] 아 그런 뜻이 아니오. 그 초상화가 당신을 과장해서 그렸다고는 생각한 적은 없소. 그 반대요. 오히려 그림이 오리지날 때문에 희미해진걸 그림으로만 보던 당신을 직접 눈앞에 보니 그저 그림과는 약간 다르다는 뜻이었소. 내 말뜻을 잘 알아듣겠소. 단지 똑같지가 않다는 말이오. 넘쳐흐르는 당신의 매력, 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클리브스의 안나] 설명하실 필요없어요. [헨리] 바로 하느님의 뜻이오. 나의 딱딱한 피를 움직이는 겨우 그런 종류의 매력이 아닌--- [클리브스의 안나] (강력하게) 간단히 말해서 저에게 끌리지 않는다 이 말씀이죠? 당신은 저를 원치 않으십니다. [헨리]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니오. 그렇지만 난 당신을 원하오. 따라서 결혼식은 지체없이 거행할 것이오. [클리브스의 안나] (흐느끼며) 저에게 관심이 없으시면서 저를 아내로 맞으시겠다구 [페이지] B-029 요? [헨리]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니? 난 당신에 대해선 지대한 관심과 성의를 갖고 있소. [클리브스의 안나] 사실이 아녜요. (술잔을 들이킨다.) [헨리] (가슴을 치며) 축복이 아예 없으란 법은 없어. 첫째로 당신이 그 술잔을 비우는 솜씨란 과연 탄복할 만하오. 난 진실로 감명을 받았소. 그 이유만으로써도 우리가 결혼할 이유는 너무나 충분하오. [클리브스의 안나] (비참해져서) 저는 라인랜드 태생이에요. 그곳에선 찬 포도주를 마신답니다. [헨리] 멋진 이유야! 또 하나는 당신의 입의 한 부분 당신의 입술을 만들 때 창조주께서 어쩌다 한눈을 파신 탓으로 내 입술과 싸이즈는 맞지 않지만 그 입안에 재빠른 혀가 있어. 쉴새없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오 너는 나를 엄청나게 즐겁게 해 주는구나. [페이지] B-030 그 엄청난 건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구나. 넌 분명 굳센 여자렷다. 그러니까! 사실에 대해서도 확고한 견해가 있는--- [클리브스의 안나]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그렇습니다. [헨리] 펀치를 더 마시자 더 마실 수 있겠지? [클리브스의 안나] (결심한 듯) 물론입니다. [헨리] (대단히 흡족하며) 그런 줄 알았어. 자 우리 결혼문제를 좀 더 이치에 맞게 연구해 보자. 결혼식은 거행한다. 이에 동의하는가? [클리브스의 안나] 네 [헨리] 좋아. 다음엔 우리 결혼생활에 불가피한 것을 냉정하게 논하자. 이 결혼은 어쩔 수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 난 내 일생에 단 한번 이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일체의 육체적 쾌락을 극기할 것을--- 물론 당신은 충분히 능력이 있으리라 믿지만 선언하고저 한다. [클리브스의 안나] (비통하게 머리를 숙인다.) [페이지] B-031 [헨리] 당신과 당신의 육체의 욕망의 밭은 경작되지 않은 채 순결이 보존될 것이오. 금욕을 지킬 수 있겠소? [클리브스의 안나] (굴종하듯 끄덕인다.) [헨리] 정말 아무렇지 않게 체념할 수 있겠나? [클리브스의 안나] (끄덕인다) [헨리] (가슴이 아픈듯이) 정말? [클리브스의 안나] 폐하 저는 서른 살이 되도록 소위 남들이 말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쾌락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살아왔습니다. 물론 저는 이곳에 오면서 폐하의 어마어마한 남성력을 마음껏 즐기려는 희망에 벅차있었지만. [헨리] 넌 나의 심중을 찌르는구나. [클리브스의 안나] 그렇지만 저와 잠자리를 같이 안하시는 게 폐하의 원이시라면 그렇다면 전 왕좌를 누리고 폐하의 식탁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만 만족하고 살아가겠습니다. [페이지] B-032 [헨리] (넙적다리를 치며) 오 마음도 착해라! [클리브스의 안나] 어두운 밤 긴긴 시간을 저는 폐하가 말씀하신 것처럼 미경작상태로 루터선생의 영감적인 서술을 읽겠습니다. [헨리] (달갑지 않게) 루터가 아주 적절하게 응용이 되었군. 내 위로삼아 한 마디 해 두겠는데 카도릭교리에서는 결혼에서의 금욕은 최고의 순위에 오르는 덕행이요. 복자가 될 충분한 자격으로서 시복시에 임할 수 있을꺼요. [클리브스의 안나] 이교도에게도 가능할까요? [헨리] 적어도 지옥에서 겪는 괴로움이 줄 것만은 확실해. 뭇 남자들이 자기네들의 야수적인 육욕을 채우기 위해 아내의 성욕을 강요해 영원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걸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 당신은 적어도 이 점에서라면 예외적으로 비상하게 유리한 결혼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오. [페이지] B-033 [클리브스의 안나] (내키지 않는 유머로) 폐하는 모든 것을 잘도 해석하시며 폐하의 일생에 합당하게 만드시는군요. 진실로 비상한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마치 (손으로 동작을 쓰며) 털 벼개를 주무르시듯 마음대로이시군요. [헨리] (넙적다리를 철썩 치며) 너 말은 잘 하는구나. 넌 나를 잘 알고 있어. 네가 아는 말처럼 네 코가 똑바르지 않다니 정말 비극이구나. 털벼개처럼 그래 나에겐 너무 적절한 말이구나. 사도 바울이 말씀하시기를 주를 사랑하는 자는 모든 사물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용하라 하셨어.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거야. [클리브스의 안나] 훌륭하십니다. 신앙이 두터우신 폐하. [헨리] 당신은 나의 소중한 아내. 우리는 사도바울의 교훈을 쫓아 살아나갈 것이오. 정신을 찬양하리 그리고 육체는 멸시할지어다. 이 계약을 봉안하는 표적으로 난 당신의 가냘픈 그러나 경망스런 [페이지] B-034 입술에 키쓰를 하겠소. (안나가 가까이 가는데 조명 바뀐다.) [헨리] (사이를 둔 후) 우리가 마음을 맞추어 지체 낮은 결혼을 한 지도 벌써 육개월 정중하게 보고하겠는데 난 우리의 결혼일자를 다 헤아리고 있소. [클리브스의 안나]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선다.) [헨리] 웬일야? [클리브스의 안나] 폐하께서는 아내를 여벌로 거느리시는데 아주 수단이 좋으시군요? [헨리]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이냐? 정숙하기 그지없는 너를 아내로 둔 채로 어찌 그런 짓을 하겠느냐. 너는 나에게는 무익하지만 유능한 동반자였다. [클리브스의 안나] (다시 헨리 곁에 와서) 그런데 지금은? [헨리] 나의 소중한 아내였던 네가 아이를 낳지 않음은 주님의 뜻 [클리브스의 안나] 아이라뇨? 그건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일. [페이지] B-035 [헨리] 백성들을 위해서 나는 이 결혼을 백지화할 수밖에 없다. 대신 너에게 왕의 여동생이라는 칭호를 주고 넌 이천파운드의 년수입과 시골에 집 한채를 마련해 주겠다. [클리브스의 안나] 사천 파운드!! [헨리] 삼천 파운드!! 수도원의 폐쇄로 치부된 돈에서 주는 것이니 루터교도인 너한테는 사실상 두 배의 값어치가 되는 셈이다. [클리브스의 안나] 그런데 [헨리] (찌푸리며) 또 뭐야? [클리브스의 안나] 왕의 여동생은 끝까지 그 오빠에게 지조를 지켜야 합니까? [헨리] (웃으며) 넌 나를 도대체 뭘로 아느냐 괴물인줄 아느냐? 젊고 씩씩한 백작을 골라 실컷 재미를 보려므나. [클리브스의 안나] 힘 자라는데까지 폐하의 충고를 꼭 지키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헨리] 한가지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 [페이지] B-036 [클리브스의 안나] 네 저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겠어요. 년 사천 파운드와 집 두채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요. [헨리] (힘차게 안나를 잡으며) 넌 과연 대단한 여자구나. 내가 여태 말을 건넨 여자중의 최고야. 네가 그런 코를 가진 것은 필경 우리로선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음이 분명해. 난 어느새 네 코를 과대 평가하게 됐구나. [클리브스의 안나] (열렬하게) 그게 진심입니까? [헨리]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너 몸을 떨고 있구나. [클리브스의 안나] 저도 여자예요. 헨리 [헨리] (당황해서) 자 난롯가로 오너라. [클리브스의 안나] 나무 때문에 생긴 불꽃이라면 전혀 저의 요구와는 상관이 없는 걸요. (퇴장한다.) [헨리] (크게 마음이 산란해서) 어떻게 된거지 곁에 있는 여자도 [페이지] B-037 사양하다니? 순간순간의 요구를 변함없이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내 심장의 나침반도 안나와만은 등을 지고 우뚝 서 버렸구나. 무엇이 잘못 된거지? 내 심장인가? 안나인가? 나침반의 바늘인가 아니면 그 여자의 코 때문인가. 내가 늙어가고 있는걸까? 천만에! 아냐 그럴지도 몰라 한쪽 다리엔 벌써 괴혈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난 이제 혼자 있는 게 두려워. 그래 나도 이제 늙어 가는 모양이지. 늙어가다니! 몸서리가 치도록 염증이 나는 말이다 정상의 문턱을 넘어서서 이제 그늘진 출구를 내려다 봐야 된다니. 오 무섭고 지긋지긋하구나. 저쪽에서 할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맹세코 나는 내 심장의 바늘이 가르키는데로 쫓아가리다. 이 절대적으로 틀림없는 정확한 바늘의 방향은 어데냐 바도 그날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장하게 내 자작시를 읊었던 수줍은 처녀 캬스린 하워드다. 그런데 내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워드 가문은 교황파 [페이지] B-038 야 하긴 루터파와 결혼을 해서 혹독하게 당한 몸 교황에 반대하느니 교황파의 나 어린 색시를 맞아 그쪽과 손을 잡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지. 자비로운 나의 심장은 깨끗이 정화되기를 요구하고 있구나. 보라, 나는 그 믿음 두터운 처녀를 사랑한다. 나의 심장은 어찌도 이리 정확하냐. 가을은 아직 멀었고 바야흐로 여름한창임을 알려주는구나. 헨리 튜터에게 성령이 강림했도다. 헨리 튜터의 진로에 귀중한 수확을 펼쳐라. (기세가 등등해서 후면으로 퇴장한다) (우측에 조명. 아라곤의 카타리나와 캬스린 하워드, 수녀의 차림으로 좌측으로 걸어간다.) [캬스린] 궁전 안에서 왕을 피할 피난처를 찾으십니까 [카타리나] 궁전 안은 미궁과 마찬가지. 그 미로를 아는 자는 별로 없다. 파아 미망인이 아마 제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나, 밤중 이 시간이면 그 분은 서재에 계실 것이다--- 케이드! 케이드 파아! [페이지] B-039 [케이트파아] 누구죠? 이 야밤중에 어느 믿음 좋은 여자들이 날 찾아 왔을까? [카타리나] 케이트. 캬스린 하워드를 데리고 왔어요. 부인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케이트파아] 그리닛찌에 전염병이라도 도나요? [카타리나] 전염병보다도 더 무서운 결혼에 미친 왕 때문이오. [케이트파아] 전염병 쪽이 차라리 나았을걸. [카타리나] 얘를 보호해 주시겠어요? [케이트파아] (결심을 한듯) 나와 같이 있자 꾸나 캬스린 하워드 [캬스린] 너무 친절하십니다. [케이트파아] 너도 내 친구들처럼 나를 케이트라고 불러주렴. [캬스린] (고마워서 어쩔줄을 모르고) 케이트! [카타리나] 케이트 한 가지 알아둘게 있는데 그건 캬스린이 절대로 폐하가 싫어서 피하는 건 아녜요. 캬스린은 폐하의 부인이 될 수 [페이지] B-040 없어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있어요. [케이트파아] 무슨 비밀이라도? [카타리나] 비밀이라면 오죽 좋겠어요. 만일 캬스린이 여왕이 된다면 캬스린은 영국국교를 내세우며 수도원을 철폐하는 강탈자의 처분대로 될 것입니다. [케이트파아] 아, 너는 교황정치를 주창하는 노포크생의 불법공모에 가담했구나. [캬스린] 아닙니다. [케이트파아] 그런데 그 옷차림은 [카타리나] 가장이에요. [케이트파아]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이의 없어요. 이 개화기에 왕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할 필요가 있는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이 고서들 틈에 있으니 더 아름답구나. 누렇게 퇴색한 낡은 책장 속에 끼어 있는 한 장의 새하얀 [페이지] B-041 쪽지 같애. [캬스린]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인께서 저를 십계명이 적힌 책장 틈에 끼어두시겠죠.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 때문에서도 거기서만은 왕도 저를 끝내 못 찾으실꺼예요. [케이트파아] 거기서라면 나도 너를 못찾아낼꺼다. [캬스린] (놀래서 쳐다본다) [카타리나] 케이트는 새 과학을 연구하고 있어. 참으로 아는 자와 참으로 믿는 자는 항상 한편에 서기 마련야. (우측 전면으로 모두 물러간다. 그쪽에 밝은 조명을 받으며 헨리 공포에 질려 다리를 벌리고 양팔을 가슴에 십자로 얹은 채 서 있다.) [헨리] (분명 잠시동안 세 여인의 겁에 질린 표정을 즐거이 바라본 후다. 웃음을 터뜨리며) 세여자가 하나같이 이름이 카타린이로구나. 아무리 나지만 이건 너무 심하구나. 파아미망인은 물러가 있거라. [페이지] B-042 [케이트파아] 존경하옵는 폐하 저는 지금 손님을 접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청객으로 오시어 주인을 찾아온 손님으로부터 쫓아내려 하십니까? [헨리] 불청객이면서 귀하신 너의 손님께서는 너를 네 방으로 가도록 허락해 준다. 런던 탑이 아닌걸 감사해라. [케이트파아] (내내 흥분해 있다가 이를 가라앉히고) 한 사람과 잠깐이라도 자리를 같이 하는 일이 이 보다 더 무서울 수가 있을까. [헨리] (캬스린에게) 내 귀여운 캬스린아! 무엇보다도 네 의상이 마음을 끄는구나. 앞으로도 자주 그런 의상을 차려입고 내 눈을 즐겁게 해 주기 바란다. [카타리나] 그런 신성 모독적인 즐거움은 물론 기타 폐하가 누릴 모든 즐거움을 캬스린은 거부할 것입니다. [헨리] 그렇게 안될걸 너는 이제 그 많은 재산과 함께 내가 얼마나 마음 착한 왕인가를 기억하는 편이 낳을거다. 네가 여기 와 있는 [페이지] B-043 걸 본 순간 난 네 귀를 당장에 짤라낼수도 있었지만 너는 다행히도 네 왕이 더 할 수 없이 좋은 기분이었을 때 만났구나. 너도 알겠지만 나는 지금 사랑에 도취해 있다. (캬스린에게 가까이 간다.) [카타리나] (둘 사이로 가며 헨리, 청컨데 얘를 놔주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얘는 폐하의 아내가 되어서는 안되옵니다. 캬스린에게뿐만 아니라 폐하에게도 마찬가지 비극이 될 거. [헨리] 비극이라고? 나에게 이 왕국에서 나는 어떤 것이 비극인가를 법으로 제정하겠다--- 또 할 말은 없소? 당신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겠다. [카타리나] (아연실색해서) 제 말을--- 믿지 않으시겠다구요? [헨리] (감명을 받아서) 이 문제에 한해서만은 믿지 않겠어. 카타리나 당신이 거짓말을 경멸하고 모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렇지만 당신도 여자이고 한때는 나의 아내였잖소. [페이지] B-044 지금 어떻게 조금치도 질투심이 안 일어난다고 장담을 할 수 있겠소. 내 앞길을 가로막지 말어주오. (캬스린에게 다가가며 앞에 무릎꿇고 앉는다) 캬스린 하워드! 고목나무의 한 송이 꽃 영국의 청춘과 아름다움을 한껏 고루 가진 그대 캬스린을 나는 사랑하고 있소. 그대의 머리에 합당한 왕관을 씌워주고 싶소. [캬스린] (눈물을 흘리고 만다.) [헨리] (일어서서 아연하여) 캬스린이 왜 슬퍼하지? [카타리나] 캬스린이 당신을 원하고 있는가 아닌가 그 애의 의사를 물어 볼 수는 없나요? [헨리] 나를 원하는가의 여부를 따지라고? 모든 여자들 위에 영광스럽게 군림할 의사가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보라고? 그래 대답해 봐 캬스린 원하는가? [캬스린] (할 수 없이) 아니요. [페이지] B-045 [헨리] 그 이유는? [캬스린] (강조해서) 폐하를 명예롭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헨리] 너는 나의 생명의 근원야. [카타리나] 새끼 양이 늑대의 생명의 근원이듯이--- [캬스린] 전 폐하를 명예롭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헨리] (캬스린에게 다가가서) 걱정할 것 없어. 캬스린. [캬스린] 비옵건데 폐하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마십시오. [헨리] 네가 두려워하고 있구나. 난 그걸 네 마음속에서 거두어내야겠다. [캬스린] (전전긍긍해서) 폐하 제 마음을 움직이지 마십시오. [헨리] 뭐라구? [카타리나] 캬스린의 말뜻은 폐하의 육체적인 형상이 마음을 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헨리] (어리벙벙해서) 그럴리가 있나? [캬스린] (유창하게) 그렇습니다. [페이지] B-046 [헨리] (잠깐 멍해져 있다가 곧 다시 자신을 갖고) 얘! 얘야! 플라토가 뭐랬는지 아니? 감각은 본심을 기만하고 있다고 했어. 그건 사실야. 나도 근육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아냐. 나는 이성의 소유자야. [카타리나] 그렇다면 폐하께서 이성의 소유자라는 걸 이때를 이용해 증명해 보시죠. 캬스린으로 하여금 자유의사로 결정짓게 하십시오. [헨리] 그거 좋은 발전이군. 카타리나 난 아직도 당신을 존경해 그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하겠소. 나는 이 흰옷 입은 여왕을 얻는 데 필히 성공하고 말걸. (캬스린에게) 자 캬스린 하워드 충심으로 그대에게 청혼을 하오니 받아주시오. 나에게 결혼선물로 당신에게 바칠 것이 무엇인가를 알어보고 그 선물의 진가를 설명할 기회를 주시오. [카타리나] (앉으면서) 말해보시오. [헨리] (겸손하게) 선물이란 곧 이 세계요. 나는 내 스스로가 훌륭 [페이지] B-047 히 창조해 논 이 세계를 그대에게 바치겠소. [캬스린] (경악해서 십자가를 긋고) 전지전능하신 주여 이 세계는 주님 것이옵니다. [헨리] 주님께선 이 세상을 나에게 유업으로 물려준 것이오. 그 기록은 창세기에도 나와 있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한 늙은 농부가 아들에게 농장을 물려주듯 주님께선 이 세상을 나에게 물려준 것이오. 자 이제 내가 그 땅으로 무엇을 이룩했는가를 들으시오. [카타리나] 말씀하시오. 농부님. [헨리] 내가 유업으로 받은 건 한 줌의 흙과 그 위의 하늘과 아래의 지옥이 전부였소. [카타리나] (생각을 해 본 후 변증신학론을 들어 강력하게 헨리에게 보다 오히려 캬스린에게) 태초에 인간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캬스린] (괴로워하며 주기도문을 외운다. 처음엔 들리고 나중은 다 [페이지] B-048 음 헨리 대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헨리] 아버지의 세계에 내 질서를 세우는 동안엔 천국도 지옥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 그러나 천국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옥도 필요하게 되었고 바로 이때 나는 내 자신 속에서 이 양자를 모두 찾아냈다. 난 양심을 발명했어. [캬스린] --- 그리고 저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멈추고 얼떨떨해서 헨리를 쳐다본다) 양심을 발명하셨어요. 좋아요. [카타리나] 그리고 인간이 가라사대. 빛이 있어라 하심에 빛이 있었더라 [캬스린] 이렇게 써 있죠. 너는 하느님과 같이 될 것이며 선악을 구별하리라. [카타리나] 그건 인간이 멸망하기 전에 뱀이 말한거다. [캬스린] (이상스럽다는듯)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간에게 그 뱀이 던진 말은 오히려 위안이 되겠군요. [헨리] 맞았어. 바로 그거야. (완강하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적혀 [페이지] B-049 있는 모든 것을 인간은 최대한으로 응용하는 거야. 나를 보아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셨던 동안 나는 그를 항상 섬기고 영광되게 했어. [카타리나] (빈경신확론을 주장해서) 이제는 주님이 아니고 한 늙은 농부가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거죠. 어디 그 농부의 얘길 더 들어 봅시다. [캬스린] 무서운 말입니다. (웃는다. 솔직히 이 얘기를 즐겁게 들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신이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죠? 정말 어리석은 이야기군요! [헨리] 신은 나에게 신이 아닌 인간을 구제하라고 명하셨어.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말해두는 거지만 난 인간을 구제했어.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었단 말야. [캬스린] 남자만요. [헨리] 물론 여자도 자유로이 자기의 육신과 생명을 마음대로 처신할 수 있는 거야. [페이지] B-050 [캬스린] (놀래서) 여자도 육신과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구요? [헨리] 물론 그렇구 말구! [캬스린] (솔직하게 결정적으로) 그 말은 상당히 감동적이네요. [카타리나] (더 열을 띠고 전에 보다 훨씬 괴로워하며) 셋째날이 되어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저리 가시오. 여인이어 나는 당신을 원치 않소. 가시오 당신은 자유의 몸이오. 하니 여자가 떠나더라. 그 후 남자가 혼자 말하기를 남자가 혼자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 못되도다. 하여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형상대로 여자를 창조하였더라. [캬스린] 남자가 바라는 형상대로 태어난 여자는 행복할진저. (카타리나 슬프게 고개를 헨리 쪽으로 돌린다. 당황해서) 자유라는 단계에서 당신을 또 다른 업적을 남기셨나요? [헨리] 또 다른 업적이 무엇이냐고? 나는 창조의 신비를 깨트렸어. [페이지] B-051 바로 나의 업적이야. 나는 창조라는 게 한낮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해냈어. 이 세상의 기적도 자연현상이고 천재지변도 자연 현상이고 또한 세상만사가 다 신의 섭리가 아니라 자연현상야. [캬스린] 그럴리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한 줄기 숨결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숨결은 거룩한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그 거룩하다는 말뜻을 아십니까? [카타리나] 맞았어! 캬스린 [헨리] 내가 아는 건 단 하나 난 자연을 이해한다는 거야. 그래 한 늙은 농부가 이 세상을 창조했음이 분명해! 나는 오로지 그 사실을 똑같이 알고 그 세상을 나의 뜻대로 만들거야. 한줌의 흙과 그 위의 단순한 계율을 토대로 나는 크게 일어섰느니라. [캬스린] 당신의 말씀은 훌륭하십니다. [페이지] B-052 [카타리나] 그리하여 농부는 자기 밭의 황소와 암소를 죽이고 말하대 없어져라. 내 밭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너희들의 분노는 이제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밭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줄 너의 젖이 필요없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캬스린] 무서운 말씀이십니다. [헨리] (감동해서)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무서운 말씀이십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냐 결정을 하거라. [캬스린] 훌륭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말씀이십니다. [헨리] 나의 욕망의 형상을 그대로 하고 난 너에게 나는 농장을 바치겠다. 이 농장은 그 나이 많은 농부의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곳. 내 스스로가 그 농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러나 그의 축복을 받으며 창조한 농장이요. 이 농장을 당신에게 바치겠소. [카타리나] (캬스린에게) 저 말을 믿지 말어라. [페이지] B-053 [헨리] 그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그는 침묵으로 나의 창조를 허용했다. [카타리나] 그건 사실입니다. (이 말을 겨우 가까스로 한다) [헨리] (캬스린에게 양양해서) 됐어. 이제 내 말에 긍정을 하는군. [카타리나] (즉각 이 말을 받아 최고의 기세를 올리며) 이레째 되는 날 지구 다른 쪽에서 한 이웃이 와 이르기를 당신은 무척 발전하셨군요. 헨리 농부님 하느님으로부터 당신의 종족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떠나 있다니. 당신이 창조한 농장은 과연 대단하십니다. 단지 타작할 곡식이 없고 경작할 땅이 없을 뿐입니다. 과연 놀라운 농장이십니다. 단지 농부가 없을 뿐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거죠? 헨리 농부님 이웃이 와 이렇게 묻자 당신은 대답이 없더라. 당신은 농장에 서서 한 알의 곡식도 거두지 못하는 채 아사 상태에 임하였더라. [헨리] (어리둥절해서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카타리나를 지나가 캬스 [페이지] B-054 린에게 말한다) 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결코 제발 대답을 하거라. 너는 누구의 말을 믿느냐? 저 여자의 말인가? 나의 말인가? [캬스린] 한 인간으로서 단연 기적을 창조하신 폐하가 우러러 보입니다. (헨리 환성을 올리며 크게 소리친다) 그렇지만 저분이 하신 모든 말씀이 사실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헨리] (이에 대답을 하려 하자) [캬스린] 저 분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은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십는 바입니다. 그러나 폐하의 세계에서는 여자도 자유로이 제 육신과 목숨을 뜻대로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헨리에게) 저는 폐하의 아내가 되고저 합니다. (헨리에게 걸어가 항복의 몸짓을 지으며 매달린다.) [페이지] B-055 [헨리] (캬스린을 품에 안고 행복에 몸을 떨며) 그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감사하옵니다! [카타리나] (방백으로 개인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은 채로) 그리하여 그 이웃은 당신을 당신 아버지로부터 유업으로 받은 땅속에 장사를 지냈더라. 그러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느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막- [페이지] C-001 [막] 3막 (무대 중앙이 높여져 있다. 다른 낮은 면과는 층계로 이어져 있다. 써인트 폴 사원. 헨리 관객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약간 헨리의 동쪽에서 캬스린과 케이트 파아 들어온다.) [헨리] 주여 백성들의 탄원에 귀를 기울이시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자들입니다. 나는 그들의 요구가 순간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염병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혁명이나 전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룩한 시대의 정점에 서서 주님께 아뢰옵기는 이들의 탄원과는 다릅니다. 저는 삼십이년 동안 영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부인들이 차례차례 앞을 지나가듯이 수세기 한 세월이 제 앞을 흘러갔습니다. 우리가 시작한 시대는--- 제 [페이지] C-002 말이 잘못되면 지적해 주소서--- 오 주여 저는 눈 뭉치를 던진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는 눈사태가 일어나는 걸 관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주여! (건강하게 양팔을 들어올린다. 소매깃에 꽂혀진 종이 쪽지를 보고 꺼내어 펼쳐 읽는다) 여왕께서는 울페퍼대신과 지극히 다정한 연분을 맺고 계십니다. 누가 이걸 여기에 집어넣었을까? 대주교? (낄낄 웃으며) 이 늙은 멍충이 같으니! (다정하고 의심을 품지 않은 시선으로 캬스린을 한번 바라본 후 무릎을 바꾸어 앉으며 기도를 계속한다. 아까와 같은 목소리로) 주여 별로 달갑지 않은 사건이 여럿 있습니다. 첫째 지난 세기말에 시작한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새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충분히 품위가 있고 효과적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복자도 하나같이 패배했습니다. 그리고는 경제입니다. 숫자와 사실을 중요시 [페이지] C-003 하는 우리의 학술은 어디에 잘못이 있었던가요? 그 학술은 자연력의 역할을 추정하는 우주의 마지막 다섯 번째 요소처럼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와 물줄기 속에 우리를 혼미시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인간의 시대에 이룩한 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훌륭한 것임은 시인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주여 주님께선 인간으로 하여금 저 높은 길을 가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관대한 처분이었고 개화된 사상이로소이다만은 우리끼리 말씀인데 행여 그 막후엔 神的인 묘한 책략이 있으심이 아니오니까? 아닌 말로 악마가 음모가--- (달래듯이) 농담입니다. 농담 (열렬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세상을 우리가 이렇게 훌륭히 완성시킨 대로 놓아두소서. 지금 이대로 놓아두소서. (협박조로) 아멘 (음악--- 헨리 캬스린을 데리고 후면 좌측으로 가 대주교의 축복을 받듯이 절한다.) [페이지] C-004 [케이트파아] (미리 서 있다가 즉시 앞으로 나온다. 조명 환한 대낮으로 바뀐다.) 아! 아침공기가 신선하고 상쾌하구나! 셋이서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군! 참 괴상한 풍경이었겠구나. 산을 죽였노라고 외치면서도 돈 많은 장인에게 수작을 거는 사위마냥 하느님과 노닥거리는 자기중심적 국왕에다가 공포에 떨며 구세주께 구원을 간청하는 신앙 두터운 왕비 거기다가 너무 많이 공부를 해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된 시녀 이 셋이서 한자리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니 정말 가관이었겠구나. (헨리와 캬스린 앞으로 나와 계단에 앉는다. 헨리 길게 뻗어 캬스린 무릎에 머리를 벤다.) [헨리] 아 번뇌를 나눠가질 하느님이 있고 즐거움을 같이 할 젊은 아내가 있다는 건 굉장한 거구나. 네가 내 청춘을 소생시켜 주어 정말 고맙구나. [캬스린] 폐하께 즐거움을 드리는 게 제 의무입니다. 제가 폐하께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페이지] C-005 [헨리] 그럴리가 있나 다같이 착한 여자가 걱정거리가 되다니--- [캬스린] 저는 착하지 않아요. [헨리] 아냐. 너는 착한 사람야. 내전의 객실은 밤낮 탄원자들로 그득하고 게다가 (다정스레) 당신은 돈 쓰임새가 아주 해프거든. [캬스린] 돈은 정말 모자라요. 헨리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돈이 지금보다 천배나 더 있어도 부족할거에요. [헨리] 군주가 자선을 베푸는 건 왕관의 보석처럼 그를 돋뵈게 하지. 그렇지만 어느 한도 내에서랴야 해. [캬스린] 자선을 베푸는데 어떻게 한도가 있어요. [헨리] 글쎄 너는 너무 착해. [캬스린] (고집스레) 저는 착하지 않다니까요. 저를 괴롭히는 일이 너무 많은 것뿐이어요. [헨리] (그녀의 목소리의 변화에 놀라) 저런 무엇이든 너를 괴롭히는 게 있어서 안되지. 차라리 내 왕관을 전당포에 보내는 게 났지 [페이지] C-006 얼마든지 필요한 대로 회계관에게 말하도록 해. [캬스린]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제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시는지 모르실거에요. [헨리] 그까짓 돈 마구 뿌려라. 그렇지만- (부드럽게) 대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다른 사람 부탁은 좀 생각해 가면서 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외부사람과 접촉도 삼가고. [캬스린] 외부 사람과 접촉이요? (헨리 그녀에게 쪽지를 준다. 캬스린 얼어붙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내어 읽는다.) 여왕께서는 클페퍼 대신과 지극히 다정한 연분을 맺고 계십니다. [헨리] (누운 자세를 변치 않고) 별 생각 할 것 없어. 뻔한 짓들이지 어떤 성직자가 보냈더군. 까짓것 웃어버려. 봐 나는 웃고 있잖아. (웃기 시작한다. 처음엔 가볍게 그러나 캬스린 아무 반응 없이 굳어진 채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의 웃음은 점차 억지웃음이 된다.) 왜 안웃는거야? 내가 웃으랬잖아? [페이지] C-007 [캬스린] (이상스레 확고하게 무엇에 끌린 것처럼) 여왕은 과연 클페퍼대신과 지극히 다정한 연분을 맺고 있습니다. [헨리] 뭐라구? [캬스린] 사실입니다. [헨리] 그만 해. [캬스린] (억지로) 말씀드려야 해요. [헨리] 무얼 말야? [캬스린] 모든 것을 [헨리] 모든 것? (그 한마디에 움츠러들어) 안돼. 내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말아. (꽁무니 빼는 술책으로) 아 알았다. 파아미망인이구나. 그 여자의 그 자유주의니 넌센쓰하며 그래 파아 바로 파아 탓이구나. [캬스린] 케이트는 이 일하고 상관이 없어요. [헨리] 틀림없이 파아 탓이야 파아미망인의 잘못이야. [페이지] C-008 [캬스린] 아니예요! [헨리] 파아를 궁정에서 내보내야 해. [캬스린] 내보낸다고요? 이 뱀의 소굴 안에 오직 한 사람 인간다운 이를! [헨리] 오직! 한사람--- (몹씨 놀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부른다.) 파아 미망인! [케이트] (우측에서 등장) [캬스린] 오 케이트! (흐느끼며 그녀의 팔에 안긴다.) [헨리] (등을 돌리고) 파아 미망인 이제 여왕을 모실 필요가 없소. [캬스린] 케이트는 다만 정직하고 착할 뿐이에요. [케이트] (캬스린을 아직 안고 있다) 폐하께서 저를 내어보내시는건 놀라울 게 없습니다만--- 제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시는 게 놀랍군요. [헨리] (억지로 그녀를 쳐다본다.) [페이지] C-009 [케이트] (자기가 한 말의 효과를 음미하여) 여왕께 신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캬스린 이마에 키쓰하고 천천히 좌측 후면으로 걸어간다) [캬스린] (눈물을 흘리며 운다.) [헨리] (캬스린에게 매달려서) 여왕에게 신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좌측 후면에 조명 아라곤의 카타리나 등장) [케이트] 오 카타리나 어떻게 하면 여왕을 구할 수 있을까. [카타리나] 나도 몰라. 케이트. (케이트를 한 팔로 안고 전면으로 데려가 둘이서 웅크리고 계단에 앉는다.) [케이트] 또 똑같은 거짓말!! 양심 때문에 당신을 추방하고 도덕 때문에 또 한 여자를 단두대에 보내고! [카타리나] --- 현대인이라고 자처하는 그가 구원을 주기 위해 이교도를 학살하고 평화란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자유란 이름으로 백성을 억누르고 개화란 명목으로 자연을 더럽히고 인간성을 파괴하 [페이지] C-010 고--- . [케이트] --- 이 모든 것이 언제나 똑같은 거짓말이야--- [헨리] 여인들이여 시인들이여 성직자들이여 예언자들이여. 마음대로 지껄여대라. 이것이 인류가 출발한 길이다. 그대들은 이제 아무도 이 길을 바꿔둘수 없을 것이며 인간의 기계를 만든 강철을 다시 원래의 광석으로 돌려놀수 없을 것이다. [캬스린] 되돌려놓자는 게 그 사람들의 목적이 아니예요. [헨리] 그럼 뭐야? [캬스린] (즉각적으로 폭발하듯) 오 헨리 당신의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세요? 그들은 고통받고 있으나 당신은 아무 것도 느끼지 않으세요. 당신을 바라다 보고 있어도 당신은 그들을 보지 않으세요. 당신께 말을 해도 당신은 듣고 계시지 않아요. 당신이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 곁을 떠나 멸망해 가고 있어요--- 마치 겨울이 닥쳐온 갈대밭의 백조처럼 말예요. [페이지] C-011 [헨리] (그녀를 바라보며) 그래 그 말이 맞다. 춥다는 건 대단한 이유지.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게 의존할 이유가 없어. 생각하는 것의 결과는 더 생각하게 되는 거야. 발명의 결과는 더 많은 발명을 하는 것 권력의 결과는 더 많은 권력. 여기엔 다른 길이란 없다. [캬스린] 다른 길은 없나요? 세상일이 모두 그렇게 간단명료한 건 아닐텐데요. 종말에 가서 그렇게 단순하게 될 수 있을까요? 혹시나--- [케이트] 나는 한 인간이 스스로 만든 계율에 희생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헨리] 나는 무엇이 너를 괴롭히는지 알고 있어. 너는 밝은 대낮의 무상함을 두려워하고 있어. [캬스린] 저는 어두운 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헨리] 밤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믿어도 좋다. [캬스린] (절망적으로) 폐하를 믿습니다. [케이트] 한 가지 가냘픈 희망이 남아 있어. 두려움이라는 희망. [페이지] C-012 [카타리나] 두려움이--- 희망이 된다고? [케이트] 우주적 파괴에 대한 우주적인 두려움 (케이트와 카타리나 좌측으로 퇴장한다. 조명 다시 헨리와 캬스린에게로) [헨리] 몸을 떨고 있구나. [캬스린] 꼭 안아 주세요. [헨리] 추우냐? [캬스린] 전 앤 볼린처럼 끝을 맺고 싶진 않아요. 폐하께서 자비를 베푸실 걸 약속해 주신다면 전 모든걸 얘길 하겠어요. [헨리] 쉿! 쉿! 아무 말도 하지 말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자비심을 베풀겠다. 조용히! 오늘 이 아름다운 저녁의 평화를 깨뜨리지 마라. 저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의 구름이 보이느냐? 마치 네 몸처럼 새하얗고 굴곡이 져 있구나. 외롭게 홀로 떠가는군. 한없이 넓은 대양을 건너가는 외로운 항해자처럼. [캬스린] (급작스럽게 맑은 목소리로) 제가 받은 노포크생의 교육은 [페이지] C-013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매독스란 이름을 가진 젊은 음악선생이 있었어요. 항상 울적한 선생이었는데 어느날 성악렛쓴을 받는데 갑자기 제 입에 키쓰를 하겠죠. 저는 그 선생을 떠밀어냈어요. 그인 그만 하아프 위로 넘어지고 말았죠. 며칠이 지나자 전 제가 너무 심했었나 하고 그 선생에게 퍽 미안해 했죠--- 그래서 하루는 제 방에 그 선생을 모셨어요. 그 선생은 내가 모르고 있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처음엔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지만 얼마 안가 모두 익숙하게 됐죠. [헨리] (먼데서) 그때 네 나이가 몇 살이었지? [캬스린] 열세 살. (왕의 반응을 기다리다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다시 계속한다) 저희는 곧 사촌들한테 발각이 났고 사촌들도 모두 한몫을 하겠다고 저에게 덤벼들더군요. 그 성에는 시종이며 대신 등 젊은이가 많이 있었어요. 그 중에 쿨페퍼대신이 있었어요. 숙모가 주무시는 틈을 타 우린 재미를 보곤 했죠. [페이지] C-014 [헨리] 재미를 아주 톡톡히 보았겠군. [캬스린] 네 그랬어요. 우린 게임도 만들어 냈죠. 그 중의 하나는 헨리아드라는 것인데 국왕의 결혼 얘기를 엮은 그대로 다시 흉내를 내는 코메디게임이였어요. [헨리] (처음으로 반응을 보여준다) 국왕의 결혼을 그대로 흉내냈단 말이냐? 무대도 없이? [캬스린] 무대는 필요없었죠. 침대면 충분했으니까요. 전 항상 앤 볼린의 역을 맡았어요. [헨리] 그래? 바로 네가 할 역할이다. 네 상대는 누가 했느냐? [캬스린] 왕역은 차례로 맡아했어요. [헨리] 넌 무척 자유로웠구나. [캬스린] 우린 국왕의 가르침을 따랐으니까요. [헨리] 국왕의 가르침이라니? [캬스린] 현대의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폐하의 가르침이었죠. 폐하께서는 [페이지] C-015 한 여자도 역시 한 인간이며 자기의 육신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린 그 교훈을 당장에 받아들인겁니다. (생기 있게) 그렇지만 전 아무나 상대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음악선생 메녹스만을 제외하면 모두 작위가 있는 자들만 받아들였어요. [헨리] 울적한 음악선생! [캬스린] 네. 그 선생은 나중에 우리가 패에 끼어주지 않자 질투심에 불타 그만 숙모에게 모든 걸 불었어요. 숙모는 결국 저를 노포크성에서 멀리 내쫓기로 하셨고, 그래서 저는 카타리나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헨리] (힘이 빠져서) 그 얘기를 왜 모두 나에게 하는 거야? [캬스린] 이제는 제가 돈을 주면서 그들의 입을 막지 않아도 되잖아요. 어렸을 때 저의 놀이친구들은 지금 침묵을 지키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요구하거든요. 이제 폐하가 모든 것을 아셨으나 전 다시 [페이지] C-016 맘껏 숨을 쉬게 됐어요. [헨리] (흐느끼며 몸을 떤다) [캬스린] (헨리에게 매달려 감동이 되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네? 제발 눈물을 거두세요. 지금 폐하의 아내는 충성되고 정직합니다. 이 사실을 기뻐해 주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이외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헨리] (무뚝뚝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캬스린] (조금도 거짓없이) 아무 일도--- [헨리] (통탄하며) 왜 나에게 모두 말을 했어? [캬스린] 폐하께서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헨리]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가 무얼 알고 있었단 말야. 여왕은 쿨페퍼대신과 지극히 다정한 사이라고!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 이유 때문으로 넌 모든 얘기를 좔좔 쏟아놔야 했단 말이야! 이 천진한 바보야! [캬스린] 폐하가 알고 계셨든 모르고 계셨든 전 모든걸 고백한 것이 너무 [페이지] C-017 기쁩니다. [헨리] 아 만일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양심을 어둡게 하는 그림자를 모두 털어놓았다면 사람들은 벌써 전에 서로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 이 세상에 남게 되었겠지. 인류는 거짓 때문에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거야. [캬스린] 폐하는 어차피 사실을 밝혀내셨을꺼에요. [헨리] 만일에 어떤 자라도 너의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자가 있었으면 난 그놈의 목을 잘라버렸을 것이다. 이제 나는 너의 목을 잘라버릴 수밖에 없구나. [캬스린] 안돼요! [헨리] (슬프게) 도리가 없다. [캬스린] 폐하께서 차마 그러시지 못할걸요. [헨리] 아냐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걸. [페이지] C-018 [캬스린] 저는 폐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고백했습니다. (폐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해 주십시오. 헨리 모두 잘 될꺼에요. 이 순간까지 우리가 둘이서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저는 지간 이년 동안 당신에게 젊음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헨리] 이분 동안에 넌 나를 늙게 만들었어. [캬스린] 그건 제가 얼마든 회복해 드리죠. 저를 한번만 바라보세요. 곧 당신 얼굴에 생기가 돌걸요. [헨리] 넌 감히 어떻게 내 청혼을 받아들였느냐? [캬스린] 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헨리] 결국 넌 수락하지 않았느냐? 이유는? [캬스린] 복종파--- 동정 [헨리] 동정? [캬스린] 이제 저를 동정해 주십시오! [페이지] C-019 [헨리] 네가 나와 결혼한 이유가 나를 동정해서라구! [캬스린] 그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요? [헨리] (얻어맞은 듯) 나는 헨리 튜터 나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내 장엄한 일생은 당대 모든 사람들이 숭상의 대상이야. 나의 정신은 불멸의 정신 도대체 내가 누구의 동정이 필요하단 말이냐? [캬스린] 카타리나 왕비가 예언하신 그 모든 불행한 사건들이 폐하에게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헨리] 불행한 사건? [캬스린] 그건 저에게 충격을 주었죠. 그 얘긴 폐하께 벌써 말씀드렸을 거예요. 폐하를 바라다 보고 있노라면--- 마치 뒤집혀진 풍덩이마냥 좌충우돌하시는 폼이라니 어떤 여잔들 동정심이 우러나지 않겠어요. [헨리] 너는 수녀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본색은 탕녀였구나. 도대체 왜 놀아난걸 숨겼었느냐? [캬스린] 폐하께서도 잘한다 하시고선. [페이지] C-020 [헨리] 내가 잘한다고 했어? [캬스린]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여자도 제 육신을 제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헨리]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 [캬스린] 네 이젠 알겠어요. 폐하의 말씀은 항상 폐하가 뜻하시는 대로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폐하가 누굴 원하실 때엔 여자도 제 육신을 제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 법이고 폐하가 일단 그 여자를 차지하고 나면 여자란 절대 그럴 법이 없는 것이죠. [헨리] (잠깐 당혹해서) 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너의 남편으로서도 아니고 철학가로서도 아니라 최고의 재판관으로서야 남편의 입장으로는 너를 용서하고 철학가의 입장으로도 너를 방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재판관의 입장으로는 국왕의 잠자리를 더럽힌 이유로 너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을 수 없구나. [페이지] C-021 [캬스린] 폐하의 잠자리를 더럽혔다구요? 하 어떤 여잔들 그럴 재주는 없을걸요. 그러시다면 폐하가 잠자리에서 얼마나 끔찍스런가 아셔두는 게 좋겠어요. 그 서투른 솜씨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나마 안되기가 일쑤잖아요. [헨리] (그녀의 악담에 돌려 뒤로 물러섰다 놀랍게도 빨리 자세를 가다듬고) 쉿 쉿 쉿 그 황홀한 순간들을 일깨우지마라. 너는 정말 사랑스럽고 음란하고 예술도 좋았단 말야. 어쩐지 좀 수상쩍다 했더니만. 나는 살아있는 네가 필요해. (그녀 앞에 무릎꿇고) 캬스린 제발 부탁이니 내 옆에 남아주오. 어떻게 하면 네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제발 가르쳐다오. 내 이렇게 빈다. [캬스린] (낯선 사람에게서처럼 냉정히) 불가능하단 걸 알고 계시잖아요. 전 한때 너무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이젠 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할 수도 없고요. 마치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아요. (손으로 목을 가르킨다.) [페이지] C-022 [헨리] (음산하게) 네 목의 어느 부분말야? [캬스린] (제 목을 쥔 채 헨리의 말뜻을 알아듣고 기절해 넘어진다) (조명 꺼진다.) (조명 들어온다) (전의 장면에 나왔듯이 높여진 플랫폼 위스트민스터 사원의 한 방 계단 위엔 깊고 묵직한 안락의자가 있다.) [케이트] (등장한다) 하루는 국왕께서 의회에 나타나 선언하시기를 다섯째 부인과의 슬픈 경험으로 해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결심이라 하셨습니다. 행여 국민의 이익을 위해 마음이 흔들려 또 혼인을 할 경우 그때에 가서 누구든 신부가 부정함을 알고도 침묵을 지키는 자는 반역죄로 다스리겠단 취지였지요. 그리고 겨우 넉주일이 지나자 런던 시내의 모든 종들이 다시 한번 울렸습니다. 국왕께서 결혼하신 겁니다. 다시는 왕비의 부정으로 상심하지 않도록 재삼 안심키 위해 아예 과부를 골랐지요. 국왕께선 (깔깔 [페이지] C-023 웃으며) 바로 저와 결혼하셨습니다. [헨리] (우측으로부터 신경통으로 쩔뚝거리며 등장한다.) [케이트] 네 그렇습니다. 그 유명한 혁신자께서도 이제 늙으셨습니다. 이 영원한 신랑께서 이번에 아내를 맞아들인 건--- 자기 약수발을 들게 할 목적이었죠. 그게 바로 결혼 후 제가 죽 해온 일이였구요. 제법 성공적으로 말입니다. (그녀는 헨리를 포옹 키스한다. 헨리 만족스런 모습 케이트 관객을 향해 계속한다.) 다만 폐하가 지난 세기에 이룬 업적을 갖고 장황스레 풍을 떠실 땐--- 그런데 저는 또 저 나름으로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럴 땐 폐하께서 불같이 화를 내시곤 하지만--- [헨리] (전혀 엉뚱하게) 오 케이트 당신은 참 좋은 아내야. 너무 선생 냄새를 풍겨서 탈이지만--- . [케이트] 저는 그러니까 생각을 너무 숨길 줄 모르는 모양이죠? [헨리] (이마를 찌푸린다.) [페이지] C-024 [케이트] (그에게 약병을 주는 것처럼) 자 약 잡수세요. [헨리] (받아드는 것처럼 그리곤 그녀에게 약올려주려고) 그래 약만 해도 그렇지 지난 일세기 동안 인류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냔 말야. (협박조로) 안 그래? [케이트] (진심으로) 괄목할 만하죠. [헨리] 그 왜 불란서 병말야. 우리 선남선녀를 얼마나 괴롭혔어. 침대 위에 매달린 칼자루, 육체에 박힌 가시, 그런데 오늘날은 어때? 사라졌어 연구를 거듭한 나머지 완쾌가 가능하게 되었잖아. 다시금 연인들은 의심도 걱정도 할 필요없이 서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되었지 마치 토머의 시대처럼. [케이트] 대신 그 보다 훨씬 더 살인적이고 불명예스런 증상이 생겨났죠. [헨리] 뭐라고? [케이트] 방금 말씀드린 대로예요. [헨리]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도대체 하루라도 내가 너무 화 [페이지] C-025 가 나서 전신이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올 지경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될까. 내가 입만 뻥긋하면 제가 더 잘 안다고 나서는 소리 좀 안듣고 살 수 있다면--- (격노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재치와 기교로 인간이 이 세상을 창조한다--- 그런데 일곱 번째날 여자가 나타나 이건 다 쓸데없는 짓이고 한낱 허망한 실수라는 걸 증명한다. (케이트에 독스럽게) 허망한 실수라구 엉! 어째서 그래! 여자란 모두 새대가리야. 너희들은 그저 황홀한 고깃덩이지. 그렇지만 내 이것만은 예고해 둔다. 어느 날이고 너의 그 사사건건 반대하고 나서는 혓바닥을 재교육 시켜놓지 않으면 우리의 결혼생활은 느닷없이 지극히 끔찍스레 끝나버릴 거야. 내가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갑자기 나는 홀아비가 될 거다.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뻣뻣해져서) 케이트, 케이트 [페이지] C-026 [케이트] 어머나 웬일이세요. 진짜로 심장이 어떻게 된 거예요? [헨리] (입술을 악물고 다리를 가리키며) [케이트] 다리예요--- 안심해요. 다리가 열 번 아파도 심장 한 번 앓는 것보다야 훨씬 낫죠. (바지를 말아 올리며) 아픈 다리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 시원하실거에요. 다음엔 종기가 난곳을 치료해 드리겠어요. (다리를 치료한다) 네 됐어요. 인생 벌써 다시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는군요. [헨리] (씁쓸하게 이를 부정하듯 고개를 흔든다.) [케이트] 아무렇지 않은거에요. 괴혈증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생기는 증상이죠. 그것만을 잊지마세요. 어쨌든 그 이유는 폐하께서도 아시잖아요. 일생 동안 폐하가 잡수신 그 숫한 돼지떼를 생각하시고 한입 한입 얼마나 맛있게 잡수셨는가를 통증 대신에 생각하세요. [헨리] (감상적이 되어) 오, 케이트! 당신은 훌륭한 여자야. 키스해 [페이지] C-027 [케이트] 자요! (키스한다.) [헨리] 당신은 훌륭한 아내요. [케이트] (한숨을 쉬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헨리] 허지만 당신이 개화에 반대하는 나이 많은 낡은 선생이라는 건 비극이오. [케이트] (다리를 가리키며) 좀 나으세요? [헨리] (병적으로) 아냐 우린 발전했어. 믿을 수 없는 발전야. 천오백년에는 인간의 수명은 서른한 살이었지만 이제는 쉰아홉 살야. [케이트] (손으로 제스츄어를 쓴다) 오! [헨리] 이봐! 이건 정확한 숫자야. [케이트] 저는 숫자를 믿지 않습니다. [헨리] 뭐라구? [케이트] 숫자가 진실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헨리] 당신은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소? [케이트]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죠. 그러나--- [헨리] 이유를 듣고 싶소. [페이지] C-028 [케이트] 예를 들자면 역사에서 폐하를 말할 때는 여섯 명의 부인을 거느린 자로 얘기할 것입니다. 그것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폐하에겐 단 한 명의 부인도 없었다는 게 진실입니다. (헨리 으르렁거린다. 케이트 달랜다) 전 그저 예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헨리] (축복을 받는 듯) 조용해! (다리에 관해서) 됐어. 이제 아픈 건 사라졌어. 오 축복이여! 내 피부 밑에 축복이 내리는구나. [케이트]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이제 폐하는 다시 다리를 쭉 펴실 수 있습니다. [헨리] 나를 껴안아다오. 케이트. 나를 사랑해다오. [케이트] (헨리의 품 속에서 충동이 되어) 도대체 어떤 여자든 폐하를 사랑하게 되고야 마는 건 무슨 이유죠? 폐하는 정말 괴물이군요. [헨리] 이유는 간단해. 나는 강하고 순수하거든. 사람들은 이걸 알고 여자들도 이걸 쉽사리 알아채거든. 결국 이 세상에 영원한 [페이지] C-029 평화를 가져올 휴메니즘의 정신이 내 머리 속에 뿌리박고 있음을 알고 모두 나를 존경하는 거야. [케이트] 아 그만하세요. 정치 얘긴 그만. [헨리] 난 평화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어. [케이트] 평화라는 말이 귀에 들리면 눈앞엔 전쟁이 보입니다. [헨리] 나는 두 번 있었던 세계대전에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두 대전은 마지막 전쟁이었소. [케이트] 대전을 겪은 얘기를 당신은 마치 두차례 병을 치르고 살아남은 환자처럼 쉽게 말하시네요. 오늘날 인류는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제삼차 대전을 기다리며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헨리] 걱정마오. 케이트. 제삼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케이트] 확실합니까? [헨리] 절대적으로! [페이지] C-030 [케이트] 그렇지만 최근에 자칫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뻔했던 사건이 있었죠. 아시아의 한쪽 끝을 차지하기 위해 한 유명한 총사령관은 최후의 무기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헨리] 그러나 대통령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거든.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케이트] 그러니까 실상 인류의 역사는 한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있군요. [헨리] (상냥하게 우월감을 느끼며) 아냐 이봐! 교수님 나한테서 좀 배우시지. 왕도 대통령도 전쟁이냐 평화냐는 결정을 짓지 못해. [케이트] 그럼 누가? [헨리] 계산기야 전자두뇌 그런게 생겼소. 케이트 이 세계는 숫자와 사실의 세계야. 반응을 계산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참으로 놀라운 메카니즘을 사용하신 거야. [케이트] (혼잣말로) 그러나 그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인간 때문에 평화를 얻는 게 아니고 기계의 덕분으로 평화를 얻게 되는군요. [페이지] C-031 [헨리] 우린 둘 다 정치에 관한 얘긴 싫어하지 않소. [케이트] 저는 인간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호전적으로) 만일 인류가 무장한 두패로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진 무장한 두 패의 인류가 이성을 무상으로 하는 기념으로 다스려지고 있다면 활짝 개화된 이 문명 속에 인간이 남아 있을 곳은 어디죠? [헨리]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오. 동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시오. [케이트] 동양이나 서양이나 제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현대의 정신이요. 동서양은 한 나무에서 뻗은 두 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헨리]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람은 한낱 숫자에 불과하오. [케이트]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숫자 이상이 될 수도 있죠. 그걸 막을 도리가 있을까요? 계산기요? 저는 한낱 어리석은 여자예요. 그렇지만 이건 알고 있어요. 미래는 동서양의 발전의 원기틀이 되고 있는 정신을 정복하는 자의 손에 달려 있소. 이들은 동 [페이지] C-032 서양 양쪽 어느 곳에서는 배출될 가능성이 똑같이 있어요. 그 정신이란 곧 계산이 축복이라는 신념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헨리]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거요? [케이트] 계산기는 인류의 양심으로--- 곧 폐하가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헨리] (악랄하게) 뭣이라구? 어떻게? [케이트] 왜냐면 폐하께서는 양심을 계산기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헨리 순간 빳빳이 굳어 버린다. 그리곤 곧 위협조로 접근한다) [케이트] 승낙해 주시옵소서 폐하. 저는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헨리] (크게 숨을 몰아쉬고) 좋아! 나도 시간이 필요해. 나는 당신을 괴롭히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는데 골똘해 있어. 주님께선 과연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남겨주셨을까? 이리 와 케이트 (품에 안으며 키스하다) 나를 변화시키려고 애쓸 건 없어. 그렇지만 당신도 당신대로 남아 있으시오. [클리브스의 안나] (우측 전면에 등장) [페이지] C-033 [헨리] 자- 가서 방문객을 맞지. 내가 아는 남자인가? [케이트] 네! (악의 있게) 잠깐 동안 알았던 사람이죠. [헨리] (등을 치며 케이트를 놓아준다. 그리곤 뚫어져라 케이트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퇴장한다.) [케이트] (다정하게) 클리브스의 안나! (안나 무릎 굽혀 절한다. 케이트 안나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남편의 옛부인을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안나에게 의자를 권한다. 기계적으로 안나 앉는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케이트를 본다.) 그 먼데서 여기까지 오다니 고마워요! 근데 왜 말을 안 하죠? [클리브스의 안나] 제가 말을 잃은 것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여왕이 너무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케이트] 폐하께서는 아직 내 얼굴이 새겨진 금화를 만들라는 명이 없으셨으니까--- [클리브스의 안나] 제 경험에 의하면 그건 소용이 없습니다. 아 용서하십시오. [페이지] C-034 전 너무 솔직해서--- [케이트] 좋아요. [클리브스의 안나] 폐하께선 어떠신지요? [케이트] 괴혈로 앓으시다가 이번엔 심장으로--- [클리브스의 안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마누라를 서넛은 더 거느릴걸요. (케이트 즐겁게 웃는 것처럼) 오!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전 여길 왔습니다. 저는 여왕님께 경고를 할 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케이트] 경고? [클리브스의 안나] 즉시 도피하지 않으시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케이트] 뭐라구? [클리브스의 안나] 저는 저의 오빠인 클리브스공작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여왕을 알현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오빠는 음악을 좋아하고 꾸밈없는 사람으로 아주 인상적이고 아직 [페이지] C-035 도 기능이 활발하십니다. [케이트] 그런데 왜? 내가 도망을 가야 하지? [클리브스의 안나] 아직도 제 말뜻을 못 알아들으셨나 본데 그럼 대놓고 얘기하죠. 잘 아시겠지만 전 이 세상 끝 한쪽 구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고 있는 숲 속에서 두 마일만 가면 노포크성곽이 있습니다. 캬스린!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추문이에요. 숙모의 보호 밑에서 얼마나 잘 놀아났는가는 돼지떼들 가운데에서도 파다하죠. (케이트가 말하려 하자) 아 오해하지 마세요. 서모 여왕께서 하신 일이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다. 청춘을 뜻있게 보낸 여왕을 저는 부러워합니다. 그렇지만 왕이 아는 날에는--- 생명을 건지십시오--- 클리브스로 도망가세요.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페이지] C-036 [케이트] (웃으면서) 모두 다 알고 있다고 마치 헨리의 말 같구나. 안나, 당신의 말뜻은 중대하오. 그러나 당신의 얘긴 틀렸소.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빠뜨렸소. 폐하도 가끔 그러지요. 당신의 잘못은 사람을 잘못 본데 있어요. 당신이 경고를 하려던 사람은 캬스린 하워드 이미 단두대에서 숨을 거두었소. [클리브스의 안나] (크게 놀라서) 설마! [케이트] 그 감탄사까지 폐하와 같구려. 당신은 정말 폐하의 여동생 자격이 있어요. [클리브스의 안나] 그럼 여왕님은 캬스린 다음입니까?--- 그것을 첫눈에 알아채지 못했다니 내 코가 어디가 잘못됐군. [케이트] 아무튼 선의로 용감히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소. 여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돕고 살아가는 건 절대 필요하고--- [클리브스의 안나] 그럼 제가 결국 여왕을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나요? [페이지] C-037 여왕께서도 과거가 있나요. [클리브스의 안나] 아아하--- [케이트] 나는 폐하가 알고 있듯이 한번 결혼해서 미망인이 된 거 아니라 두 차례나 미망인이 되었다오. [클리브스의 안나] 오--- 아주 좋은 과거를 가지셨군요. 훌륭하십니다. 축하합니다. 저도 지금은 죽었지만 아주 튼튼한 기사를 두 분 모셨었죠. 주여--- 그들을 평안케 해 주소서. --- 아니죠. 아무도 저와 끝까지 겨눌 자는 없었어요. 폐하를 제외하고는 그분은 힘세고 현명하고 선량하고 (꿈을 꾸듯) 그리고 잔인했죠. [헨리] (무대 뒤에서) 케이트, 케이트! [케이트] (놀라서) 맙소사! (좌측으로 급히 간다. 안나 퇴장하는데 조명 바뀐다.) [헨리] (등장한다. 마치 꿈 속을 걷듯) 케이트, 케이트! [페이지] D-038 [케이트] 다리입니까? [헨리] 이번엔 심장야. [케이트] (위로하듯) 설마! (의자로 헨리를 안내한다.) [헨리]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부인하면 안돼! (앉아서) 그래! 나도 죽고 말거라는 생각을 누군들 꿈에라도 생각했을건가. (가볍게 웃으며) 하! 내가 자신을 알게 되는 방법이리니! 이에 대항해서 미리 투쟁을 벌렸어야 할 것을 난 죽을 시간이 없어. 난 필요불가결한 인간야. 그렇지만 반대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쭈그러들어 퇴색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이것이 문제는 아냐! 난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난 알고 있어. 케이트! 너는 왜 나를 반박하지 않느냐. [케이트] (침을 꿀꺽 삼키며) 저도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페이지] C-039 [헨리] 드디어 너의 문제와 나의 문제가 합치를 보았구나. 자 어서 가서 불러오오. [케이트] 의사를! [헨리] 의사가 무슨 필요가 있소. 앵글리칸의 대주교도 카토릭의 신부도 필요 없소. 내 아내를 불러 주시오. 미안하오. 내말은--- [케이트] (즐겁게) 걱정 마십시오. 곧 들어오실 것입니다. [헨리] 고맙소! (흥분해서) 그러나 지금은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게 하고 사람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미리 알려 주는 게 필요하오! 자- 받아쓰시오. 내가 부르는 걸 받아쓰시오. [케이트] (웅크리고 앉아 쓰는 흉내를 낸다. 그러나 쓰는 건 아니다.) [헨리] (불안정하게 조마조마한 몸짓으로 서성거리며--- 그러나 분명하게 주계를 내세워 읽는다!) 지식은 힘이다. 이 새로운 신앙을 굳게 보전하라. 네가 발견하는 것을 정복하라. 우주는 [페이지] C-040 발견되었다. 줄을 바꾸어 새 패라그라프! 지구상에는 이제 아무런 이득이 없다. 지구는 단지 기치로써 존재한다. 따라서 지구상의 알력은 한낱 우스꽝스러운 것. 양측에 똑같이 해당되는 이 이상의 근거지 위에서는 통일을 이룩하라. 명제를 인생의 철학으로 통계를 도독으로 삼고 지구 위에 평화를 찾으라. 줄을 바꾸고 눈을 떠 별을 쳐다보고 그들을 식민지화하라. 과연 인간의 원죄가 다른 위성에 살고 있는 자에도 해당이 되는가 하는 신학적인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렇다면 선교사들을 강화하고 로케트를 많이 준비하라. 할 일은 많이 있다. 먼저 계획을 세우라. 첫째 인간이 탐험해서 이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성만을 목표로 삼고, 둘째 위성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다음 은하수에 질서를 찾으라. 다음 남아 있는 다른 성군을 표준화하라. 줄을 바꾸고 또 무엇이 있지? 아, 그래 신을 잊지 마 [페이지] C-041 라. (일어선다) (케이트 이를 막으려 한다.) 신을 기억하라. (엄숙하게 분명한 동작으로 급히 왔다갔다 하며) 형제들이여! 이 하늘 위 어디엔가는 한 아버지가 살고 계시다. 주를 찾으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프로젝트다. 총궐기하여 주를 찾는 일에 힘을 쓰라. 그리하여 주를 찾으면 (혼잣말로) 그러면? (호령하듯) 주님을 아주 점잖게 실수 없이 대하고 우정을 가지고 요령 있게 기독교인답게 주님을 대접하라. (이제 헨리는 플랫홈 위에 서 있다.) 기억하라. 주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의 지식으로 주님의 말 없는 세계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됨은 곧 주의 뜻이니라. 케이트! 어지러워!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린다.) 케이트! 어디 있어! 보이지가 않는구나! [케이트] (좌측에서 들어오는 카타리나를 보고 있다.) [페이지] C-042 [카타리나] (일막에서와 같은 위치에서 조용히) 제가 보입니까? 폐하. [헨리] (팔은 벌린 채 얌전스레) 그래 당신이 보여. 내 아내고 내 양심인 당신이--- [카타리나] 지난날 당신에게 지금처럼 서서 지금처럼 말씀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시각까지는 제가 당신의 아내고 양심이었죠. [케이트] 폐하는 헛소리를 하고 계셔요. [카타리나] 아니 폐하는 그때 시작했던 생각의 결론을 지금 얻으신 거야. (두 여자 중앙의 의자로 헨리를 인도하여 편안히 모신다.) [헨리] (노쇠한 목소리로) 우리가 수행한 바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지. [카타리나] 폐하가 아니었다면 결코 인류에게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헨리]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 땅을 정복했지. [카타리나] 폐하께서는 정복하시긴 했죠만 하느님의 말씀대로는 아니에요. [페이지] C-043 폐하는 천지창조를 자연 현상으로 보십니다. 폐하시대의 센스와 넌센스가 바로 이 점에 있는 거죠. [헨리] 넌센스라고? [카타리나] 결과를 보세요. 인간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보세요. [헨리] 그래 어떤 상태야? [카타리나] 폐하와 같은 처지죠. 지고의 신보다 높은 존재이지만 구렁창에 빠져 뒹굴고 있죠. 폐하는 조물주를 배반함으로써 피조물도 배반하셨어요. 신을 없이 함으로써 인간도 없애버리셨어요. [헨리] (게으르게)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카타리나] 오늘 무슨 일이 나지 않는 한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이룬 인류는 내일 멸망할 것입니다. [케이트] 어쩌면 이미 멸망한 건지도 몰라요. 어떤 위대한 물리학자에 의하면 우주란 것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대담스런 개 [페이지] C-044 념이래요. [헨리] (잠시 놀랐다가) 별스런 이론도 다 많다. 내일은 또 다른 이론이 나올걸. [카타리나] (잠시 침묵 후) 아니예요. 헨리. 과학의 최종적 방정식은 가장 오랜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이콜이 되는 겁니다.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당신의 진로의 종착점. 그 최후의 발견은 신의 발견입니다. 그리고 헨리 튜터. 이것이 현대라는 시대의 종말입니다. [헨리] (교활하게) 자 이제 알겠소? 카타리나 이젠 말이 되는군. 현대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끝나는 것이야.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케이트 퇴장한다.) 죽기 전에 고해를 해야 될 것 같아서--- [페이지] C-045 [카타리나] 네, 알아요. [헨리] 그런데 무엇을 고해하지? [카타리나] 단 한번만이라도 소위 당신이 말하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솔직해지십시오. [헨리] 나는 솔직해. 완전무결하게 정직해질걸. 그러면 주님께선 나에게 영생을 몇 갑절로 더 주실거야. [카타리나] 헨리! 마지막 순간까지 거래를 하시는군요. [헨리] (용감하게) 그럼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말해 봐! [카타리나] 당신의 위를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조물주를 의식하십시오. [헨리] 그렇지만 나의 무리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하지? [카타리나] 똑같은 말 주님을 의식하라고! [헨리] 조물주를 알아보지 못할텐데 그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아냐, 카타리나 그 얘긴 당신이 하도 [페이지] C-046 록 하지. (웃으면서) 사람은 한번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법. 내가 물려준 이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될지는 당신의 손에 달려 있소. 나를 이제 평화롭게 해주오! 내 착한 부인들! 내가 사라지면 누가 너희들을 돌본단 말이냐. 이 어려운 때에 누가 아 우리 모두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함을 서러워하자. (헨리에게 조명 사라진다. 카타리나 혼자 남아 있다. 케이트는 무릎꿇고 있다. 이 동안 양쪽에서 다른 아내들 들어온다.) [카타리나] 여기 한낱 연약한 육체로 태어나 최고의 이성을 목표로 삼고 평생을 지나다가 스스로 이룬 권력에 자기가 짓눌려간 한 인간이 잠들었도다. 행인들이여! 이분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시오--- 그리고 자 부인네들이여! 일어서 눈물을 거둡시다. [페이지] C-047 [크리브스의 안나] (성급해서) 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생전에도 우리를 실컨 울렸으니까요. 그분과 지낸 한때를 즐거운 추억으로 삼고 어서 빨리 유산이나 나눕시다. [카타리나] 그래요. 유산을 받아야죠. 그분이 세운 시대의 보물이니까요. 케이트,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케이트] 폐하께서는 유산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놓으셨습니다. [크리브스의 안나] (굶주린 시늉으로) 첫째것이 무엇이죠? [케이트] 양심! [크리브스의 안나] (놀라서 뒤로. 사람들 제자리에서!) [케이트] 자기의 양떼를 인도한 그분의 양심이지요. [카타리나] (미소지으며) 폐하가 양치기였단 말이요? [제인쎄이모어] (무겁게) 양치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동산으로부터 양떼를 몰아 낸 양치기의 개인 셈이죠. 아무튼 그분의 양심은 제가 갖겠 [페이지] C-048 어요. [케이트] 다음은 황금! [크리브의 안나] (재빨리) 아 그거라면 제가 기꺼이 덜어드리죠. [케이트] (미소짓는다) 다음은 사랑! [캬스린] 그건 제가 갖고 싶어요. [앤볼린] (조심스레) 사랑이 뭔줄이나 알아요? 그건 당연히 제가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캬스린] 오 앤 볼린!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분이 무엇인들 안 하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나를 위해선 뭘 해주었죠? 그저 공포와 혐오감을 주었을 뿐이죠. [앤볼린]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캬스린] 그 음탕스런 늙은이를? [앤볼린] 그분은 젊고 잘 생기고 억센 사나이!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페이지] C-049 [캬스린] (잠시 망설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당신거군요. [앤볼린] (캬스린의 몸짓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케이트] 폐하의 자유! [캬스린] (입술을 깨물며) 그렇죠. 폐하의 자유, 그게 바로 내 몫이군요. [케이트] 다음엔 새로운 지식! [카타리나] 그건 당신이 가져야 해요. [케이트] 비록 나는 지식의 포로였어도? [카타리나] 그러나 당신은 그걸 극복해 냈어요. [케이트] 마지막으로 그분의 정신이 남았군요. [카타리나] 그가 타고난 정신을 아셨어요. 타고난 정신이 아니옵고 스스로 이룩하신 정신이었습니다. (천천히 조명 여자들에게서 사라지고 카타리나에게만 남는다) 영원한 불만 속에서 끝까지 더한 경험을 얻고자 몸부림치며 오직 황금과 국가와 권력만을 추구한 [페이지] C-050 정신이었죠. 그것은 강력하고 부단한 한 힘찬 시대의 물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시대의 종말이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시작될 것입니다. 이 시대는 전혀 별개의 시대로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이러한 시대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카타리나에게서 조명 없어진다.) -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