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를 스물 아홉살에 한 이유는 이십대 청춘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십대 시절의 순수하고 풋풋한 청춘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절에서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속세에 대한 추억이 지금 이곳의 지옥을 견디게 하니까. 풋풋했던 청춘시절의 빛나던 세계는 힘들고 고독한 사찰 안에서 또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절에서 신도교육을 도맡아서 하다가 법당으로 소임이 변경됐다. 신도교육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찰 내에서 신도교육을 하는 불교대학에 속했던 나는 분위기가 심창찮은 걸 눈치챘다.
前 주지스님과 現 주지스님의 교체가 이뤄지는 껄끄러운 분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기우였다. 촉이 남들보다 발달했다는 망상은 집어치웠어야 했는데······.
가사가 발에 밟혀 갈기갈기 찢어지는 꿈을 꾼 날, 불교대학 교무 소임에서 법당으로 교체가 됐다.
새로 맡은 법당 소임은 육체적 활동이 전에 비해 많았다. 고생길이 훤해졌다. 컴퓨터 행정업무만 맡아서 하면 됐던 일이 법당 관리, 예불 그리고 제사까지 해야 했다.
갑자기 일이 많아졌다. 법당소임은 정해진 시간과 순서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놓쳤을 시 대중참회로 각 채를 돌며 잘못을 고告해야 했다. 첫 달은 그날그날 재사 일정을 확인하고
해당 재사 영가의 이름이 맞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추가되는 경우 파일에 끼어넣어야 했다. 세 번정도 영가 위패를 잘못 올리는 실수가 있은 후 겨우 겨우 일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배가불렀다고 할 법했다. 단지 신도교육이 하기 싫다고 법당소임을 내뺐으니 고생 실컷 해도 싸다고. 심지어 내가 맡은 노전 소임은 사찰 내에서 가장 빡세기로 유명한 소임이었다.
한달에 대략 재사가 50개 이상이며 그러면서 아침 시시 그리고 저녁예불까지 해야했으니 말이다. 나의 전소임자가 3년기도를 회향하고 그만둬 다음 내정자가 없던터에 내가 급히 꽂혔다고 했다. 일이 빡세다 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자원자가 없었다는 후문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법당에 법당보살인 반야행의 감시아닌 감시까지 감내해야 했으니
당시 나의 마음은 너덜너덜이였다.
반야행은 사찰에 다닌지 십년이상 아니 그보다 더 된 법당의 터줏대감이었다. 나 또한 출가한지 십년정도 되었던 터라 동질감이 느껴졌다.
첫 만남에서 뭣도 모르고 예불에 올릴 청수 주전자를 가지고 내려와서 법당에 난리가 났었다. "스님 사시예불 때 청수준비는 제가하니 신경안쓰셔도 됩니다."
"아, 죄송해요. 보살님."
"스님은 아침 저녁에만 청수준비하시면 됩니다." "네 그럴께요."
그녀는 역할 침해 받는것을 극히 불편해 했다. 법당 생활이 그녀 입을 통해 주지스님한테로 전달되고 있다는걸 모르기 어려웠다. 법당 안에 있는 CCTV와 인간 감시를 받다보니 숨이 턱턱막힐 정도로 슬퍼지곤 했다. 슬퍼지면 왕왕 글을 썼다. 글을 쓰면 우울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글에서 나는 분노대상을 응징하기도 참지 않아도 다 괜찮았다. 마치 노트가 이렇게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너 하고싶은 거 다해 내가 지켜줄거야." 그럴때면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에 벅차올랐다. 출가를 하면서 해탈 열반을 이뤄야지 하고 거창한 꿈을 꾸었던 시절은 온데 간데 없이 寺내 정치질에 휘말리는 신세라니. 한심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참는게 절이므로 여기서 살려면 글쓰기로 펼쳐놓은 자유 세계로 조용히 도망쳤다. 글쓰기라도 찾아서 나는 좋았다. 1667자
첫댓글 정주님 글은 항상 후루룩 읽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寺내 정치질이라니... 뭔가 웃픈 상황이지만, 그래도 글쓰기라는 위안을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절에서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줄 몰랐어요.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신도 교육이 왜 하기 싫으셨는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약간 불교 용어에 대한 설명(ex. 반야행, 노전 소임)이 조금 더 있으면 읽기 편할 것 같습니다~
정주님 글이 꾸밈없고 위트가 느껴져서 재미있어요. 스님들에게도 정치가 있군요. 사람사는 세상이니까요. 앞으로도 정주님의 글이 기대가 됩니다.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불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고, 스님을 가까이 뵙는 것도 처음이어서 정주님 글이 늘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몰랐던 사내정치 이야기도 그렇고요! 다만 불교용어들을 좀 더 풀어써 주시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음 글도 기대되어요! 잘 읽었습니다.
정주님 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종교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 정주님의 글이 많이 공감이 되고 흥미롭게 다가오네요.
겉에서 보는 불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여유롭게 보였는데, 교회 목회자들과 비슷하게 할 일이 많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제목이 참 재밌어요. 정주님은 정주님만의 유머코드가 글에 생생히 녹아드는 것 같아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글이 깔끔하고 전달되는 바도 좋은데, 그것이 재미가 됐건 성찰이 됐건 단단한 문제의식으로는 확장되는 부분이 없어 글이 조금은 빈 인상이 듭니다. 나에게 글쓰기가 주는 자유세계란 무엇인지 정주님만의 식견과 관점, 성찰이 들어가면 문제의식이 확장될 것 같아요.
스님의 일 이야기라니, 너무 흥미롭네요. 보통 출가한다고 하면 일과 구속에서 벗어나는 걸 떠올리는데 사찰 안에서도 작동하는 인간적인 요소가 엄청 많군요. 약간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기도 합니다만... 하루하루 잘 기록하셔서 계속 연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주의 사찰 르포 서곡이네요.ㅎㅎ 첫단락에 나오는 순수하고 풋풋한 청춘시절이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노전소임, 청수, 반야행 등 전문 용어 풀어주셔요. 사찰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사내정치가 어떠한지가 더 상세히 나와야 '글쓰기 천국'도 설득력이 생길 거예요. (분이기->분위기, 재사->제사 등 오타도 정리해주세요.) 일단 사찰 이야기부터! 기다리는 독자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