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도노(活到老), 학도노(學到老)
김 진 복
활도노(活到老), 학도노(學到老) , ‘죽을 때까지 활동하고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의미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살아가는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팔자나 운명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인가. 종교인은 신의 뜻, 신의 섭리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삼는다.
올 초 평소 학문적으로 사숙하고 인간적으로 친숙했던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유종해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구순에 든 나이였지만 정신과 몸 건강에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쓴 칼럼에 평가와 조언을 해 주시던 분이셨다. 전화 통화를 하면 첫마디가 ‘대구의 문호’ 김진복 박사라고 추겨주면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겸양과 남을 칭찬하는 말이 몸에 베인 젠틀맨이다.
30년 넘는 그와의 인연은 내 삶의 큰 자산이 되었다. 1991년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 ‘지방자치연구소’를 만들 때 그분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치학을 전공한 유박사는 처음으로 미국의 현대행정학을 이 땅에 도입한 선각자다. 정치학과 행정학은 끊을 수 없는 상관관계 학문이다, 수많은 행정학 관련 저서를 내었고 그 가운데 ‘조직론’은 학계에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의 고교 시절, 영어 교사였던 유종구 선생은 바로 유종해 박사의 형이었다. 학생들로부터 미스터 세브란스라는 별명을 얻은 유 선생은 평범한 교사와는 달리 의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 짬짬이 미국 영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 비비안 리, 에바가드너 같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은 우리들을 흥미진진하게 했다. 세브란스 유종구 선생이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꿈을 실현한 그의 학문적 투지에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유종해 교수는 나의 학위 논문 지도도 해 주신 분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와 나는 남다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유 교수의 좌우명이 활도노, 학도노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정년 하자마자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중국말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힘들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와 중국, 일본은 한문을 통하여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학자는 끝까지 연구하고 자기 분야에 대한 개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생활 철학은 시나브로 내 좌우명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애쓴다. 활도노, 학도노를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일상은 이렇다. K 방송국 남성합창단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모자라지만 나의 음악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순회 연주회에서 합창을 하다 보면 뭔가 이루었다는 충만감에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악보를 보는 감각도 늘었다.
매주 한 번씩 주민복지센터를 찾아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중국어의 변형 한문은 어렵고 까다롭지만 새로운 한자 감각을 익힐 수 있어 배움의 의욕을 넘치게 한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쉬울 리는 없지만 중국어는 음절 소리의 고저 차이로 발음이 매우 어렵다. 중국어의 어휘가 늘어갈수록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익힌 어휘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고 중국인을 만나면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한 달에 두 번 신문칼럼을 써 온 지가 30년이나 된다. 중간중간 사설도 썼다. D 신문사의 창간사를 쓴 인연으로 지금까지 붓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보통 수필을 쓴다는 기분으로 칼럼을 쓴다. 중수필로 분류되는 칼럼은 비판적 문학이며 현실을 보는 이성적 장르다. 수필의 다각적 시각에서 보면 칼럼을 중수필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시각도 있어 보인다. 그래선지 칼럼을 쓰는 수필가를 잘 볼 수가 없다. 나는 칼럼 신봉 주의자다. 글로써 세상의 면면을 공유하고 조명할 수 있는 것은 중수필인 칼럼의 특권이다.
연초 유박사가 돌아가셨을 때 짧은 추모의 글을 보냈더니 사모님이 영전에 올리겠다고 하셨다. 코로나 분위기에서 추도식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죄를 지은 기분이다.
유박사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 길이가 6,300㎞인 장강(長江) 크루즈 여행을 한 것이 아주 감명 깊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서울의 저명인사들이 만든 백세 클럽에서 장강 여행을 갔을 때 김동길 교수의 깊고 유머스러한 강의를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장강 여행을 버킷 리스트로 정했다. 활도노, 학도노의 지혜를 남겨 준 유종해 박사는 영원한 나의 멘토다.
김진복(金鎭福)
· 경북 청송 출생
· 2010년 계간 ≪문장≫ 수필 부문 등단
· 수필집 『오늘은 새날이다』, 『자서 수필집 길』
· 칼럼집 『진인사대천명』,『지방자치에세이』,『지방자치와 복지』
· 기타 대학교재 등 10여 권
· 행정학 박사,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대구신문 논설위원
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한국문인협회·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문장작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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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짜임새 있는 글 내용 감사합니다. 수성문학이 빛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