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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테이크아웃 커피잔
"머그잔에 드릴까요, 테이크아웃 잔에 드릴까요?" 카페 카운터에서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테이크아웃 잔에 주세요."
잔을 들고서 '테이크아웃(take out)'하지 않고, 카페 안쪽 테이블로 '들어가서(in)' 노트북을 켠다.
커피향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이들이라면 의아해할 것이다.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용도가 아니라면, 굳이 '종이 맛'까지 먹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더러는 이 잔 때문에 카페로 가는 부류도 있다. 물론 이걸 의식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테이크아웃'이라는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의 산물이다.
밖으로 음식그릇을 가지고 나간다 해도 이게 짜장면 배달하고는 다르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마도 이 스타일이 확실하게 보편화하는 데는 햄버거가 결정적으로 기여하지 않았을까. 패스트푸드(fast food)라는 말처럼, 이런 음식에서 본질적인 것은 원하는 장소에 가져가 아무 때나 먹는다는 편의성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커피의 테이크아웃은 좀 다르다. 햄버거는 먹으면 배가 차는 물질성, 곧 '욕구(need)' 차원과 관련되지만, 커피는 이에 비해 물질성에서 자유롭다. 오늘날 커피는 배고파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단순한 후식도 아니며, 도시문명의 에티켓이 스며 있는 사물이자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는 브랜드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욕망(desire)' 차원이 작용하고 있는 음식이다. 햄버거 테이크아웃은 커피 테이크아웃보다는 오히려 짜장면 배달을 더 닮았다.
그래서 자판기 커피잔은 그냥 '종이컵'이 되고, 스타벅스에서만 '테이크아웃 잔'이 될 수 있다. 테이크아웃 잔은 종이컵과 달리 실제로는 일회용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마시고서 곧바로 버리는 용도라기보다는, 개인이 '소유한 물건'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픽업데스크에서 돌아설 때 커피를 둘러싼 문화 전체를 나만의 작은 백팩에 집어넣고 능동적으로 향유하고 있다는 식의 기분에 젖는다. 그건 이어폰을 통해 어떤 힙합 음악을 나만의 귀로만 '소유'하게 되었을 때 우쭐함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 안에서도 머그잔이 아니라 이 개인주의자의 컵,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문한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