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상 종합유선(SO)과 중계유선(RO)으로 나뉜 케이블TV 시장을 SO 중심으로 통합하려는 방송위원회의 정책이 도전을 받고 있다.
신규로 중계유선 허가추천을 신청했다가 방송위에서 거부당한 32개 사업자가 행정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했다. 기존의 중계유선들은 각 계에 RO의 서비스(역무) 범위 확대와 RO의 신규 허가를 청원하고 있다.
방송위는 `기존 정책의 변경 불가'를 재확인했지만, 방송위 밖의 사법부 판결과 국회 등을 통해 중계유선의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불거진 중계유선의 쟁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국내 중계유선사업자는 9월 현재 전국적으로 294개, 가입자 수는 약 200만을 헤아린다. 해가 지날수록 큰 폭으로 중계유선 가입자가 줄었는데, 이는 2000년 4월과 2001년 11월 중계유선을 일부 SO로 전환시킨 것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신규로 SO가 됐거나 42개 전환SO에 편입된 중계유선이 201곳이다. 이후 방송위는 RO의 SO 전환승인은 물론, SO와 RO의 신규 허가추천 자체를 거부했다. 시장통합을 통한 유료방송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난립한 RO를 SO에 통합시키는 게 케이블TV 방송정책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본래 중계유선방송은 1960년대 난시청 해소를 목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태동, TV의 보급과 함께 보편화됐다. 그러나 중계유선은 1990년 이후 종합유선과 위성방송의 다채널 뉴미디어 방송이 출범하면서 `난시청 해소'라는 본래적 필요성이 급감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나아가 지난 2000년 방송관련 제반 법률을 하나로 합친 일명 `통합 방송법'이 발효되면서 다채널 유료방송으로서의 SO와 지상파TV 난시청 해소 목적의 RO가 분명하게 구분되면서 케이블TV 정책은 SO 중심의 시장통합을 추구했다. 그 이전까지는 중계유선이 난시청 해소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종합유선방송법과 유선방송관리법으로 이원화된 법과 제도가 각기 SO와 RO를 관장했으며, 이로 인해 SO와 RO는 동일 시장의 경쟁관계가 되었다. RO에서 출발해 자연스럽게 복수SO(MSO)로 성장하면서 시장이 단순화된 외국과는 판이하다.
방송위가 추구한 케이블TV 시장 통합 정책은 이처럼 구멍 가게 식의 중계유선이 전국적으로 난립한 상황에서는 올바른 케이블TV 시장이 형성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SO와 RO가 방송 수신료가 아닌 광고 수익을 목적으로 한 저가 경쟁을 일삼고, 이로 인해 방송채널(PP)들의 방송 콘텐츠 시장이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방송사업자로서 보다 엄격한 사회적 책임이 부과된 SO 중심의 시장 통합과 나아가 거대 MSO 단위의 시장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월23일 서울행정법원이 32개 중계유선 희망사업자들이 낸 `중계유선방송사업 허가추천 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방송위의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방송위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송위가 즉각 항소방침을 밝힘에 따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행정법원의 1심 판결이 상고심까지 유지될 경우 SO 중심의 케이블TV 시장 통합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실제로 방송위 정책에 발맞춰 RO를 인수한 뒤 RO사업권을 진 반납했던 일부 SO사업자들의 경우 사법부 판결에 의한 정책변경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계유선사업자들은 최근 한국유선방송협회를 중심으로 현 케이블TV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기하면서 중계유선에 대한 방송정책의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중계유선사업자들이 국회 등의 요로를 통해 주장하는 바는 크게 △(중계유선의)역무범위 확대 △SO와의 유선방송 수신료 차등부과 △SO 독점지역의 중계유선 신규 허가 등의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역무범위의 확대는 지난 2002년 11월 이전에 가능했던 것처럼 중계유선에 대해서도 외국 위성방송의 송출을 허가해달라는 것이다. 서민층 가입자가 대다수인 중계유선의 특성을 감안할 때, 중계유선 가입자만이 유독 외국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없게 한 정책은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잘못됐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이다. 또 중계유선들은 현행법상 중계유선이 31개 채널을 운용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운용 가능한 채널은 최대 20개가 전부라면서 31개를 실질적으로 운용하도록 허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송출대상을 교육?갚낼? 등의 공공채널과 종교채널로 확대해달라는 것인데, 나아가 중계유선과 종합유선을 애써 구분하려하지 말고 중계유선을 `소규모 SO'로 인정함으로써 SO에 프로그램을 송출하지 못하고 있는 PP들의 활로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최소 41개 채널을 송출하는 SO와 최대 20개 채널을 송출할 수 있는 RO의 요금을 동일하게 받도록 규정한 것 또한 원천적으로 공정한 경쟁환경을 도외시한 처하라고 중계유선사업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가격인하 허용기준이 정상가격의 20% 수준임을 감안할 때, 중계유선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SO들이 무차별적인 가격할인 공세를 벌이는 것 자체가 실정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SO와 RO의 요금도 차별화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셋째, SO가 케이블TV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방송구역의 경우 신규로 RO에 대한 사업허가를 내줘야 시청자의 방송선택권을 확대하고 매체 독점에 따른 폐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중계유선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는 이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계유선의 이같은 주장은 방송위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방송위는 중계유선측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현행 방송법상 중계유선방송 역무는 종합유선방송에서도 포괄하고 있어 시청자의 선택권 및 시청권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중계유선을 통한 공공채널 및 위성방송 채널 송출 허용은 난시청 해소와 무관하게 중계유선의 역무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으로써 2000년 이후 일관되게 시행해 온 방송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방송위는 중계유선 측 주장이 시장통합을 통한 유료방송 안정화라는 정책방향에 역행하고, 과당 경쟁을 조장하는 등 방송시장 질서를 헤칠 우려가 있다면서, 기존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