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많이 땡기는 이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이 노래가 세계로 퍼져나가던 60년대,
이 노래를 작곡했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의 외딴 섬 수용소에서, 턱뼈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고문을 당하며 수용 돼 있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이 노래는 금지됐고, 50만 명의 젊은이들이
군사정부에 의해 섬으로 끌려갔다.
그러는 사이 이 노래와 하얀 장미는 세계로 퍼져나갔고,
히피와 자유주의자들이 벌인 장미 전쟁의 상징이 됐다.
테오도라키스는 오랜 시간, 장관으로 대통령 후보로
좌파와 우파를 넘나들고, 감옥의 고난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는 리버럴 피플, 자유주의자의 상징으로 남았다.
https://youtu.be/T6SqL0Fl1IM
자유여 영원하라
저 태양은 아직도 빛난다
전혜린이 죽던 날 밤에,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이 같이 술을 마셨다는데.
이 날따라 31살의 돌싱인 이 누나야는 3차까지 술을 마신다.
오전에 인사동에서 이덕희랑 같이 한잔, 오후엔 명동 최불암 엄마 대폿집에서 또 한잔
술을 마시다 자꾸 나가서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고, 호텔에서 3차를 할 땐 이 아줌마의
진상이 부담돼 모두 도망을 가고 새벽에 그녀가 죽었다.
안물안궁,
사실 전혜린이 세코날 몇 알을 먹고 죽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하지 않았다.
서울 법대를 들어가고 독일로 유학 가고 천재과에 집안도 부자인 그이가
남들처럼 평범해지는 게 못내 싫어서 이혼하고, 어린 제자를 작업해 전화질 해대고
그도 여의치 않아 자살을 한다는데, 누구도 그런 거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또, 좀 거시기한 표현이지만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주먹코를 해가지고 곱슬머리에 작은 키에
망가진 몸매에 현모양처도 아니고 사회에 애정이 있는 분도 아니고
그이가 이토록 유명해질 요소가 암것도 없는데..
사실 그녀를 우리나라 낭만주의의 거짐 영웅처럼 만든 건
김승옥과 동료들이 아닐까? 아니 서울대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그를 만들어 낸다.
김승옥과 그 동료들이 전혜린의 일기장을 뒤지고, 서로 품앗이로 표지를 그리고
신문에 광고성 기사도 돌려가며 쓰고 그렇게 책을 내고, < 그리고 아무 말도..>의
전혜린은 우리나라에 스타가 되고, 이후 무수리 전혜린에 공주 전혜린까지
당시에 책을 든 모든 소녀들을 싹 다 감염시킨다.
전혜린 신드롬을 만들어낸 < 김승옥 그룹>이 주장하는 거는 무어일까?
외교관이 돼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 불문과를 갔다는 김승옥은, 이청준과 함께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구성과 감각을 만들어 낸 < 소설의 전형>을 세웠다고,
그래도 부족해 그림을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신학대학을 들어가고
광주항쟁이 일어날 땐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소설을 갑자기 끊어 편집장을
사색이 되게 만들었다.
흔히들 우리나라 산문 문학은 그들, 서울대 60학번에서 시작 됐다고 말한다.
김승옥과 이청준이 그들이고 김현. 김지하. 염무웅 등이 모조리 서울대
60학번인데, 이들이 한글 교육 1세대인 셈이다. 그전 세대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운 세대로 한글로 산문을 쓰기 불가능한 세대다.
그들 이후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김승옥과 이청준의 작품을 몇 번씩
베껴가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전혜린이 죽던 그해 겨울에 ,
김승옥은 < 서울, 1964년 겨울>을 써서 동인 문학상을 받고 이어 <무진기행>이
탄생한다. 우리나라 산문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이다.
<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죽은 부인의 시체를 세브란스병원에 팔아
그 돈으로 술을 먹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이는 그 밤에 여관에서 죽고
같이 술을 마셨던 사람들은 그를 외면해 죽게 했다.
환락의 서울의 뒷골목에서 서로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자살은 자유를 찾는 솔깃한 유혹됐다. 4.19 혁명은 쿠데타로 뒤집히고 그들에게는
사랑할 조국이 없다. 그저 같은 땅에서 서로 부유하며 떠돌 뿐이다.
전혜린의 아비 전봉덕은 서울대 전신, 경성제대 법대를 나왔고 이승만 정권에서 백범 김구
암살을 계획해 실행하고 살해범을 풀어주며 깔끔하게 마무리한 공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승승 장구한다. 전봉덕은 1980년대, 세상이 바뀌자 위협을 느껴 슬그머니 미국으로
도망을 가 죽는다. 그가 딸에게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갈켜 줄 수가 있었을까?
사랑해야 될 조국도 없고 헌신해야 할 사회와 가치도 없는 그들 자유주의자들이 부유하며
젊은날을 떠 돈다. 25살, 약관의 문학도에게 동인 문학상이 주어지는 사회는 모두들
이 자유주의자들의 방황에 동의하는 것이었을까.
https://youtu.be/T9tBDG3kmZs
독일 뮌헨에는, 히틀러 때 뮌헨대 총장였던 쿠르드 후버를 기념해 조성된 쿠르드
후버 거리가 있다고 한다.
이 거리는 1943년 나치정권에 저항한 <백장미단 사건>으로 죽은 쿠르드 후버와
사건의 주모자였던 조피 숄 남매를 기념하는 거리로 조성됐는데,
위 동판은 쿠르드 후버 교수의 절친이며 동지였던 이미륵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로,
쿠르드 후버 거리에 후버교수와 나란히 이미륵교수의 동판을 조성했다고.
전후 독일은 이미륵의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교과서에 소개하는 등
이미륵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
동판에 희미하게 보이는 한글이 이미륵의 글에서 즐겨 인용했던 좌우명 같은 글이다.
오른쪽에 새겨 넣은 꽃이 백장미인데 43년의 백장미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륵의 자전적 장편 <압록강은 흐른다>는 뮌헨대학교에 유학 중이던 전혜린에 의해
발굴돼 번역되었고, 속편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도 이후 번역됐다.
소설 속에서 이미륵은 또 천재 꽈이다. 서당에 다니다 책을 빌려가지구 독학을 해 30대 1의
경쟁률 뚫고 경성대 , 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3.1 운동에 파고다 공원에서 찌라시를
돌리다 수배되어 압록강을 건너 상해로 탈출했다. 이 내용으로 이미륵은 한국정부
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이후 배를 타고 돌고 돌아 프랑스 마르세유항에 내려
뮌헨의 이자르강까지 가는 여정이 소설의 내용이다. 이후 여러 대학을 거쳐 뮌헨대에서
활동하는 내용은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의 내용이다.
그이도 또한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고 세계를 떠돈 역마살의 자유주의자이다.
1941년 뮌헨대 의대 다니던 한스 숄과 그이의 여동생 조피숄(19세) 이 <백장미>라는
지하단체를 만들어 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는데, 유대인학살과 잔인한 전쟁을
거부하고 학교와 공장에서 파업으로 저항할 것을 주장하며, 전단의 마지막엔
<화이트로즈인 뮌헨>이란 이름을 적었다.
찌라시를 돌린 죄로 숄 남매와 그들의 지도교수 후퍼와 관련자들이 단 심으로 재판을
받고 바로 그날 새벽 교수형이 아닌 단두대에서 목을 자르는 형집행이 이뤄졌다.
자유여 영원하라
저 태양은 아직도 빛난다
19살 소녀 조피 숄이 단두대로 끌려가며 마지막 보는 태양을 노려보며 외쳤다는 말이다.
그들 남매, 특히 조피숄은 현재까지 독일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2차 대전 후, 뮌헨의 하얀 장미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전체 유럽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번져 나갔다.
그 뮌헨의 자유를 공부하던 독일 유학생 강빈구한테서 천 원짜리 몇 장을 빌려
막걸리를 마셨던 역시 서울대 출신 천재적인 시인 천상병은, 그 돈이 북괴의
공작금으로둔갑해 병신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다, <동백림 사건>이다.
1960년대 전혜린과 천상병의 무대 서울은 완전 아수라장이다.
이 백장미 사건을 다룬 책은 80년대 서울에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으로
번역 됐는데. 이 줄여서 <아미자>란 책은 어리버리한 시골 유학생이 신입생 때
처음 읽는 책이었다. 대학 캠퍼스를 배회하는 신입생들은 저 책을 들고 작업하는
선배들한테 걸려들면 바로 지옥의 서클 생활이 시작 됐다.
이른바 " 신입생들에겐 <도를 아십니까? >와 같은 프러포즈 교재였다.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의 자유주의자들은 영화와 책으로 뮌헨의 하얀 장미를 올리고,
장미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https://youtu.be/fDV98mkueYU
나나 무수쿠리 , <아테네의 하얀 장미 >
60년대 그리스의 쿠데타와 소요로 그리스는 점점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60년대 초 독일의 한 방송국이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그리스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 에게 영화 삽 입곡을 부탁했는데.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5곡을 만들었다.
이 노래들은 당시 신인이었던 나나 무스크리에 의해 녹음돼 독일로 보내졌는데.
그 노래 들 중에 <아테네의 하얀 장미 >가 독일 전역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순식간에 100만 장의 앨범이 팔려 나갔다. 나나 무수쿠리라는 세계적인 대중가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나나 무스쿠리의 앨범은 3억 장이 팔려 나간다.
뮌헨의 슈바빙 잿빛 포도 위를 안개가 감싸고,
자전거를 탄 노인이 레몬빛 가스등을 켜며 지나간다.
포플러가 도시를 채우고 보헤미안처럼 살기를 갈망하는 보헴의 거리,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의 낭만의 무대이다.
수프와 포도주로 끼니를 때우며 인생을 논하고,
크록에 취해 어둠이 찾아오는 거리로 슬픈 기타 소리가 흐른다.
몇 천원의 북괴 공자금을 막걸리값으로 받아 간첩이된 사람들과
평범해지는 게 지겨워진 천재들이 서울을 배회하고.
그 시절 그리스와 남미 중동 그리고 유럽에서
하얀 장미가 다시 피기까지 그들은 수도 없이 자유를 찾아 떠났고
더러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은 가고 노래만 남았고.
비 오는 날 무리 지어 출몰하는 그들이 떠난 기억들은 안개처럼
내 맘을 떠도는데, 내일도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기억은 영원하리.
첫댓글 안물안궁까지 읽었습니다
시간되면 끊긴 줄을 이어갈께요
자고로 독재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리나 봅니다
다시 정상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기후변화환경
되돌리는 시간과 어떤 관계를 가질지 연구좀 해보고 싶어요
지금 운동후 막걸리를 마시면서 아까님의 나머지 글을 읽었네요
저는 현충일이나 각종 국경일 때 순국선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피흘려 희생하신 한국사람들만 아는 만큼 떠올렸어요
근데 아까님의 글을 읽고 있자니
세계속의 자유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본을 보인
자기 민족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먼저 있었기에 무식했던 대한민국의 백성들의 배움속에 이어져 온 대한민국 만세 였음을 느낌니다
힘없는 백성들 멀~리 외국 유학할 능력이 있었다면 서로 마음을 합해 뭔~가 하나된 조합속에 실천의 본을 보여 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거기서 그때도 계파적 사상적 이념적
길고 짧은 지식적 사고속에 달리 생각하며
따로 행동하는 개인적인 환경을 뛰어 넘지 못하는 한계가 지금 21세기 까지 끼리 끼리 정치 문학 예술등의 세계가 이어져 오고 있지
않는가 막걸리 한 잔속에 생각을 넘겨 버립니다
자기 정당성
우리 일반백성은 뭐라고 한 줄아십니까
게~뿔
정당성이 밥 먹여주고
막걸리 한잔 사주며
약한 서민들 자존심을 세워주냐?
니네들 쌩까는 소리지 ㅎ
음악방에 어느분이
팝가수 나나 무수쿠리의 곡을 올려가지구
기억나는 인물과 노래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지식인들의 쌩까기와 아쉬운 언행들에 공분해봅니다.
어제 산행에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시간 내서 함산해보아요
아까님의 글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읽게 됩니다. 지식으로 가득차 있다가 어떤 계기로 태엽이 풀리듯 술술 나오는 것 같은데 저는 그저 경이롭게 바라본다고 할까요. 좀 어렵지만 말입니다.
단 저 음악들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네요.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지만...
반갑습니다.
불향님 글도 재밌게 읽고 있답니다.
노스페이스 여행기부터
취향들이 조금씩 다르니까.
혹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러네요
잘 읽고갑니다
잘 읽으셨군요.
꽁꽁 숨겨둔 노래는 어려우시면
숨겨둔 글이라도 한 꼭지 올려주시면, 참 궁금합니다.
반가웠구요.
확답없는 미적지근함에 답답했구요.
글과 음악은 언제나 감사하구요.
ㅎㅎㅎ
누가 보면 썸 타는 줄 알겠어요.
요즘 맥빠진 모습이 분명 먼일이 있구만요?
@아까 선배님 혼자 그런 생각 하시나?
저는 독서일기 이벤트 진행위해 도움달라구 했는데 핵심만 비껴서 확답없는 대화가 답답했는데...
올리시는 글처럼 시원하게 답해주시면 얼마나 좋으까?
공연 썸 그런거 신경쓰지 마시고요.
인문학 산책 리딩해주실거지요?
"사랑해야 될 조국도 없고 헌신해야 할 사회와 가치도 없는 그들 자유주의자들이 부유하며
젊은날을 떠돈다. 25살, 약관의 문학도에게 동인 문학상이 주어지는 사회는 모두들
이 자유주의자들의 방황에 동의하는 것이었을까."
Woher sind Sie?
청한님 작열하는 글도 좀 보구 싶습니다.
한 꼭지 부탁드려요.
ㅎㅎㅎ서로간에 이름도 고향도 거시기하니까.
멋진 글로 한 수 부탁드립니다.
숙제 풀고 갑니다.. ㅎ
요즘 때 이른 무더위와
동남아 처럼 변하는 우리 조국의 날씨
대부분 스콜
황순원님의 소나기속
원두막 같은 장소는 이미 아파트 단지로 탈 바꿈. ㅠㅠ
낭만이 없어요?!!
역시
갈곳은 “산”
산 뿐 입니다.
숭고한 정신과
역사는 영원하겠지요?!!
이상과 ㅅ ㅏ상이 꿀 처럼 넘쳐 흐르는 멋진 글들
잘 읽고 계속 드링킹 합니다.
Thank You sO가 “VERY” much!!입니다. 🫡
요즘 우리사이 참 좋습니다.
아침마다 서로 문안인사를 주고 받으니
오늘도 엄청 더울 거 같은데
그러려니 한철 버텨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