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에는 목욕탕이 없었다.
물이 넘쳐났던 옥계에 목욕탕이 없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기도 하다.
玉溪는 한자의 뜻 그대로 맑은 물이 넘치는 곳이다. 면 단위에 큰 냇물이 두 개나 있는 곳이 옥계가 유일할 것이다.
주수천과 북동천이다.
나는 북동천이 흐르는 옥계면 낙풍리에서 태어났다.
낙풍리는 북동천과 함께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도 같이 흘렀는데 그곳에는 가재들이 많았다. 가재를 잡아서 냄비에 삶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가재를 삶으면 발갛게 변하고 마치 게와 같은 맛이 난다.
그리고 마을의 빨래터에는 항상 물이 넘처나서 그곳에는 여자들이 득실 거렸다.
나의 할머니도 항상 그곳에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갔다가 할머니에게 잡혀서 발가벗겨져서 하고 싶지 않은 목욕을 강제로 당하기도 했다.
낙풍리의 논들은 항상 물이 철철 넘쳤다. 굳이 물대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물이 많았고, 그곳에는 민물 조개와 미꾸라지가 많았다.
여자들은 굳이 집에서 목욕을 하지 않고 늙은 여자들은 빨래터에서 남이 보든 말든, 젊은 여자들은 밤중에 세숫대야를 들고 북동천의 버드나무 사이에 숨어서 목욕을 했다.
마을 아이들은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다. 나도 동네 헝들을 따라가서 보다가 들켜서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았다.
아마 물이 넘처나서 목욕탕이 없었던 것 같다.
촌 사람들은 겨울에는 목욕을 안하니 상관 없기도 하고.
그러다가, 북동천 주수천이 개발되고 도저히 여자들이 목욕하러 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나가고 점점 목욕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목욕탕을 개업해도 망할 것이 뻔했다.
그러다가 한라 시멘트가 들어서고, 시멘트 공장의 매연이 옥계 사람들을 위협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한라는 옥계주민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척 했다.
그것이 한라 목욕탕이다.
한라 목욕탕은 한라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 안에 있다.
나도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아버지와 같이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어느 날 한라 목욕탕에 갔다가 꼴불견을 보고야 말았다.
갑자기 목욕탕 안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노인네 하나가 목욕하면서 힘을 쓰다가 똥을 싸버린 것이다.
옥계 사람들은 목욕비 500원의 혜택을 받으며 여전히 한라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다.
한라 시멘트는 그것 말고도 옥계 주민들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아이들 학비, 노인잔치, 옥계해수욕장 운영비 등을 지워해준다.
그러나 그런 모든 혜택을 옥계면 번영회를 장악하고 있는 시의원과 그놈의 똘만이들이 독차지 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이장놈들이 한라시멘트 경비 일을 장악하여, 정규직으로 연봉 7. 8 천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
전부 노인들이라 그런 것에 대해 무관심하기도 하고, 따질려고 싸우지도 않는다.
아마 전국 농어촌의 실정이 비슷할 것이다.
지방 자치라는 이름으로 도의원 시의원을 만들어 놓았으나, 지방자치는 지방범죄집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물론 성실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방의원들도 많지만,
지역민으로서 많이 아쉬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