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라는 말씀은 준비된 자세로 육과 영과 정신이 깨어 있으라는 의미로 절제로 허리띠를 매고 선행과 지성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잘 준비된 자세일 것이다.
낮과 밤중과 새벽은 한 인간의 세 시기, 즉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시기 내내 사람은 참회와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을 구별하시기 위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주인이 온다고 말씀하신다. 불충실한 종은 자기 임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다.
알고 불충실한 죄는 가장 크고, 모르고 소홀히 한 잘못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비유들은 특별히 사도와 사목자들에게 주어진 경고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종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띠를 맬 때에, 주님은 당신도 띠를 매신다.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를 복된 사람으로 축성하시기 위해서이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이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수고한 만큼 주님은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도 섬기러 오신 것이며 나자렛 성가정에서부터 피조물인 마리아와 요셉을 엄마 아빠라고 섬겨드렸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러주셨다. 종에게 시중드는 하느님의 모습이 십자가에서 가장 잘 드러나지 않는가?
아울러 주님은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더 많이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은 특히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보상도 클 것이지만, 불충실한 종은 그만큼 더 엄중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깨어있는 삶은 어떤 삶인가?
1)-. 허리에 띠를 띠고 기다리는 삶이다.
즉 봉사자의 자세이다. 혼인잔치의 신랑이 도착하면 바로 문을 열어주고 식탁봉사를 하려는 자세이다. 주님은 자주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한다. 묵시19,7에도 “어린 양의 혼인날이 왔으며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도다.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즉 재림하실 신랑 예수님을 맞은 신부가 입을 wedding dress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인 것이다. 즉 예수님의 보혈로 자기의 옷을 깨끗이 빨아 입는 영혼 즉 죄 사함 받은 영혼을 말한다. 이 옷은 곧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를 말한다고 성서는 주석한다. 義 자를 보면 양 밑에 내가 있다. 즉 내가 어린양이신 예수님 밑에 있을 때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에서는 주인이 띠를 띠고 내 식탁에서 봉사할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가? 그러나 예수님이 이미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모범을 보이셨다.
2)-. 등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자세.
기도의 등불을 켜놓고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무릎이 낙타무릎이 되도록 무릎에 굳은 살이 배기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가정기도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 하느님은 성막의 등잔대와 번제단에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신 바 있다.
3)-. 열정을 기지고 뜨겁게 기도하라.
Prinston 대학총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남대문시장을 지나다가 앉은뱅이가 고무판으로 땅을 기어다니며 수건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복음성가가 울려퍼지고 이 청년은 성가를 따라 부르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외치며 수건을 팔고 있었다. 총장님은 이 모습이 미국에 돌아가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총장님은 신학생들 졸업식에서 “한국의 앉은뱅이 선교사의 열정을 가지고 나가서 선교하라!“고 강론하였다.
열정이 식은 기도는 응답이 없다. 예수성심이 왜 새빨간가? 불덩어리처럼 사랑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4)-. 항구하게 기도하라.
아프리카 추장 중에 기도만 하면 비가 온다는 소문이 난 추장이 있어서 다른 추장들이 그 비결을 물으니 이 추장이 하는 말이, “나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고 답하였다. 하느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라.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자녀축복 약속을 25년간 기다려서 응답을 받았다.
우리는 언젠가 주님대전에 우리 인생 총결산서를 들고 불려나갈 것이다.
그날에 당황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일일결산서를 충실히 점검하자.
하루가 모여 1주일이 되고 1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1년이 된다.
그날그날에 충실하여 천국에 내가 영원히 살 집을 짓는데 쓰일 벽돌을 잘 굽도록 하자.
천국에서는 예수님께서 내가 매일매일 삶으로 만들어내는 벅돌로 내 집을 짓고 계시다. 아직 내 집이 왼성되지 않은 것이다. 주님이 내 집을 짓고 계시다. 오늘 보내는 벽돌로 천국의 내 집이 한단 한단 높아가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느님 말씀에 충실히 잘 살았으면 단단하고 잘 구워진 벽돌이 만들어져 하느님 나라에 보내지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고 그냥저냥 내 뜻대로 분심하며 불평하며 시간을 낭비한 날은 금이가고 부스러지기 쉬운 벽돌을 만들어 하늘나라에 올려보내니 그런 벽돌로는 집을 지을 수가 없어 예수님은 안타깝지만 버리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 어떤 부자집 귀부인이 꿈에 베드로 사도를 만났다. 베드로 사도가 “네게 보여줄 것이 있다. 따라오라.” 해서 따라갔더니 큰 저택을 하나 보여주셨다. 베드로 사도가 “이집이 바로 몇 년 전에 죽은 네 집 운전수 집이다.”그래서 이 귀부인은 속으로 “내 운전수의 집이 이정도면 내 집은 대궐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베드로 사도에게 “내 집도 좀 보여주세요!”하니 베드로 사도가 따라오라고 하며 한참을 가더니 저택 촌을 다 지나서 오두막살이 달동네같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 끝에 마지막에 짓다 만 작은 집을 가리키며 “이집이 네가 올 집이다!”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귀부인이 항의하며 “말도 안되요! 베드로 사도님, 내 운전수 집은 저택인데 내 집이 이렇게 초라하다니요!”하고 불평을 하니 베드로 사도가 말하기를, “잘 들어라. 네 운전수는 살아있을 동안 틈틈이 애긍시사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 그런데 너는 너만 생각하고 네 자신 치장만 요란하게 하고 가난한 이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천국의 집은 이웃에게 봉사하고 이웃에게 베푼 자선의 벽돌로 지어지는 것이란다. 그러니 네 집을 짓는데는 벽돌이 턱없이 모자라서 네 집 운전수가 자기 집을 짓고 남은 벽돌을 보태주어서 간신히 이만큼이라도 짓게 된 것이다. 그러니 꿈을 깨거든 남은 여생을 온 정성을 다해 네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애긍시사를 많이 하고 오너라.” 해서 이 귀부인은 꿈에서 깨자마자 열심히 이웃에게 봉사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애긍시사하며 좋은 벽돌을 많이 구워서 하늘나라에 보내어 예수님이 이 귀부인의 집을 부지런히 짓고 계시단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하나씩 정해주셨다.
나의 수호천사는 날마다 내 일일결산서를 들고 예수님 대전에 올라가 보고서를 올린다. 내가 잘 산 하루는 수호천사도 신바람이 난다. 주님께 칭찬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분심하며 불평이나 하고 하루를 허송세월한 날은 수호천사가 일일결산서에 붉은 줄이 그어진 적자 통장을 들고 가야하니 풀이 죽어 어깨에 힘이 빠진다.
우리 수호천사님께 신바람나게 해드리자.
기도와 미사참여, 애긍시사 봉사활동 등으로 거룩하게 살아서 내 수호천사가 흑자 일일결산서를 들고 예수님 대전에 휘파람 불면서 씽씽하게 달려갈 수 있도록 해드리자.
묵시22,12에 예수님은 “내가 곧 가겠다. 너희가 행한 업적에 따라 상급을 가지고 가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행한 선행과 기도와 하느님을 위해 수고하고 땀흘려 노력한 상급을 받는 날이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이 되도록 기다리자.
준비하지 않고 내식으로 내 맘대로 살아가는 시간들은 주님 심판대전에 아무공로가 안 된다. 주님 뜻대로 말씀대로 순명하며 살아간 시간들만이 하느님 앞에 공로가 되는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 마라나타!”하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 마라나타!!!!!